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택배, 고객지원센터 가동, 상품권 발행, 미니 동물원, 홈페이지 구축…대형마트 진출에 맞서 '뉴마켓'으로 변신 몸부림… 일부선 다시 고객 발길 몰려

울산광역시 화봉시장, 전남 여수시 서시장주변시장, 경북 경산시 공설시장, 경남 마산시 산호시장, 제주 서귀포시 매일시장 등 지방 5개 재래시장은 2006년 잇달아 ‘무서운 이웃’을 맞아들였다. 재래시장 최대의 난적인 대형마트가 불과 1~2km 떨어진 곳에 문을 연 것이다.

대형마트가 들어선 지역 상권에서 재래시장이 맥을 못추는 것은 언제부턴가 불문가지가 됐다. 과연 이들 5개 시장에는 어떤 변화가 찾아왔을까. 중소기업청 시장경영지원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예상대로 매출액과 고객 수가 감소했으며 특히 몇몇 시장은 충격이 간단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수 서시장주변시장의 하루 평균 매출액과 고객 수는 대형마트 출점 이후 각각 27.7%, 22.3% 떨어졌는가 하면 경산 공설시장 역시 각각 26.4%, 25.0% 줄어들었다.

대형마트의 전방위 공세와 고객 이탈로 재래시장의 입지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시장 상인들은 가뜩이나 경기부진으로 장사가 안 되는 데다 그나마 남아 있는 손님도 대형마트로 옮겨간다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실제 전국 재래시장의 2005년 매출액은 전년 대비 8.7% 감소한 반면 대형마트는 같은 기간 오히려 12%나 증가해 뚜렷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특히 같은 기간 전국 소매업 총매출액이 5.2% 증가한 점을 감안하면 기존의 재래시장 고객을 대형마트가 야금야금 잠식해 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최근 들어 대형 유통업체가 지방 상권에 대형마트를 개장할 때마다 현지 상인들과의 갈등이 불거지는 일이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선 상인들이 생존권 침해를 주장하며 집단 반발 시위에 나서는 실정이다.

하지만 자유경쟁을 기본원리로 하는 시장경제 체제에서 약육강식은 어쩌면 필연적인 현상이다. 대형마트의 지방 상권 진출에 규제를 가하려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움직임에 대해 미봉책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상당수 유통 전문가들은 재래시장이 살아 남기 위해서는 대형마트에 맞설 수 있는 나름의 경쟁력을 갖추는 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말한다. 실제 고객들이 재래시장을 이탈하는 데는 편의시설 부족, 건물 노후화, 상거래 현대화 미흡 등 내부적인 원인도 크게 작용한다는 게 상인들의 솔직한 고백이다.

이런 가운데 시설 현대화와 영업방식 개선 등을 통해 부활의 기지개를 켜는 재래시장이 전국 곳곳에 등장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특히 이들 시장은 고객들을 위한 다양하고 독특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뉴마켓’으로 거듭나고 있다.

충북 청주시 청주육거리종합시장은 2,000여 개 점포로 이뤄진 대단위 재래시장. 이 시장은 2003년 시장 골목을 아케이드로 덮는 등 쾌적한 쇼핑 환경 조성을 위한 시설 현대화를 시작했다. 아울러 시장 바로 옆에는 자가용을 타고 오는 쇼핑객들의 편의를 위해 주차장도 마련했다.

과거에는 생각조차 못했던 고객 서비스 활동도 개시했다. 대형마트에서나 볼 수 있는 쇼핑카트를 비치하는가 하면 방송시설을 갖춰 세일점포 안내, 오늘의 상품 소개 등과 같은 각종 안내 방송을 내보내기 시작한 것.

상품권 발행도 빼놓을 수 없는 변화다. 청주 시내 14개 시장이 연합해 만든 청주시 재래시장 상품권은 가맹점 1,200여 곳를 확보해 사용의 편리성도 확보했다.

