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가치 살린 리모델링으로 파격 변신 "경쟁력 큰 건축예술"

한옥의 변신이 다채롭다. 19세기적 주거 공간에 머물지 않고 생활 속으로 성큼 들어와 친슥함을 더한다. 얌전한 변화에서 파격적인 변신까지 한옥의 진화는 끝을 모른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의 북촌 한옥마을에 자리한 ‘e-믿음치과’는 한옥의 무한변신을 보여준다. 2005년 가을 문을 연 국내 첫 한옥 치과다. 한때 드라마 '겨울연가'의 배경인 중앙고등학교가 근처에 있어 일본인 관광객의 필수 코스가 됐다.

나무로 된 자동문이 열리면 깔끔하게 리모델링한 한옥과 치과 시설이 조화롭게 보인다. 아기자기한 작은 마당과 툭 트인 방들에선 병원 특유의 공포감을 찾아볼 수 없다. 건너편 방은 환자 대기실로 녹차를 마시며 담소하는 모습이 인사동 전통 찻집을 떠올리게 한다.

치과의 김영애 실장은 “처음 신기해하다 치료를 받고 갈 때는 편안하다고 말한다”면서 “중년층이 특히 많이 찾는다”고 했다. 신경치료를 받은 김태일(73)씨는 “누워서 천정 서까래를 보니 예전에 살던 집에 있는 것 같고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종합병원에 있다 이곳으로 왔다는 치과의사 김은경(28)씨는 "환자가 편안해야 치료도 수월하다“면서 “소나무 기둥에서 풍기는 솔 냄새와 숨 쉬는 흙벽이 치과 특유의 냄새를 없애 좋다"고 말했다.

한옥 치과의 설립자는 김영환(52) 원장이다. 김대중 정부 때 과학기술부 장관과 15ㆍ16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 원장은 “2004년 영국으로 떠나났다가 방문연구자로 갔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1200년대에 지은 대학 캠퍼스를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을 보고 전통의 가치, 고전의 파워와 첨단, 예술, 과학 등이 부딪히며 소통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면서 한옥 치과 개원의 배경을 설명했다.

김 원장은 “전통 문화와 첨단진료를 결합하여 정신적 편안함 속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치과뿐 아니라 정신과와 소아과.산부인과도 한옥과 궁합이 잘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겨울철에 병원을 찾는 외국인 환자들이 가장 놀라는 건 '온돌'이라며 “서양의 대기 난방과 비교해 온돌의 경쟁력은 세계적”이라고 했다.

믿음치과에서 조금 내려오면 맞은편에 작은 뜨락과 함께 전통 혼수품을 취급하는 한옥 ‘에빈가(禮彬家)’가 보인다. 20년간 이 분야에서 일해온 이희숙(47) 대표는 “1년 반 전에 양옥에서 한옥으로 옮겨 왔는데 마음 가짐이 달라지고 손님들도 한옥에서 대화를 하니 더 신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옥 대문을 열고 손님을 배웅하는 것에서부터 행동 하나하나가 정중하게 돼 상대방도 좋은 인상을 갖게 된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사소한 댓님부터 예의범절까지 의뢰인에게 전통적인 것을 요구해도 순순히 응해준다는 것.

경북궁 돌담길 맞은편 소격동 한옥 ‘효재(效齋)’ 도 주로 혼수품을 거래한다. 한복 디자이너 이효재(48) 대표는 2000년에 이 한옥 살림집을 구입해 개성있게 단장했다. 시멘트 마당은 부직포를 깔고 마사토를 얹은 후 야생화를 심었고 작업실과 내실을 광목과 소품들로 ‘가락지방’‘차실’ 등으로 꾸몄다.

20년 넘게 이 분야서 일을 해온 이 대표는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것을 추구,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한옥이 흘과 돌, 나무 등 지연으로 만들어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듯이 내 작품에도 자연주의, 자유가 깃들어 있다”고 말했다.

한옥 레스토랑은 여느 레스토랑의 중후하고 산뜻한 분위기와도 잘 어울려 색다른 멋으로 고객을 이끈다. 서울 효자동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카델루포(CA’DEL LUPO)‘는 원래 갤러리였던 건물을 기본은 그대로 두고 인테리어만 바꿨다.

방문객들이 가장 호평하는 한옥이 감싸고 있는 앞 마당 작은 정원. 이빛나(34) 대표는 “봄이면 허브를 가득 심어 요리에 넣기도 하는데 한옥의 은은한 정치와도 잘 어우러진다”고 한다.

카델루포는 내외국인 단골이 많은데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도 그 중 한 사람. 이 대표는 “한 전 장관은 독립된 룸보다는 공개된 넓은 홍에서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신다”며 “한옥이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매개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키델루포에서 조금 떨어진 레써피(Recipe)’는 18평 짜리 미니 한옥을 개조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주인 신경숙(37)씨는 레스토랑을 준비하던 2003년 우연히 한옥에 끌려 매입, 꼬박 1년을 현재의 아늑한 공간으로 개조했다. 요리하는 모습이 훤히 보이는 주방이 독특하고 홀안의 대들보가 안정감을 주는 가운데 창밖 처마도 운치가 있다.

서울 가회동 맏음치과에서 멀지않은 ‘오키친’은 원래 옷가게로 쓰였던 2층 한옥을 레스토랑으로 꾸몄다. 화려하거나 고상하기보다 자연스러운 게 두드러진다.

미국 뉴욕에서 요리사로 활동하다 2001년에 귀국한 푸드 스타일리스트이자 주인인 오정미(45)씨는 “인테리어를 직접 했다”면서 “음식점은 손님에게 편안함을 주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한옥의 대들보와 서까래가 갈라지고 흠이 있었지만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냈다”고 말했다. “

경복궁 서편의 ‘갤러리 현대’ 안쪽에 자리잡은 ‘두가현’은 한옥 와인바로 널리 알려졌다. 광화문에서 삼청동 길로 쭉 들어가면 왼쪽에 예쁘장한 한옥 일식집 '와노(和の)'도 눈에 띈다.

어려서부터 한옥에서 살았다는 심정은(39) 사장은 “'일식집=일본풍'이란 고정 관념을 버렸을 뿐”이라고 한다. 심 사장은 일본 대학에서 불교미술사를 전공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전통 문화에서 '차분함'이란 공통분모를 찾았다면서 “작업을 하면서 한옥의 유연성'을 새삼 깨달았다. 한옥은 숨 쉬며 살아 있어 진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창성동레 ??는 건축가 서승모(35)씨의 한옥 사무실은 독특하다. 원룸에다 내부를 개방적으로 처리해 방 사이에 문이 없고 마당을 실내 높이까지 올렸다. 서씨는 “건축은 에술인데 콘크리트 벽 속에선 오히려 작업 능률이 떨어질 수 있다”면서 “사람 사는 냄새와 자연이 느껴지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고 한옥을 택한 이유를 설명한다.

서울 혜화동 한옥 사무소도 이채롭다. 본래 개인 한옥집이던 것을 종로구에서 매입, 3년여의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지난해 11월 혜화동 우암길로 옮긴 ‘전국 최초 한옥 동사무소’다. 직원들은 매달 하루 한복을 입고 근무해 방문객들에게 신선한 인상과 함께 서울의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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