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이명박 전 서울시장 "지금은 정치보다 경제가 우선 민심 읽을 때"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의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7ㆍ11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박근혜-이명박’ 대리전 논란과 대권레이스가 펼쳐지는 시점의 중심에 있었지만 이 전 시장은 말을 극도로 아꼈다.

7월 22일, 자원봉사자들과 강원도 평창군으로 수해복구에 나선 이 전 시장을 동행, 인터뷰 수확(?)을 기대했으나 이를 막아선 것은 공교롭게도 성남 민심이었다. 이 전 시장 방문에 “수해복구 시늉만 하고 사진찍고 가는 것 아니냐”는 시큰둥한 반응은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 전 시장은 “하룻밤 묵고 갈 겁니다”하고는 곧바로 장화를 신고 삽을 들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점심식사 30분과 중간 휴식 10분을 제외하고 토사로 뒤덮인 ‘파프리카’ 대형 비닐하우스 흙을 제거하는 데 전력했다. 구슬땀과 굳게 다문 입, 가끔씩 큰소리로 일을 독려하는 이 전 시장에게 기자의 질문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고 궁색하게까지 느껴졌다..

일과가 끝난 밤 9시가 넘어 인근 두일 초등학교에 마련된 숙소에서의 첫인사 후에야 귀기울일 만한 말이 나왔다.

“사회의 경쟁에서 패하는 사람들이나 선천적으로 경쟁을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국가가 역할을 해야 한다. 나의 소망은 그런 약자 편에 서서 보호하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혹독한 가난도 겪었고, 운동권 학생에서 샐러리맨, 기업인 등 젊어서부터 다양한 경험을 했기에 지금 많은 이들이 갖고 있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온몸을 던져 일할 생각이다.”대권 포부를 간접적으로 밝힌 셈이었다.

이튿날도 이 전 시장은 수해를 입은 가옥에서 비지땀을 쏟았다. 점심 식사 때 진흙 투성이인 채로 식판을 들고 줄을 서 있는 이 전 시장을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서울에 돌아와서도 이 전 시장은 기자들과의 접촉을 피했다. 닷새가 지나 이 전 시장은 평창에서 같은 땀방울을 흘렸다는 이유로 기자와의 첫 인터뷰를 받아들였다. 7월 27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견지동의 개인 사무실 ‘안국포럼’에서 그를 만났다.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 (인터뷰 직전 문으로 향하던 50대 중년 남자가 갑자기 돌아서 이 전 시장과 깊은 포옹을 하고 돌아가는 해프닝이 있었다) 방금 한 중년과 포옹을 했는데 사연이 궁금하다.

서울에서 자영업을 하는 50대인데 경기가 어려워 연말에 공장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서 예전에 나를 만난 적이 있다며 찾아왔다. 하소연을 하러 온 셈인데 마쓰시다 고노스케(내셔날 파나소닉그룹 창업자) 얘기를 해줬다. 직원을 해고하지 말고 월급을 반으로 줄여 1년간 버텨보자고 설득해보라고 조언했다. 이밖에 다른 여러 얘기를 했는데 자영업자가 고맙게 생각한 모양이다.

- 서울시장에서 퇴임한 지 한 달 가량 지났다. 이에 대한 소회와 그동안 한 일을 말한다면.

지난 4년간 서울시장으로 아쉬움이 있지만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은데 제대로 인사를 못해 그런 분들을 만나왔다. 또 시장으로 있을 때 미리 약속된 몇 군데 강의도 하고 수해지역에서 1박 2일로 복구활동을 하고 왔다.

- 시장 퇴임후 한나라당 전당대회(7월11일), 7ㆍ26 재보선, 대권 논란 등 이 전 시장과 관련된 사안들이 많았지만 줄곧 침묵을 유지했다. 그 배경을 말한다면.

앞서 자영업자 얘기를 했지만 기자들도 수해현장에서 느끼지 않았나. 국민은 정치에 불신을 넘어 무관심하기까지 하다. 왜 이렇게 됐는가. 정치가 국민들이 정말로 고민하고 바라는 것에 귀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고민의 해법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악순환이 되풀이 되는 것이다. 정치가 국민을 위하자는 것임에도 제 역할을 못하는데 정치를 향해 무슨 말을 하겠는가. 국민의 소리에 먼저 귀기울이는 게 도리이고 순서라고 생각한다.

- 한나라당에서는 7ㆍ11 전대에서 불거진 대리전 후유증이 여전하고 7ㆍ26 재보선 이후 정계개편론이 나오는 등 정치권은 역동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기자도 인터뷰 때문에 며칠간 사무실을 찾은 걸로 아는데 정치인을 얼마나 봤나. 방문객 대부분이 일반 국민이다. 시장 퇴임 후 강연과 사람을 만나면서 “경제가 어렵다”,“나라가 위기다”라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고 이를 극복하는 방안을 찾느라고 고민을 해왔는데 ‘대리전’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나.

