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그만’이라는 필명을 가진 블로거가 자신의 블로그에 '말하기 싫게 만드는 말 10'이라는 제목의 글 하나를 올렸다. 그런데 또 다른 블로거가 이 글이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해서인지 그의 블로그에도 그대로 갖다 썼다. 굳이 원래 필자를 밝히거나 ‘펌’(퍼온 글)이라는 표시는 달지 않았다. 예상대로 여기까지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국내 대표적인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도 초기화면에 이 블로그 포스트를 이야기 코너에 올렸다. 물론 원래 필자의 글이 아닌 퍼온 글을 보고 올린 것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글을 읽어본 이들이 ‘원래 필자의 이름대로 나가지 않았다’며 항의를 벌인 것. 댓글과 게시판에는 ‘대표 포털 사이트가 정확한 필자 확인도 안 해 보나?’, ‘출처를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는 등 원성이 자자했다.

결국 확인 과정을 거쳐 수정되긴 했지만 이 사건은 누리꾼들 사이에 블로그와 블로거(블로그 작성자)의 파급력이 얼마나 크고 빠른가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문제의 발견부터 여론화 과정 전반을 대다수 블로거들이 집중적으로 주도했다는 점에서 이는 블로거들의 영향력이 현실에까지 미친 사례로 평가받는다. 단순히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난 작은 해프닝으로 볼 수 없는, 시대 변화의 흐름을 그대로 보여준다.

요즘 인터넷 세상에서는 파워 블로거들의 활약이 날로 위력을 더하고 있다. 블로그라는 ‘창문’을 통해 자신만이 가진 지식이나 정보에 그치지 않고 고유의, 혹은 탁월한 시각과 견해를 내비치는 이들은 ‘블로그의 고수’들이다.

블로그 세상, 즉 블로그스피어(혹은 블로고스피어ㆍBlogosphere)에서 ‘자신의 세상’을 펼쳐 나가고 있는 국내 파워 블로거들은 누구일까? 그리고 이들은 어떤 활약을 펼치고 있을까? 또 어떤 사람들이 파워 블로거가 되는 것일까?

지난 연말 블로그 전문 포털 사이트인 올블로그(http://www.allblog.net)는 한 해 동안 양질의 글을 작성해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 블로거 100명을 선정, 발표했다. 선정된 100개의 글 중에서는 정보통신(IT) 관련 글이 약 40%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올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그칵테일의 박영욱 사장은 “아무래도 블로그 자체가 IT 기술에 의해 탄생된 것이니만큼 초창기 블로그스피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이들 중 IT 분야 출신이 많은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해석한다. 특히 IT 분야에서 블로그가 효율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2006 TOP 100’ 블로거 중 IT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ENTClic(ENTClic@blog)은 한승훈 씨의 블로그 필명이다. 경기 남양주 덕소에서 ‘한승훈 이비인후과’ 원장으로 일하는 한 씨는 의사이면서도 IT를 무대로 한 블로그스피어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제가 하는 일(의사)이랑 똑같은 것을 하면 재미 없잖아요. 원래 관심이 많았던 IT분야의 흐름에 대해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실을 블로그에 올리게 됐죠.” 지난해 8월 본격적으로 블로그를 시작한 그는 거의 매일 한 건씩 올리다시피 해 벌써 270여 건을 넘어섰다. 빠진 날이 있을 경우 휴일에 여러 건을 몰아 칠 정도로 열중, 결국 하루 한 시간 정도는 블로그에 투자하는 셈이라고 한다.

주로 애플사에서 내놓는 맥킨토시 컴퓨터 사용자인 한 씨는 맥(Mac)에 대한 사용 정보를 주로 싣지만 구글이나 웹 등 해외 인터넷 정보도 발빠르게 실어 나르고 있다.

국내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뉴스들도 많이 전하다보니 여러 언론 매체에서 필자 의뢰가 폭주할 정도다. 하지만 처음부터 ‘기고’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블로그 포스트를 그대로 옮겨 싣는 정도만 허락하고 있다. “개인적 만족을 위해서라기보다는 하면서 배우는 입장”이라는 것이 한 씨가 블로그에 열심인 이유다.

