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가계 부채 희비 은행들 사상 최대 순익으로 고액 연봉 잔치… 정부, 금융감독 강화해야

“왜 돈을 빌린 사람에게만 책임을 묻습니까? 돈을 빌려 준 은행에도 책임을 지워야 합니다. 돈을 갚을 능력을 따지지 않고 무작정 대출해 준 은행이 오히려 더 큰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요.”

늘어만 가는 가계 부채의 후유증이 지금 당장 불거진 것은 아니지만 만약에 있을 사태에 대비해 시민단체들은 일찌감치 책임 소재를 못박고 있다. 경실련은 주책담보대출이 대규모로 부실화될 경우 1차적 책임은 정부와 금융기관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사전에 예견되는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대책 마련에 등한시한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근 수년째 가계 부채는 늘어만 가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은행권은 유례없는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덩치를 키우고 있는 은행들이 올 상반기에만 올린 순익은 무려 8조원 규모. 사상 최대 수치다.

심지어 일부 은행들은 최근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집안 잔치에 열중한다는 지적도 받았다. 지난 국감에서 드러난 통계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부장급 이하 일반직원 100명 가운데 5명은 억대 연봉을 받고 있다. 특히 산업은행의 억대 연봉자 비율은 전체 직원의 13%에 달했다.

2002년 은행 직원 중 억대 연봉자는 불과 564명,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은 4,078명으로 4.6%에 이른다. 4년 만에 무려 7.2배나 증가한 수치다. 일반 직장이나 시민들이 느끼는 경제 성장률이나 체감 소득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중소기업은행의 부장급 평균 연봉은 모두 1억원을 넘었다.

엄청난 고액 연봉이 말해 주듯 최근 은행의 인기는 상종가를 달린다. 신입 사원 입사 경쟁률은 100대1을 넘어서기 일쑤이고 국책· 시중 은행 가릴 것 없이 ‘꿈의 직장’으로도 불린다. 은행마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적성이 맞지 않아도 그만두는 직원이 적어 퇴사율은 거의 0%에 육박한다.

그렇다고 이처럼 ‘돈이 넘쳐 연봉 잔치를 벌이고 있는’ 은행의 수익 구조가 항상 탄탄한 것만은 아니다. 급증하는 가계 부채로 만약 주택과 아파트의 가격이 크게 떨어진다면 은행 등 금융기관도 부실 채권의 부담을 안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자금 회수에 들어가기 전까지 은행권은 고수익의 호황을 구가한다. 이때까지는 채무 불이행 비율도 낮고 불건전 자산의 비중도 제한적이다. 하지만 은행권이 시급히 자금 회수에 들어가는 순간 ‘난리’가 날 수도 있다. 카드 대란 때도 카드사들은 사상 최대의 수익을 올린다며 좋아하다가 자금 회수에 들어가는 순간 일시에 부실기업으로 전략한 사례도 이런 가설을 뒷받침한다.

만약 여러 은행 중 한 곳이라도 서둘러 자금 회수에 나서게 되면 다른 은행들도 일제히 따라가게 되고 이는 도미노처럼 퍼져 나가게 된다.

그럼에도 은행들은 지금 주택담보대출을 벌이면서 걱정하는 구석이 별로 없어 보인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주택담보대출에 나서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의 경우 근년 들어 중소기업 대출 비중은 줄이고 가계 대출 비중은 계속 늘리고 있다. 가계 대출 비중이 2003년 14.3%였지만 2004년 14.6%로 뛰었고 지난해는 16.5%로 더 늘어났다. 올해 7월 말 기준으로는 16.7%로 늘어나 이미 지난해 대출액 9조9,006억원을 초과했다. 기업은행은 한 술 더 떠 가계 대출 비중을 2010년까지 총 대출의 30%로 끌어 올린다는 계획까지 세워놓고 직원들을 독려하고 있다.

은행들이 마치 ‘믿는 구석이 있다’는 듯 이처럼 주택담보대출에 열중하고 있는 것은 우선 기업 대출보다는 비교적 안전하다는 데 기인한다. 소득 수준조차 크게 따지지 않는 것 또한 일단 주택을 담보로 잡고 있기 때문이다.

또 설령 ‘가계 부채 대란’이 발생한다 해도 은행은 ‘태풍’의 1차 피해자가 아니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경실련 홍종학 정책위원장은 “한계 이상으로 늘어난 가계 부채를 갚지 못하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면 직접적인 피해자는 가계, 즉 일반인들이 된다”고 염려한다.

그리고 다음 차례로 영향을 받는 부문은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앞세워 주택담보대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홍 위원장은 “덩치가 큰 은행 역시 영향권에서 예외는 아니지만 피해 규모나 여파 면에서 일반 가계나 저축은행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할 것”으로 전망한다.

때문에 경실련은 “은행까지도 직접적인 피해를 받을 경우 또다시 공적자금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힘줘 말한다. 이참에 막상 사태가 터지면 공적자금으로 충당하는 잘못된 정책 관행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 당연히 대출 경쟁을 벌이며 미끼 금리를 이용하거나 변칙 대출을 일삼아 온 금융기관에 더 책임이 있는 만큼 주택담보대출의 부실 사태가 발생할 경우 단 한 푼의 공적자금이 투입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정부 또한 시종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비난받고 있다. 시중의 무리한 주택담보대출을 막기는커녕 부동산 경기가 위축될까봐 오히려 방조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정부 관계자들도 “아직까지 은행 등 금융기관의 건전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팔짱을 끼고 있다.

하지만 정작 심각한 문제는 금융기관의 건전성이 아니라 충격을 1차적으로 받게 되는 일반 가계에 있다는 것이 개인 부채 위기론의 핵심이다. 일본의 경우 부동산 버블의 충격이 대부분 기업이나 기관으로 간 반면 우리는 주택담보대출의 당사자가 대부분 일반 개인이기 때문에 막상 충격이 가해질 경우 후유증은 일본보다 훨씬 심각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택담보대출로 인한 위험은 경제학적으로 체제적 위험(System Risk)으로 설명됩니다. 그리고 이런 위험은 그 속성상 금융기관이 부실화되기 이전에 경제의 불안정성이 심화돼 대체로 정부의 개입을 불러옵니다.” 홍종학 위원장은 “이 점을 악용해 금융기관들은 안전한 수익기반으로 생각되는 주택담보대출을 경쟁적으로 늘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때문에 이런 금융회사의 모럴헤저드 행태를 예방하기 위해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금융감독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더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