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선거 컨설팅해 역량 인정받아… 대선 앞두고 활발한 움직임

미국의 대통령선거는 사실상 정치 컨설턴트들의 대결이다. 무대 위의 후보들은 정치 컨설턴트 그룹이 쓴 각본에 따라 액션을 취할 뿐이고 누가 쓴 각본이 국민의 호응을 더 받느냐에 따라 명암이 갈린다.

1988년 대선에서 조지 부시의 승리는 리 애트워터가 이끌었고 92년 대선 빌 클린턴 승리는 제임스 카빌이, 96년 재선은 딕 모리스가, 그리고 2000년 조지 W 부시의 당선은 칼 로브 같은 당대의 최고 정치 컨설턴트가 이뤄냈다.

그만큼 미국 대선에서 정치 컨설턴트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본래 의미의 정치 컨설턴트가 드물고 다른 업무와 병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척박한 상황에서 전병민 씨(60·전 청와대 정책수석 내정자)는 단연 돋보인다. 전 씨는 87년 대선 당시 노태우 선거팀인 ‘한가람기획’에 참여해 ‘중간평가’라는 승부수를 만들어냈고 92년 대선 때는 ‘임팩트 코리아’, 속칭 ‘동숭동팀’을 이끌며 8개월 간 김영삼 정권의 개혁 청사진을 마련했다.

97년 대선 때 ‘병풍(兵風)’으로 위기에 몰린 이회창 후보 측에서 탈출구를 문의해오자 “깨끗하게 후보를 사퇴하고 다음을 기약하라”고 답했다. 그때 이 후보가 전 씨의 훈수를 따랐다면 2002년 대선의 양상은 달라졌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92년 YS 문민정부 출범을 앞두고 부친의 문제로 물러난 전 씨는 10년 가까이 조용히 지내다 2002년 말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선거 종합 컨설팅회사인 ‘한국정책연구원’을 설립하고 본업(?)에 나섰다. 2004년 총선에서 여야 의원 10명을 컨설팅해 8명(여당 2명, 야당 6명)을 당선시켰다고 한다. 지난해 5ㆍ31 지방선거에서는 대전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 박성효 후보를 컨설팅해 역전승을 일궈내기도 했다.

전 씨는 “YS는 일단 일을 맡기면 절대 신임을 보여줬다”면서 “선거에서도 의뢰인이 컨설팅을 맡기면 전적으로 믿는 신뢰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정책연구원에는 87년 대선 때부터 함께 일해 온 교수를 포함해 12명의 현직 교수가 참여하고 있다.

전 씨는 정가에서 박근혜 전 대표를 측면 지원하고 있다는 소문에 대해 “대선과 관련해 어느 진영에도 관여하고 있지 않다”며 부인했다.

김능구 ㈜e윈컴 대표는 정치권에서 가장 체계를 갖춘 정치 컨설턴트로 평가받고 있다. e윈컴은 20여 명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91년 서울기획 설립 이후 함께 일했던 직원들이 많아 팀워크와 축적된 노하우가 장점이다. 100여 회가 넘는 실전 선거 경험도 e윈컴의 자산이자 경쟁력이다.

김지곤 기자.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나와 한때 노동운동에도 투신했던 김 대표는 여야를 막론하고 개혁적이고 정치발전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후보들을 컨설팅하는 데 적극적이다. “선거를 통해, 정치를 바꿔 시대를 올바른 역사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 기여하고자 정치 컨설팅을 시작했으므로 후보도 가려가면서 도와야지요.”

열린우리당 김근태ㆍ원혜영ㆍ장영달 의원, 한나라당 홍준표ㆍ안상수ㆍ김영선 의원 등이 e윈컴의 컨설팅을 받았고 15대 총선 때 인연을 맺은 천정배 의원은 단골 고객이다. 98년 민선1기 강원도 지사 선거 때 김 대표가 내부 반말을 무시하고 내세운 ‘강원도 세상’이란 캐치프레이즈는 지금도 강원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김 대표는 91년부터 선거 컨설팅을 해 최근까지 지자체장만 22명을 당선시켰으며 96년 총선(서울 성동을)에서는 민자당 김학원 의원을 컨설팅해 거물인 국민회의 조세형 부총재를 꺽게 하는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e윈컴은 2000년부터 인터넷신문 폴리뉴스를 운영해 생동감 있는 정치뉴스를 전하고 있다.

정치컨설팅그룹‘민’의 박성민 대표는 국내에 정치 컨설턴트라는 전문 직업과 용어가 자리를 잡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박 대표는 2002년부터 강연이나 글을 통해 정치 컨설턴트의 존재를 알렸다. “정치 컨설턴트는 누구나 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성, 전략, 이론적 틀을 갖춰야 합니다. 부분적으로 전문성을 갖췄다고 모두가 정치 컨설턴트는 아닙니다.”

박 대표는 정치 컨설턴트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이 분야의 업계가 인정하고 ▲의뢰인 역시 역량을 신뢰하고 ▲교수ㆍ언론이 귀담아 듣거나 논문에 인용할 정도로 고유한 영역(가치)을 지녀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기준을 제시했다.

‘민’은 91년 박 대표 등이 설립, 95년 6ㆍ27 지방선거 때는 조순 서울시장 후보 진영에 직원을 파견해 컨설팅했으며 96년 총선 때는 ‘신정치 1번지’강남지역구를 도맡아 업계를 놀라게 하는 등 90년대 중반부터 부각을 나타냈다.

박 대표는 “지금까지 여러 선거를 치르면서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선거 매뉴얼을 만들었는데 내년 총선을 비롯해 각종 선거에서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대표는 몇몇 대선캠프에서 컨설팅 요청이 들어왔으나 구체적인 답은 유보하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김재윤 변호사(법무법인 자하연)는 미국 버클리대, 뉴욕대 대학원(석사) 을 나와 한국의 97년 대선, 미국의 98년 캘리포니아 상원의원 선거와 2004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 등 한국과 미국의 정치 프로젝트에 참여해 정치 컨설턴트에 관한한 이론·실무 전문가라는 평을 받고 있다.

김 변호사는 “정치 컨설턴트의 본질은 국민과의 커뮤니케이션”이라면서 정치 컨설턴트의 긍정적인 역할을 강조한다.

김 변호사는 또 “정치 컨설턴트의 역할이 증대할수록 정치가 투명해지고 국민의 정치참여 기회와 통로가 넓어져 정치가 발전한다”며 “그럼에도 한국의 정치환경이 선거법상의 제한, 정치가(의원)만이 정치 전문가라는 인식, 정치 컨설턴트라는 전문 영역에 대한 이해 부족 등이 정치 컨설턴트의 자리매김을 방해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밖에 국내에 내로라하는 정치 컨설턴트로는 선거컨설팀 ㈜캠스트의 김학량 대표, ㆍ안병진 경희대사이버대 교수 등이 거론된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