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티맘 3인의 '아이 키우기' 좌담

“키티 인형은 우리가 어렸을 때 가장 친숙한 캐릭터였지요. 하지만 사실 그때는 키티 인형을 갖고 놀아보지는 못했어요. 비쌌거든요. 제 경우에는 용돈이 넉넉해진 대학교 시절에 키티 인형과 캐릭터 상품을 제대로 구입한 경험이 있어요.” (이영빈 씨ㆍ37세)

“맞아요. 제 기억에도 어릴 때 스누피 인형은 갖고 놀았지만 키티 인형은 비싸서 가져보질 못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쓰던 문구에는 키티 캐릭터가 흔했었죠.” (강경아 씨ㆍ34세)

“키티맘이란 이런 뜻이 아닐까 싶어요. 키티 캐릭터를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 어머니가 되어서는 키티의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 ‘꿈과 희망’을 아이에게 더 많이 전해주고 싶어하는 주부, 뭐 그런 게 아닐까요.” (홍유리 씨ㆍ35세)

1974년 탄생한 키티 인형과 함께 자라난 이른바 키티맘 세대. 그들에게 키티 캐릭터는 어린 시절의 감수성을 대변하는 상징물 같은 것이다. 꽤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키티와 함께 한 추억은 그들의 가슴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우리 경제가 고도 성장기에 접어들 1970년대 무렵 태어난 키티맘들은 어느 정도 ‘풍요’를 맛보며 자랐다. 또한 교육 기회도 이전 세대 여성들보다 훨씬 많이 주어졌다. 하지만 그들 역시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는 세대는 아니었다. 그래서 돈이 있고 능력이 된다면 무엇이든 해줄 수 있는 지금, 키티맘들은 자신들에게 부족했던 것을 아이에게는 채워주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5월 10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8층 유아ㆍ아동용품 매장. 키티맘 3인이 모였다. 평소에도 아이들이 입고 쓸 물건들을 구입하려고 자주 들르는 곳이다. 그들과의 ‘수다’를 통해 키티맘들의 삶과 가치관을 들여다봤다.

- 키티맘의 특징으로 자녀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 합리적인 소비 성향 등을 꼽는데 이 두 가지가 배치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영빈 씨(이하 이 씨): 보기에 따라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키티맘은 그 두 가지를 자연스럽게 조화시킨다고 할 수 있어요. 저는 타당성과 필요성이 인정되는 것이라면 돈을 아낌없이 쓸 수 있다고 보거든요.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으로 대세나 유행을 따르진 않죠. 또 아무 데나 돈을 펑펑 쓰는 것도 아니고. 가령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살 때는 멀리 내다보고 선택하고 제품의 특성이나 기능, 품질 등을 최우선의 기준으로 삼죠. 브랜드나 가격은 그 다음 고려사항일 뿐이에요.

- 아이들을 위해서 주로 어떤 곳에 투자를 많이 하는 편인가요.

강경아 씨(이하 강 씨): 아무래도 교육적인 부분에 투자를 많이 하죠. 아직은 유진(여ㆍ5세)이가 어려 한글 학습지만 공부시키고 있는데 앞으로는 1대1 미술 교습도 시킬 계획이에요. 특히 언어 교육에 관심이 커요. 영어는 기본이고 중국어 등 비중이 날로 커지는 외국어도 가르칠 생각입니다.

이 씨: 마찬가지로 교육이겠죠. 저는 아이가 스스로 관심을 가지거나 재능이 있는 분야를 개발해주고 싶어요. 첫째 서림(남ㆍ8세)이가 축구나 야구, 태권도 등 운동을 너무 좋아하는데 본인이 뜻이 있으면 계속 밀어줄 생각이에요.

홍유리 씨(이하 홍 씨): 물론 교육이 가장 우선 분야죠. 은우(여ㆍ7세)는 2년 동안 영어 유치원에 다녔어요. 미술도 2년 동안 배웠죠. 교육 못지않게 아이 건강에도 신경을 쓴답니다. 그래서 스키나 수영 등 계절 스포츠를 꾸준히 시켜왔어요. 건강해야 공부도 잘 할 수 있는 법 아닌가요. 그리고 건강에 좋지 않은 패스트푸드는 가급적 안 먹입니다. 아이가 정 보채면 특별한 날을 정해 먹도록 하죠.

- 평소에 자녀 교육이나 육아의 원칙으로 삼는 게 혹시 있습니까.

이 씨: 나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하지 말자는 소신을 갖고 있죠. 그런데 가끔은 흔들리는 게 사실이에요. 예를 들면, 저는 개인적으로 영어 유치원이나 해외 연수 등의 필요성을 그다지 높게 보지 않는 편인데 주변 엄마들이 너도나도 보내니까 간혹 내 판단이 잘못된 게 아닐까 하고 의구심을 갖기도 한답니다. 우리나라에선 아이를 가르치는 일에 소신을 지키기가 참 힘들어요.

