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억 전 지구인의 눈과 귀가 독일로 쏠리고 있다.

2006 FIFA 독일월드컵 축구대회가 9일 오후 11시(이하 한국시간) 뮌헨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화려한 막을 올리고 10일 오전 1시 개최국 독일과 코스타리카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대장정에 돌입했다.

7월 10일 오전 3시 베를린 올림피아스타디움에서 벌일 결승전까지 한 달간 펼쳐질 축구드라마는 64경기 모두가 놓칠 수 없는 빅경기다.

독일 현지도 둥근 축구공 하나가 펼쳐보일 이변과 명승부의 각본 없는 드라마에 들뜬 분위기다. 방송사들은 일찌감치 월드컵 특별프로그램으로 분위기를 뜨겁게 달구고 있고, 1만8000여 명에 이르는 전 세계 취재기자들도 속속 독일 땅을 밟고 있다.

벌써부터 월드컵이 열리는 도시는 숙소 예약이 대부분 끝이 났고, 여느 때보다 많은 비행기들이 오가며 외국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2002년 한일월드컵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다. 한일월드컵이 전 국민적인 축제로 기억된다면 독일월드컵은 월드컵과 관련된 시민들의 축제의 장이다. 독일월드컵의 뜨거우면서도 특별한 분위기를 스케치해 봤다.

▲ 대도시는 의외로 차분한 분위기

독일의 관문인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하면 기대 이하의 월드컵 열기에 놀란다.

독일월드컵 개막을 불과 3일 앞둔 6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지만 분위기는 의외로 조용하고 차분했다. 공항에서는 입국장에 설치된 각국 유명 선수들의 대형 사진만이 이곳에서 월드컵이 열린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었다.

도시 중심인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평 남짓한 조그마한 월드컵 부스에 만국기만 펄럭일 뿐 그 흔한 안내 멘트 한마디도 없었다. 독일월드컵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은 한국 관광객들도 실망하는 빛이 역력할 정도.

남녀 통틀어 세 개의 분데스리가 팀을 갖고 있고, 750여 축구 클럽이 존재하는 독일에서 가장 축구열기가 뜨거운 것으로 유명한 이곳이기에 더욱 의아스러웠다.

개막전이 열리는 뮌헨도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거리 곳곳에 붙어있는 월드컵 현수막과 TV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월드컵 특집프로그램, 간간이 볼 수 있는 자원봉사자 모습만 빼면 거리에서 월드컵의 분위기를 크게 느끼기 어려울 정도다.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전 국민이 함께 뜨거운 열정을 분출하고 즐겼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뮌헨 월드컵스타디움만은 식전 공개행사 리허설과 마지막 경기장 정리에 분주했지만 프랑크푸르트 스타디움을 비롯한 여타 구장은 아직도 마무리 공사 중인 곳이 많았다. 경기장 주변은 오히려 어수선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 6월 8일 오펜바흐에 차려진 브라질 대표팀 훈련캠프를 찾은 여성팬이 요염한 옷차림을 한 채 선수드?l 훈련모습을 지켜보며 환호하고 있다. / 로이터
▲ 6월 8일 오펜바흐에 차려진 브라질 대표팀 훈련캠프를 찾은 여성팬이 요염한 옷차림을 한 채 선수드?l 훈련모습을 지켜보며 환호하고 있다.
/ 로이터

▲ 각국 캠프장은 뜨거운 열기

경기장이 위치한 대도시에서 느끼지 못한 월드컵 열기는 대신 각국 캠프장에서는 뿜어져 나왔다.

월드컵 32개국의 베이스캠프가 차려진 곳은 대부분 한적한 시골마을. 외딴 곳에 자리를 잡았지만 이곳의 열기는 월드컵이 독일에서 열린다는 사실을 외국인들에게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한국대표팀의 베이스캠프가 차려진 쾰른은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온통 축제분위기다.

