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불과 8개월여 앞둔 요즘 정치권에서는 유력 대선주자 캠프에 속한 S씨의 행보가 화제다. 지난 2월 설날 즈음에 S씨가 미국을 방문, 선거의 귀재라는 딕 모리스를 만나 대선승리를 위한 자문을 요청했다는 뒷얘기다.

딕 모리스는 미국 아칸소주 법무장관이었던 빌 클린턴을 아칸소 주지사에 당선시켰고, 1996년 클린턴이 재선할 때 선거총책임자였으며, 2004년 당선된 폭스 멕시코 대통령의 선거도 지휘한 세계적 정치 컨설턴트. 지난 2002년 우리나라의 대선 때도 각 진영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인물이다.

일각에서는 다른 대선캠프에서도 미국의 저명한 선거전략가를 물색하고 있는가 하면 국내 정치 컨설턴트와 계약, 대선레이스의 전략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아직 우리나라엔 낯선 정치 컨설턴트가 대선 정국이 본격화하면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셈이다. 정치 컨설턴트는 선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캠프를 총괄하는 ‘선거의 코디네이터’를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선거전략 수립 ▲리서치 ▲홍보(PR) ▲이미지 컨설팅 ▲선거소품 지원 등으로 나뉜다.

각종 선거에서 정치 컨설턴트의 위력은 국내외에서 여러 차례 입증된 바 있다. 92년 미국의 민주당 빌 클린턴과 공화당의 조지 부시 후보 간의 대선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조지 부시는 80년대 말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구 소련 해체에다 90년 걸프전쟁의 승리로 지지율이 무려 90%대에 달해 당선이 확실시됐다.

그러나 그런 장밋빛 꿈은 빌 클린턴 진영의 “문제는 경제다, 멍청아(It’s th e economy, Stupid)”라는 슬로건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동서 냉전이 자본주의의 승리로 사실상 막을 내린 90년대부터 경제문제가 국내 정치의 승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임을 정확하게 끄집어낸 결과였다. 결국 클린턴 캠프의 선거전략이 적중해 승리했고 그 배후에는 제임스 카빌, 폴 베갈라라는 베테랑 정치 컨설턴트가 있었다.

지난해 5ㆍ31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였던 대전시장 선거에서도 ‘고수’ 정치 컨설턴트의 힘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열린우리당 염홍철 대전시장과 한나라당 박성효 전 대전시 정무부시장 간의 대결은 초기 각종 여론조사 결과 염 시장이 압도적으로 높아 그의 완승이 예상됐다.

그러나 정치 컨설턴트인 전병민(한국정책연구원 고문) 씨가 박 후보 편에서 선거전략을 구사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전 씨는 노태우ㆍ김영삼 정부가 탄생할 때 선거기획에 참여한 적이 있는, 자타가 인정하는 국내 정치 컨설턴트 선구자다

전 씨는 초반 선거전략을 염 후보에 대한 검증작업에 초점을 맞춘 뒤 다음 수순으로 대전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인 강창희 한나라당 시당위원장을 전면에 내세워 선거구도를 ‘염홍철 후보 대 강창희 위원장’의 구도로 바꿔놓아 무명에 가까운 박 후보의 지지율을 수직상승시켰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박근혜 대표가 대전에 내려와서 부동표를 흡수해 가도록 한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예기치 않은 박 대표의 ‘면도칼 피습 사건’이 발생하면서 부동표 흡수가 빠르게 진행돼 결국 박성효 후보가 43.8%를 득표, 줄곧 우세를 보여왔던 염홍철 후보(41.1%)를 이기는 기적 같은 역전극을 연출했다.

