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100만원 영어 교육에 수십만원대 유아복

“두유 라이크 치~즈?(Do you like cheese?)”

5월 10일 오후 1시 서울 강남구 청담동 주택가의 유치원. 원어민 강사의 질문에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는 아이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일제히 울려퍼진다. “아이 러브 치~즈.(I love cheese.)”

영어로 진행되는 요리 수업 시간. 만 네 살배기(한국 나이로 5세) 어린 아이들이 치즈와 양파, 양배추 등의 재료를 가지고 멕시코의 전통 음식인 퀘사디아(quesadillas)를 만들기 위해 식탁에 옹기종기 둘러 앉아 있었다.

“왓츠 디스?(What’s this?)” / “비프(beef)”
“유 캔트 ??핑크 칼라(you can’t eat pink color.)

‘파란 눈’ 선생님의 ‘꼬부랑’ 말에 아이들은 어려워하는 기색은커녕 연신 까르륵 웃으며 수업에 푹 빠져 있다.

“앤드류, 믹스 잇(mix it)”. 이름을 불린 아이들은 차례로 앞으로 나가 프라이팬 안의 붉은 고기가 갈색이 되도록 고사리 손으로 고루 섞는다.

“고기가 익어가는 변화를 보는 것이 또 하나의 관찰 학습이잖아요. 아이들이 요리 재료들을 만져보고, 먹어보고, 직접 만들면서 창의성을 키우죠. 단순히 요리 실습이 아니라, 영어로 진행되는 오감(五感) 체험인 셈이죠.” 원장 김모씨의 말이다.

김 씨 말처럼 아이들은 음식을 만지작거리며 놀이를 즐기듯 마냥 신이 나 있었다. 영어 발음 또한 웬만한 어른들 기죽일 만큼 수준급. 눈을 가리고 소리만 듣는다면, 마치 외국인 아이들의 수업 시간이라 착각할 정도였다.

김 원장은 “영어 유치원과 놀이학교, 일반 유치원의 개념이 접목된 유아교육”이라며 “딱딱하게 책을 보고 따라하는 영어 수업이 아니라, 상상력을 자극하는 스토리텔링에 따라 요리와 과학, 미술 수업이 이뤄지기 때문에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힐 수 있다”고 자랑했다.

“선택받은 아이들을 위한 최고의 프로그램과 교육환경을 제공합니다.” 김 원장이 건네준 홍보 책자에 적혀 있는 문구가 지나친 과장은 아닌 듯했다.

청담동 고급 주택가 안에 자리잡은 이곳은 인테리어부터 ‘최고급’으로 눈길을 끌었다. 요리 수업이 열리는 쿠킹 룸(cooking room)의 통유리 문을 열고 들어서면, 기타 모양으로 특수 디자인된 식탁(책상)과 딸기, 호박, 바나나 등 앙증맞은 무늬가 들어있는 유아용 의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세련된 파티장을 연상케 하는 ‘다이닝 룸(dining room)’과 노란색 빨간색 등 알록달록한 색감의 동그라미와 네모 디자인이 조화된 신체활동 공간인 ‘프리 플레이 룸(free play room) 등 역시 현대적이고 깔끔한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생후 30개월부터 7세까지 연령별로 구성된 각 반의 정원은 8명. 생후 18개월에서 30개월 사이의 유아들은 엄마와 함께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

수업료는 4·5세반 월 60만원대로 만만찮은 비용임에도 불구하고 6개월 전부터 입학 대기 신청을 해둬야 할 만큼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유치원측은 “청담동, 압구정동의 유치원 인근뿐만 아니라 옥수동, 한남동, 분당에 사는 아이들도 이곳에 다닌다”고 귀띔한다.

유치원 관계자는 “개원 첫 해에는 요리 수업과 드라마 수업을 하는 단과반으로 문을 열었는데 어머니들의 요청이 뜨거워 종일반으로 확대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2년 청담 본원을 오픈한 이래 학부모들의 호응이 좋아 강서 직영원, 중계 분원 등 6곳에 분원을 낼 만큼 급성장세다.

영유아 위한 '명품' 시설 우후죽순

사커맘·시큐리티맘 등 신조어 봇물

‘키티맘(Kitty Mom)’ ‘웨이트리스맘(Waitress Mom)’ ‘사커맘(Soccer Mom)’ ‘시큐리티맘(Security Mom)’….

