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우리홈쇼핑 인수로 촉발… 새해에도 M&A 가속 예상이랜드·애경도 공격적 투자… 신세계는 중국 공략 박차

대규모 기업 인수합병(M&A) 열풍에 따른 격변의 한 해. 국내 유통업계의 2006년을 결산하자면 이렇게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만큼 지난해는 끊임없이 빅뉴스가 터져 나오면서 유통업계 관계자들조차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던 해였다.

시장이 포화 상태일 경우 유통 산업은 스스로 성장하기 어려운 속성을 지녔다. 본질적으로 1, 2차산업에서 상품을 만들면 이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매개 과정에서 부가가치를 얻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즉 1, 2차산업의 경기에 종속된 정도가 크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유통 업체가 외부 변수의 영향을 받지 않고 지속 성장하는 것은 결국 유통산업 내 경쟁자들의 몫을 얼마나 뺏어올 수 있는가 하는 역량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뜨겁게 분 M&A 바람은 단적인 증거다. 동종 업체를 M&A한다는 것은 하나의 경쟁자를 시장에서 몰아내는 동시에 유통망을 단숨에 확대하는 그야말로 일거양득의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많은 유통 전문가들은 새해에도 M&A가 유통업계의 최대 이슈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할인점 등 주요 업종 대부분의 시장 상황이 성숙기 내지는 포화 상태에 도달했다는 판단에서다.

이와 관련, 한 유통업 전문 애널리스트는 “롯데쇼핑과 신세계의 업계 1위 경쟁이 가열되면서 자금력을 확보한 두 업체에 의한 공격적 M&A 시도가 더 활발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국내 유통업계의 쌍벽인 롯데와 신세계가 더욱 치열한 영토 전쟁을 벌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와 함께 양대 유통 공룡을 추격하는 중견 업체들의 M&A도 상당한 변수로 떠오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중견들의 반란, 유통 지도 새로 써

롯데와 신세계는 각각 백화점 부문과 할인점 부문에서 월등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국내 유통업의 양대 강자다. 그렇지만 지난해 유통업계 뉴스의 중심에는 그들만 있었던 게 아니다. 패션 전문업체에서 유통업 분야로 사세를 확장해 나가고 있는 이랜드그룹과 생활용품 및 화학제품 등을 주력사업으로 하는 애경그룹이 잠재적 다크호스로 등장한 것이다.

이랜드는 지난해 4월 한국까르푸를 1조7,500억원(최종 인수가액은 1조4,800억원)에 전격 인수했다. 시장에서도 깜짝 놀랐다. 특히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할인점 업계에서는 매물로 나온 한국까르푸를 호시탐탐 노리던 터라 뜻밖의 상대에 일격을 당했다는 허탈감이 더욱 컸다.

반면 이랜드는 한국까르푸 인수를 통해 단숨에 할인점 업계 4위로 치고 올라갔다. 지난해 11월 새 단장을 마친 리뉴얼 1호점인 ‘홈에버’ 목동점 문을 연 이랜드는 백화점 수준의 패션, 리빙상품 매장을 갖춘 신개념의 대형마트라는 평가를 받았다. 32개 전체 점포에 대한 리뉴얼 작업은 올 상반기 중에 마칠 예정이다.

대대적 매장 개편에 따른 고객들의 호응도 컸다. 11월 중 리뉴얼 오픈한 목동, 면목, 가양, 중계 등 4개점의 한 달 영업상황을 분석한 결과 매출은 2배, 방문객 수는 2.5배나 늘어났다는 게 회사 측 집계다. 이랜드는 패션과 리빙상품의 경쟁력을 살려 홈에버 전체 매출 비중의 50% 선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이랜드 관계자는 “지난해가 씨를 뿌린 해였다면 올해는 본격적인 수확을 거두는 해가 될 것”이라며 홈에버에 대한 높은 기대를 나타냈다. 이랜드의 새해 매출 목표는 약 10조원. 이 가운데 7조원 정도를 홈에버, 2001아울렛, 뉴코아아울렛 등 유통 부문에서 책임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를 위해 올해 홈에버, 2001아울렛, 뉴코아가 각각 5개 점포를 추가 출점하고 대형슈퍼마켓(SSM)인 킴스클럽마트도 30개 점포를 새로 열어 시장 지배력을 키워나간다는 전략이다.

지난해 11월 삼성플라자 분당점이 애경으로 넘어간 것도 유통업계에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천하의 삼성이 유통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는 점도 뉴스였지만 업계 내 위상이 그리 높지 않은 애경이 5,000억원 이상을 쏟아 부어 M&A를 성사시켰다는 사실도 큰 관심을 모았다.

애경은 현재 애경백화점 구로점 및 수원점,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김포공항 면세점 등 4개 대형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2005년 그룹 전체 매출 1조8,000억원 중 유통부문 매출은 약 6,000억원. 삼성플라자 분당점 인수가 완료되면 2007년 매출은 1조2,0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그러나 유통업계에서는 애경의 삼성플라자 인수를 ‘찻잔 속의 태풍’ 정도로 평가 절하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워낙 선두권 업체들의 시장 장악력이 강한 데다 애경과 삼성플라자를 합쳐도 전체 외형이 위압적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경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게다가 커다란 청사진도 없이 천문학적인 거액을 투자할 리는 더더욱 없다. 사실 애경은 유통업을 그룹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설정해 놓은 상태다. 2010년까지 유통 부문의 볼륨을 키워 매출을 3조원까지 끌어올린다는 구체적 목표도 세웠다. 이 때문에 애경의 출사표가 간단치 않은 바람을 몰고 올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공룡들은 여전히 지각변동의 진원지

백화점 부문과 할인점 부문에서 각자 확고한 입지를 가진 롯데와 신세계는 유통업계 지각변동의 와중에도 주도권을 놓치지 않고 있다. 그래서인지 두 회사는 아래로부터의 도전에는 그다지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다만 최대 라이벌인 서로의 행보에 대해서는 늘 신경을 곤두세우며 예의주시한다. 아울러 국내 시장 평정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해외 진출에 가속도를 내는 것도 닮은 꼴이다.

