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기록 모조리 갈아치울 가족애·괴수 영화… 작품성·뛰어난 CG·치밀한 홍보전략의 결과

당일 최다 관객 수 기록, 개봉 첫주 최다 관객 동원, 최단 기간 500만 관객 돌파. 그리고 관객 1,000만을 넘어 ‘왕의 남자’ 신기록까지 뛰어 넘을 듯한 기세까지···.

개봉 전 예매단계부터 신기록을 양산하며 대박 조짐을 보인 영화 ‘괴물’이 개봉 직후부터 충무로 흥행 기록을 차례로 먹어 치우고 있다. 이 같은 신기록 질주를 계속하고 있는 ‘괴물’의 흥행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봉준호, 송강호라는 이름값? 작품성? 괴물에 대한 호기심? 아니면 한층 업그레이드 된 컴퓨터 그래픽 수준? 영화를 한번쯤 봐야겠다는 궁금증 못지않게 이 영화의 인기몰이 비결에 대한 호기심도 갈수록 커져 간다. 영화 ‘괴물’이 가진 매력과 흥행 요소를 분석해 본다.

“‘이제 우리 한국 영화도 이런 거 있어요’라고 말할 수 있잖아요. 우리가 만든 괴물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입니다.”

영화 ‘괴물’의 제작사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는 “우리가 사는 곳을 배경으로 우리가 직접 만든 괴물을 한번쯤은 보고싶어 하는 ‘갈증 혹은 허기’ 같은 것을 이 영화가 충족시켜줄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우리가 (영화 속에서) 만든 괴물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에서 출발, 막상 괴물의 모습이 (외화에 비해) 훌륭한 것을 보곤 한국인으로서 만족감이나 프라이드를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넓은 의미에서 영화 ‘괴물’은 한국 최초의 ‘재난 어드벤처이자 괴수 영화’로 꼽힐 수 있다. 거기에 상당한 수준의 컴퓨터그래픽(CG)까지 적용됐다. 어찌 보면 영화를 완성도 있게 표현해 내는 데 성공한 CG 자체가 이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주요한 흥미 요소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괴물’은 단순히 할리우드 스타일의 재난이나 괴물이 나오는 영화와는 맥을 달리한다. 오히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와 같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우리 가족이 있는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상사로 더 가깝게 느껴진다.

봉준호 감독과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온 최용배 대표는 “무엇보다 봉준호 감독의 개성이 영화에 듬뿍 가미됐다는 것이 매력이고 그 점이 관객들에게 가장 크게 어필할 수 있다고 본다”고 해석했다.

상영 전부터 영화 팬 호기심 자극

영화의 흥행에서 무시할 수 없는 것은 홍보와 마케팅이다. ‘괴물’은 이 점에서도 ‘한번쯤은 꼭 보고싶게 만드는’ 괴력을 과시했다.

‘봉준호 감독이 객석에서 일어나 환호하는 관객들에게 인사한다. 외국인 관객들로부터 박수와 호평은 이어지고···’ TV에 소개된 영화 ‘괴물’의 CF 장면이다. 이 장면을 시청하는 시청자들은 ‘도대체 어떤 영화이길래?’, ‘언제 어디에서 저런 일이 있었지?’ 궁금증을 가지게 한다. ‘괴물’은 이미 CF 단계에서부터 시청자와 관객들의 오감을 자극하는데 성공한 셈이다.

처음 ‘괴물’의 CF 선정회의 때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결국 결정된 것이 칸느영화제에서의 호평 모습. 몇 년 전 칸느에서 박찬욱 감독과 최민식이 ‘올드 보이’로 수상하며 서로 포옹하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는 시청자들에게는 또 다른 ‘한국 영화의 성공’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괴물’이 괴물에만 의존(?)하지 않는, 내실 있는 영화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노력은 CF 이전에도 이루어졌다. 이미 극장에서 상영된 예고편에서부터 봉준호 감독이 직접 출연, 영화를 알리면서부터다.

