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7쌍 중 1쌍이 불임, 정신적·경제적 고통 상상초월출산 장려책 불구 의료지원 혜택 미미… "질병으로 인식해야"

“아이를 낳지 못한 것을 운명이라 받아들여요. 육아 대신 뭔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을 하는 것이 제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부인인 아키에(昭惠·44) 여사가 최근 자신의 불임 사실을 공개하며 그간의 힘들었던 심경을 고백한 일본 언론의 보도는 국적과 신분을 떠나 불임 여성이 처한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는 아베 총리 집안이 대대로 정치를 해온 가문이었기에 아이가 없는 문제에 대해 지역구에서 엄청난 압력을 받았다. “무자녀 전업주부들을 위해 뭔가 가능한 일이 없을까 고민한다”는 말에선 “여성으로서의 의무를 다 하지 못했다”는 사회 통념으로 인한 심적 부담감마저 엿보인다.

불임 문제는 비단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날로 떨어지는 출산율에 반비례하듯 점점 늘어나는 불임 환자의 아픔은 단순히 개인적 아픔을 넘어 ‘저출산 시대’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을 수 없는 불임 환자가 겪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여기에 불임치료로 인한 경제적 고통은 이들의 부담을 더욱 무겁게 짓누른다. 사회는 불임 여성들을 아직 온전히 품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 사회 또한 함께 고민하지 못하는 ‘불임의 사회’는 아닐까. 불임 여성의 아픔을 들어본다. / 편집자 주

“7년째 불임 치료를 받으면서 12번이나 시험관 아기 시술을 했는데 실패했습니다. 그 피가 마르는 심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겁니다. 이제 남은 것이라곤, 빚과 황폐해진 몸과 마음뿐입니다.”

결혼 8년차의 주부 김미옥(가명ㆍ41) 씨는 그동안 겪은 서러움과 좌절의 무게로 고개를 떨구었다.

사실 불임 여성들이 아기를 갖기 위한 힘겨운 여정을 시작할 때면 가정이 감당해야 할 엄청난 경제적인 부담에서 현실적인 고통은 시작된다.

김 씨는 3대 독자인 남편을 볼 때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그간 진료비와 약값 등으로 5,000만원이 넘는 돈을 썼다. 과배란 주사, 난자채취, 배아 이식 등 한 번 시험관아기 시술에 드는 비용은 300만원 내외. 중소기업 회사원인 남편 월급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 전세 4,000만원의 빌라를 사글세로 돌렸다.

“마이너스 통장의 잔고도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언제 임신이 된다는 기약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계속되는 실패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는데 대책은 없고 눈물만 흐릅니다.”

김 씨는 “더 나이가 들기 전에 13번째 시술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돈 때문에 미룰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 불임 부부 대부분 "치료비용 부담" 호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03년 ‘불임치료 중인 부부 중 치료 중단 사유’에 관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불임 부부 4쌍 중 1쌍(26.6%)은 비용 부담 때문에 치료를 중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 부부 10쌍 중 8쌍(83.2%)은 “불임치료 비용이 가정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서울 마리아병원 이원돈 원장은 “불임으로 초래되는 문제점 중 대개 치료 비용에 대한 경제적 부담감이 가장 크다”며 “중산층이어서 치료부담을 덜 느끼는 불임 환자는 불임치료를 지속적으로 받고자 하지만 저소득층은 경제적 문제로 임신할 수 없는 처지에 자포자기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불임 여성의 시련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좌절감과 경제적 부담으로 인한 현실의 곤궁은 불임 여성들을 자꾸만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그들은 대부분 외로움을 호소하며,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결혼 3년차의 주부 정모(28) 씨는 치료가 실패할 때마다 극히 예민해져 주변 사람들과도 잦은 마찰을 빚고 있다. 그는 “불임병원과 동시에 신경정신과를 다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더욱 씁쓸해진다”고 말했다.