그렇다고 블로그가 여전히 IT에만 머물고 있지는 않다. 차츰차츰 시사 문제는 물론, 다방면으로 외연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 상ㆍ하반기에 이어 연말 TOP 100 블로거 및 포스트 선정 작업에 참여한 ㈜블로그칵테일의 유정원 부사장은 “지난해 연말 결산 TOP 100 블로거 중에는 이전의 두 차례 선정 때보다 정치, 경제, 문화 등 일상생활 관련 블로거들이 많이 늘어난 것이 크게 달라진 점”이라고 소개한다.

‘소금이’란 필명으로 블로그 ‘소금이의 행복한 하루’(http://loose.cafe24.com/)를 연재하고 있는 박현 씨는 애니메이션 분야의 파워 블로거로 꼽힌다. 애니메이션을 전문적으로 다루지만 실제 그는 연세대 전산학과 4년에 재학중인 학생이다.

워낙 애니메이션을 좋아해 블로그를 시작했다는 그는 해외 애니메이션 분야의 재미있는 소식을 재빠르게 전하고 있다. 물론 전공이 전공이니 만큼 IT 리소싱 분야 등 웹과 관련한 소식도 함께 다룬다.

특히 그는 일반 포털 사이트의 서비스형 블로그가 아닌 설치형 블로그인 ‘태터툴즈’를 사용하고 있다. ‘꽉 쫘여진 틀에 맞춘 블로그가 아닌 직접 디자인도 하고 틀을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블로그가 세상에 던져져 돌아 오는 피드백도 경험해 봤다. 지난해 그는 한 만화 작품에 대해 평을 블로그에 올렸는데 이를 읽은 작가로부터 ‘내용이 부정적이다’며 삭제를 요청받은 것. 서로 진정서까지 오고 가는 지경까지 갔지만 결국 그의 ‘개인적인 생각의 자유’ 주장이 받아들여져 문제는 해결됐다.

이때 블로그스피어에서 다른 블로거들이 그를 지지해주고 성원을 보내준 ‘연합 의식’이 큰 힘이 됐다고 그는 말한다. “블로그 같은 1인 미디어는 ‘생각이 하나의 생각으로 존중받고 부각될 수 있다’는데 의미를 둡니다”. 블로그에 대한 그의 소신이다.

정치 분야 파워블로거 ‘가는 이’씨(http://wnetwork.hani.co.kr/gksrn)는 정치 또는 사회, 그리고 언론개혁 문제를 지속된 주제로 다루지만 대부분 사회전반을 다루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가입형 블로그를 통해 1년 정도 운영해오고 있는데 하루 1,000명 정도의 방문객을 유지하고 있다.

자신의 글이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파급력은 미미한 수준이라는 것이 그의 자평이다. 하지만 추천 수가 많았던 글은 파급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30대의 보통 남자라고만 밝히는 그는 “온과 오프를 구별, 번개도 안하고 오직 인터넷으로만 소통한다”며 자신을 노출시키지는 않고 있다.

문화 분야 파워 블로거 중에서는 arborday의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블로그’(http://arborday.egloos.com/) 인기가 높다.

어릴 때부터 공포 영화의 재미에 빠져 들었다는 그는 지금 학생 신분. 공포를 좋아하는 이유로 “일례로 기득권층이 좌지우지하는 세상을 한 마리의 괴물로 볼 때 이 괴물을 직접적으로 공격하고 표현해 내는 방식이고 그것이 맘에 들기 때문”이라고 그는 답한다.

그는 2004년 11월부터 블로그를 시작, 벌써 600여 개의 글을 올렸다. 대부분 공포 영화에 대한 낙서나 감상이고 다른 영화 얘기도 가볍게 터치돼 있다지만 굳이 ‘영화 평’이라고 그는 말하지 않는다.