예고편에서 고교시절 한강 아파트 창을 통해 괴물이 한강 교각을 기어오르는 상상을 했다고 직접 밝힌 봉 감독은 “배우와 규모를 내세운 화려한 영화라기보다는 작품성으로 승부하겠다는 의도”를 반복해서 알렸다.

영화 개봉에 앞서 증폭된 대중의 호기심이 커가는 것 못지않게 ‘괴물’은 배급에서도 확장책을 폈고 결과는 주효했다. 개봉 때 잡은 스크린 수만 무려 620개. 이는 직전 최고였던 영화 ‘태풍’의 540개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전국 1,600 스크린의 40% 가까이가 ‘괴물’을 내걸은 셈이다.

그래서 개봉 직전부터 각종 신기록을 쏟아내고 있는 ‘괴물’의 흥행이 배급파워의 덕을 본 것 아니냐는 지적도 간혹 제기된다. 특히 배급의 영향력은 최근의 영화 시장에서 중요성이 더해지고 있는 상황.

그런데 ‘괴물’은 다른 한국산 대작 영화들과는 사정이 다르다. 우선 ‘극장에서 배급을 요청했다’는 사실. 종전에 개봉 때 많은 스크린을 잡았던 일부 영화 경우, 배급사에서 의도적으로 극장에 먼저 요구한 측면이 강했다. 청어람의 심영순 홍보마케팅팀장은 “개봉 1주일여가 지난 지금도 극장측에서 우리에게 프린트를 달라고 아우성이다”고 설명했다.

“물론 일정 수급량까지는 배급 파워의 역할이 크게 작용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수요가 없거나 적은데 배급만으로 밀어붙인다고 흥행이 될까요?” 심 팀장은 “요즘은 모든 영화가 다 같은 기준과 원칙을 적용, 획일적으로까지 배급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괴물’의 경우 배급사가 흥행을 위한 뒷받침을 충분해 해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영화의 흥행을 예상한 것이든, 혹은 노린 것이든 배급사들이 스크린 잡기에 열을 올린 주된 이유는 이미 개봉 전 영화가 거둔 성과나 호평 때문이었다. 칸느 영화제에서 기대 이상의 극찬을 받은 것도 그렇고 시사회에서 쏟아진 평론가들의 찬사는 이미 영화 흥행을 위한 기반을 다지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칸느영화제에서의 호평이 영화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입니다. 사실 처음엔 칸느에서 그렇게 좋은 반응이 나오리라고 예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기자들도 처음부터 동행하지 않았지요.” 청어람측은 ‘이 영화의 해외 판매에만 주력하자’고 생각하고 영화제는 조용히 갔다 오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의외의 결과가 터져 나온 것.

인지도 높이는 계기 된 칸느영화제

칸느 시사회장에서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열광적 환호가 이어졌고 뉴욕타임스도 영화 리뷰란에 ‘최고의 수작’이라고 칭찬했다. 현지 언론도 찬사에 나섰고 바이어들을 상대로 한 2번의 시사회도 좌석이 매진됐다. 어렵게 극장을 잡아 시사회를 한 번 더 해야만 했다. 이런 소식은 국내에 예기치 않았던 성과로 전해지며 영화에 대한 관심을 배가시켰다.

5월 칸느에서의 성공은 7월 4일 국내 시사회로도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기자들도 ‘괴물’에 대해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합격점을 부여했다. 일부에서 ‘조금은 엉성하다’, ‘기대 보다는 못하다’는 등의 부정적인 얘기도 나왔지만 워낙 칭찬의 목소리가 커서 묻혀 버렸을 정도였다.