이처럼 선거에서 정치 컨설턴트의 중요성이 높아가고 있지만 국내에서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고객과의 신뢰가 가장 중요

60년대 박정희 정권의 관권선거에 맞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도운 엄창록(1988년 작고) 씨가 ‘선거의 귀재’로 불렸지만 현대적 의미의 정치 컨설턴트는 1987년 대통령선거와 89년 13대 총선 때부터 본격 등장한 정치광고회사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국내에 정치마케팅을 처음 펼친 주역은 ‘파이론’의 최병윤 사장이다. 최 사장은 1988년 재야운동단체인 민주화추진협의회의 지원으로 미국의 정치광고전문회사인 ‘퍼스트 튜즈데이’에 가서 선진선거법을 익혀와 89년 우리 실정에 맞게 접목을 시도했다.

이후 최 사장은 92년 14대 총선 때 황인성 전 국무총리, 국민회의 김상현 지도위원회 의장, 서청원 정무장관 등을 당선시켰고 그해 6월 보궐선거에서는 신한국당 손학규 대변인이 금배지를 다는데 기여했다.

김승용 사장이 1988년 설립한 ‘연우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정치광고 기획사도 정치 컨설팅 분야에서 주목을 받았다. 2005년 10ㆍ26 재선거 때 경기 광주의 홍사덕 전 한나라당 의원과 정진섭 한나라당 후보 대결에서 정 후보 측 선거전략을 맡아 승리를 이끌었다.

열린우리당 김교흥 의원(인천 서구ㆍ강화갑)이 91년 설립한 ‘A&T 기획’은 그해 6ㆍ27 선거 때 전재회 광명시장(현 한나라당 의원)을, 14대 총선 때는 박계동 의원, 김종호 의원 등을 당선시켰다. 김 의원은 “전재희 시장의 경우 ‘여성 시장’을 내세우기보다 ‘시장으로서의 능력’을 강조한 것이 주효했다”고 회고했다.

그밖에 하나애드컴(대표 이종하), 두홍기획(대표 송민호), 한국홍보컨설팅(대표 최선유) 등이 정치광고 및 후보들의 선거관리 컨설팅을 했으며, 노무현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이 운영하는 지방자치연구소는 부설기관으로 ‘6ㆍ27선거정보센터(소장 배갑상)’를 94년 10월 개설해 선거 컨설팅 업무를 시작했다.

한편 1991년에 설립한 김능구(47) 대표의 ‘서울기획’(6ㆍ27 선거 때 윈컴으로 개명, 현 e-윈컴)과 박성민 대표의 정치컨설팅그룹 ‘민’은 출발부터 정치 컨설팅을 전면에 내세웠다. 현재 ‘e-윈컴’과 ‘민’은 국내 대표적인 정치 컨설팅 업체로 평가받고 있다.

김 대표는 “정치 컨설팅에 대한 수수료를 받아왔고 홍보물 제작은 부가 서비스로 해줬다”고 했고, 박 대표는 “다른 회사가 정치광고를 내세울 때 우리는 정치 컨설팅 전문이라고 했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은 “정치 컨설팅과 일반 정치광고는 분명히 다르다”고 말한다. 정치 컨설팅이 후보의 홍보, 이미지 만들기, 정책 조언 등을 포괄하는 선거 기획과 전략을 뜻하는 반면 정치 광고는 주로 후보의 홍보물 제작이라는 협소한 의미로 쓰인다는 것.

정치 컨설턴트가 하는 일의 궁극적인 목표는 의뢰인인 후보자의 ‘당선’이다. 이를 위해 선거캠프를 총괄하는 경우도 있지만 선거전략, 미디어ㆍPR, 캠페인프로모션 등으로 구분해 파트별로 한정된 일만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고객과의 계약을 맺는 시기에 따라 컨설턴트의 일이 달라지기도 한다. 지자체선거나 총선,또는 대선에 따라 선거전략은 물론, 정책, 홍보, 심지어 방송에서의 외모, 발음까지 개입하는 방식과 범위가 다르다. 정치 컨설턴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과의 신뢰다. 일단 계약이 성립하면 고객은 컨설턴트에게 많은 권한을 주면서 의존하게 되고 컨설턴트는 고객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