자녀와 가족을 앞세워 사회ㆍ경제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부들을 일컫는 신조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키티맘’의 출현에 재계뿐 아니라 학계, 광고업계 등은 흥분했다. 키티맘은 1974년 출시된 키티 인형과 함께 성장한 세대를 일컫는 말.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의 기혼 여성을 가르키는데 약 300만 명으로 추산된다.

키티와 함께 하면서 자신을 사랑하고, 꾸미고, 물질적으로 넉넉하고, 부모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들이 결혼을 하고 어머니가 되면서 다른 세대와는 뚜렷이 대조되는 독특한 개성을 보이고 있다.

광고기획사 금강오길비는 이러한 키티맘의 특징을 △ 고학력 △ 합리적인 소비성향 △ 유연한 인간관계 등으로 분석했다. 인터넷 1세대이자 ‘X세대’로 당당하게 자신의 욕구를 표출하며 가정과 사회를 새롭게 바꿔나가고 있다.

하지만 25~34세 기혼 여성이 전부 고학력과 경제적 풍요로움을 누리는 키티맘일 수는 없다. 소득이 높지 않은 직장에서 일하는 고달픈 주부들을 ‘웨이트리스맘’이라고 부른다.

90년대 초반 미국에서는 우리나라의 ‘키티맘’과 비슷한 계층으로 ‘사커맘’을 주목했다. 미국 콜로라드 덴버의 시의회 선거에 나선 한 여성이 ‘사커맘’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본격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축구하는 자녀를 뒷바라지하는 엄마’라는 뜻으로 자녀들이 방과 후 축구 연습을 할 때마다 따라다닐 정도로 열성적으로 뒷바라지해주는 성향을 보였다. 캐나다에서는 축구보다 아이스하키가 인기가 있어 ‘하키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시큐리티맘’은 9.11테러 이후 급부상한 미국의 최신판이다. 말 그대로 테러로부터 가족의 안전에 최우선 관심을 기울이는 엄마들을 말하며, 좁게는 교외에 거주하는 백인 여성 중 자녀 안전을 중시하는 엄마를 지칭한다.

비단 영어 유치원뿐 아니다. 서울 강남 일대에는 영유아를 위한 고급 학습 기관 및 서비스 시설이 날로 늘고 있다. 어린이 전용 피트니스 센터, 미용실, 까페는 물론이고 심지어 각종 오락기계와 놀이시설을 갖춘 치과 등의 병원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이처럼, 고학력과 경제력을 갖춘 ‘키티맘’(20대 후반~30대 초·중반, 70년대 초 출시된 이래 큰 인기를 누린 헬로 키티 인형과 함께 성장한 젊은 엄마) 사이에 ‘골드 키즈’ 열풍이 불고 있다. 어찌보면 한국판 소황제(小皇帝: 외동으로 태어나 가정에서 왕자나 공주로 대접받는 세대)를 키우는 셈이다.

그들은 웰빙 시대의 강력한 경제적(소비)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다 ‘식스포켓 원마우스’(부모 2명과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등 조부모 4명이 한 아이를 위해 지갑을 연다는 뜻)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한 명의 어린이를 키우는데 두 세대가 ‘올인’하게 한다. 저출산이 빚어내는 기현상이다.

오후 1시 40분 청담동 한 스포츠 센터 지하. 고급 승용차에서 내린 서너 명의 젊은 엄마들이 아기를 안고 줄지어 내려간다.

이곳은 유아들을 위한 전문 피트니스 시설. 아이들의 신체 발달에 맞게 고안된 각종 운동기구가 구비된 체육관으로, 생후 3개월의 젖먹이부터 12세 초등학생까지 이용할 수 있다.

생후 32개월 이하의 유아들은 엄마와 함께 피트니스 수업을 받는다. 생후 20개월의 딸을 둔 엄마인 김모(33)씨는 아이가 주먹만한 작은 공들을 갖고 노는 모습을 체육관 한쪽 켠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공부는 다른 학원에서도 할 수 있지만 뛰어놀 만큼 넓은 공간이 없거든요. 압구정동 아파트에 사는데 단지 내 놀이터 흙도 깨끗하지 않다는 보도도 있고… 또 다른 곳은 선생님 한 명이 열 몇 명의 아이들을 봐주는 데 이곳은 체육 전공한 선생님이 세 분이나 계셔서 정말 좋아요.”