지난해 국내 유통 시장에서 롯데와 신세계는 ‘빅딜’을 한 건씩 성사시키며 유통업 향배에 중요한 물꼬를 틀어쥐었다. 롯데는 까르푸와 월마트 인수전에서 번번이 물을 먹었지만 막판에 우리홈쇼핑을 건지면서 TV홈쇼핑이라는 신 사업 진출에 성공했다. 반면 신세계는 월마트 인수를 통해 할인점 사업의 우위를 더욱 확고하게 다졌다.

롯데는 지난 12월27일 방송위원회가 ‘최다액 출자자 변경’ 신청을 승인함에 따라 우리홈쇼핑 인수 절차를 모두 마무리했다. 이로써 롯데는 백화점, 할인점, 슈퍼마켓 등 기존 오프라인 사업과 함께 온라인 사업에서도 유통 채널을 완비함으로써 높은 시너지 효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홈쇼핑 업계는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그러잖아도 포화 상태에 이르러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 막강한 유통 노하우를 가진 롯데가 가세하면 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시장 전문가들도 “롯데의 TV홈쇼핑 참여로 기존 업체들의 리스크 요인이 커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입을 모은다.

롯데는 백화점 부문의 다점포 전략을 새해에도 이어간다. 부산 시내 최고급 상권에 들어설 부산 3호점 센텀시티점은 명품을 대거 입점시켜 최고급 백화점으로 꾸려갈 계획이다. 젊은 층을 노린 ‘영플라자’ 2호점과 3호점도 충북 청주와 대구에 각각 문을 연다. 국내 백화점 최초의 해외 진출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러시아 모스크바점이 새해 문을 열 예정이며 중국 베이징의 핵심 상권에도 중국 1호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할인점 업계서 3등에 처져 있는 롯데마트의 공격적 확장 전략도 눈길을 끈다. 새해에는 창립 이후 최대인 10~12개 정도의 신규 출점을 목표로 잡고 있어 연말이면 전국 점포 수는 최대 63개에 이를 전망이다. 또한 롯데는 신도시, 기업도시, 혁신도시 등에서 할인점 부지를 적극적으로 확보, 2010년까지 약 100개 점포 운영을 계획하고 있다.

신세계는 지난해 월마트코리아의 16개 점포를 인수함으로써 이마트 창립 13년 만에 100호점(국내 103개) 시대를 열었다. 이마트 100호점의 의미에 대해 회사 관계자는 “할인점 위주로 재편되고 있는 국내 유통 시장에서 최강자 위상을 확고히 하고 2, 3위 업체와의 격차를 더욱 벌렸다는 점”을 첫손가락에 꼽았다.

신세계는 올해도 국내외에 13개의 점포를 추가 출점할 계획이다. 특히 중국의 경우 지난해 상하이와 톈진에 3개 점포를 연 데 이어 새해에는 중국사업 10년을 맞아 4개 점포를 신규 개장할 예정. 이렇게 되면 중국 이마트는 현재 7개 점포에서 11개로 늘어난다. 신세계는 중국의 글로벌 소싱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해외 직(直)소싱을 확대한다는 전략도 갖고 있다.

할인점 사업의 압도적 우위를 바탕으로 백화점 사업 강화에도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구학서 부회장은 “백화점 사업 부문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누차 강조하기도 했다. 우선 신세계백화점 본관이 3월께 다시 문을 열면서 롯데와의 ‘명동대전’이 예고되고 있고 수도권 남부에도 3~4월께 죽전점을 열어 이 지역 최대 상권을 파고든다는 계획이다.

‘프리미엄 아울렛’이라는 새로운 업태의 국내 첫 도입을 추진하는 것도 주목된다. 신세계는 지난해 세계 아울렛 시장 1위 업체인 미국의 첼시 그룹과 ‘신세계 첼시’라는 합작법인 설립 계약을 맺었다. 명품 브랜드를 저렴하게 구입하고 각종 엔터테인먼트도 즐길 수 있다는 신개념의 프리미엄 아울렛이 어떤 바람을 몰고 올 지 유통업계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백화점과 홈쇼핑 업계의 강자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난해 격동 속에서 비교적 조용한 모습을 보였지만 나름대로 ‘정중동’의 행보를 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현대백화점의 주된 관심은 아산신도시 백화점 및 대형마트 사업, 청주 백화점 및 복합몰 사업을 차곡차곡 준비하는 데 쏠려 있다. 또 판교 도심복합쇼핑센터의 유통사업자로 선정되기 위한 준비 작업도 계속하고 있다.

대다수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대기업이 선도하고 중견기업들이 가세하는 ‘땅 따먹기’가 한동안 유통 산업의 트렌드로 지속될 것으로 내다본다. 현재의 치열한 경쟁 구도가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에 이를 때까지는 각자 영역을 확대하려는 싸움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유통 시장. 새해 벽두부터 변화무쌍한 기상도를 예고하고 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