김능구 대표는 15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경기 의왕ㆍ과천)을 컨설팅한 적이 있다. 당시 상대는 열린우리당 김부겸 의원. 김 대표는 안 의원이 1987년 경찰의 물고문으로 숨진 서울대생 박종철 사건의 주임검사인 점을 감안 ‘낡은 정치에 마침표를’이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지역민들이 중산층 이상이라는 것을 고려해 개혁적이고 신선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안 의원 참모들은 김 후보의 운동권 경력에 초점을 맞춰 ‘색깔론’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반발했다. 김 사장은 “핵심 전략이 바뀌면 모든 게 무너진다”며 버텼고 고민하던 안 의원은 선거의 주요 권한을 김 사장에게 일임했다. 결국 안 의원은 당선됐고 현재 3선의 중진 의원이다.

여론조사 전문가, 학계, 정당인 출신, 정치 평론가 들 중에 정치 컨설팅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정치 컨설턴트와 구별된다. 이른바 ‘폴스터’(Pollster)는 여론조사 전문가이면서 정치 컨설팅을 하는 이들로 대개 고객이 선거에 나설지 여부와 여론조사 결과 등을 바탕으로 어느 지역에 어느 당으로 출마할 것인가를 코치한다.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소장은 “조사 결과는 정치 흐름과 여론을 반영하기 때문에 컨설팅 기능을 동반하기 마련인데 여론조사를 기초로 후보자에게 지역구 상황 판단, 공약, 후보자 이미지 포지셔닝 등 기본 방향을 잡아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안부근 디오피니언 소장, 노규형 리서치앤리서치 대표,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김지연 미디어리서치 이사 등이 폴스터에 가깝다.

학계에선 김형준(국민대)ㆍ안병진(경희대사이버대) 교수, 정당인 출신으론 정창교 KSOI 수석전문위원, 윤여준ㆍ장성민 전 의원, 정치평론가 중엔 유창선 박사, 그밖에 김윤재 변호사 등이 정치 컨설팅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현실 아직 초보단계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정치 컨설턴트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지만 국내 현실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제대로 된 정치 컨설턴트가 드물고 선거 때만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사라지는 정치광고 기획사들만이 활개를 친다. 게다가 현행 선거법은 정치 컨설트들이 더 많은 정치 자문료를 받고 활동하는 것을 제약하고 있다.

그럼에도 박성민 대표는 “올해 대선과 2008년 총선을 거치면 정치 컨설트의 영향력이 커지고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어서면 정치 마케팅이 단순한 비즈니스를 넘어 산업이 될 수 있다”며 낙관론을 폈다.

오는 12월 대선을 계기로 정치 컨설턴트의 좌표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 한국 대선과 미국 정치 컨설턴트

오는 12월 대선에 미국 정치 컨설턴트의 입김이 미칠까. 그동안 한국 대선에 미국 정치컨설턴트의 개입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1987년 대선에는 84년 레이건 전 대통령 재선 캠페인매니저였던 에드 롤린스가 노태우 후보 전략 자문을 맡았고, 92년 김영삼 후보의 선거 진영에도 워싱턴 유수의 홍보 컨설팅 회사들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97년 대선에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측에서는 96년 클린턴 여론조사를 담당했던 펜션(Penn+Schon)의 파트너 덕션(Douglas Schon)팀을 영입했고,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 측에서는 데이비드 모리가 홍보전략을 자문하고 스티븐 코스텔로가 대미 업무를 전담한 바 있다.

2002년 대선 때는 빌 클린턴을 영웅으로 만든 선거 귀재 딕 모리스를 끌어들이기 위해 여야 후보 진영과 정몽준 의원 측도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대선과 관련 일부 대선주자 측에서 딕 모리스를 비롯해 미국의 정치 컨설턴트와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런 현상에 대해 국내의 한 정치 컨설턴트는 “선거문화가 다른데 맹목적으로 미국에 의존하는 것은 문제”라며 “오히려 국내 전문가들이 대선을 더 정확히 꿰뚫어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