이런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 드디어 7월 27일 영화는 개봉됐다. 시사회부터 개봉까지는 무려 23일간의 차이. 시사회에서의 열기와 호평이 식어버리지 않느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일반적으로 시사회와 개봉일 간의 간격은 보통 보름은 넘지 않는다. 영화사 측에서는 개봉을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1년 마냥 길게만 느껴졌다. 영화 게시판에는 그동안 ‘언제 개봉하냐’는 질문만 계속됐다.

그러나 결과는 그동안의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정반대. 개봉이 늦은 것이 오히려 약이 됐다. 마치 오랫동안 뚜껑을 닫아 놓은 상태서 계속 군불을 때온 솥뚜껑을 열 때 압축된 김이 한꺼번에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관람객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청어람측은 “결과적으로 오래 뜸을 들인 것이 밥맛을 좋게 했다”며 영화 팬들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축적된 에너지가 뒤늦게 분출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영화를 개봉하는 제작사나 배급사에서는 당연히 비슷한 시기에 상영되는 다른 영화에도 신경이 쓰인다. 이 점에서도 ‘괴물’은 유리하다. 보름 앞서 개봉된 영화 ‘한반도’가 부진해서다.

시사회에서 기자들이 한목소리로 성에 안찬 듯 ‘한반도’에 혹평했던 데 비해 ‘괴물’에서는 상반된 반응이 나타난 것. 여기엔 ‘한반도’로는 부족하니 우리 영화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괴물’이 잘돼야 한다는 공감대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주변 여건과 환경이 ‘괴물’의 흥행몰이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괴물’은 영화 자체로서의 기술과 작품성에도 뛰어났다. 무엇보다 한국산 영화로서는 최고 수준의 CG을 선보였다는 점이 흥행 성공 포인트다. 괴물과 배우가 뒤엉켜 움직이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처리되고 현실감있게 보여지는 것은 관객들에게도 놀라운 성과로 여겨진다.

또 영화의 내용면에서 ‘괴물’은 괴수영화라기보다는 가족영화에 가깝다. 그래서 영화를 본 관객들은 많은 돈을 들인 블록버스터급이면서도 잔잔한 감동이 흐르는 휴머니즘이 더 많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영화 속에서 그렇게 잘 나지도, 가진 것이 많지도 않은 등장 인물들이 똘똘 뭉쳐 가족의 사랑을 확인하고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스토리는 누구에게나 공감을 사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애국심도 흥행에 한몫

여기에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과 관련된 시대적 상황도 영화 흥행에 플러스로 작용했다. 영화에는 미군이 버린 독물이 한강에 흘러들어 괴물 탄생에 작용한다거나 강압적으로 비쳐지는 미국과 미국인의 모습이 곳곳에 보여진다.

청어람 최용배 대표는 “현 상황이 그러니까 그렇게 비쳐지는 것이지 일부러 의도하거나 의식한 것은 아니다”고 설명한다. 아마 일반인들이 공권력이나 거대 권력에 느끼는 무력감 때문에 카타르시스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지 그것이 영화 흥행의 메인 요소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밖에 ‘괴물’은 1,000만 관객 돌파로 가기 위한 유리한 조건을 태생부터 지니고 있다. 바로 12세 관람가 영화로 판정받은 때문. 흥행 역대 기록 1~3위를 기록한 ‘왕의 남자’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가 모두 15세 이상인 것과 비견해 볼 때 관객으로 흡수할 수 있는 인구 수가 훨씬 늘어난 것이다.

1,000만을 넘기 위해서는 중년 관객을 끌어 모아야 된다는 주장에도 ‘괴물’은 답변거리가 충분하다. 괴수영화라면 어린이들이 주로 보고 말 장르지만 가족의 사랑과 휴머니즘이 숨어 있는 ‘괴물’은 상영 후반기에 중년층들까지도 대거 극장으로 모여들게 할 요소들을 충분히 내재하고 있다는 주장에서다. 실제로 배급사인 쇼박스측은 최근 중년 관객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영화 흥행의 신기록을 향해 나아가는 ‘괴물’의 행진이 어디까지 갈지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