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서비스' 애인 대행의 진실 혹은 거짓말살가운 애인 연기에 친구도 감쪽같이… 일부선 2차 요구 등 성매매 변질

30대 중반의 대기업 직원 P씨는 아직 결혼을 약속한 애인도, 교제 중인 여성도 없다. 입사 후 밤낮없이 열심히 일해온 덕분에 회사에서는 인정 받고 있지만 퇴근 후에는 영락없이 ‘외로운 싱글’의 쓸쓸함을 곱씹는 처지다.

그런 그에게 친구나 지인들과의 송년회가 잦은 연말은 더욱 옆구리가 시려지는 때다. 부인이나 애인과 동행하는 모임에 멋쩍게 혼자 나갔다가 “넌 아직도 그러고 다니냐”는 타박을 들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 세밑에는 친구들을 깜짝 놀라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입가에 웃음이 흐른다. 애인이 생겼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하지만 그에 버금가는 ‘대타’, 즉 진짜 애인 같은 ‘애인 대행’을 데려나가 볼까 하고 구상 중이기 때문이다.

애인 대행은 수많은 역할 대행 서비스 중에서도 요즘 가장 이목을 끄는 분야다. 수요(의뢰인)도 많고 공급(대행인)도 많아 그야말로 뜨거운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일부 후발 역할 대행 업체는 아예 애인 대행을 전문으로 내세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애인 대행 서비스가 이뤄지는 방식은 여타 역할 대행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시적으로 애인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한 의뢰인이 희망하는 스타일의 애인 대행을 신청하면 업체가 가장 적합한 대행인을 연결시켜 주는 것이다. 최근에는 온라인 상에서 의뢰인과 대행인이 서로 자유롭게 계약을 맺도록 하는 방식의 직거래 사이트도 부쩍 늘고 있다.

그렇다면 애인 대행은 어떤 수준까지 서비스가 이뤄질까. 과연 친구나 친지들까지 속아 넘어갈 정도로 진짜 애인처럼 보여질까. 얼마 전 커플 모임에 애인 대행과 함께 갔던 30대 초반 남성 직장인 H씨의 경험담을 들어보자.

“애인 대행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혹시 하는 생각에 한 번 이용해 봤는데 마음에 들 만큼 ‘연기’를 잘 해주더라. 내가 봐도 마치 내 애인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 팔짱도 자연스레 끼고 수시로 미소도 지으면서 워낙 살갑게 굴어 다른 커플들보다 오히려 우리가 돋보이는 느낌마저 들었다.”

H씨의 임시 애인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한 여성은 대학을 나왔지만 취업은 하지 못한 스물다섯 살의 A씨. H씨 친구들이 건네는 이런저런 말을 가볍게 받아낼 만큼 세련미를 충분하게 갖추고 있었다고.

하지만 모든 애인 대행이 의뢰인과 ‘궁합’이 맞을 수는 없다. 비록 꾸며진 관계일지라도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교감이 없으면 어색한 순간을 맞기 십상이라는 것. 그 때문에 애인 대행 서비스는 의뢰인의 마음을 읽는 것은 물론 주변 정황을 재빨리 파악할 줄도 아는 센스와 자질이 중요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이처럼 애인 대행은 대행인의 역할이 비교적 어려운 축에 속해서인지 요금도 여타 대행 서비스보다 비싼 편이다. 서너 시간 기준으로 통상 10만원 정도 되며 여기에 시간이 추가되면 20만원을 훌쩍 넘기도 한다. 결코 싼 가격은 아니지만 의뢰인들은 “다급한 사정을 해결해준다면 그 정도는 지불할 수도 있다”는 반응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애인 대행 서비스에 대해 “애인도 돈으로 사느냐”는 비아냥거림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애인이 없어 큰 불편을 겪는 의뢰인들의 고충을 덜어준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는 ‘유용론’도 만만찮다. 현실적으로 봐도 분명 수요와 공급은 존재한다.

문제는 애인 대행 서비스의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역기능이 만만찮게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애인 대행이 새로운 형태의 성매매 창구로 변질돼 간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10월 중순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는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애인 대행 카페를 개설해 남녀 회원들의 성매매를 알선한 40대 남성을 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그는 의사나 사업가 등 부유층 남성 회원들에게 70만~100만원씩 돈을 받고 여성 회원들을 연결시켜준 것으로 밝혀졌다.

애인 대행 카페를 통해 만난 남녀 회원은 대부분 함께 식사도 하고 데이트도 즐긴 뒤 마지막에는 어김없이 러브호텔을 찾았다. 소요 시간은 대략 대여섯 시간. 이렇게 한나절 동안 처음 보는 남성과 은밀한 관계까지 갖는 대가로 여성 회원들이 받은 돈은 50만~70만원. 이들은 대부분 20대 초·중반의 젊은 여성들로 모두 대학생이나 직장인들이었다.

수사 관계자는 “적발된 여성들은 유학 비용이나 학원 수강 비용 마련 등을 위해 애인 대행에 나섰다며 뒤늦은 후회의 눈물을 흘리더라”며 “현재 일부 애인 대행 사이트가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개인이 개설한 소규모 카페를 통해 성매매가 이뤄진 비교적 작은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정작 더 큰 문제는 등록 회원이 수만 명에 이르는 대형 역할 대행 사이트가 성매매에 사실상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의뢰인과 대행인이 직접 계약을 맺는 일종의 자유시장인 직거래 사이트가 은밀한 거래에 더욱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각 업체들이 회원들의 글을 살펴 ‘2차’ 등의 금칙 단어나 불법적인 내용이 포함된 글은 걸러내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며 “특히 직거래 방식으로 애인 대행이 이뤄지는 경우에는 성매매를 막을 안전장치가 딱히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온라인 상에서는 ‘신사 숙녀’인 척하다가 실제 만남에서 성매매로 발전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이러다 보니 건전한 애인 대행만을 생각했던 사람들이 낭패를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올 초 여대생 K씨는 누군가의 허전한 부분을 잠시나마 채워주는 것도 의미 있고 신선한 경험이 되겠다는 순수한 생각에 애인 대행인으로 등록했다가 하루 만에 탈퇴하고 말았다. 등록 후 몇 시간도 안돼 노골적인 성매매 요구를 담은 문자 메시지가 휴대폰으로 쏟아져 들어와 화들짝 놀랐던 것. 그는 “애인 대행이라고 하길래 뭔가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낭만적인 것으로만 여겼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혀를 내둘렀다.

중개방식 대행업체 관계자는 “솔직히 10만~20만원씩 지불하고 건전한 만남만을 가질 남성이 열에 한둘이 되겠나”며 “간혹 애인 대행을 요청하는 의뢰인에게 솔직하게 말해보라고 하면 대부분 2차 이야기를 꺼내더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일부 여성들이 아예 성매매를 목적으로 애인 대행 시장에 대거 몰려든다는 이야기도 나돌고 있다. 실제 몇몇 역할 대행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원하는 건 다 해줘요’ ‘짜릿한 애인이 되어드릴게요’ 등의 제목으로 적극적인 ‘세일즈’를 하는 글이 심심찮게 발견된다.

이처럼 애인 대행이 본궤도를 이탈하는 데 대해 업계의 고심도 커지고 있다. 아직 역할 대행이라는 서비스 시장이 정착하지 못한 터에 자칫 부정적 이미지가 뿌리 박히는 빌미가 될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이래저래 애인 대행은 역할 대행 시장의 ‘핫이슈’가 되고 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