호방한 남성적 기질과 끈끈한 단결력의 교풍

▲ 강남구 일원동 중동고 교정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는 사자(獅子)정신, 호방한 남성적 기질과 야성, 끈끈한 단결력은 100년을 버텨온 중동학원의 든든한 교풍이다. 하지만 모든 거목들이 그러하듯 한 세기 풍상을 겪어온 중동은 작은 씨앗에서 발아했다.

을사보호조약 체결 이듬해인 1906년, 당시 관립 한성외국어학교의 교관이었던 오규신, 유광렬, 김원배 선생 등 3인은 교육을 통해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야학당을 설립했다.

한성외고의 건물 일부를 빌려 교사(校舍)를 마련했고, 가르치는 과목은 한어(중국어)와 산술 등 두 과목에 불과한 초미니 학교였다.

당시 신학문 교육 기관들의 설립 주체는 대부분 대한제국 황실, 외국 선교사 또는 민간 유지 등 세 부류 중 하나.

이에 비해 중동은 일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사들이 직접 구국 교육에 나섰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민중 지향적이었다. 그런 까닭에 배움에 뜻을 가졌으나 기회가 없었던 전국의 수많은 민초들에게 초창기 중동은 대중적 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개교 후 약 10년 만에 정규 학교의 모습을 어느 정도 갖춘 중동은 백농 최규동 선생이 1915년 5대 교장으로 취임하면서 본격적인 발전의 시기로 접어든다.

‘최대수(代數)’란 별칭으로 불릴 만큼 당시 일류 수학교사로 이름을 날리던 백농 선생은 1918년 학교를 인수해 주학을 병설하고, 1919년에는 사립 중동학교로 이름을 바꿔 민족의 자각과 실력 양성 운동에 매진했다.

중동의 인물

■ 정ㆍ관계

윤치영(전 국회부의장ㆍ특) 안호상(전 문교부 장관ㆍ특) 최순주(전 국회부의장ㆍ14기) 윤인상(전 재무부 장관ㆍ15기) 윤제술(전 국회부의장ㆍ18기) 이교선(전 상공부 장관ㆍ19기) 함인섭(전 농림부 장관ㆍ21기) 한표석(전 주미공사ㆍ26기) 양일동(전 국회의원ㆍ27기) 함종빈(전 국회의원ㆍ38기) 김옥형(전 국회의원ㆍ38기) 이우재(전 체신부 장관ㆍ46기) 김용대(전 국회의원ㆍ48기) 안동선(전 국회의원ㆍ49기) 김길홍(전 국회의원ㆍ53기) 한광옥(전 국회의원ㆍ53기) 설송웅(전 국회의원ㆍ54기) 염동연(국회의원ㆍ58기) 김택기(전 국회의원ㆍ62기) 김무성(국회의원ㆍ64기) 정장선(국회의원ㆍ70기)

■ 재계

장기영(전 대한중석 사장ㆍ특) 이병철(삼성그룹 창업주ㆍ26기) 한원석(제일약품 창업주ㆍ36기) 백영길(경동택배 회장ㆍ54기) 정동운(신성㈜ 사장ㆍ54기) 박정원(한진해운 사장ㆍ56기) 이전갑(현대자동차 부회장ㆍ59기) 문국현(유한킴벌리 대표이사ㆍ60기) 손연호(경동보일러 회장ㆍ64기) 박병엽(팬택 대표이사ㆍ73기)

■ 학계

이병도(전 문교부 장관ㆍ특) 이희승(전 서울대 교수ㆍ특) 이훈구(전 성균관대 총장ㆍ특) 고광만(전 서울대 사범대학장ㆍ특) 양주동(전 동국대 교수ㆍ15기) 이휘재(전 서울농업대학장ㆍ17기) 조용욱(전 동덕여대 부총장ㆍ18기) 정일천(전 카톨릭의대학장ㆍ18기) 서병설(전 서울대 의대학장ㆍ34기) 송석구(전 동국대 총장ㆍ51기) 서명덕(상명대 총장ㆍ63기)

■ 문화계

김동환(시인ㆍ15기) 김광섭(시인ㆍ18기) 김영수(소설가ㆍ27기) 김충현(서예가ㆍ37기) 김지하(시인ㆍ52기) 안정효(소설가ㆍ54기) 김희라(영화배우ㆍ57기) 유홍준(문화재청장ㆍ60기) 정동환(탤런트ㆍ61기)