대표팀에 입국해 호텔에 들어서는 데만 해도 30분이 걸렸을 정도로 도시가 들썩였다. 각 도시들은 축제의 주인공들을 위해 시 전체를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고, 시민들은 독일 전통맥주와 소시지를 나눠먹으며 분위기를 즐겼다.

이밖에 다른 나라의 베이스캠프가 있는 지방에서도 선수들은 인종을 초월하여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아프리카의 빈국인 토고팀이 머무는 방겐 지방도 도시 전체가 열렬한 환영을 펼치며 선수들을 융슝하게 대접했다.

지난 7일 지역 클럽팀인 FC방겐과의 연습경기에서는 그 도시 인구의 절반인 7,500여 명이 스타디움을 꽉 채워 취재진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시민들 대부분이 토고 국기를 흔들며 지역클럽팀이 아닌 토고를 뜨겁게 응원했고, 파도응원까지 펼치며 축제의 향연을 즐겼다.

브라질과 잉글랜드, 프랑스 등 인기 팀들이 베이스캠프를 차린 곳은 몰려든 세계 각국의 취재진과 관광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특히 잉글랜드팀의 숙소가 있는 바덴바덴은 몰려든 팬들로 훈련 일정을 정상적으로 소화할 수 없을 정도였다.

▲ 암표상과의 전쟁

개막전이 열리기 하루 전 뮌헨스타디움 인근에는 입장권 암표를 일찌감치 사들이려고 은밀한 거래를 시도하려는 암표상들이 활개치고 있었다, 일부 암표상들은 자신의 전화번호가 찍힌 명함까지 만들어 소위 '빅매치'로 불리는 티켓을 사는데 혈안이 돼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은 AD카드(취재허용카드)를 만들기 위해 경기장에 마련된 AD 발급센터 앞에서 취재진들에게 접근해 미디어용 입장권도 사겠다고 대담하게 제안하기도 했다. 미디어용 입장권은 취재진밖에 사용할 수 없지만 그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은 것이다.

특히 '미리 보는 결승전'이라고 불리는 월드컵 조별 예선 C조의 아르헨티나-네덜란드 경기 입장권은 1,000유로(약 120만원)까지 값이 치솟았다고 한다.

이런 사정 탓에 월드컵경기장 주변에서는 이미 이들을 막기 위해 취재진은 물론 자원봉사자들의 소지품까지도 샅샅이 검색했다. 일반인들은 경기장 출입이 아예 금지된 채 멀리서 사진촬영만 할 수 있었으며 경기장 주변에는 기마 경찰들이 삼엄한 경비를 펼쳐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 6월 8일 한 여성이 베를린 월드컵 경기장 관중석 위에 세워진 FIFA컵과 유명선수들의 얼굴이 새겨진 광고판 앞을 지나고 있다. / 로이터

▲ 통일독일의 힘을 축구공 하나에

월드컵 분위기와 상관없이 독일 국민들의 염원은 단 하나다.

안방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 독일팀이 우승컵을 안아 통일독일의 힘을 보여주길 바라고 있다. 90년 월드컵에서 우승컵이 통일독일의 탄생을 전 세계에 알리는 메시지였다면 이번 월드컵은 통일독일의 번영을 전 세계에 과시하는 무대다.

벌써부터 독일의 대중신문 ‘빌트’와 축구전문 주간지인 ‘사커’는 독일월드컵에서 자국의 우승 가능성을 점치며 독일 축구팬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

요즘 독일의 최고 스타는 선수가 아닌 클린스만 감독. 세계적인 골잡이 출신으로 독일대표팀의 지휘봉을 맡은 그는 일거수일투족이 뉴스로 타전될 정도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거스 히딩크가 누렸던 인기를 능가한다.

한마디로 독일 현지는 클린스만 신드룸에 휩싸인 느낌이었다. 신문과 방송은 물론 거의 대부분의 잡지에는 그와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그는 최근 몇 년간 부진으로 ‘녹슨 전차군단’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던 독일축구를 부활시킬 구세주로 대접받고 있다.


뮌헨(독일)=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