홍 씨: 아이에게 ‘본보기’가 되고자 늘 노력하는 편이에요. 아이는 부모를 배울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아이와의 약속 같은 것들은 반드시 지키려고 합니다.

강 씨: 저는 가능하면 아이가 원하는 대로 열심히 ‘서포트’ 해준다는 원칙을 갖고 있어요.

- 아이들을 위해 신경 쓰는 것 중에 교육 말고는 또 없을까요.

홍 씨: 미술전시회 같은 곳에 종종 데려가는 편이에요.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기 위해서죠. 주말을 이용해 가족 여행도 자주 떠난답니다. 여행은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견문을 넓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죠.

- 아이를 위해 쓰는 비용이 한 달에 얼마쯤 됩니까.

홍 씨: 전체 수입의 30% 가량 쓰는 것 같아요. 영어 유치원이 좀 비싼 데다가 미술, 수영 등을 가르치니까 그 정도 들죠. 저축은 글쎄요, 아마 아이한테 쓰는 비용보다 좀 적을 것 같네요.

이 씨: 저는 특별히 사교육을 많이 시키는 편이 아니라서 큰 돈이 들지는 않아요. 초등학교 다니는 첫째와 이제 네 살인 둘째를 합쳐 한 60~70만원 정도 쓸까. 제가 어렸을 때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해서 그런지 아이들이 싫어하는 것은 안 시키려고 해요.

강 씨: 전체 수입의 10% 정도를 써요. 아이가 아직은 어리니까. 그런데 주변 친구 중에는 갓 돌을 지난 아이에게 백만원씩 쓰는 사례도 있어요. 일찍부터 지능이나 인지 발달 교육을 시킨다나 어쩐다나 그러더라구요. 물론 친구들끼리는 좀 심하다고 말들을 하죠.

- 키티맘은 풍요의 시대를 살았고 또한 교육을 많이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 사회적인 의식 수준도 높고 자신의 권익을 지키는 데도 적극적이라고 하는데요.

홍 씨: 쇼핑을 할 때건 직장에서 일을 할 때건 가정에서건 문제가 있으면 솔직하게 말을 해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게 사실이죠. 예전처럼 마냥 참고 인내하는 주부 상은 아니라고 봐요. 시부모님께도 제 의견을 큰 거리낌 없이 말씀드리는 편이랍니다. 물론 의견 차이가 심할 때는 당연히 제가 고개를 숙여야죠. 요즘은 예전처럼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지도 않는데 굳이 대립할 필요는 없잖아요.

이 씨: 요즘은 우리보다 시부모님들의 의식이 더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저희 시어머님께서는 직장생활을 하는 며느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으세요. 미리 포기할 건 포기하시는 거죠. 저로서는 감사할 따름이죠. 그래서 다른 부분에서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합니다.

강 씨: 저희 시부모님께서는 아이만 잘 키우면 된다고 말씀하세요. 그러니 어른들과 갈등이 생길 일이 거의 없는 편이죠. 저도 시부모님과 별 탈 없이 수월하게 잘 지낸답니다.

- 키티맘들 중에는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남편과 가사 분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죠.

이 씨: 맞벌이 생활을 하면서 배운 것이 있는데 포기할 부분은 빨리 포기하는 게 낫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남편이 할 수 있는 것만 요구하고 있어요. 남편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퇴근 후에 아이들을 위해 쓰는 시간만큼은 서로 똑같이 노력하자고 사전에 합의가 돼 있어요.

- 자녀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것은 어느 시대 부모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마지막으로 키티맘이 이전 어머니 세대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뭔지 말한다면.

이 씨: 우리 바로 윗세대 엄마들은 못 살던 시대를 겪어서인지 아이들을 너무 오냐 오냐 하며 키운 경향이 있었던 것 같아요. 반면 저 같은 경우는 아이들이 자기 규율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방종하게 키우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죠. 키티맘은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한다는 점에서도 이전 세대와는 확실히 다르죠. 즉 정보의 바다에서 각종 제품과 가격 정보 등을 꼼꼼히 수집하는 습관 덕택에 합리적인 선택과 소비 생활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

키티맘들과 즐거운 수다를 마치며 느낀 점은 그들은 확실히 이전 세대와는 다른 21세기의 새로운 어머니 상이라는 것이다. 자식을 위한 본능적인 애정은 기본이고, 여기에 높은 교육 수준과 합리적인 시각, 무엇보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신속하게 업데이트하는 정보력까지 갖추고 있는 듯했다.

그들이 키우는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까. 모르긴 몰라도 분명한 것은 하나 있다. 우리의 현재 모습이 그 아이들에게 투영될 것이며 아이들의 미래는 우리의 미래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