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과점 그늘에서 담합싹이 자란다부의 집중에 따른 사회 양극화 부추겨

어떤 작은 동네에 슈퍼마켓이 다섯 곳, 세탁소가 두 곳, 약국이 한 곳 있다고 치자. 이 동네의 슈퍼마켓 주인들은 한 명의 주민이라도 더 단골 고객으로 잡기 위해 늘 할인 경쟁을 벌이는가 하면 수시로 경품을 주는 사은 행사를 갖는다. 이와는 달리 세탁소 주인들은 서로 적당히 눈치를 보거나 때로는 타협을 해서 비슷한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면 동네에 단 하나뿐인 약국은 어떨까. 이곳 주인은 다른 동네 약국의 가격을 잘 아는 주민들로부터 욕을 먹더라도 다소 높은 가격으로 약을 팔아 자신만의 잇속을 챙긴다.

이 가상의 동네에서 슈퍼마켓은 경쟁시장, 세탁소는 과점(寡占)시장, 약국은 독점(獨占)시장의 모습을 각각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동네 주민들은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살 때는 선택의 폭도 넓을 뿐더러 가격과 서비스의 혜택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반면 세탁소나 약국을 이용할 때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필요 이상의 값을 지불하는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 사례는 자유경쟁을 작동원리로 삼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독점과 과점이 어떤 폐단을 가져오는지 간단하면서도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경쟁시장에서는 가격이 수요 공급에 의해 합리적으로 결정되지만 독점시장에서는 독점기업의 이윤극대화 논리에 따라 가격이 자의적으로 결정된다. 그 결과 독점시장에서는 가격은 오르지만 생산량은 줄어드는 달갑지 않은 현상이 초래되는데 이는 독점기업 입장에서는 독점가격에 따라 원하는 이윤이 확보되기 때문에 굳이 많이 생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독점시장은 소비자 후생에 손해를 끼칠 뿐 아니라 나아가 사회 전체의 후생을 감소시키는 폐해를 낳게 된다. 과점시장 역시 공급자들이 가격 담합 등을 하게 되면 사실상 독점시장과 같은 구조를 띠게 된다. 바로 이 같은 폐단 때문에 대부분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독과점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독과점이 결코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경쟁이 인간의 본능이듯이 독과점에 대한 욕구 역시 인간의 본능에 속한다.

때문에 경쟁을 피해 손쉽게 이윤 확보를 할 수 있다면 기업가 입장에서는 그 유혹을 떨쳐내기 어려운 법이다. 그런 까닭에 경쟁시장이 독과점화(化)하는 현상은 현실 속에서 쉽사리 목격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독과점 문제가 새삼 뜨거운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인수합병(M&A)이 활성화하면서 단일시장을 지배하는 거대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 독과점적 지위 남용, 과징금

지난 1월에는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사건이 벌어졌다. 공정거래위원회(권오승 위원장)가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로 도약 중인 현대자동차의 독과점적 지위 남용 행위에 대해 시정 명령과 함께 230여 억원의 과징금 부과를 의결한 것이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현대차는 자사 노동조합과의 협정을 통해 대리점의 자유로운 판매 거점 이전을 제한했다. 현대차의 판매망은 직영 지점과 대리점의 이중 구조로 이뤄지는데 일정 판매지역 내에서 양자는 서로 경쟁관계에 있다. 그런 상황에 대리점이 유리한 거점으로 옮기려 할 때는 직영 지점 노조와 사전 협의하도록 함으로써 대리점들에게 사업상의 불이익을 준 것이다.

현대차는 또한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여 대리점의 영업인력 채용에도 제약을 가했다. 대리점이 판매직원을 채용하고자 할 때 승인을 해주지 않거나 지연시킴으로써 자율적인 영업활동 강화에 지장을 초래한 것.

문제는 현대차가 이런 불공정한 룰을 강제하면서도 대리점들에게 과도한 판매목표를 부과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매월 일정 숫자의 차량을 대리점에 떠넘기는 이른바 밀어내기식 판매 방식이 관행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위는 이번 조치에 대해 현대차가 독과점적 지위를 이용해 자사의 이익을 도모하는 가운데 유통업체(대리점)에 대한 위법행위가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이뤄진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엄중 제재했다고 밝혔다.

현대차의 독과점적 지위는 유통업체뿐 아니라 하청업체, 소비자에게도 폐해를 끼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단적인 예로 매년 부품업체들의 납품단가를 인하하면서 자동차 판매가격은 오히려 인상해왔다는 점이다.

