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학년도 통합논술 실시… 학교는 대책 막막, 학부모는 발동동

2008학년도 대학 입시부터 이른바 통합(교과형)논술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다.

1997년 처음 등장한 대입 논술이 변별력을 높이려는 진화를 거듭해온 끝에 통합논술이라는 정점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학교나 학생이나 모두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하다.

당장 지난 16일 수능 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은 2007학년도 정시 논술이 발등의 불이다. 수능이 예전보다 쉬웠다는 분석이 나와 변별력이 떨어질 것으로 보여 논술 시험의 중요성은 커졌다.

따라서 올해 논술은 점수 비중은 낮아도, 엇비슷한 점수대의 합격자를 가리는 데 결정적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수능을 치른 뒤의 안도감은 빨리 물리치고 수험생들은 이제 가고자 하는 대학의 논술 시험 준비에 바짝 몰두해야 할 때다.

이에 주간한국은 차별화된 커리큘럼과 석ㆍ박사급 전문 강사진으로 이름난 TOPIA논술아카데미와 공동기획으로 2007학년도 논술 공략 포인트를 별책부록에 담아 학부모, 학생들에게 정시를 대비한 길라잡이로 드린다. 아울러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한 통합논술에 대한 한 발 앞선 심층 분석과 전망을 제시한다. 미로 같은 논술로부터의 탈출구가 됐으면 한다.


"명색이 50년 동안 글을 쓴 나도 쓸 자신이 없다."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知性)이자 문필가 중 한 사람인 이어령 전 이화여대 석좌교수조차 두 손을 들었다.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대상은 서울대 등 요즘 대학들이 실시하는 논술 시험 문제였다.

그는 최근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대입 논술 시험을 가리켜 "논술은 창의력과 상상력을 길러줘야 하는데 오히려 획일화된 글쓰기를 강요하고 있다"며 날선 비판을 가했다. 아울러 자신이 봐도 난해한 문제를 학생들이 어떻게 풀 수 있겠느냐며 현행 논술 시험의 난이도에도 화살을 날렸다.

그러자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의 한 관계자는 이메일을 보내 "논술의 의도는 (선생님의 생각처럼) 학생들에게 획일화된 글쓰기를 벗어나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쳐보라는 것"이라며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끝난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서울대 논술은 단연 뜨거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의원들은 논술 반영비율을 30%로 대폭 올리기로 한 2008학년도 서울대 입시안이 사교육 시장을 더욱 키우고 국민들의 불안을 가중시킨다며 계획의 연기 또는 폐지를 집중 거론했다. 하지만 국감장에 출석한 이장무 서울대 총장은 2008학년도 입시안은 예정대로 추진할 것이라고 맞서 일촉즉

발의 긴장이 감돌기도 했다.

대입 논술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일선 학교와 가정을 휘감고 있다. 주요 대학들이 2008학년도부터 기존 논술시험과는 차원이 다른 통합(교과형)논술 시험을 실시하고 또한 입학전형 반영 비율도 대폭 높일 것으로 알려지자 가히 '논술 공포'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물론 수년 전부터 대학들이 실시해온 기존 논술도 그동안 학생들에게 만만찮은 부담으로 작용했다. 오죽하면 학생들이 내신-수능-논술의 세 가지를 일러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고 부르는 지경일까.

하지만 최근 외부로 알려진 각 대학의 채점기준을 살펴보면 지금까지는 논술이 당락에 '결정적' 요소는 아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서울대 정시모집 인문계(자연계는 논술 없음)의 경우 250점 만점 가운데 논술에 주어진 배점은 25점으로 반영 비율은 10%에 불과했다. 더욱이 25점 만점 가운데 22점은 모든 수험생이 기본점수로 갖기 때문에 '실질 반영 비율'은 1.2%의 미미한 수치에 그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통합논술이 본격 도입되는 2008학년도 입시부터는 사정이 크게 달라진다. 입시의 주축이 수능에서 논술로 넘어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논술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은 2008학년도 입시부터 수능과 학생부의 변별력이 줄어드는 데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다.

통합논술 시행과 관련, 대부분 대학들은 한결같이 "창의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력을 가진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한 것'이라고 취지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교육부가 논술이 본고사로 변질할 것을 우려해 내놓은 '가이드라인'을 피해 대학들이 입맛에 맞는 우수 학생들을 뽑으려는 목적이 더 크다. 결국 수능 등급제 도입에 따른 수능의 변별력 상실에 대응해 통합논술로 입시의 변별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인 것이다.

