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력·국제적 감각의 상품 앞세워 지구촌 시장 곳곳 입성이랜드 中에 1,000여 개 매장… 제일모직·코오롱 등도 해외 공략

패션은 문화 산업의 고갱이다. 국가 문화수준을 반영하고 산업적으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국내 패션 산업 규모만 20조 안팎에 이르고 전 세계 시장을 놓고 보면 천문학적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 패션 산업이 기로에 서있다. 패션 강국으로 비상하느냐 아니면 2류 패션 국가로 추락하느냐 하는 갈림길이다. 국내외에서 한국의 패션 영파워들의 활약은 눈부시고 패션 산업의 해외 진출도 활발하다.

세계 패션 콜렉션에서 한국 디자이너는 보석처럼 빛나고 미국, 유럽 등의 패션 선진국 유명 매장엔 ‘Made in Korea’제품을 자주 접할 수 있다. ‘패션 코리아’의 위상을 높여주는 방증들이다.

반면 한국 패션 산업의 현실은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외국 브랜드의 공세는 갈수록 거세 국내 패션 시장의 절반 이상은 이미 그들의 몫이다. 최근엔 중저가 브랜드까지 물밀듯 밀려와 한국 패션 산업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국내 의류업의 메카인 남대문ㆍ동대문 상권엔 찬바람이 그칠 줄 모른다.

기회와 위기라는 양날의 칼을 쥔 ‘패션 코리아’는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국내 패션업체들의 글로벌 행보가 최근 탄력을 받고 있다. 국내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국제 무대에서 경쟁을 통해 생존과 발전을 모색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글로벌 행보에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ㆍ중소기업까지 나서고 있으며 해외 진출도 중국 등 아시아를 넘어 미국, 유럽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글로벌 방식도 국내서 전개 중인 브랜드를 해외 시장에 수출하는 차원을 넘어 해외시장을 거점으로 브랜드를 런칭하거나 대형점을 테스트하는가 하면 해외 유명 브랜드를 인수, 육성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패션 대형사들은 막대한 자본과 국내에서 기반을 닦은 상품력, 국제적 감각의 마케팅 활동 등을 내세워 글로벌 브랜드 육성을 본격화하고 있다.

선두주자 이랜드는 중국과 미국을 집중 공략, 국내 기업 중 가장 많은 브랜드를 글로벌화하는데 성공하였다.

중국에서는 1994년 상하이에 법인 설립 이후 99년까지 시험단계를 거쳐 2000년부터 ‘이랜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브랜드 진출을 시작, 현재 ‘스코필드’, ‘티니위니’, ‘에블린’, ‘포인포’ 등 캐주얼ㆍ내의ㆍ아동복과 같이 다양한 복종의 11개 브랜드가 영업 중이며 주요 도시 핵심 상권 백화점 등 1,000여 개 매장에 입점하여 매출을 계속 늘리고 있다.

올해는 ‘쉐인진즈’, ‘테레지아’ 등 4개 브랜드를 추가로 진출할 계획이고 전체적으로 2배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99년부터 ‘이랜즈키즈’라는 아동복 브랜드를 고급 백화점과 주택가에서 500여 개 아동전문 매장을 통해 50~150달러의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이랜드는 올해 10월 말경 뉴욕에 경쟁력 있는 브랜드로 판단한 ‘후아유’ 1호점을 오픈하고 내년에는 4~5개 점포를 운영하며 2010년까지 최대 800개 매장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제일모직은 97년부터 중국에 진출한 신사복 ‘갤럭시’와 스포츠 브랜드 ‘라피도’의 중국 비즈니스를 강화하고 캐주얼 브랜드 ‘빈폴’의 중국 시장 기반을 강화하는 원년을 선언했다. 갤럭시는 고급 소비층을 겨냥해 유명 백화점의 매장을 올해 35개 점까지 늘릴 계획이고 라피도는 중국에서 고가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에는 스포츠웨어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돼 올해 총 130개 점까지 유통망을 확대할 방침이다.

제일모직은 빈폴이 국내에서는 글로벌 브랜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고 보고 해외 진출을 적극 모색, 글로벌 브랜드 도약을 위한 전초 기지로 중국을 제2의 내수시장으로 선점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현재 베이징에 있는 5개 매장을 상하이, 난징 등 지역별 주요 백화점을 거점으로 20개 점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또 밀라노, 뉴욕, 도쿄, 상하이 등의 현지 법인과 디자인 스튜디오를 활용한 기획을 대폭 보강해 해외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전략도 세워 놓고 있다.

FnC코오롱은 지난해 9월 아웃도어 ‘코오롱스포츠’를 중국에 진출시킨 데 이어 11월 미국 현지에 FnC코오롱USA를 설립하고 골프웨어 ‘엘로드’ 1호점을 LA에 오픈했다.

