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김근태는 지지율 낮아 고민…당내 "고건도 역부족"평 솔솔

여권의 대선후보는 ‘히든카드’중에서 나온다? 이런 관측이 많아졌다. 말 그대로 현 시점에서 '숨겨진 그들'은 나락으로 추락한 여권에게는 환골탈태의 아이콘이다. 지난 2002 대선이 그랬다. 대선 1년 전까지만 해도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는 40%를 상회하는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민주당 내에선 이인제 고문의 대세론 몰이가 한창이었다. 당시 노무현 고문에게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1년 뒤 결국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선택했다.

여권 인사들에게 2002년 대선은 생각만 해도 짜릿한 뒤집기 승리의 기억이다. 그렇다면 내년 대선에도 반복될 수 있을까? 낙관론이 없지는 않다. 어찌됐건 대선은 '51 대 49'의 싸움이 된다고 보는 관측이다. 하지만 현 시점에선 비관론이 훨씬 많아 보인다. 선거의 기본인 두 가지 조건이 모두 늪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두 조건은 잠재력 있는 후보의 등장과 구도의 성공적 정비다. 후자에 해당하는 정계개편 논쟁은 답이 쉽게 나올 것 같지 않다. 후보 문제도 '판'이 어떻게 짜이느냐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어 아직까지 안갯속이다.

이 같은 총체적인 난맥에 가로막혀 가장 고통스러운 쪽은 정동영 전 의장과 김근태 의장이다. 이들은 아직까지도 당 지분을 양분하고 있는 대주주이자 유력한 대권주자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이들은 대국민 인지도 면에선 한나라당 후보들이나 고건 전 총리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나란히 통일부, 보건복지부 장관에 발탁돼 대권 수업을 받았을 뿐더러 올해 초 당으로 복귀한 뒤에는 의장 감투를 쓰고 당을 이끈 정치 경력도 화려하다.

충남 출신에 경제전문가 강점

하지만 그

게 딜레마가 됐다. 노무현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넘어서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당이 이 지경으로 몰락해 온 과정에서 어떠한 리더십도 보여주지 못한 멍에도 이들의 어깨를 짓누른다. 높은 인지도에 비해 지지율은 대선을 1년 앞둔 현 시점에도 기껏해야 1~2%를 맴돈다. 내년 초 이들이 '개인플레이'에 박차를 가한다고 해도 반등의 터닝 포인트가 생길지는 매우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낮은 지지율의 '성격'이 무엇보다 문제다. 당 의장 자리를 거치며 리더십 등의 측면에서 여론의 검증이 끝났다고 보는 시선이 많다.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유력한 후보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 박근혜 전 대표를 누를 수 있는 카드냐는 점에선 더더욱 비관적이다. 이에 따라 여권 내에선 정계개편의 한 고비를 넘는 2월 열린우리당 전당대회를 전후해 두 선두주자의 '백의종군' 선언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동영 전 의장, 김근태 의장과 더불어 범여권 대권후보의 트로이카로 분류돼 온 고건 전 총리 역시 어려운 국면을 넘고 있다.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17%를 전후한 지지율이 고착화되는 흐름이다. 지난 12월 18일 발표된 <미디어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통합신당이 출범할 경우 범여권 대통령 후보로는 고 전 총리가 적합하다는 응답이 49.0%였다. 하지만 통합신당 후보와 한나라당 후보가 대선에서 대결한다면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응답이 49.8%, 통합신당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응답이 30.2%로 나타났다.

요컨대 고 전 총리는 범여권 후보 가운데에선 절대강자이지만, 한나라당 후보의 맞수로는 역부족이라는 게 여론에 반영된 셈이다. 대선후보에겐 치명적인 '불가론'이 고 전 총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고 전 총리가 최근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접촉면을 넓혀가는 등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결국 오픈프라이머리의 '원 오브 뎀(one of them)'이 될 수밖에 없다”는 한 재선 의원의 전망이 여권 다수의 생각을 반영하는 말이다. 김근태 의장이 가을햇볕 전략을 비판하며 고 전 총리와의 연대 문제를 '논쟁의 대상'으로 규정한 것도 이런 분위기에서 나왔다. 민주당과 고 전 총리와의 합체 시점을 재촉하는 강경 신당파 그룹의 한 의원도 "고 전 총리는 정계개편 국면까지만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이처럼 여론에 노출된 범여권 후보들이 저마다 구조적, 개인적 한계를 안고 있는 탓에 '제3 후보론'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필연에 가깝다. 최근 가장 주목도가 높은 사람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다. 내년 대선 대진표가 영호남 구도로 짜여질 경우 범여권 호남 후보가 패할 수밖에 없다는 '호남 후보 필패론'은 오래된 이야기다. 정 전 총장이 대안으로 거론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충북 공주 출신이라는 점 때문이다. 게다가 경제가 내년 대선의 키워드가 된 이상 이명박 전 시장에 필적할 만한 '경제 대통령' 컨셉을 소화해 낼 수 있는 적임자라는 평가도 받는다.

강금실·한명숙·추미애 등 거론

정 전 총장과 함께 시민사회 진영의 거물인 박원순 변호사, 지난 5.31 서울시장 선거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은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각종 현안에 자기목소리를 뚜렷이 내며 소리 없이 보폭을 넓히고 있는 천정배 의원, 무난하게 국무총리 직을 수행하며 노 대통령과 대조적인 이미지를 구축해 온 한명숙 총리, 친노 진영의 '해결사'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민주당 소속의 추미애 전 의원 등도 '잠룡'군에 늘 거론된다.

이들 가운데 박 변호사와 강 전 장관은 여전히 본인의 거부 의사가 완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정배 의원, 한명숙 총리는 대권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는 관측이 많다. 유시민 장관과 추미애 전 의원은 정계개편을 통해 범여권의 질서가 어떻게 재편되느냐에 따라 거취와 위상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3후보'들이 공통적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는 자신의 잠재력이 대중들로부터 상품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느냐다. 이것에 실패하면 기존 대권 주자들을 위한 '들러리'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얘기다.


임경구 hifidelit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