아이가 생후 14개월이 될 때부터 이곳에 다녔다는 김 씨는 “선생님들이 가끔 구령으로 사용하는 ‘트위스트’나 ‘업 앤 다운’ 같은 영어 단어는 따로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이가) 척척 다 알아듣는다”고도 덧붙였다.

김 씨의 말처럼 이곳은 강남에서도 노른자 땅인 황금 부지에 무려 100평에 달하는 널찍한 체육 공간을 꾸며놓아 유아 자녀를 둔 인근 지역 엄마들에게 인기다. 주 1회(50분) 교육하지만 수업료는 3개월에 39만 6,000원. 오전 11시나 오후 2시 등 인기 시간대에는 반드시 사전 예약을 해야 그나마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이곳 관계자는 “2003년 9월 문을 열 때는 회원이 채 20명이 안됐는데 지금은 400명까지 늘어났다”며 “어릴 때부터 아이에게 운동 습관을 길러주려는 20~30대 엄마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소중한 아이들을 더욱 ‘특별하게’ 키우려는 ‘골드 키즈’ 열풍은 유행의 메카 백화점에서는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과 비례해 유아용품 매장의 객단가(고객 1인당 평균 구매액)는 수직 상승한다는 게 업계의 정설.

실제로 롯데백화점의 경우, 출산율이 1.3(가구당 자녀수)이었던 2001년 1인당 객단가는 5만1,000원이었지만 출산율이 1.08로 떨어진 지난해에는 7만3,000원으로 무려 2만원이 넘게 껑충 뛰었다.

올 상반기(1~4월)만 해도 7만6,000원으로 전년 대비 20% 이상 신장세를 기록했다. 이 백화점은 ‘적게 낳아, 귀하게 키우려는’ 젊은 엄마들의 눈높이에 맞춰 프리미엄급 의류와 액세서리 등을 강화했다.

이 백화점의 유아복 ‘에뜨와’ 매장은 업계 최초로 패션디자이너(홍은주)와 손잡고 내놓은 프리미엄급 유아복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10만원이 넘는 멜빵 바지는 여름 신상품으로 출시된 지 채 한 달이 안돼 품절 상태.

이 매장의 점원 윤모 씨는 “디자이너가 소량의 제품만 내놓기 때문에 출시하기 무섭게 동이 나는 상황”이라며 “엄마들이 땡땡이 무늬 원피스를 입으면 아이들도 땡땡이 옷을 골라주고, 백일이나 돌잔치에는 모자와 옷, 신발까지 풀 세트로 맞춰가는 등 젊은 엄마들의 개성이 뚜렷하게 반영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유아복과 코디를 위한 주얼리와 인형까지 가세하는 등 유아복은 갈수록 가격대가 고가로 치솟는 양상이다.

유아용 주얼리와 인형을 선보인 ‘모크 베이비’는 30만원대의 고가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날 행사에만 10여 개가 팔려나갔고, 백금 나노 성분이 첨가된 ‘쇼콜라’의 유아복은 일반 상품보다 2~3배 비싼 가격에도 선물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백화점측은 밝혔다. 또 80만원이 넘는 해외 명품 유모차 ‘베베카’는 월 평균 20여 대가 판매되는 등 고가 유아용품이 인기다.

이 백화점 유아복 담당 최용 바이어는 “출산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부모와 양가 조부모의 지출이 한 아이에게 몰림에 따라, 소비 경향은 갈수록 고급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어린이 화장품도 인기다. 신세계 본점 8층 아동매장의 ‘바비코스메틱’의 20대 여점원은 “만 2~3세부터 초등학생을 위한 핑크색 립글로스, 반짝반짝 빛나는 펄 파우더, 빨간색 매니큐어 등이 잘 팔려나간다”며 “처음에는 ‘애들 제품치곤 비싸다’며 테스트만 해보고 갔던 엄마들이 밖(백화점 밖)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신뢰할 수 있어 좋다며 나중에는 한꺼번에 세트로 구매해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쇼핑몰 업계
"키티맘의 지갑을 열어라"

요즘 온라인 쇼핑몰들은 가정의 소비 주체로 막강한 파워를 과시하는 키티맘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에 브랜드는 물론 기능, 상품평까지 꼼꼼이 따지는 그들의 검열을 통과해야 한다.