이재오 의원이 “혹시 오해라도 살지 모르니 아무런 연락도 하지 말라”는 전화를 해서 “그런 데는 관심도 없고 그럴 처지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리전’이란 정치적인 사람들의 얘기다. 정치도 국민을 보고 큰 정치를 해야 한다.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는 국민에게 불신을 주고 심판을 받게 된다.

당장 시급한 것은 경제이지 정치가 아니다. 지금은 경제를 위해 정치가 한 발 물러서는 게 순리다.

- 7ㆍ26 재보선 결과를 어떻게 보나. 민심은 한나라당에게 사실상의 패배를 안겨주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민심이 나타난 대로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민심을 잘 읽으면 약이 되지만 잘못 읽으면 독이 된다. 국민이 우리 한나라당의 모습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나 자신을 포함해 더 많은 반성과 노력이 필요할 때다.

- 정계개편론에 대한 견해는.

7ㆍ26 재보선 결과를 정계개편론과 직결시키는 것은 민심과 거리가 있다. 중요한 것은 여든 야든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 어려운 서민들의 주름살을 펴 달라, 국민이 편안하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해 달라, 이런 것이 아닌가.

그런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중요한데 개헌이니, 정계개편이니 하는 정치적 논란을 부추기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런 것으로는 이제 국민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민심의 본질을 회피하기 위한 인위적인 정계개편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고 본다.

- 국민과 관련한 우리 경제의 가장 큰 현안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한마디로 서민경제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 국가경제가 위기라고 하지만 대기업이 역할을 하고 뒷받침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는 없고, 또한 경제가 어려워도 대기업 근로자는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서민은 한 달 한 달이 문제다. 노동시장이 줄어들고 중소기업, 자영업이 문을 닫아 실업자들이 쏟아지면 서민경제는 더욱 악화된다. 서민경제의 위기가 우리경제의 가장 큰 현안이다.

- 그렇다면 서민경제 위기를 풀수 있는 해법은 있는가.

‘한국판 뉴딜정책’을 시행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을 지금 밝히기는 그렇고…. 외국에선 서민경제가 죽을 때 경기부양책으로 주로 주택건설을 활용한다. 건설 투자를 위해 이자를 줄이면 투자가 늘게 돼 건설경기가 활성화되고 그만큼 일자리가 생긴다. 또 토목건설을 진작시키는 방안도 있다.

-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세금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부동산 정책은 단번에 해결되는 길이 없다. 종합적이고 일관된 정책을 꾸준히 펴서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한 예로 정부가 2003년 10월 1차로 강남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을 때, 강남 대체 수단으로 강북 뉴타운을 건설하고 교육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었는데, 그것을 실천하지 않았다. 만일 그때부터 꾸준히 약속을 실행했으면 지금쯤 벌써 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단편적인 정책들을 자꾸 내놓고 세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니까 정책과 정책 사이에 모순과 부작용이 생기고, 근본적인 해결이 안 되는 것이다. 세계는 법인세 등 세금을 낮춰서 투자를 유발하고, 경제의 효율을 높여서 세수를 증대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데,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

하반기부터 ‘부동산 세금폭탄’이 일제히 집행되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있는 사람에게 세금 100만원 오른 것보다 없는 사람에게 10만원 오른 것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는 것은 서민들이다. 정치논리를 하루빨리 경제논리로 바꾸어야 한다.

- 수해복구 당시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국가적 책무'를 언급해 이명박식 지도자론을 제기했는데 시대 정신과 차기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십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경제회복과 국민통합이 지금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만 달러 소득에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우리 경제가 하루빨리 도약의 궤도에 올라서야 한다. 일자리는 최대의 복지고, 개인의 자아실현, 가정의 행복의 필수적 조건이다.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고 50대만 되면 일자리에서 떠나야 하는 사회는 행복한 사회가 아니다.

그리고 성장과 일자리를 위해서는 국력이 하나로 모아져야 한다. 지금까지 역대 정권은 분열을 통해 이익을 취했고 승리를 위해 분열 전략을 썼다. 전라도와 경상도, 부자와 가난한 자, 수도권과 충청권 등 정치가 분열을 유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열과 대립의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한다. 화합하고 통합하고, 온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아서 국가발전의 동력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정치가 이제 그런 긍적적인 역할을 해주어야 할 때다.

- 앞으로의 행보와 관련, 중점을 두고자 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국민의 소리를 더 듣고 이에 대한 구상을 마련하기 위해 전국을 순회하려고 한다. 주로 영세상, 자영업자, 중소기업, 서민 등 낮은 곳의 민성(民聲)을 들을 생각이다.

해외 순방도 고려 중인데 자원확보와 관련해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를, 차세대 성장동력 등 과학기술 발전 비전을 찾기 위해 독일과 네덜란드 등 유럽을, 그리고 세계의 미래도시로 주목받는 두바이를 방문해 미래 국가 발전의 정책 대안을 구상할 계획이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