이처럼 시설 현대화와 서비스 개선 노력을 통해 손님들의 발걸음을 되돌려 놓은 청주육거리종합시장은 최근 하루 평균 이용객과 매출액이 4만여 명, 7억원대에 달할 만큼 성시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제주 서귀포시 서귀동에 위치한 서귀포아케이드시장은 소규모 골목형 시장에 불과하지만 장을 보러 나온 고객들에게 즐거움도 제공하는 특별한 시장으로 소문나 있다. 비결은 바로 색다른 볼거리와 놀거리에 있다.

우선 꿩, 오골계, 토끼 가족이 어울려 사는 ‘작은 동물원’이 눈길을 잡아 끈다. 도심 생활에 지친 고객들에게 잠시나마 자연을 느끼도록 한 배려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는 인라인스케이트장과 놀이터도 있다. 엄마 손을 잡고 나온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놀게 하기 위해서 마련했다. 이처럼 반짝이는 아이디어 덕분에 서귀포아케이드시장은 하루 방문객이 3,000여 명에 이를 만큼 명소로 자리잡았다.

물론 더욱 돋보이는 것은 쇼핑 편의를 위한 각종 서비스다. 무거운 장바구니를 고객 가정까지 배달해주는 택배 서비스, 언제든지 이용 가능한 쇼핑카트, 260여 대가 동시 주차할 수 있는 넓은 주차장 등은 대형마트가 부럽지 않다. 이밖에 옥돔, 한라봉, 망고 등 제주 특산품 및 농수산물에 원산지 및 상세정보를 표기해 고객 신뢰를 확보하는 것도 시선을 끌었다.

경기 수원시 팔달구의 지동시장은 1900년 무렵 화성 성곽 주변에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전통의 재래시장이다. 입구에는 수원의 대표적 문화재인 팔달문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는 등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시장 이미지가 눈에 띈다.

이 시장은 지난 2002년 관광안내소, 어린이 놀이방, 소비자보호센터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춘 ‘고객지원센터’를 건립해 고객 서비스 활동의 전진기지로 삼고 있다.

2005년에는 홈페이지(www.jdmarket.co.kr)를 개설해 점포별 상품정보 제공은 물론 고객들의 요구사항이나 불만에도 24시간 귀를 기울이는 등 온라인 서비스 체제도 구축했다. 아울러 재래시장 최초로 콜센터를 가동한 것도 눈에 띄는 경영 혁신 활동이다. 이곳에선 고객들의 각종 문의에 대해 신속히 대응하며 서비스의 질을 한층 높이고 있다.

지동시장은 각종 이벤트나 홍보활동에도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복미인선발대회 개최나 PDP TV를 통한 홍보 영상물 방영 등을 통해 고객에게 먼저 다가가고 있는 것.

이처럼 다채로운 서비스 개선 노력 끝에 적지 않은 결실도 맺고 있다. 실제로 하루 평균 매출액은 2004년 3,800만원에서 2005년 4,700만원으로 23.7% 늘었으며, 같은 기간 하루 평균 방문객도 1,500여 명에서 1,750여 명으로 증가했다.

근래 재기에 성공하는 재래시장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 낙후된 시설을 현대화했고 첨단 마케팅 기법을 도입했으며 상인들 스스로 뭔가 해보겠다는 열의로 똘똘 뭉쳐 있다. 한마디로 시대적 변화를 그저 넋 놓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발상을 전환해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이용한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시장경영지원센터 이민곤 기획실장은 “재래시장이 살아나려면 시설 현대화, 경영기법 혁신, 상인들의 의식개선 등 3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한다”며 “최근 많은 시장 상인들이 오랜 관행을 버리고 새로운 경영방식을 습득하고 있어 재래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골리앗들이 벌이는 유통 전쟁의 격랑에 휘말려 좌초 위기에 몰렸던 재래시장. 그들의 생존전략은 다윗의 기민함과 지혜로 무장하는 것이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