GS이숍은 올 초 ‘출산/유아/아동 매장’의 대대적인 리뉴얼을 단행했다. 키티맘 세대 대상의 매출이 전체의 60%까지 늘어나 젊은 엄마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디자인과 컨텐츠로 새 단장한 것.

감각적이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선호하는 키티맘들의 취향에 따라 파스텔톤의 색감에 아기자기한 디자인과 연령대별 매장, 상황별 상품 추천 등 키티맘들의 눈높이에 맞춘 컨텐츠와 쇼핑 기능 등을 추가하고 프리미엄 상품과 브랜드 상품을 대폭 늘렸다. 그 결과 고객 방문율은 40% 증가하고 매출도 20%나 늘었다.

특히 최근에는 ‘맥클라렌’ ‘브라이택스’ 등 30만원대 이상의 프리미엄 유모차 브랜드와 ‘오르다 첫 발견 시리즈’ 등 100만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유아교재 매출이 전년 대비 100% 성장해 키티맘들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G마켓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아동용 교구 용품이 월 500여 건 이상 판매되고 있다. 영어 관련 교재와 논술 열풍으로 인한 한글 글쓰기 교재 등을 다양하게 내놓고 있다.

옥션은 아예 ‘예비 키티맘’ 잡기에 발벗고 나섰다. 지난해 8월 ‘출산/완구/유아용품’ 매장을 분리하여 신설하고 임산부 전용 화장품, 임부용 속옷 등으로 관련 상품군을 세분화했다.

옥션 박상순 상무는 “30대 임산부들은 고령 출산에 따른 불안감 때문에 인터넷을 통해 더욱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데다 경제력이 있어 고가의 상품을 찾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며 “임신출산용품의 인터넷 쇼핑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격은 립 글로스 1만원, 매니큐어 1만원, 펄 파우더 1만5,000원 등으로 아이들 화장품으로는 다소 비싸지만, 올해 들어 3배 이상 판매가 늘었다.

전국에 39개의 점포가 있는 ‘아이들 천국’은 어린이 전용 실내 놀이터. 각종 놀이기구 외에 파티룸, 전용극장, 까페 등을 갖춰 놓아 아이들의 파티 장소로 인기다. 최근에는 어린이 전용 미용실이나 치과 등도 아이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생후 19개월의 아들을 둔 주부 강모(32) 씨는 “일반 미용실에서 아들 머리 한 번 자르려면 진땀을 흘리는데 어린이 전용 미용실에서는 의자가 자동차 모양으로 돼있고 장난감이 많아 아기가 먼저 가려고 한다”며 “커트 가격이 2만4,000원으로 비싼 편이지만, 놀이방 시설도 있어 어린이 전용 미용실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소비 성향 갈수록 고급화

이같은 ‘골드키즈’ 열풍으로 키즈 산업은 불황 속에서도 ‘나홀로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관련 시장 규모도 2003년 10조원에서 지난해에는 15조원으로 급성장을 기록 중이다.

이렇게 자녀에게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젊은 엄마들에 대해 계층간 위화감 조성에 따른 우려 등도 따르지만, 대체로 요즘 키티맘으로 불리는 젊은 엄마들은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금강오길비(옛 금강기획) 김민경 차장은 “20~30대 키티맘들은 소비에서도 개성과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며 “고학력을 통해 형성된 합리성, 현명함이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자녀에게 비용을 지불하는 것에 대해 과감한 형태를 보이고 명품 브랜드를 선호한다는 점에서는 기존의 미시족과 같지만, 백화점의 세일 기간을 이용하고 면세점을 이용하는 등 과거 미시족에 비해 합리적인 소비성향이 짙다는 점에서 뚜렷하게 구분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열풍은 특히 대물림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삼성경제연구소 이민훈 연구원은 “젊은 부모들이 자신들이 성장하면서 누렸던 교육과 생활 등을 자녀에게 그 이상으로 베풀어주는 과정에서 유사 소비행태가 세대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젊은 엄마들이 왜 이토록 자녀에게 ‘올인’하는 것일까. 고려대 사회학과 임인숙 교수는 “자식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과거 소 팔아서 자녀 교육시키던 어머니 세대와 다를 바 없다”면서 “다만 윗세대와 달리 학력과 경제력을 갖춘 젊은 엄마들은 자녀에게 적극적으로 투자하면서 남과 다르다는 차별화 욕구를 강하게 표출하려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젊은 엄마들의 ‘골드 키즈’ 열풍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고려제일신경정신과 조방현 원장은 “고학력ㆍ중산층의 젊은 엄마들이 자신의 계발에 많은 열정을 쏟기보다 자녀에게 투자하는 데 더 적극적인 것은 우리 사회에서 젊은 엄마들이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여건이 아직도 충분하게 형성되지 못했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조 원장은 또 “자녀를 인형처럼 꾸미고 가꾸면서 대리 만족을 느끼려는 심리도 ‘골드 키즈’ 만들기에 깔려 있다”라고 말했다.