실제 현대차의 주력 판매차종 가격 추이를 보면 기아자동차를 인수해 국내 자동차 시장의 독과점 사업자로 부상한 1998년 무렵부터 지속적으로 큰 폭의 상승세를 보인 사실이 눈에 띈다.

모델별 최저가격 기준으로 살펴보면 베르나의 경우 배기량 1cc당 가격이 1997년 3,880원에서 2006년 6,150원으로 대폭 올랐고 아반떼는 같은 기간 5,100원에서 6,030원으로 뛰었으며 쏘나타도 6,180원에서 8,780원으로 인상됐다.

물론 자동차 가격 상승은 물가나 인건비 인상 등의 요인을 복합적으로 반영한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현대차가 중소형차 가격을 꾸준히 높은 수준으로 올린 것은 수입차와 경쟁관계인 대형차 시장과 달리 독과점적 지위를 누린 데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이번 현대차 사건을 조사한 공정위 심재식 사무관(시장감시본부 독점감시팀)은 “현대차는 납품업체, 유통업체, 소비자에 이르는 단계마다 독과점적 지위를 행사하고 있어 독과점 심화의 폐해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독과점 사업자라고 해서 모두 불법적 행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시장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더라도 그 지위를 남용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럼에도 독과점을 경계하고 규제하는 것은 지위 남용의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지난해 11월 내놓은 ‘2004년 시장구조 조사결과’에 따르면 광공업 부문 상위 10, 50, 100, 200대 기업이 전체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각각 집계하는 ‘일반집중도’가 2002년 이후 상승 추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1980년 이후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던 ‘일반집중도’는 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급등했다가 안정세를 찾았으나 2000년대 들어 다시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

이에 대해 조사를 실시한 시장경제연구원은 외환위기 전후로 구조조정 과정에서 급증했던 ‘일반집중도’가 99년부터 정보통신 분야 신규창업 붐, 벤처기업 급성장, 대기업 분사 등에 힘입어 하락 추세를 보이다가 2002년 이후 벤처 붐 냉각, 수출주도형 대기업의 고성장으로 인해 다시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2004년에는 수출기업과 내수기업 간 격차 심화가 ‘일반집중도’ 급증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집중도 높아지면 지위남용 가능성 커져

표준산업 분류상 491개 산업을 대상으로 조사된 ‘산업집중도’ 역시 의미심장한 변화 추이를 보이고 있다. ‘산업집중도’는 CR3(상위 3개사의 시장점유율 합계) 단순평균 기준으로 보면 2002년 43.1%에서 2004년 44.0%로 올랐지만 가중평균 기준으로는 같은 기간 50.8%에서 52.2%로 좀더 높은 오름세를 나타냈다.

가중평균이 더 높은 것은 시장규모가 큰 분야일수록 집중도가 심화했다는 의미다. 통상 산업 규모가 커지면 집중도는 낮아지지만 1조원 이상 대규모 산업에서는 오히려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2004년 기준 출하액이 5조원 이상인 20개 산업 가운데 5개 산업이 CR3 75% 이상의 고집중 산업으로 파악됐다. 자동차, 원유정제, 열간압연(철강업), 전자집적회로, 강선건조(조선업) 산업이 그 사례들이다. 이 밖에도 방송 및 무선통신기기(70.9%), 액정표시장치(71.1%), 석유화학계 기초화합물(62.6%), 가정용 전기기기(62.5%) 등 제조업이 70% 안팎의 높은 ‘산업집중도’를 나타냈다.

통계청 산업분류상 2,354개 품목의 시장집중도를 보여주는 ‘품목시장집중도’도 눈길을 끈다. 2004년 기준 출하액 기준 상위 30대 품목의 집중도를 보면 휴대용 전화기, 경차 및 중소형 승용차(배기량 2,000cc 미만), TFT-LCD, D램, RV자동차(다목적용 승용차), 기타 반도체 메모리, 대형 승용차(배기량 2,000cc 이상), 휘발유 등 소비자와 밀접한 제품들이 모두 80%가 넘는 집중도를 나타냈다.