“블로그가 재미있어 하고 있다”는 그는 하지만 블로그의 피드백은 “느리고 심도가 떨어진다”고 불평한다. 서로 영화를 함께 보고 느낌이 새록새록한 가운데 서로 대화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블로그를 쓸 때만은 그런 느낌과 감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왜 공포를 좋아하냐고 사람들이 물어요. 이상한 사람 아니냐고 ‘삐딱하게’ 보는 경우도 많아요.” 그는 ‘공부하는 학생이 별걸 다 한다’는 소리 듣는 것을 싫어한다. 공포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핍박을 받는다’는 그는 얼굴이나 이름을 굳이 내세우지 않는다.

“실제 여자 친구가 옆에서 칼 들고 요리만 해도 겁이 난다(?)”는 그는 “공포 코드가 실제 현실을 담고 있지만 거짓이기 때문에 좋아한다”고 말한다. “공포라는 것은 안전한 방식으로 두려움을 겪게 하는 백신”이라는 일본 영화감독의 얘기에 그는 절대 공감한다.

블로그 사용자가 홈페이지 추월

블로그가 인터넷에서 힘을 얻기 전 절대 강자는 홈페이지였다. 미니 홈페이지 공간을 제공했던 ‘싸이월드’가 붐을 일으킨 것도 불과 몇 년 전이다. 하지만 자신과 자기의 의견을 소개하는 데 더 강점을 지닌 블로그가 대세가 되면서 홈페이지 사용자들이 블로그로 넘어가고 있는 것 또한 최근의 인터넷 흐름이다. 지난해부터는 블로그 사용자가 홈피를 추월한 것으로도 집계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과도기일까? 홍보대행사 프레인을 운영하고 있는 지주회사인 PCG의 여준영 대표( http://blog.joins.com/yjyljy)는 홍보 분야의 파워 블로거로 거론된다. 그러면서도 그는 홈페이지를 여전히 적극적으로 관리, 활용하고 있다. 적극적인 블로거 대부분이 홈피보다는 블로그에 비중을 두는 것에 비해서 그는 조금 보수적이다.

여 대표는 회사 경영과 홍보 분야는 물론 일상의 느낌을 담은 에세이 등도 블로그에 올린다. ‘신문로 이야기’, ‘사랑과 성공’, ‘집에서 하는 요리’ 등 대여섯 가지 섹션으로 나눠놨는데 포스트마다 대부분 글 한 토막에 사진 한두 장, 그리고 가끔은 음악까지 깔려 있다.

“직원들과 점심 식사를 하다가 얘기를 듣고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하고 느낀 점을 꼭 말해 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는 그는 “블로그는 개인이 어떤 가치관과 지식 수준을 가지고 있는지 내보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줘 매력을 느낀다”고 말한다. 블로그를 통해 그 사람이 신뢰가 가고 일을 잘 하는 사람인지까지도 알 수 있다는 것.

처음 블로그에 거는 기대는 소박했지만 여 대표가 얻은 반향은 컸다. “제 블로그를 보고 입사하고 싶다는 직원도 있었습니다. 함께 일해 보자는 클라이언트도 나타났죠.” 미처 예상하지 못한 사이 내가 모르는 사람들 중에서도 나를 알아 주는 사람이 생겨났다며 그는 놀라워한다.

결과적으로 블로그가 비즈니스 업무에 도움을 주긴 하지만 목적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보여주고 싶은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때로는 직원 등 특정인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도 일반화해 쓰기도 한다. 하루 평균 한 개 꼴로 벌써 260여 개나 된다. 기업의 수장이라 시간이 없지 않냐는 물음에는 “마음 편하게 먹고 쓰면 힘들게 없다”며 “일기 쓰는 게 어렵지 않은 것과 같다”고 대답한다. 블로그 글 하나에 1만 명 이상이 찾아와 읽어 본 경우도 있을 만큼 그는 블로그의 파급력에 새삼 혀를 내두른다.