■ 기타

백인엽(전 육군중장ㆍ특) 정순석(전 검찰총장ㆍ특) 한격만(전 검찰총장ㆍ15기) 변옥주(전 대법관ㆍ18기) 송월주(전 조계종 총무원장ㆍ47기) 황상구(전 대구고검장ㆍ51기) 차경복(전 성남일화축구단 감독ㆍ52기) 박기정(전 한국언론재단 이사장ㆍ53기) 윤호찬(충주MBC 사장ㆍ55기) 이재신(전 수원지검장ㆍ55기) 박무(전 한국일보 편집국장ㆍ56기) 유병필(MBN 보도국장ㆍ57기) 오남영(전 육군사관학교장ㆍ57기) 조중연(축구협회 부회장ㆍ58기) 장영섭(연합뉴스 사장ㆍ60기) 박명훈(경향신문 편집국장ㆍ62기) 고재욱(전 울산현대축구단 감독ㆍ63기) 조민국(고려대 축구부 감독ㆍ75기) 김종부(중동고 축구부 감독ㆍ76기)

*특(特)은 초창기 학원 시절 동문.

명문 사학의 토대를 마련한 실질적인 주역인 백농 선생은 설립자는 아니지만 중동 역사에서 그 이상으로 추앙을 받고 있다.

윤태익 총동문회 수석부회장(전 중동고 교감, 중동중 교장)은 “백의민족을 농사 짓는다는 뜻의 아호를 쓸 만큼 교육을 통한 제민 사상에 투철하셨던 백농 선생은 중동 100년 역사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분”이라고 설명했다.

백농으로부터 민족 자존과 구국 정신을 전수 받은 중동인들은 일제시대 항일 운동의 일선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1926년 6월10일 순종 황제의 인산(因山) 때 민족적 울분을 터뜨린 6ㆍ10만세사건, 1929년 11월3일 광주학생운동에 뒤이어 서울서 조직적으로 전개된 서울학생항일운동 등은 중동인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대표적 항일 운동 사례다.

특히 서울학생운동 당시 중동은 다른 학교에 비해 압도적인 숫자가 시위에 참여했으며 그 결과 검거된 숫자 역시 다른 학교들을 훨씬 웃돌았다.

45년 조국 해방 이후 중동중학교로 이름을 바꾼 중동의 도약은 한층 더 탄력을 받기 시작한다. 48년 재단법인 중동학원이 설립됐고, 51년에는 중동고등학교 설립 인가를 받았다.

중동은 5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1차 황금기를 맞이한다.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는 물론 운동, 연극, 문예 같은 특별 활동 등 모든 분야에서 르네상스를 꽃피웠다. 60년대 후반 예비고사 합격률은 전국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고, 중동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축구부는 74년 전국대회 6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업적을 남겼다.

특히 이 시기에 학교를 다닌 동문들 중에는 현재 각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인사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김지하 시인, 유홍준 문화재청장, 염동연 열린우리당 의원,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 문국현 유한킴벌리 대표 등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중동 출신 명사들이다.

74년 학교법인 수송학원을 흡수해 교세를 더욱 확장한 중동은 84년에 종로구 수송동 시대를 마감하고 강남구 일원동으로 학교를 옮겨 마침내 강남 시대를 연다.

하지만 중동 역사에서 최대 시련으로 꼽히는 불행이 얼마 지나지 않아 들이닥쳤다. 빚에 시달리던 재단이 92년 부도를 내면서 학교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암흑 속으로 빠져든 것이다.

중동인의 저력은 바로 이 때 발휘됐다. 2년 동안 관선 이사진이 학교를 경영하는 동안 교직원, 동문, 학생, 학부모들은 하나로 똘똘 뭉쳐 학교를 지켜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중동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갈 건실한 재단을 찾아 나섰다.

당시 안동선 국회의원과 김무성 대통령 비서관 등 정계의 동문들이 힘쓴 결과 마침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선친인 이병철 창업주가 중동 동문인 데다 평소 교육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게 양측이 인연을 맺은 계기였다.

역사 단절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지 10년이 지난 2004년. 중동인들은 가슴 벅찬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기 위한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 중동고 상진 동물 사자상

지난해 9월에는 동문, 교직원, 재학생 등 1,600여 중동인이 백두대간 100개 봉우리를 동시 등정하는 감동의 장관을 연출했다. 한 원로 동문은 “아들이나 손자뻘 되는 후배들과 함께 산을 오르면서 세대를 초월하는 중동인의 뜨거운 단결력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올해는 더욱 다양한 기념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다. 중동 교기(校技)인 축구뿐 아니라 마라톤, 골프, 바둑, 당구 대회 등도 열어 동문 화합의 잔치판을 펼칠 예정이다. 중동 100년사 편찬 작업과 기념탑 건립, 학술제 행사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사업들이다. 100주년 기념식은 5월 13일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린다.