이처럼 전체 시장 및 개별 시장에서 집중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독과점 현상과 무관치 않다. 다시 말해 시장집중도가 강화되면 독과점의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양대 전영서 교수는 “특히 과점시장에서 회사 숫자가 줄어들면 들수록 담합의 가능성은 높아지고 그 결과는 가격 상승으로 나타난다”며 “담합은 독과점적 이윤을 그대로 누린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사실은 얼마 전 공정위에 적발된 정유회사들의 담합 사례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정유업계는 시장집중도가 매우 높은 데다 과점체제인 까닭에 독과점적 폐해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전 교수는 과점시장에서 횡행하는 ‘암묵적 담합’의 심각성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소수 과점시장에서는 시장 참여자들이 직접 모여 은밀한 협정을 맺지 않더라도 서로 눈치를 살피며 가격 책정을 한다는 것이다.

2000년대 이후 현대차가 자동차 판매가격을 먼저 올리면 다른 경쟁사들도 따라서 가격을 올려온 사례나 시중은행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금리인상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그런 사례다. 이처럼 과점시장에서 암묵적으로 이뤄지는 담합효과는 결국 독점시장의 폐해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다.

통계청 조사에 포함되지 않는 서비스 시장의 독과점 문제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일반적으로 서비스 산업은 판매되는 서비스의 종류가 너무 복잡하고 다양해 집중도를 파악해내기가 매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은행, 보험, 통신회사 등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종류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서비스 시장의 독과점화 현상도 무시 못할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대표적인 예가 3개 회사가 분할 지배하고 있는 이동통신 시장이다. 특히 SK텔레콤이 신세기통신을 합병한 이후 이동통신의 독과점화는 돌이킬 수 없는 현상으로 고착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인터넷 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인터넷 포털업계는 2000년대 초반 군웅할거 시대를 지나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 3개 포털이 매출액 기준으로 전체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는 확고한 삼두체제를 형성했다. 특히 네이버는 검색시장의 70%를 독차지할 만큼 포털업계에서 독점적 위상을 확보했다. 최근 공정위가 포털업계를 지목해 독과점적 지위 남용 여부 조사 계획을 밝힌 것도 그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보통신 시대에 새롭게 떠오르는 신산업, 신시장의 독과점화에도 경계의 눈길을 보낸다. 각종 혁신적인 기술과 서비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가운데 시장을 미리 차지하고 선점효과를 독점효과로 연결하는 기업들이 적잖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기술력 하나로 세계 최대의 기업이 된 마이크로소프트(MS)가 세계 시장에 미치는 엄청난 영향력이 그런 필요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주목할 것은 유독 MS의 시장지배력이 한국에서 더욱 기승을 부린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얼마 전 행정자치부 주최로 열린 전자정부 관련 토론회에서 김진형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한 가지 소프트웨어에 의존하다가는 치명적 결함 하나로 인해 모든 시스템이 붕괴될 수 있으며 비싼 가격은 물론 여타 기업의 신기술 개발 기회 봉쇄 등 독과점의 폐해를 발생시키게 된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 시장에서 MS 윈도의 점유율은 99.4%에 달해 사실상 독점 상태다.

실제 MS는 독과점 남용 행위로 인해 공정위로부터 제재를 받기도 했다. 윈도 서버운용 체제와 PC 운용체제에 다른 프로그램을 끼워 판매함으로써 타 회사들의 경쟁을 봉쇄하고 시장을 거의 독점한 데 대해 지난해 2월 시정 명령과 함께 32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것.

공정위는 MS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를 입증하기까지 수 년에 걸쳐 경제적, 법적 분석을 면밀히 실시했다. 신산업, 신시장의 경우 독과점 문제가 발생하는 양상이 생소하고 복잡한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이른바 ‘뉴 비즈니스’의 독과점 감시를 위해서는 관련 전문가 집단의 확충, 경제분석 기법의 정교화 등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된다.

재벌중심 독과점, 경제성장에 치명타

독과점은 부의 집중에 따른 사회 양극화를 더욱 부추긴다는 점에서도 규제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내놓은 한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의 경제력 편중은 2000년대 이후 재벌의 독과점이 더욱 심화된 것을 말해준다.

문제는 재벌 중심의 독과점이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기업의 진입과 성장을 가로막고 경제의 활력을 감소시켜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 치명적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일부 독과점 재벌과 여타 기업의 격차가 벌어지면서 양극화의 골이 깊어지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폐해다.

사실 독과점은 과거 개발독재 시대에 배태된 한국 경제의 고질병이다. 압축성장을 위한 견인차로 삼기 위해 일부 재벌에게 특혜를 베풀면서 독과점이 체질화됐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그 그늘은 오늘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형태로 짙게 드리우고 있다. 시장경제를 목소리 높여 외치는 재벌에 의해 시장경제의 건강성이 위협받는다는 점에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