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없는 서민에 싼값 주택공급은 옛말 '이익 챙기기' 더해민간 건설사와 불공정 경쟁도… 역할 근본적으로 수술을

“국민과 시민을 위한다는 공기업이 부동산 거품을 더 부추기고 조장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오히려 민간 기업보다 더하면 더 합니다.”

지난 9월 서울시의 은평 뉴타운 분양가가 발표 된 날, 서울 시민 대부분은 서울시가 주관한 은평 뉴타운 분양가가 평당 1,500만원이라는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이때 은평구의 아파트 평당 시세는 700만원. 더욱이 서민들은 민간기업도 아닌 공기업이 분양하는 아파트 분양가가 주변 시세를 2배 넘게 책정됐다는 사실에 좌절감과 분노를 느끼기까지 했다.

비록 1년 후 후분양제 실시라는 전격적인 정책 전환으로 파문은 가라앉았지만 은평 뉴타운의 분양가 파동은 작금의 공기업 행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태어났다는 공기업이 공공의 이익은커녕 공기업 자체의 이익 극대화에만 치중한 속내가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럼 서울시 산하 기업인 SH공사는 왜 은평 뉴타운의 분양가를 주변 시세보다 턱없이 높게 책정했을까? 전문가들은 “분명 서울 강남을 모델로 삼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역시 신도시에 해당하는 판교가 평당 1,800만원에 최근 분양가가 책정된 것을 감안하면 은평 뉴타운도 1,500만원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더욱이 SH공사측은 토지 구입이나 건설에 얼마의 비용이 들었는지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이와 관련, 경실련은 “투자된 금액과 원가를 공개하지 않으면서도 고가의 분양가를 내놓았다는 것은 공기업이 민간기업과 똑같이 폭리를 거두려는 심보”라고 질책하고 있다.

경실련 윤순철 시민감시국장은 “예전 공기업은 집 없는 서민들에게 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일을 맡는 회사로 알고 있다”고 말한다. 저렴한 주택을 지어 자력으로 민간의 비싼 아파트나 일반 주택을 살 수 없는 이들에게 주택을 판매, 혹은 임대해 주며 주거 안정을 기하자는 것이 설립취지라는 것.

하지만 은평 뉴타운 분양가 파동에서 보듯 “이들 공기업은 오히려 본분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비단 SH공사뿐 아니라 주택공사나 토지공사 모두 마찬가지다. 상식밖으로 치솟는 분양가 거품을 제거해 주기 위한 버팀목으로 작용하기보다는 반대로 분양가 거품에 동참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이들 공기업이 분양가 거품을 조장하거나 오히려 앞장서기까지 한다는 주장도 최근에 힘을 얻고 있다.

이들 공기업의 주택건설 분양 사업이 점차 늘어 나면서 민간 건설업체들과의 충돌이 자주 벌어지고 있는 것도 최근 두드러진 현상이다. 특히 민간 건설업체들은 “이들 공기업은 토지 수용 등 각종 특혜를 벌이면서 민간 사업자의 영역에까지 사업을 날로 확장하고 있다”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공기업이 추진한 주거 사업이 민간 부문의 추진 사업과 맞부닥친 대표적인 사례로는 상계동 노원마을이 꼽힌다. 서울 노원구에서 자연녹지 지역과 개발제한구역에 속해 대표적 집단취락 지역이었던 이곳은 당초 SH공사와 한 민간 건설업체 간에 사업 추진을 둘러싸고 주민들 사이에 분쟁이 벌어졌었다.

이때 민간 주도로 건설돼야 한다고 주장한 측은 현지 주민들이 개발의 수혜자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건설사측은 당시 땅 소유주에게는 23평형 아파트 한 채씩, 세입자 전원에게 7~13평짜리 아파트를 4명을 한 세대로 제공하고 단지 내에 병원이나 직장도 함께 마련해 주는 등 직ㆍ주(직장과 주택)병존형 개발을 추진했다.

하지만 결국 공영개발이 선택됐고 임대 주택 입주권만을 받은 현지 주민 대부분은 실상 다른 곳으로 떠나는 처지로 내몰렸다. 입주권을 얻었더라도 현지 거주민 대부분은 임대 주택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주택 관계자들은 노원마을의 경우처럼 공영개발의 주택 정책이 실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나 원주민에게 도움을 제대로 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민간 건설ㆍ개발업체들은 “이들 공공기업들이 특혜를 이용해 더 자신들의 배불리기에 나선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개발 추진 과정에 있어 토지 수용권 같은 권한을 갖고 여러 가지 행정 처리에서도 편의를 누리는 반면 민간기업은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일부 민간기업은 “공익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땅이나 집장사를 하는데 그렇게 장사하게 내버려 두려면 우리 세금으로 그런 회사들을 세울 필요조차 없다”고 거친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여기에는 ‘불리한 조건과 여건에서 공기업들과 경쟁해야만 한다’는 피해의식이 작용하고 있다. 공공기업은 특혜를 받으며 싸게 사업을 하는데 분양 가격은 민간기업과 똑 같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민간 건설업체들은 이에 대해 별다른 이의를 공식적으로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 할 말이 많고 불만도 쌓여 있지만 섣불리 나설 수 없는 입장”이라며 “잘못 나섰다가는 인허가권을 갖고 있는 관계 기관에 ‘미운 털’이 박힐 수 있다”고 어려운 입장을 토로했다.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본부의 김헌동 본부장은 “이제는 공공 부문이 어느 정도까지 주택 시장에 개입해 책임을 다 할 것이냐는 논쟁을 할 때다”며 “국가 차원에서 주택 정책의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지를 전 국민들이 함께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원식 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