중동은 삼성 재단이 들어온 이후 새로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삼성이 가진 선진경영 기법과 중동의 오랜 학교 전통이 합쳐져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첨

단 인프라를 갖춘 교육 시설, 석ㆍ박사가 다수 포진한 교사진, ‘삼성 글로벌리더 스칼러십’(SGLS)로 대변되는 재단의 전폭적인 지원 등 교육 환경은 어느 것 하나 손색이 없다.

이를 통해 새로운 100년, 아니 1,000년을 준비하는 중동의 지향점은 바로 ‘신교육’ ‘앞서가는 일류 교육’을 통한 참인간 육성에 맞춰져 있다.

인터뷰 - 김병택 교장

김병택 중동고 교장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와 부총장을 지낸 학자 출신이다. 지난해 1월 난생 처음 고등학교 경영을 떠맡은 그는 부임 이후 개교 100주년이라는 큰 행사를 준비하느라 정신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100주년이 코앞에 다가온 요즘도 김 교장은 쏟아지는 대내외 업무 수행에 눈코 뜰 새조차 없다. 김 교장에게서 중동의 어제, 오늘, 내일을 들어봤다.

- 개교 100주년을 맞이한 감회와 또 다른 100년을 준비하는 방향은 무엇입니까.

▲ 올해는 중동고가 개교 10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입니다. 민초들의 소중한 애국심을 모아 만든 민족사학 중동이 세계적인 명문사학으로 발돋움하려는 즈음에 개교 100년을 맞이하게 된 것은 그야말로 큰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중동은 100주년 기념 캐치프레이즈인 ‘백년 중동 천년 미래’라는 말에 걸맞게 100년 역사를 바탕으로 21세기 선진 한국의 미래를 열어나갈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 학교를 운영하는 원칙을 말해주십시오. .

▲ 우리 중동이 세계적인 명문사학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청사진을 여러 선생님들과 충분한 논의해 도출한 결과가 ‘중동비전 2010’입니다. 저는 이를 학교 운영의 커다란 지침으로 삼고자 합니다.

중동비전의 골자는 ‘경쟁력 있는 열린 시스템’으로 학습자 중심의 중등교육장을 만드는 겁니다. 이를 현실적으로 추진하려면 우선 자립형 사립고로 지정받는 게 급선무입니다.

구체적인 5대 전략과제로는 천년 미래의 참인간을 형성하기 위한 인성 프로그램,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학력신장 프로그램, 세계 수준의 교사진을 구축하기 위한 교수법 및 교사 전문성 계발, 빠른 의사결정ㆍ역동성ㆍ정보 중시의 열린 경영체제 구축, 선진 수준의 학술 정보 및 교육 인프라 확충을 꼽을 수 있습니다.

- 중동고는 선진적 교육 환경과 시스템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요.

▲ 중동고는 지난 10년간 삼성재단의 전폭적 지원으로 교육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확충해 왔고, 21세기 중등 신교육의 시범장으로서 한국 중등교육의 새 지평을 열어왔습니다.

중동의 자랑거리는 끊임없는 신교육 프로그램의 개발입니다. 교사 연구 지원을 목표로 부설 중등교육연구소를 세웠으며, 학생들을 위한 인성 교육 프로그램 ‘후앰아이(Who am I)’도 자체 개발했습니다. 삼성 글로벌리더 스칼러십 선발제도도 중동고만이 내세울 수 있는 자랑입니다.

- 오늘의 사학 현실에 대해 간단하게 진단해 주시고, 그 속에서 중동의 좌표는 어떠한지요.

▲ 오늘날 사학을 비롯한 모든 학교들은 전인 교육에 힘쓰기보다 당장의 입시 교육에 치중하과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계에서는 우리 중동을 흔히 선진교육의 시범장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중동이 그 동안 깜짝 놀랄 만한 여러 혁신적인 방안을 제시했고 이를 원칙과 소신으로써 실천해왔기 때문이죠. 사학들은 이제 보다 넓은 세상을 생각하고, 또 학생들의 미래를 감안해 교육의 큰 틀을 다시 구상해봐야 합니다. 중동의 미래도 물론 이러한 방향에서 결정될 것입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