통합논술 전면 도입에 앞선 사전 준비작업도 서울 지역 상위권 대학을 중심으로 착착 진행되고 있다. 상당수의 대학들은 통합논술 모의고사를 치렀거나 조만간 실시 계획을 잡고 있다. 고려대는 아예 2007학년도 입시부터 통합논술을 전격 도입했다. 지난 6월 모의고사를 실시한 데 이어 8월 치러진 수시 1학기 일반전형에서 가장 먼저 통합논술 시험을 치른 것.

이처럼 통합논술 시대가 코앞에 닥치자 학교, 가정에선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할지 갈피를 못 잡는 분위기다. 학부모들은 학원 등 입시기관에서 개최하는 입시설명회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학생, 교사들도 효과적 학습 방법을 찾을 수만 있다면 지푸라기도 잡겠다는 심정이다.

문제는 지금의 공교육 환경 안에서는 통합논술에 대한 준비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런 어려움은 통합논술 교육의 일차적 책임을 지닌 일선 고교 교사들이 먼저 털어놓고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 정봉주 의원(열린우리당)이 언어, 외국어, 수리, 과학탐구, 사회탐구 영역을 담당하는 전국 고교 3학년 교사 5,1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절반에 가까운 47.3%의 교사가 '논술 시험 관련 대비가 전혀 없다'고 답변했는가 하면 '1주일에 2시간 이내'라는 답변도 38.2%를 차지해 상황의 심각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논술 시험 대비가 이뤄진다고 응답한 학교의 교사들조차도 실질적인 대비는 어렵거나 불가능하다고 보는 견해가 70%를 넘었다는 점이다. 이런 결과로 미뤄 현재 일선 학교에서는 논술 교육에 대해 겨우 시늉만 하고 있는 현실인 셈이다.

공교육에 한계, 사교육 의존 더 커질 듯

또 하나 짚어봐야 할 대목은 학교에서 못하는 논술 교육을 사교육 시장이 대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설문조사에서는 학생들이 논술을 대비하기 위해 학원이나 과외에 의존한다는 답변이 73.6%나 됐다.

강원도 중소도시의 한 고교 교사는 "학교 여건상 내실 있는 논술 수업은 거의 불가능한 현실"이라며 "결국 논술 시험 비중 확대는 사교육 팽창과 공교육 위기를 부채질할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아예 외부 전문가에게 논술 교육을 맡겨버리는 학교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런 현상은 서울 강남 7학군 일부 학교, 특목고 등지에서 시작돼 점차 많은 학교로 번져나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한 논술 전문학원 관계자는 "우리 학원의 경우 강사들이 팀을 이뤄 수시로 특강을 요청해 오는 학교를 돌며 논술을 지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논술의 '이상'과 학교의 '현실'이 심각하게 어긋나 있는 가운데 고교 교과과정과 대학 논술시험의 괴리를 좁혀보려는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최근 주요 대학 입학처장들과 고교 진학담당 교사들이 모여 구성한 논술협의체(정식 명칭은 '고교-대학간 대학입학관계자 상호협의회')는 그 첫 번째 결과물이다.

지난 10일 첫 회의에서는 ▲고교 교과과정 고려 ▲문제 유형과 취지, 난이도 공개 ▲고교 교사의 논술 검토 및 채점 참여 장려 등 원칙에 합의했다. 또 공교육을 살리기 위해선 고교와 대학이 함께 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손을 맞잡은 양쪽이 학생, 학부모가 모두 만족할 만한 결실을 얻어낼지는 미지수다. 고교 교사의 참여 방법에 현실적인 걸림돌이 있을 뿐 아니라 대학 일각에선 고교의 교육 방법을 뜯어 고쳐야 한다는 주장을 거둬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교원양성·교과개편 선행돼야" 지적

한 사범대학 교수는 "통합논술 도입 이전에 깊이 있는 논술 교육을 할 교원을 양성하고 통합교과적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하는 교과 개편이 먼저 이뤄지는 게 순서가 아니었나 싶다"며 "그러잖아도 주입식 공부에 찌들어 있는 아이들에게 갑작스레 창의성과 논리력을 요구하는 것은 아무리 취지가 좋더라도 선후가 바뀐 게 분명하다"고 씁쓸해 했다.

기왕에 통합논술 도입을 결정했다면 대학에서는 시험 유형과 난이도의 단계적 개선을, 고교에서는 논술 교육 환경의 조속한 정비를 하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그래야 대학도 살고 공교육도 살며 무엇보다 아이들이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