불임 여성들이 이렇게 정신적으로도 극단으로 몰리는 것은 사회가 그들을 보는 편견 때문이다.

김진세 고려제일신경정신과 원장은 “불임 여성들은 불임을 여성의 결함으로 인식하는 사회 분위기 탓에 죄책감으로 마음의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다”며 “이러한 여성들의 부담감을 덜어주면, 임신의 확률도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불임으로 직장을 떠나기도 한다. 결혼 8년차인 공무원 출신 박모(34) 씨는 3년 전부터 직장을 그만두고 인공수정과 시험관 아

기 시술에 매달려왔다. 지금껏 받은 시험관 아기 시술만 5차례. 처음 시술을 했을 때는 직장에 휴가를 내고 받았지만 횟수가 거듭되면서 눈치가 보여 퇴사할 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박 씨는 “남편과 함께 맞벌이를 하다가 수입이 줄어드니 경제적 부담 때문에 시술을 한 번 더 할 것도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서창석ㆍ지병렬 교수팀이 2003년부터 2006년까지 3년간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체외수정을 받은 환자 106명의 직업 변동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박 씨처럼 체외 수정 시술을 받은 환자 중 절반(49.2%)은 중도에 직장을 그만둔 것으로 나타났다.

서창석 교수는 “체외 수정 시술을 위해 직장을 포기한 여성들은 시술 후 임신에 실패했을 때 더 큰 상실감과 불안감을 겪는다”며 “출산 장려 차원에서도 체외수정 시술 환자들을 위한 불임 휴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통계청이 밝힌 지난해 우리나라 불임부부 수는 모두 64만 쌍으로 전체 가임여성(15~39세)의 14%에 달한다. 부부 7쌍 중 1쌍은 아기를 갖지 못하는 셈이다. 특히 가임연령을 40세 이상으로 높일 경우 불임부부는 100만 쌍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 부부·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책임

‘아이를 안 낳는 시대’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아이 갖기를 소망하는 불임 부부는 주변에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저출산 시대에서도 불임 부부는 복지 혜택의 사각 지대에 놓여 있는 게 현실이다. 저출산 시대의 위기감으로 정부는 갖가지 출산장려책을 쏟아놓고 있지만, 불임 부부에 대한 지원책은 극히 미미하다.

이러한 정부의 불임 지원책의 가장 근본적인 한계는 불임을 ‘중대한 질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불임의 경우 다른 질환과 달리 환자의 생명과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국민건강보험의 재원 배분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고 있다.

이에 대한 건강보험 서명 운동을 펼쳐온 불임극복 커뮤니티 ‘아가야’의 박춘선 대표는 “선진국들은 출산 장려책으로 불임치료의 모든 단계를 지원함으로써 실질적인 효과를 얻고 있다”며 “인구 감소에 따른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불임을 질병으로 인식하고 사회가 불임의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아칸소, 캘리포니아, 코네티컷, 하와이, 뉴욕, 오하이오, 텍사스 등의 주에서 불임과 관련한 보험 규정을 두고 있다. 캐나다의 퀘백주는 2001년부터 부모가 되고자 노력하는 부부들에게 치료비의 30%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주고 있다. 프랑스는 불임치료의 시작부터 마지막 단계인 시험관 시술까지 횟수, 비용에 상관없이 무제한으로 지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제도적 배려가 거의 없다.

올해 465억을 들여 전국의 불임 여성 1만6,426명을 선정해 시험관 아기 시술비로 1인당 1년에 최대 300만원까지 지원하기로 한 것이 첫걸음이다.

마리아병원 이원돈 원장은 “결혼 연령의 고령화, 환경 오염의 증가, 스트레스 및 운동 부족 등으로 불임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며 “불임이 단순히 해당 가정의 문제일 뿐 아니라 사회 문제로 발전하고 있어 정부와 우리 사회가 그 아픔을 더불어 안는 성숙한 의식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