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현산업정보학교 실용음악과 - 적성에 맞는 직업교육 받는 청소년들의 열린 배움터

/ 김지곤 기자
“지금 (연주에) 들어가! 좀 늦잖아! 보컬, 다리가 너무 뻣뻣해, 무릎 좀 굽혀!”
“드럼! 드럼은 생각하고 치는 게 아냐! 느낌대로 치라고 했잖아!”
“모두의 축제! 서로 편가르지 않는 것이 숙제! 소리 못 지르는 사람 오늘 술래!(…)”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아현동 아현산업정보학교(교장ㆍ고춘선) 본관 4층 무대연주실. 기타, 베이스, 드럼, 보컬 등 모든 구색을 갖춘 고교생 그룹사운드가 무대 위에서 한바탕 공연을 펼치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음악 선생님들은 미세한 실수까지 잡아내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수정을 채근한다.

이날 공연은 제4회 부여 서동요 연꽃축제에 초청된 실용음악과 그룹사운드 5개 팀의 최종 리허설. 그런 까닭에 방학 직후의 달콤한 휴식을 마다하고 학교에 나온 학생들과 교사들은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한마음으로 땀방울을 쏟아냈다.

아현산업정보학교 실용음악과는 일찌감치 음악에 인생을 건 청소년들의 해방구이자 배움의 전당이다. 서울 시내 일반계 고교에 학적을 두고 있지만 음악을 장래 직업으로 선택한 3학년 학생들이 모여 1년 동안 전문적인 직업교육을 받고 있다.

고교 수준에서 실용음악을 가르치는 학교로는 전국에서 유일해 음악 지망생들 사이에 인기가 뜨겁다. 이 학교에 오기 위해 멀리 제주도나 부산 등 타 시도 학생들이 서울 시내 고교로 전학하는 경우도 종종 있을 정도다.

학습 환경도 매우 좋은 편이다. 작곡, 화성(和聲) 등 이론을 가르치는 교사와 보컬, 기타 등 세부 전공을 전문적으로 지도하는 교사가 조화를 이룬 가운데 개인적으로는 갖기 어려운 고가의 악기들도 부족함 없이 갖춰져 있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학교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당연히 학생들의 만족감도 클 수밖에 없다.

고3 학생들 1년 동안 전문 직업교육

“모두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라서 그런지 대화도 잘 되고 마음이 편해요.” (김현지 양ㆍ보컬ㆍ송곡여고)
“다니던 학교에서와 달리 원하는 음악을 맘껏 할 수 있고 그러다 보니 시간을 허송하지 않게 돼 너무 좋아요.” (석다연 양ㆍ드럼ㆍ풍문여고)
“개인 연습 환경이 잘 돼 있어 솔로 실력이 많이 늘었어요. 게다가 아이들과 합주를 많이 하다 보니 다른 멤버와의 호흡도 더 잘 맞추게 됐어요.” (김예일 군ㆍ베이스기타ㆍ성남고)

실용음악과 학생들은 상당수가 1년 과정 수료 후 실력을 더욱 연마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한다. 관련 학과가 개설된 학교가 제법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곳 출신들은 워낙 집중적인 수련을 받은 터라 대학 교수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 덕분에 대학 1학년 때 조교로 발탁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 학교 출신으로 대학 졸업 후 다시 돌아와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는 김철호 교사는 “원래 소질이 있는 아이들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1년이 지나면 실력이 일취월장해 있어요. 밥 먹을 때조차도 악기를 놓지 않고 연습할 정도니 그럴 수밖에 없죠”라며 열띤 면학 분위기를 전했다.

실용음악과 수료생 가운데는 현재 대중음악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이들도 상당수다. 그중 1999년 이곳을 거쳐간 박효신과 휘성은 정상급 솔로 가수로 발돋움한 케이스다.

그렇다고 학생들이 무작정 스타를 동경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름대로 뚜렷한 음악관을 갖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 김예일 군은 “먼저 역량 있는 전문 연주자가 된 다음 나만의 색깔을 살린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실용음악과 학생들은 아무래도 예전에 상처를 입은 경우가 많다. 학벌을 원하는 부모에게는 심한 꾸지람을 받았을 테고, 학교 친구들에게도 ‘딴따라’라는 놀림을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족쇄는 더 이상 이들의 발목을 잡지 못한다. 자신의 꿈을 알아주고 믿어주며 토닥거려주는 둥지를 얻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그 꿈을 향해 날아오르는 일만 남았을 뿐이다.

아현산업정보학교는

일반계 고교 3학년 중 직업 과정을 선택한 학생들을 위탁 교육하는 아현산업정보학교(www.ahyeon.sc.kr)는 모두 14개과 27개반을 운영하고 있다. 모집 인원은 올해 기준 총 810명. 서울 시내 150여 개 고교 출신들이 함께 모여서 공부한다.

전공은 실용음악, 방송영상, 애니메이션, 만화, 그래픽디자인, 미용예술, 제과ㆍ제빵, 한ㆍ양식 조리, 웹PD 등 대부분 요즘 신세대들이 선호하는 분야로 구성돼 있다.

특히 TV 등 대중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실용음악, 미용예술, 제과ㆍ제빵, 한ㆍ양식 조리 등 전공은 최근 지원자들이 급증하는 추세다. 그중 실용음악과는 5개반으로 편성될 만큼 큰 인기.

최근 3년 동안 취업 및 진학률은 평균 90%을 훌쩍 넘는다. 진학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데, 순수 취업률은 40% 정도 된다고 한다. 자격증 취득률도 70~80%에 달한다. 서울시와 협약을 맺은 미용의 경우는 수료만 하면 자동으로 면허증이 주어진다.

인터뷰 / 고춘선 교장
"인생의 전환점 될 소중한 1년"

▲ 고춘선 교장 / 김지곤 기자
▲ 고춘선 교장

"이 시스템은 성공적이라고 봅니다. 아이들 눈동자가 살아 있어요.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을 배우니까 스스로 혼신을 다하게 되는 겁니다. 결국 부모는 아이들이 원하는 걸 하게 해줘야 된다는 말이죠."

고춘선 교장은 일반계 고교 3학년 학생들에 대한 직업 교육 제도는 큰 의의를 지닌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진학해서 학교 공부에 흥미를 못 느끼고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진로 선택의 기회'를 준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한다. 또한 자칫하면 빗나갈 수도 있었던 아이들을 제도권 품에 끌어안았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라는 지적이다.

"일반계 고교에 다닐 때는 결석을 밥 먹듯이 했던 아이들도 여기 와서는 1년 동안 단 하루도 결석하지 않아요. 그게 바로 이 제도의 효용을 말하는 단적인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외부의 시선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이 많다. 아직 "직업반 애들이 모여 있는 학교지"라는 편견이 사라지지 않은 데다, 학부모들조차도 "대학 가야지, 웬 직업학교냐"며 아이들을 뜯어말리는 경우가 훨씬 많아서다.

"성적을 떠나 인생의 목표와 꿈을 일찍 설계한 아이들을 위한 대안적 교육환경으로 바라보는 성숙된 인식이 아쉽습니다. 이곳에서의 1년은 단순한 1년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