그와 동시에 그는 홈페이지 관리도 철저하다. 2001년 처음 만들었는데 블로그와 달리 일상적인 콘텐츠를 주로 싣는다. 주로 아는 방문자들이 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루 400~500명이나 된다. “표현이나 파급력 등 여러 면에서 애초부터 블로그가 홈피보다 먼저 보급됐으면 홈피를 안 쓰고 블로그만을 썼겠죠.” 블로그에 대한 그의 사랑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블로그의 영역은 국경도 넘어선다. 해외에서 활약하는 블로거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 살고 있는 파워블로거 '하테나'(http://www.hatena.co.kr/) 씨는 무역회사 직원이다. 본명은 이왕재.

일본 인터넷 광고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밑천이 돼 그는 일본의 인터넷 비즈니스 동향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전하고 있다. 일어에 능통하고 일본 사정에 밝아 언제 어디서 어떤 정보를 구하느냐는 싸움에서 그는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셈.

“하테나는 제가 좋아하는 일본 벤처회사 이름에서 딴 필명이에요. 이름을 보고 한 한국 사업가가 연락해서 함께 일본 회사를 찾아가기까지 했습니다.” 예전엔 개인적으로 가보지 못했지만 그가 블로그 운영을 통해 이룬 조그만 성과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블로그는 다른 데서 퍼 온 글이 많은 데 비해 일본은 자기 생각이나 의견을 적은 글이 더 많다”는 그는 블로그를 발판삼아 인터넷 사업과 일본에서 IT관련 전문대학 설립까지도 고려하고 있다.

음성으로 전달하는 블로그도 운영

블로그 하면 대부분 ‘텍스트’, 즉 글을 연상한다. 그럼 말로 하면 어떨까? IT 인터넷 분야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라디오키즈(http://neoearly.net/)는 ‘음성으로 전달하는 블로그까지 운영해 주목을 받고 있다. 메시지를 글만이 아닌 MP3파일로 만들어 IPOD로 재생해 들을 수 있도록 자신의 목소리로 전달하는 팟캐스팅(Podcasting)을 하고 있는 것.

다음커뮤니케이션 직원인 그는 지난해 5월부터 지금까지 800여 건에 달할 만큼 많은 글을 올리고 있다. 목소리를 통하면 개인성이 더 발현될 것이라고 판단, 일부는 음성으로 담아냈다.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 텍스트가 전부가 아니란 생각에서다. “앞으로는 동영상으로도 전달하면 더 좋지 않을까 고려 중입니다.”

그의 글을 읽는 독자가 많은 이유에 대해서는 겸손하다. “매일 꾸준히 포스팅(글을 올리는 것)한 덕분이죠. 또 다른 블로거들과도 꾸준히 의견을 나누고 의사소통하는 것도 독자가 늘어나게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그 자신 또한 다른 블로그를 찾아가 글을 읽고 의견을 건네는 데 열심이다.

IT 분야가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루는 분야가 아닌 데도 그의 블로그가 큰 반향을 일으킨 데는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혼자서만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보다 힘을 합치면 더 나은 블로그가 될 수도 있다. 역시 문화 분야 파워 블로거로 선정된 서찬휘 씨의 만(Mahnㆍhttp://mahn.co.kr/)이 그 경우다. 만화 칼럼니스트인 서 씨가 운영하는 이 주소는 실상은 하나의 웹사이트. 하지만 블로그적인 요소를 두루 갖춰 운영하다 보니 블로그처럼 활용되고 있다.

“일반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에서 만화에 대해 다루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다루더라도 단편적이고 편향돼 있죠.” 그가 만화 전문 블로그를 개설하게 된 이유다. 만화가 ‘애들이 보는 것’이란 인식을 깨고 싶은 것도 또 다른 목적이다. 그래서 그는 만화계 얘기와 소식들을 재미나게 담아내고 있다.

물론 그 자신만이 아닌 다른 전문가와 종사자들 모두가 함께 블로그에 참여하고 있다. 개인이 아닌 ‘팀 블로그’인 셈이다. “블로그를 통해 여러 생각과 소식들이 더 많이 알려지고 퍼지게 된다는 점은 고무적이다”고 그는 말한다.

앞으로 더 넓고 많은 분야에서 전문성으로 무장한 파워 블로거들의 맹활약이 기대된다.


박원식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