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한국인 정서' 부담감… 토종은 산 기업 되팔 때 불리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돈이 급했던 우리나라 은행과 기업, 대주주들은 지분을, 혹은 통째로 회사를 팔아야만 했다. 이때 싼 값에 이들 기업이나 지분을 인수해 간 자금의 대부분은 해외 사모펀드(PEF)들.

이들은 몇 년이 지난 후 당시 헐값에 사들였던 기업들을 죄다 비싼 값에 되팔아 엄청난 차익을 챙겨 국민 마음을 속쓰리게 했다. 국내에서 일반에게 ‘PEF’란 이름을 각인시켜 준 계기였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PEF법이 제정되고 감독 당국에 등록된 PEF들이 공식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한 마디로 돈을 모아 투자한 뒤 나중에 비싸게 팔 수 있도록 기업 가치를 높이는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 반면 미국의 경우 PEF에 대해서는 아무런 법규나 규정이 없다.

원래 PEF는 미국 부자들이 넘쳐 나는 자기 자산을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 벤처투자사에 투자를 하거나 특정 기업에 투자해 수익을 얻던 이들 부자들은 직접 투자전문회사를 차리고 전문가들을 고용해 수익을 불려나갔다. 하지만 ‘부자들의 배만 불려주고 있다’고 생각한 이들 투자 전문가들은 별도의 회사로 독립, 직접 자금을 모아 그들이 가진 노하우로 투자 사업을 벌인 것이 지금의 PEF 형태로 발전했다고 알려져 있다.

서로 출발이 다르지만 어쨌든 앞으로 토종 PEF와 해외 PEF는 국내외에서 운명의 한판 대결을 벌여야만 한다. M&A가 주목적인 만큼 기업 인수 합병 시장에서 매물을 놓고 서로 싸워 쟁취해야만 하는 입장이 되기 때문이다.

토종과 해외, 두 사모펀드를 외형과 역사만을 놓고 비교해 보면 당연히 토종 PEF는 해외 PEF에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한다. 자금 규모도 엄청날 뿐더러 수십 년의 경험을 갖고 있는 해외 유명 PEF의 노하우를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역사가 짧은 탓도 있지만 국내에서 국내 자금으로 조성된 PEF가 성공적인 투자 실적을 얻어냈다는 소식은 아직까지도 없다.

하지만 국내 토종 PEF가 더 유리한 측면도 있다. 국내 M&A 시장에서 기업 인수 합병 주체를 선정할 때 알게 모르게 토종 펀드를 찾게 되기 쉽다는 논리에서다. 이에 대해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사업에서 이면 계약도 있을 수 있고 말 못할 속사정도 있게 되는 것이 상례인데 그런 이유에서라도 알게 모르게 ‘말이 통하는’ 토종 펀드를 찾게 될 것”이라고 털어놓는다.

또 해외 펀드는 전략적 투자자(SI), 즉 인수한 기업을 최종적으로 사 갈 기업을 구하는 데 있어서도 불리하다는 핸디캡을 안고 있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다. 특히 외국인들은 펀드 구성에 있어서도 모든 주도권을 죄다 쥐려고 하는데 한국인들의 정서가 이를 쉽게 용납하고 있지도 않다.

반면 토종펀드는 ‘EXIT 단계’에서, 즉 기업을 사서 되팔아 나갈 때 외국 펀드보다 불리한 점을 안고 있다.

예를 들어 특정 PEF가 인수한 기업이 국가 기간산업 측면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평가될 때 그 기업을 해외 기업에 팔게 될 경우 곤란한 처지에 처할 수 있다. 즉 국내 기업보다 더 많은 돈을 준다고 하는 외국 기업에 쉽게 팔기 어려운 경우가 생길 수 있는 것. 이 경우 해외 펀드는 아무래도 별 탈 없이 기업을 어디든 비싼 값에 팔아치우기에 유리하게 된다.

특히 토종 펀드는 운용 사항을 당국에 신고하거나 운용에 있어 여러 가지 제한과 규제를 받는다는 맹점을 안고 있다. 이는 해외 펀드가 마치 도깨비 방망이처럼 자유자재로 세계를 누비며 투자 활동을 벌이는 것과는 크게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이런 ‘운신의 폭’ 면에서는 토종 펀드가 불리한 셈.

일례로 토종 펀드는 자금 운용 규정상 ‘기업을 인수할 목적으로만’ 자금을 사용해야 한다. 주식을 단기간에 사고 팔아 차익을 챙길 목적으로는 투자할 수 없고 부동산에 투자할 수도 없다. 실제 금융 당국에 사모펀드로 부동산을 투자할 수 있느냐는 문의도 적잖이 들려오곤 한다.

규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대신 토종펀드는 세제 상의 혜택을 받고 있다. PEF라는 회사에서 거둔 수익에 대해서는 과세를 하지만 개별 투자자가 거둔 배당 수익에 대해서는 전혀 세금을 부과하고 있지 않은 것. 외국 펀드의 경우에는 둘 다 세금을 내야만 한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당국에 운용 규정을 완화해 달라고 난리다. 그런 여론을 반영, 제한적으로 운용에 대한 일부 조항이 개정돼 투자가 용이해지는 등 금융당국도 시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있다.

이에 대해 당국의 한 관계자는 “엄밀히 말해 사모펀드, 즉 PEF는 별다른 규제나 감독 없이 자유롭게 운용하도록 놔두는 것이 필요한 측면도 없지 않다”며 “어쨌든 사모펀드에 대한 여러 가지 규정과 제한은 완화되는 추세에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혹시라도 일어날 수 있는 금융 사고나 변칙 영업을 막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감시는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편 한국 금융당국에 등록했지만 외국인들이 주축이 돼 한국에서 사모펀드 활동을 벌이는 PEF도 등장해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한마디로 토종인지 외래종인지 불명확하다는 것. 이들은 이에 대해 “전혀 외국 자본이 아니고 국내에서 자금을 모아 국내 기업에 투자하면 토종펀드이지 왜 해외펀드란 얘기를 하느냐”고 볼멘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