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눈과 귀 장악한 케이블TV - 1995년 첫 방송, 온갖 시련 딛고 1,300만 가구 시청 시대 '활짝'

“불과 5~6년 전만 해도 케이블TV 업계를 관심 깊게 지켜보는 곳은 감독 당국인 방송위원회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방송위뿐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 시민단체,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국민들이 주시하고 있다. 그만큼 국민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온 케이블TV 업계의 영향력이 엄청나게 커졌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1995년 케이블TV 출범 당시부터 관련 분야에서 일했던 한 전문가가 현재의 업계 위상을 함축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각종 지표를 살펴 보면 케이블TV의 저변이 얼마나 넓어졌는지 실감할 수 있다.

우선 가입 가구수는 2004년 말 현재 무려 1,290만여 가구에 달한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가입 대상 가구수의 74.2%에 달한다. 다시 말해 10가구당 7가구가 케이블TV를 시청하는 셈이다. 지난해에도 가입자는 꾸준히 늘어 1,300만 가구 시청 시대가 열렸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지상파 방송 위협하는 방송 강자로

시장이 넓어지면서 돈벌이도 크게 증가했다. 먼저 방송채널사용 사업자(PP)와 종합유선방송 사업자(SO)의 연간 매출액(수수료 기준) 합계는 2003년에 3조3,000억원을 넘어섰다. 취급액을 기준으로 하면 6조원을 웃도는 황금시장이다.

광고 매출 역시 가파르게 신장해 2003년 말 현재 PP업계가 3,200억원대, SO업계가 2,600억원대를 각각 기록하고 있다.

이쯤 되니 국내 방송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지상파 방송사들도 위기감을 갖기 시작했다. 하룻강아지 정도로 치부했던 뉴미디어가 어느덧 호랑이로 성장해 자신들의 영역을 호시탐탐 넘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이 있기까지 케이블TV 업계는 지난 10여 년간 격동과 파란의 세월을 힘겹게 헤쳐 왔다. 정부의 정책에 따라 춤을 췄고, 시장의 반응에 일희일비를 한 시간이었다.

95년 첫 방송을 내보내기 전까지만 해도 케이블TV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 일색이었다. 정보화 사회의 총아로, 새로운 방송 문화를 여는 첨병으로서 구실을 톡톡히 해낼 것으로 모두가 낙관하는 분위기였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본 방송 개시 축하 메시지를 통해 “정보화 사회를 촉진시키고 국민 문화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한 모두의 뜻과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됐다”며 “종합유선방송이 국민 생활에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다양한 문화 욕구를 충족시키며 세계화의 선도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치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케이블TV는 출범 직후부터 기술 인프라 미비, 준비 부족 등 예견됐던 문제가 불거지면서 난항을 거듭하게 된다. 전송망 확보, 컨버터 설치가 제때 이뤄지지 못해 상당수 가입자들이 방송을 보지 못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새로운 채널이 20여 개나 쏟아졌지만 정작 볼 만한 채널이 없다는 시청자들의 질타는 더욱 뼈아팠다. 이처럼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으면서 케이블TV는 초창기부터 예상 항로와는 전혀 딴 방향으로 이탈하고 있었다.

케이블TV 초기 실패의 가장 큰 요인은 정부 정책의 오판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방송의 공공성에 치중한 나머지 시장 원리를 무시한 게 산업 기반 형성에 걸림돌이 됐다는 것이다.

특히 사업 주체를 방송채널사용 사업자(PP), 종합유선방송 사업자(SO), 전송망 사업자(NO) 등으로 엄격히 나눈 3두체제는 ‘시장 규모에 맞는 경쟁 환경 조성을 무시했고 중복 및 과잉 투자를 발생시켰다(한국 케이블TV 산업론ㆍ손창용 외 지음)’는 평가다.

경영난에 시달리던 케이블TV 업계에 곧 이어 불어 닥친 IMF 한파는 엎친 데 덮친 격의 시련이었다. 부도가 줄을 이었고, 방송을 잠정 중단하는 채널도 나왔다. 꽃이 채 피기도 전에 꺾일 지경이 되자 정부의 정책은 규제 완화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 가게 된다.

