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수사의 요람' 국과수 - 석·박사급 전문가 181명 활약… 업무량 폭증·열악한 처우 등 개선돼야

‘한국 과학수사의 요람’.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에는 흔히 이 같은 수식어가 자연스레 따라붙는다. 실제 다른 과학수사기관 관계자들조차도 “우리가 슈퍼마켓이면 국과수는 백화점”이라고 손가락을 치켜들 만큼 국과수의 위상은 확고하다.

1955년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소속 기관으로 출범한 국과수는 초창기만 하더라도 변사체 부검, 독극물 감정 등 업무 범위가 좁았지만 반세기 세월을 거치는 동안 질적, 양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특히 유전자 분석 분야는 세계 수준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법의학부와 법과학부 등 2개 부 아래 법의학과, 유전자분석과, 범죄심리과, 문서영상과(이상 법의학부), 약독물과, 마약분석과, 화학분석과, 물리분석과, 교통공학과 등 9개과가 설치돼 있다. 또한 감정 수요의 증가에 따라 90년대 이후 전국 4개소에 지역별 과학수사 활동의 원활한 지원을 위한 분소가 순차적으로 문을 열었다.

국내의 대표적 과학수사기관인 만큼 고도로 숙련된 감정 전문가들과 최첨단 장비도 집중돼 있다. 올해 8월 현재 박사급 56명, 석사급 104명 등 181명의 전문가들이 쏟아지는 감정 의뢰를 소화하고 있고, 유전자형 분석기, 말디 토프(레이저로 물질의 성분을 분석하는 장비) 등 대당 수억원씩 하는 고가 장비들이 이들의 업무를 뒷받침하고 있다.

감정 건수도 해마다 늘어나 2005년에는 1년 동안 무려 20만8,000여 건의 감정 실적을 기록했다. 어림잡아 감정 인력 한 사람 당 1년 평균 처리 건수가 1,000여 건을 훌쩍 넘는다.

감정 의뢰는 대부분 경찰의 몫인데 전체의 95% 이상이 경찰 수사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이밖에 검찰, 해경, 군, 법원 등에서도 감정을 의뢰해 온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유전자 분석 건수가 날로 폭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2년 1만2,000여 건에 그쳤던 유전자 분석 건수는 지난해에는 거의 3배에 가까운 3만1,000여 건을 기록했다. 이와 관련, 한 관계자는 “강력 사건을 해결하는 실마리가 대부분 유전자 감식으로 얻어지는 경우가 많아 의뢰 건수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국과수의 역량이 확대되면서 외부의 ‘러브콜’도 부쩍 많아지고 있다. 베트남 법과학자 4명이 올 상반기에 법의학과, 유전자분석과 등에서 연수를 받고 돌아갔는가 하면 5월에는 건설교통부 항공조사위원회와 국과수 사이에 상호협력 협정이 맺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국과수에도 그늘이 없지 않다. 특히 밖에서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와 달리 안에서는 오랫동안 인력 확보 문제로 속앓이를 해오고 있다. 업무량이 많은 데다 처우가 만족스럽지 않아 떠나는 사람이 심심찮게 나오지만 신규 인력 채용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지난 3월 있었던 법의관(부검의) 채용 때 극명하게 드러났다. 10명을 새로 모집하는데 단 한 명도 지원하지 않는 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법의관 지원자는 수 년 전부터 해마다 줄어온 터였다.

법의관 기피 현상이 이처럼 심각한 것은 물론 시신 부검 업무가 고될 뿐 아니라 법의학 전공 의대생이 최근 감소하고 있는 것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또한 국립의료원 등 다른 국립기관에 비해 한 등급 낮은 5급 사무관으로 채용되는 조건도 지원자들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다.

주변 관계자들은 “편하게 살려는 풍조가 팽배한 요즘 누가 힘든 근무 여건과 낮은 처우를 감수하고 일하려고 하겠느냐”며 “법의관 부족 사태는 정부 차원에서 심각하게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과학수사의 본산 국과수의 남모를 고민은 언제쯤 사라질까. 이 문제를 풀 단서만큼은 그들이 아닌 정부가 찾아야 한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