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포화지방산 풍부한 올리브유·채소·과일·견과류 섭취, 육류 소비 낮아그리스 요구르트는 세계 5대 식품 중 하나… 암·심혈관계 질환 예방에 효과

미국의 록펠러 재단은 반세기 전 그리스 크레타섬 주민들의 식생활과 건강상태를 조사한 뒤 깜짝 놀랐다. 이곳 주민들의 심장병 사망률이 다른 서구 국가의 국민들보다 현저히 낮게 나타난 것이다. 또한 영양상태가 매우 양호했을 뿐 아니라 평균 수명도 훨씬 긴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록펠러 재단은 크레타섬 주민들의 장수 및 건강 비결이 그들만의 전통적인 식단에 있다고 결론을 내린 뒤 ‘지중해식 식단’을 최고의 건강식단으로 세계에 널리 알렸다.

이후에도 지중해식 식단의 탁월성은 수많은 후속 연구에 의해 재확인됐다. 미국과 그리스 연구진이 그리스인 성인 2만여 명을 대상으로 공동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고유의 지중해식 식단을 먹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심장질환 사망률은 33%, 암 사망률은 24%나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진의 연구결과에서는 지중해식 식단이 알츠하이머병(노인 치매)의 위험성을 낮추는 효과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중해식 식단은 과일과 채소, 콩과 견과류, 전곡류 등을 중심으로 치즈, 요구르트 등 유제품과 적포도주가 중요한 구성 요소다. 주목할 것은 올리브유가 어떤 음식에든 거의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는 점이다. 또한 생선과 해산물에 비해 육류의 섭취 비중은 매우 낮은 편이며 설탕, 버터 등도 되도록 멀리 한다.

노화방지, 비만예방에도 좋아

이 같은 식단이 건강에 주는 장점은 무엇일까. 우선 과일, 채소를 주로 먹기 때문에 각종 항산화물질을 많이 흡수함으로써 노화를 방지하는 한편 칼로리를 적게 섭취해 자연스레 비만도 예방한다.

또한 몸에 이로운 불포화지방산을 올리브유를 통해 풍부하게 섭취하는 반면 육류를 적게 먹기 때문에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이 체내에 쌓이는 것을 피할 수 있다.

한마디로 지중해식 식단은 건강에 좋은 음식은 많이 먹고 나쁜 음식은 적게 먹는 단순한 진리를 실천하는 셈인데, 기름진 먹을거리에 도취되지 않고 골고루 가려먹을 줄 아는 지중해 사람들의 지혜가 담겨 있는 것이다.

지중해식 요리에 반드시 들어가는 여러 식재료들의 빼어난 영양학적 장점도 주목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올리브유는 지중해식 식단의 알파이자 오메가라 할 수 있는 핵심 재료로 평가된다.

올리브유에는 건강에 이로운 단일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다. 불포화 지방산은 몸에 좋은 HDL(고밀도 지단백질)의 수치를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대신 ‘나쁜 콜레스테롤’로 불리는 LDL(저밀도 지단백질)의 수치를 낮춰 심장병, 고혈압, 동맥경화 등 성인병을 예방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

또한 올리브유에는 비타민, 칼슘, 철, 필수 미네랄 등이 함유돼 있어 임산부와 태아에 이롭고 성장기 어린이의 뼈와 뇌 발달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인들이 음식 재료나 소스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하는 요구르트도 지중해식 식단에서 대표적 건강식품으로 꼽힌다. 그리스 요구르트는 별다른 첨가물 없이 살균 공정을 거친 우유에 젖산균을 배양해 만드는데 일반 가정에서도 손쉽게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인체 면역성을 높이고 뼈를 튼튼하게 만드는 효능을 가졌다.

특히 그리스 요구르트는 지난해 3월 미국의 건강 전문지 <헬스>가 올리브유, 한국의 김치 등과 함께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선정할 만큼 세계적인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올리브유나 그리스 요구르트가 한국인 식단의 김치처럼 지중해 식단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점이다.

지중해식 요리에는 채소가 흔히 쓰이는데 그중에서도 토마토는 활용 빈도가 특히 높다. 토마토는 16세기 중미 지역에서 스페인으로 전파된 이후 지중해 사람들의 요리에서 꽃을 피운 식품이다.

특히 토마토에는 비타민C 등 항산화 영양소가 풍부하며 ‘라이코펜’이라는 성분이 많이 함유돼 있어 암의 발생을 억제하는 데도 큰 효능이 있다.

적당량의 노동·휴식과 어우러져 건강에 도움

지중해 지역이 원산지인 브로콜리도 지중해 사람들이 아주 즐겨 먹는 채소 중 하나다. 브로콜리에 풍부한 ‘셀레늄’은 노화를 촉진하는 활성산소의 움직임을 억제할 뿐 아니라 전립선암, 대장암, 폐암, 간암, 유방암 등의 항암 효과도 뛰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일반적인 서양인들과 달리 마늘을 양념으로 많이 활용하는 것도 지중해식 식단의 특징이다. 마늘은 미국 국립암연구소에서 항암 식품의 으뜸으로 꼽았을 만큼 암 예방 효과가 크며, 아울러 심장마비나 뇌졸중 등 혈관계 질환의 예방에도 상당한 도움을 주는 식품이다.

지중해식 식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마지막 한 가지는 붉은 포도주다. 붉은 포도주는 육류 섭취가 많은 프랑스인들이 심장병에 잘 걸리지 않는 이른바 ‘프렌치 패러독스’를 푼 열쇠인데 항산화물질이 풍부해 심장병 예방 효과가 탁월하다. 지중해 사람들은 매일 한두 잔 정도의 붉은 포도주를 식사 때 반주로 곁들이며 낭만과 건강을 한꺼번에 마시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지중해식 식단이 곧 건강과 장수를 모두 보증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식단과 아울러 삶에 대한 낙관적인 태도, 적당량의 노동과 휴식이 어우러졌기 때문에 지중해 사람들의 무병장수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결국 잘 먹는 것은 오래 사는 것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닌 셈이다.


▲ 지중해식 기본 식단
올리브유 듬뿍… 매주 두 번은 생선요리

올리브유를 듬뿍 뿌린 샐러드, 토마토가 들어간 파스타, 제철에 난 과일, 붉은 와인 한 잔. 매주 두 번 생선을 먹으며 닭고기는 한 번 가량 섭취. 지중해식 기본 식단의 차림표다.

지중해식 식단에 오르는 비중은 빵, 파스타, 쌀, 감자, 전곡류 그룹이 가장 높고 그 다음은 과일, 채소, 콩 및 견과류. 이어 올리브유의 활용 빈도가 높았으며 치즈와 요구르트, 생선, 닭고기, 계란, 설탕, 식육 등의 순서다.

또 지중해식 식단은 가공된 식품보다는 천연 그대로의 식품을 기본으로 한다. 과일주스보다 생과일을 즐겨 먹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지방 섭취량은 전체 칼로리 섭취량의 25~35% 정도 되지만 동물성 지방은 8%를 넘지 않는다. 동물성 지방은 육류보다는 해산물, 페타 치즈(산양 젖을 발효해 만든 치즈), 요구르트 등을 통해 섭취한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