여하튼 자신보다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골드 키즈 열풍은 긍정적으로 바라볼 여지는 있다. 하지만 그러한 ‘골드 키즈’ 열풍이 자식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좀더 신중하게 숙고해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유미숙 교수는 ‘골드키즈’ 열풍에 대해 이렇게 일침을 가했다.“‘내가 너한테 이만큼 해주는데’ 하는 무의식은 자녀에게 더 많은 기대를 걸게 하고,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자녀에게 보이는 부정적인 반응이 오히려 자녀들과의 갈등을 유발하는 시발점이 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유 교수는 또 “값비싼 교육이든 옷이든 자녀에게 최상의 것을 베풀려는 마음은 응당 높이 평가 받아야 하겠지만, 그로 인한 결과가 과연 엄마가 생각한 것과 맞아 떨어질 痼寬?하는 것은 키티맘들이 한 번 더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조언했다.

인터뷰 / ㈜파라코 조현주 대표
"아이들도 예뻐지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어려웠던 시대에는 부모들이 못 배워서 자녀 교육에 집중했다면, 대체로 교육의 혜택을 누린 키티맘들은 지적 욕구뿐 아니라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가 더해진 세대입니다.”

어린이 전용 화장품 전문 기업 ㈜파라코 조현주(45) 대표. 그녀는 5년 전 영국 여행길에 우연히 어린이 전용 화장품을 접하고 수입 사업을 시작했다가 2004년부터는 아예 직접 제품을 개발, 판매하고 있다.

개성 표출에 대한 욕구가 외국과 비교해서도 현저히 높은 우리나라 키티맘들을 사로잡기 위한 전략이다. 지난해 6월부터는 바비 인형으로 유명한 미국 마텔사와 손잡고 ‘바비코스메틱’을 런칭했다.

“5년 전 영국에서 어린이 전용 화장품을 처음 봤을 때는 그것만으로도 너무 신기해서 ‘딸이 있다면 꼭 사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한정적인 품목만을 공급하는 영국 제품으로는 빠른 변화를 기대하는 우리나라 젊은 엄마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가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독자적인 개발에 들어갔는데 그때 미국 마텔사에서 제의가 와 손잡았습니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런칭한 지 채 1년이 안 됐지만,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강남점을 비롯해 8개 매장을 오픈했고, 한 매장의 월 매출이 1,500만원을 웃돌고 있다. 자신의 자녀가 더 특별해보일 수 있는 제품을 원하는 엄마의 마음을 파고든 결과다.

문방구에서 파는 500원ㆍ1,000원짜리 장난감 화장품과 달리 ‘바비코스메틱’의 색조 화장품은 거의 1만원 이상. “아이들이 쓰기에 좀 비싼 것 아니냐”는 시각에는 “아이들이 쓰는 것이기에 안정성을 고려해 더 좋은 원료를 사용해 성인용보다 오히려 생산 원가가 높다”고 설명한다.

어린 아이들에게 지나친 ‘사치’가 아닐까 하는 기성세대의 우려에도 조 대표는 “요즘 아이들이 화장품을 일찍부터 사용하는 것은 엄마가 권해서가 아니다. 엄마 화장품을 몰래 발라보면서 배운다”며 “젊은 엄마들은 자신의 세대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는 아이들의 욕구를 긍정적으로 풀어주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너 살쯤 된 여자아이들은 매장에 들어오면서부터 손을 앞으로 쭉 내밀고 들어와요. 매니큐어를 발라달라는 거죠. 어린 아이가 어떻게 그런 걸 알까 하는 신기함에 그쳐서는 안 되고, 아이들이 단순히 ‘어른 흉내’가 아니라 자신들에게 맞는 꾸밈을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