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사모펀드 새 활로 찾기M&A 먹잇감 계속 줄어… 해외 블루오션 개척 나서야

“동북공정(東北工程)이 아니라 서북공정(西北工程)입니다.”

국내에서 사모펀드(PEF) 자금을 모을 때 일부 펀드에서 투자자들에게 내세운 모토가 있다. 바로 ‘서북공정’이란 단어다.

중국이 고구려와 만주 지역의 역사를 한족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시도인 ‘동북공정’에 빗대 표현한 이 말은 국내 사모펀드가 처한 현실을 일부 말해 준다. 이들이 내세우고 싶었던 메시지는 ‘서북 방향으로 나아가 그 지역에서 수익을 거둬오겠다’는 것. 즉 한반도의 서북 방향에 위치한 중국이나 인도 등 신흥 개발국가에 자금을 투자,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주장에서다.

역으로 서북공정이라는 단어는 국내에서 그만큼 수익이 기대되지 않는다는 소리로도 들릴 수도 있다. 즉 국내에서 일반적으로 PEF에서 기대되는 높은 수익을 올리기 힘들기 때문에 대신 ‘서북 지역’에서는 높은 소득이 가능하다는 해석도 가능한 것.

PEF에게는 먹거리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사고 팔 기업이 있어야 PEF도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기업 인수·합병(M&A)시장이 PEF가 발 붙이고 자랄 수 있는 환경인 셈이다.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PEF의 수익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미국 PEF의 5년 평균 수익률도 1989년 정점을 기록한 이후 급감, 2000년대 들어서는 점진적인 약세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쉽게 말해 기업 사냥에 필요한 사냥감의 숫자가 예전보다 훨씬 적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대신 기업의 M&A 시장에서 인수·합병 대상인 기업의 덩치는 날로 커지고 있다. 그만큼 M&A할 만한 작은 기업들의 숫자는 줄어들었다는 방증이다. 때문에 PEF도 덩치가 크고 보다 더 많은 자금을 모아야만 더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 최근의 흐름이다. 돈도 많이 없고 규모도 작은 어정쩡한 펀드는 시장에서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다.

일례로 미국 보스턴 지역의 경우 예전에는 작은 은행들이 여럿 있었다. 하지만 이들 은행이 서로 M&A를 거쳐 하나의 은행으로 통합됐고 또 이 은행은 BOA(Bank Of America)에 합병돼 은행 숫자가 크게 줄어 들었다. 서로 사고 팔고 하다보니 이젠 합칠 대상이 없어져 버린 형국.

하지만 한국 M&A 시장에서는 아직 인수·합병할 대상이 제법 남아 있는 상황이라고 금융 관계자들은 얘기한다. 이미 매각된 대우건설이나 진로, 동아건설이 아니더라도 대한통운, 하이닉스, 대우조선, 현대건설, 쌍용건설 등이 바로 사냥감들이다.

따라서 국내 PEF들 역시 이들 기업의 인수 합병에 참여할 기회는 남아 있다. 단만 이들 기업이 외환위기 때처럼 헐값에 사고 팔 기회는 이미 지나가 버려 이들 기업을 인수하더라도 얼마만한 차익을 남길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이들 기업을 인수할 수 있는 능력이나 여력이 되는지는 다른 문제이다. 때문에 시장에서도 국내 사모펀드가 국내 M&A 환경에서 예전만큼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그리 낙관하지 못한다.

▲ 한국증권은 베트남 현지에서 민영화될 예정인 베트남 기업에 집중 투자하는 베트남 투자펀드를 선보이고 있다.

또 국내 PEF중 상당수의 인적 구성이 펀드 전문가가 아니라는 문제도 제기된다. 아무래도 역사가 짧은 만큼 은행 출신들이 많이 포진해 있고 은행권에서 유입된 사모펀드 자금 비중도 적지 않다. 그 결과 이들 펀드의 성격은 모험적이라기보다는 안정적인 투자를 지향하는 경향을 가끔 보인다. 원금을 무리하게 보장해 주거나 하는 등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일부 시장에서 “PEF가 주식담보대출이냐?”는 농담도 오가는데 모두 그 같은 상황을 빗댄 말들이다.

사모펀드와 헤지펀드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것도 최근 국제 자금 시장의 추세다. 사모펀드가 보통 단기간에 주식을 사고 팔아 시세차익이나 환차익을 내거나 혹은 자금을 대출받기도 하는 헤지펀드적인 성격을 갖기도 한다는 것. 이는 결국 운용을 어떻게 결정하느냐의 문제인데 단기 투자를 목적으로 했다가 투자 기간이 길어져 사모펀드로 성격이 변화하는 경우도 종종 목격된다.

한편, 사모펀드로 출발했지만 헤지펀드로 잠시 변신하는 경우도 있다. 사모펀드로 실적을 입증해 보이기에는 3~5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길어 그 전에 사전 단계로 헤지펀드로 활약, 단기 수익을 거두는 실력을 과시하겠다는 의도에서다.

어쨌든 국내 사모펀드들이 국내 시장에만 머물지 말고 해외 시장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는 데는 금융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그러나 성공을 위해서는 펀드 운용자가 현지 사정에 정통해야 하고 인적 네트워크가 훌륭하고 정보에 빨라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해외에 나가 돈을 벌어온다고요? 글쎄, 벌어온 적이 있나요? 아직까지는 희망사항이겠죠”라는 한 전문가의 지적은 현재 국내 PEF가 처한 입장과 상황을 그대로 대변해준다.


박원식 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