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 문화적 가치 올리는 원동력


"미술품 값은 우리 문화·경제 수준 잣대"

3월 7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K옥션 경매장은 박수근의 1961년 작품 ‘시장의 여인들’로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최종적으로 남은, 서면 및 전화 응찰자가 5,000만원씩 값을 올리며 몇 차례 경합한 끝에 25억원에 서면 응찰차에게 낙찰됐다.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가 경신되는 순간이었다.

경매장 안팎에서는 “역시 박수근”이란 탄성이 터져나왔지만 경매를 진행한 김순응(54) K옥션 대표는 다소 아쉬웠다. “미술품 값은 한 나라의 문화와 경제 수준을 보여주는 문화현상이자 경제현상입니다.

박수근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이고, 그의 작품은 문화재급입니다. 더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고 봅니다.” 박수근의 위상이나 한국의 경제 수준에 비춰보면 그림값 25억원은 놀랄 일이 아니라는 것.

K옥션은 지난해 12월 경매에서도 박수근의 1962년 유화 ‘노상’이 10억4,000만원에 낙찰돼 박수근 작품의 종전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웠다.

두 경매를 모두 주관한 김 대표는 “우리나라에서도 미술품이 부동산이나 주식과 더불어 하나의 투자상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에 비춰볼 때 미술품 가격이 다른 나라에 비해 저평가돼 있다”고 말한다. 미술품이 제대로 평가받고 경매시장 규모도 4,000억~5,000억원 규모는 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23년간 하나은행에서 근무하면서 그림을 수집하고 깊이 있는 시장연구를 하던 중 2001년 서울옥션으로 옮겨 4년간 대표를 지냈다.

2005년 9월 K옥션을 설립해 국내에 미술품 바람을 몰고 왔으며 미술월간지 아트프라이스가 지난해 12월 미술인과 일반일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한국미술계를 움직이는 대표적 인물’ 중 8위에 오를 정도로 영향력을 인정받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해는 국내 미술시장이 신(新) 르네상스의 비전을 보여주었다”면서 “한국미술품의 경쟁력이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어 앞으로 미술시장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더욱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만큼 미술품이 투자 대상으로 여건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술품 투자가이드 ‘돈이 되는 그림’(학고재 발간)을 펴내기도 한 김 대표는 “요즘 미술계의 키워드는 단연 투자”라면서 “성공적인 미술 투자를 위해서는 미술에 대한 애정과 학습을 통한 안목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미술품 구매를 투기심리로 시작하면 필패한다”면서 “장기적인 안목을 기르고 충분한 사전 준비(정보, 연구 등)가 필요하다”고 충고한다. 아울러 처음부터 무리한 컬렉션을 하기보다 한 달 월급 정도로 젊은 작가의 작품을 선택하기를 권한다.

김 대표는 “K옥션이 국내 미술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에 걸맞게 경매시스템을 체계화하고 국제적인 경매회사로 발전시키는 게 비전”이라고 밝혔다.

<서울옥션 박혜경 이사>
"투기성 목적으로 구입하면 낭패 볼 것"

1998년 9월 27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서울옥션 경매장. 1970년대 말 이래 부침을 거듭하던 우리나라 경매제도가 비로소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리는, 서울옥션의 첫 경매가 실시된 날이다. 당시 경매를 진행한 사람은 서른 살을 갓 넘긴 박혜경 경매사.

이후 2001년 4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겸재 정선의 18세기 그림 ‘노송영지도(老松靈芝圖)’가 7억원에 낙찰, 국내 미술경매(현대미술 고미술 포함)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고 이듬해 5월 경매에선 박수근의 유화 ‘아이 업은 소녀’가 5억5,00만원에 팔려 국내 현대미술경매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웠다.

지난해 경매에서 최고가로 낙찰된 ‘철화백자운룡문호’(낙찰가 16억2,000만원)에 이르기까지 한국 경매의 신기록 행진의 한복판엔 늘 박혜경(40) 서울옥션 이사가 있었다.

박 이사는 우리나라 미술경매사 1호다. 본래 미술과 관계없는 사학을 전공한 뒤 광고회사 AE, 진로그룹 홍보실에 근무하다 96년 국내 최대 화랑인 ‘가나 아트갤러리’로 옮겨 아트디렉터로 일하면서 작가와 소장가들을 만나고 미술품 마케팅에 대한 폭넓은 공부를 하면서 경매사의 자질을 키웠다..

박 이사는 몇 해 전부터 미술시장이 커지고 미술품이 투자 대상으로 인식되면서 경매사나 미술품 투자에 대한 문의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최근 미술품 가격 상승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에요.

생활수준 향상에 따라 미술품이 문화코드로 적합한 데다 산업구조가 고도화하면서 미술시장도 건전하게 발전하고 있죠. 미술품은 주식이나 부동산처럼 투자 가치가 있을 뿐 아니라 보고 즐기는 커뮤니티라는 장점이 있습니다.”

박 이사에 따르면 경매 때마다 참여자들이 큰 호응을 보이고 젊은 컬렉터들이 대거 등장해 저변이 넓어지면서 1억원 가량의 미술품 구매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투기성 구매는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전체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 미술품 구입은 10~15%가 적정비율이라고 봅니다. 매매 시점 등에 대해 전문가집단의 조언을 받을 수 있다면 이 비율을 높일 수 있죠.”

박 이사는 성공적인 컬렉터가 되려면 우선 미술에 대한 관심과 함께 많이 보고(참관) 소품이라도 사보며 안목을 키우는 컬렉터 학습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울러 경매 작품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전문가의 조언을 최대한 활용하라고 권한다. 또한 초반 컬렉션은 중견ㆍ원로 같은 검증된 작가의 소품부터 사는 게 좋은 작가를 고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결국 작가에 대한 꾸준한 연구와 세계 미술시장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미술 투자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한다.

국내 경매제도 어떻게 성장했나

우리나라의 미술경매 제도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원리에 따라 조선 후기 서울 광통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미술거리에서 유사한 제도가 시행되었지만 본격적인 근대 경매는 1906년 실시한 ‘고려도자기’경매가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1922년 고미술상들이 주축이 돼 설립한 경성미술구락부가 경매를 시작해 1944년 해산하기까지 260회의 경매를 실시하였다.

현대적 의미의 경매는 79년 6월 23일 신세계미술관에서 실시한 ‘제1회 근대미술품 경매’가 처음이고 36명의 작가 68점 중 37점이 낙찰돼(낙찰률 54%)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81년 17%의 저조한 낙착률을 보이면서 막을 내리고 송원화랑이 주축이 돼 다시 경매를 실시했으나 ㄷ1회로 그치고 말았다. 84년 ‘고미술교환 경매전’, 86년 하나로미술관이 경매를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로 막을 내렸다.

년 경매제도의 공영화 도임을 위해 화랑협회가 ‘제1회 교환경매전’을 열었으나 작가들이 우열과 등위가 매겨질 것을 우려해 反발하는 바람에 1회에 그쳤다. 89년 하나로미술관과 현대백화점의 공동 경매, 92년 청담미술제에 참여한 화랑들이 경매를 실시했지만 1회성에 머물렀다.

이후 96년 한국미술품 경매가 출범해 오늘에 이르고 있지만 세간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 2000년 9월 출범한 마이아트도 자본의 취약으로 문을 닫고 말았다.

98년 가나화랑이 주가 되어 서울옥션을 설립하고 현재 130여 회째 경매를 실시하면서 9년여 이상 경매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2005년엔 현대화랑 등이 주축이 되어 K옥션을 설립해 양강체제를 형성하며 경매시장을 이끌고 있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