디지털 시대, 질적 성장 이뤄야

99년 종합유선방송법 개정에 이은 2000년 통합방송법 제정 등 두 차례 법제 손질은 케이블TV 업계에 일대 전기를 마련해 줬다. 변화의 핵심은 그동안 엄격히 금지됐던 PP, SO, NO 간의 상호 겸영을 허용하는 것이었다.

대기업과 외국인 자본의 PP, SO 지분 참여 확대도 중요한 조치였다. 또한 중계유선 사업자(Relay Operator)의 SO 전환도 대폭 허용했다.

이런 규제 완화 정책을 통해 케이블TV 업계에는 복수채널사용 사업자(MPP), 복수종합유선방송 사업자(MSO), 두 가지 형태를 결합한 교차 겸영 사업자(MSP) 등이 잇달아 탄생했다. 이는 케이블TV 업계가 대형화, 효율화를 바탕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채널 일부를 묶어서 패키지로 방송하는 대신 수신료를 할인해주는 채널 티어링(Channel Tiering) 제도도 케이블TV 시장 발전에 효과적인 촉매제 노릇을 했다.

이 제도가 처음 도입된 99년 케이블TV 가입 가구수는 139만여 가구에 불과했으나 2000년 256만여 가구, 2001년 524만여 가구, 2002년 745만여 가구로 가파르게 증가, 2003년에는 1,140만여 가구로 마침내 꿈의 1,000만 시대를 열었다.

물론 같은 기간에 채널이 더욱 다양해지고 프로그램의 품질이 향상된 것도 케이블TV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SO와 경쟁 관계에 있던 중계유선방송(RO)이 대거 SO로 흡수된 것도 가입자 기반을 늘리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케이블TV 업계는 이제 양적 성장기를 지나 질적 성장기로 접어들고 있다. 화두는 디지털이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는 지난해 출범 10주년을 맞아 ‘케이블 10년, 디지털 원년’이라는 슬로건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런 흐름에 맞춰 지난해 2월 CJ케이블넷은 업계 최초로 디지털 케이블 방송 서비스를 상용화했다. ‘헬로우 디’(HELLO D)로 명명된 이 서비스는 비디오 채널 100여 개, 오디오 채널 30개에 주문형 비디오(VOD)와 데이터 방송 시스템까지 갖추는 등 첨단 뉴미디어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이 땅에 ‘뉴미디어’라는 족적을 남긴 케이블TV. 앞으로 국내 방송사에 또 어떤 새로운 기록을 남길지 귀추가 주목된다.

디지털 방송도 케이블 TV가 최적

디지털 방송의 가장 큰 특징은 '대화형 방송'이라는 점이다. 이는 시청자가 방송국으로부터 전달되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디지털 방송을 구현할 수 있는 최상의 매체로는 케이블TV가 첫손가락에 꼽힌다. 다채널, 고화질, 쌍방향성 등 디지털 방송 환경에 필요한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케이블TV가 펼쳐 나갈 디지털 방송 서비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영상, 문자, 그래픽 정보 등을 포함하는 쌍방향 데이터 방송이나 웹캐스팅을 통한 인터넷 동영상 정보 제공이 가능해진다.

여기까지는 기본에 속한다. 지금껏 아날로그 환경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주문형 비디오(VOD)나 시청한 프로그램에 대해서만 돈을 지불하는 페이퍼뷰(Pay Per View) 서비스 등도 즐길 수 있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높은 부가 서비스인 VOD 등은 국내에서도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얻을 것으로 전망된다.

디지털 방송은 방송통신이 융합된 새로운 개념의 서비스도 제공한다. TV 전용 브라우저를 이용해 초고속인터넷에 접속, 뉴스, 일기예보, 증권, 쇼핑(T-Commerce), 공공 서비스(T-Government), 이메일, 은행 업무 등 다채로운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가 하면, 인터넷 전화(VoIP) 통화도 할 수 있다.

디지털 방송 서비스를 흔히 '트리플 플레이 서비스'(TPSㆍTriple Play Service)로 부르는 것은 방송 프로그램, 초고속인터넷, 인터넷 전화 등 크게 3가지 범주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