이 회사는 ‘엘로드’를 미국뿐 아니라 올해 중국에도 진출시킬 계획이며, 여성복 ‘쿠아’도 중국 샨샨그룹과 합작 형태로 런칭하고 기능성 캐주얼 브랜드 ‘안트벨트’의 중국 및 해외진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세계적인 디자이너 아릭 레비(Arik Levy)가 디자인한 ‘트랜지션’라인을 앞세워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 등 세계 시장 진출을 꾀하고 있다.

SK네트웍스는 2005년 9월 북경 소고(SOGO)백화점에 1호점을 개설한 ‘아이겐포스트’가 폭발적인 호응을 얻자 중국 전역의 주요 상권에 입점하여 200~300개 이상의 유통망을 구축, 캐주얼 명품 브랜드로 육성할 계획이다.

2005년 8월에는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정상급 디자이너 조은경 씨의 패션 브랜드 ‘EKJO(엑조)’를 지원, 글로벌 브랜드로 육성하기로 했고 세계적인 패션유망주 리차드 채와 파트너십을 맺고 ‘RICHARD CHAI’의 글로벌 패션 브랜드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LG패션은 최근 중장기적으로 5개 이상의 글로벌 브랜드를 육성한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이 청사진에는 해외 유명 브랜드를 인수, 육성하는 방안 등이 담겨 있다.

중견ㆍ중소 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자본의 열세와 국내 기반의 상대적 취약성에 따라 미국이나 중국 등 해외 시장을 거점으로 브랜드를 직접 런칭하거나 대형점을 테스트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에는 무려 150여 개의 중견ㆍ중소 기업이 진출(해외 진출의 약 80%), 패션 코리아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엑스알코리아는 지난 2월 중국에 ‘이엑스알’ 100호 매장을 오픈한 데 이어 연내 140개까지 유통망을 확대할 예정이다. 이엑스알은 중국 현지화 작업을 위한 별도 기획 시스템을 갖추고, 상품력 강화에도 힘쓸 방침이다.

베이직하우스는 지난해 중국에서 250억원의 순이익을 달성, 올해 유통망을 크게 늘리기로 했으며 유아동복 업체인 참존어패럴은 중국 진출 4년째를 맞아 상하이, 베이징, 난징 등에 ‘트윈키즈’ 30여 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연말까지 90개 유통망을 확보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미국 유럽쪽 진출도 활발하다. 대형 의류 전시와 박람회 등을 통해 관련 종사자들이 교류하면서 진입 장벽이 낮아진 까닭이다.

아이올리는 지난해 미국에 ‘매긴나잇브리지’를 진출시킨데 이어 올해 뉴욕 현지에 여성복 ‘플라스틱아일랜드’의 200평 규모 대형 직영점 3곳을 오픈한다. 올 8월에는 2001년 런칭해 공전의 히트를 친 여성복 ‘에고이스트’ 를 미국에 런칭할 계획이다.

보끄레머천다이징는 글로벌 전략을 수정해 해외 진출을 단순히 판로 확대가 아닌 향후 사업 전개의 핵심 전략으로 소싱처 확보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한국 패션업체로는 유일하게 지속적으로 뉴욕 컬렉션에 참가하고 있는 ㈜오브제의 브랜드‘K&Kei’‘Hani Y’는 뉴욕 컬렉션을 통해 세계적 패션 전문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글로벌 브랜드가 됐다.

세계적 브랜드를 인수해 해외 진출을 강화하는 경우도 있다. 세계적 스포츠 브랜드 ‘휠라(FILA)’를 인수한 ㈜휠라코리아와 독일의 패션 명품 ‘엠씨엠(MCM)’을 인수한 ㈜성주디엔디가 대표적으로 이들은 글로벌 마케팅을 강화하며 명품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패션 종사자들의 맨파워나 해외 진출 현황을 보면 패션‘패션 코리아’의 가능성은 일견 긍정적이다. 그럼에도 국내 패션업계의 당면 과제는 엄존한다. .국내 시장의 협소함과 기형적인 유통구조, 과도한 부동산 비용 등은 패션산업의 발전과 글로벌 브랜드의 탄생을 가로막는다.

패션전문지 ‘어패럴뉴스’의 안정환 편집국장은 “국내 패션산업이 경쟁력을 갖추고 글로벌 브랜드가 나올려면 왜곡된 시장구조를 개선하고 글로벌 패션 인재 육성, 패션산업에 대한 전문집단 및 정부의 내실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안 국장은 특히 “글로벌 브랜드도 중요하지만 패션업자들의 ‘생존’의 문제를 위협하는 시장구조의 개선이 더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오브제의 강진영 디자이너는 “패션 강국 여부는 결국 하이 앤드(high-end)‘ 브랜드가 있느냐, 브랜드가 경쟁력을 갖추었느냐에 있다”면서 “패션계 인사들의 창조적인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