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대 뺨치는 파워 웹버족 인터뷰포토샵, 엑셀 사용, 홈피 제작 등도 척척… 실버넷 기자로도 맹활약

“이메일? 에이 그건 기본으로 다루지. 한글, 포토샵, 파워포인트 이런 것도 벌써 다 배웠는걸.”

인터넷을 능숙하게 활용하는 등 정보화사회에 능동적으로 적응한 노년층을 일컫는 ‘웹버(Web+Silver)족’임을 알고 만난 자리였지만 변노수(66), 황순자(여ㆍ67) 두 어르신의 정보화 수준은 기자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들은 웬만한 젊은이들을 뺨칠 만큼 다양한 프로그램을 익혔고 또한 활용 중이었다.

변 씨와 황 씨가 컴퓨터, 인터넷을 처음 배운 것은 각각 2001년, 2004년이다. 공통점은 둘 다 외국에 사는 자녀, 손주들과 소식을 주고받기 위해서 사이버 세상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점이다.

막상 인터넷을 익히고 나니 그렇게 편리할 수가 없었다. 연락 수단도 처음에는 이메일이었지만 이후 메신저, 화상대화 순으로 차츰 업그레이드해 나갔다. 화상으로 통화하니 마치 자녀들이 옆에 있는 듯 실감이 나고 재미 있었다. 변 씨는 “해보니까 별로 어려운 것도 없던데”라며 웃었다.

황 씨도 인터넷 예찬론을 펼친다. “옛날 같으면 편지 쓰고 우체국 가고 참 번거로웠는데 지금은 인터넷 덕분에 얼마나 편해졌는지 몰라. 얼마 전에는 또래 지인에게 이메일 연하장을 받았는데 어찌나 근사하게 만들었던지. 눈이 내리는 동산에 사슴이 뛰어가고…. 젊은 사람들도 그렇게 만들지는 못할 걸.”

이처럼 변 씨와 황 씨가 젊은 세대 못지않게 인터넷에 익숙하게 된 데는 ‘실버넷 운동본부’의 도움이 컸다. 실버넷 운동본부는 지식정보사회에서 소외돼 가는 노년층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취지로 뭉친 대학 교수들이 2000년 발족시킨 노인 대상 무료 정보화교육 단체. 두 사람은 이곳을 통해 웹버족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정보화라는 신세계를 맛본 두 사람의 학습에 대한 열정은 더 뜨겁게 타올랐다. 특히 변 씨는 단순히 인터넷을 사용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포토샵(사진 편집 프로그램), HTML(웹문서 작성용 프로그래밍 언어), 드림위버(홈페이지 제작 프로그램) 등을 공부해 직접 개인 홈페이지도 구축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한글, 파워포인트, 엑셀, MS워드 같은 웬만한 사무용 프로그램의 사용법도 모두 섭렵했다. 여기에도 만족 못해 그는 조만간 폴리텍대학(옛 기능대학)에서 웹진 제작 방법을 공부할 작정이다.

변 씨보다 몇 해 늦게 입문하기는 했지만 황 씨의 정보화 수준 역시 나이가 무색할 정도다. 한번은 한글 프로그램을 이용해 자신이 나가는 교회의 재무 관련 보고서를 만들어 제출, 교회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컴도사’가 된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그들의 답은 평범한 진리를 담고 있다. “노인들은 뭐든 배우고 돌아서면 쉽사리 잊어버리기 때문에 습관처럼 사용하는 게 중요해.”(변 씨)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공부지. 노인들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계속 공부해야 해. 머리를 계속 쓰면 치매 걸릴 일도 없고 말이지.”(황 씨) 결국 인터넷이나 컴퓨터를 젊은 사람들처럼 생활화한 것이 비결 아닌 비결인 셈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주변을 살펴 보면 아쉬움이 들 때가 많단다. “(정보화가) 이렇게 좋은 걸 모르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 나이에 그런 것 배워서 뭐해” 같은 부정적 태도가 정보화 학습에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한다.

바로 그 때문에 변 씨는 정보화의 세례를 아직 받지 못한 노인들에게 인터넷과 컴퓨터의 활용 가치를 알려주고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IT 전도사’로 맹렬히 활동하고 있다. 지역사회 노인복지관이나 경로당에서 특강 요청이 들어오면 언제나 만사 제쳐놓고 달려간다.

뿐만 아니라 실버 세대의 의사표현 매체이자 커뮤니케이션 창구로 출범한 온라인 신문 ‘실버넷 뉴스’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실버넷 뉴스는 실버넷 운동본부에서 정보화 교육을 받은 노인들이 자신들의 지적 자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뜻에서 자발적으로 모여 운영해 나가는 비영리 매체다. 이곳에서 변 씨는 편집국장으로, 황 씨는 교육문화 담당부장으로 취재 현장을 누비고 있다.

실버넷 뉴스와 관련, 변 씨는 “노인들의 고민이나 생활상, 노인 복지 같은 공익적 이슈를 많이 다루고 있는데 젊은 사람들도 와서 보면 노인들의 입장을 좀 더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단순한 노인 전문 사이트가 아닌 ‘세대공감’ 사이트로 정립시켜 나갈 뜻을 밝혔다.

두 사람은 경륜 있는 어른으로서 젊은 세대의 인터넷 문화에 대해서도 뼈 있는 지적을 빼놓지 않았다.

“10대 아이들을 보면 게임이나 채팅을 과도하게 사용하더라. 인터넷은 장난감이나 오락기가 아니야. 학생들의 본분에 맞게 공부나 자료 검색 등에 활용했으면 좋겠어.”(황 씨) “젊은 사람들의 악성 댓글 문화도 걱정스러운 현상이야. 장난 삼아 쓴 댓글에 남들이 겪을 고통을 생각한다면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댓글 문화는 반드시 정화해 나가야 해.”(변 씨)

이런 몇 가지 문제들만 개선한다면 인터넷은 분명 인류에게 큰 축복임에 틀림없다. 특히 온라인 세상을 안다는 것은 실버 세대에게는 새로운 세상을 얻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두 사람의 생각이다.

“젊은 세대와 같이 느끼고, 보고, 간다고 생각하니 살 맛이 나더라. 더구나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는데 노인들도 따라가야 할 것 아닌가.” 컴퓨터를 애써 외면하는 실버 세대에게 앞서간 두 웹버 전도사가 진심으로 건네는 ‘정보화의 복음’이다.

'실버넷 뉴스'는
인터넷 신문… 노인 기자 51명이 기사 자원봉사

실버넷 뉴스(www.silvernews.or.kr)는 실버들이 만드는 실버를 위한 인터넷 신문으로 비정치성, 비상업성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2002년 처음 배출된 1기 기자부터 4기 기자까지 모두 51명의 ‘실버넷 기자’가 자원봉사 활동으로 신문을 제작하고 있다.

실버넷 기자는 서울 및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 고르게 퍼져 온라인으로 기사를 송고하고 있으며 미국 캔사스주에서도 1명이 활동 중이다. 실버넷 뉴스에는 국내 노인들뿐만 아니라 미국 등지의 재외 교포들도 많이 방문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실버넷 뉴스는 5기 기자단을 모집하고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사용할 줄 아는 만 55세 이상의 남녀(재외 한국인도 가능)면 누구나 지원 가능하다. 문의: 실버넷 뉴스 사무국 02-539-9104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