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파리·밀라노에서 활약하는 한국 디자이너, 세계 패션계서 무섭게 성장

왼쪽부터 배승연, 정혁서, 두리 정
유럽과 미국이 주도해 온 세계 패션산업에 2000년대 들어 아시아계 디자이너들의 진출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중에는 한국인 디자이너들의 활약도 활발해 수입 시장에 밀려 갈 길을 잃어가고 있는 국내 패션계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뉴욕, 파리, 밀라노, 런던 등 4대 컬렉션에 한국인 디자이너의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는가 하면 일부는 세계 패션의 주류에 근접해 있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특히 모던 패션의 메카인 뉴욕에서는 한국인 디자이너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해외 디자이너 1세대인 ‘트로아 조’가 1996년 뉴욕 컬렉션에 참가하고 매장을 연 이래 신초이, 젬마강, 주사라리 등의 디자이너가 뉴욕을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며 최근에는 토종 브랜드와 미국에서 활동 중인 디자이너가 ‘패션 코리아’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국내 브랜드인 ‘Y&Kei’의 강진영&윤한희 디자이너는 오브제’, ‘오즈세컨’의 국내 성공을 발판으로 뉴욕에 진출한 케이스. Y&Kei는 2002년부터 11차례나 뉴욕컬렉션에 참가, 기존의 내셔날 브랜드와 차별화된 창의적인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뉴욕에서‘하이앤드’(고급 의류)로 거래되고 있다. 지난 2월 ‘2007 뉴욕 가을/겨울 컬렉션’에서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패션으로 바이어와 언론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뉴욕에서 활동 중인 두리 정과 리차드 채는 모두 뉴욕의 패션 명문인 파슨스 스쿨 출신으로 세계 패션계가 주목하는 차세대 디자이너다. 두리 정은 2005년 CFDA(미국패션협회) 신인 디자이너상과 뉴스위크지 ‘2006 주목받을 패션인’에 선정됐으며 지난해에는 보그(Vogue) 패션어워드 수상자로 뽑히기도 했다. 그녀는 컬렉션 때마다 언론과 전문가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그녀의 패션은 뉴욕의 고급 백화점 ‘헨리 벤델’을 비롯 신인 디자이너의 꿈인 ‘바니스 뉴욕’과 소호의 매장, 스위스, 사우디아라비아, 일본 등 세계 22개의 컬렉션 숍에서 판매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리차드 채는 파슨스 졸업 후 ‘랑방’, ‘DKNY’, ‘마크제이콥스’를 거쳐 2001년 ‘TSE’의 수석 디자이너로 스카우트되면서 데뷔를 성공리에 치러 뉴욕 패션계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그는 2003년 여름 ‘TSE’를 떠난 뒤 이듬해 자신의 이름을 걸고 ‘2005 겨울 /겨울 컬렉션’에 컴백, 각 패션지들로부터 “정교한 디테일이 살아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지난 1월에는 국내 SK네트웍스와 파트너십을 체결, 2년간 600만 달러를 지원받기로 해 글로벌 패션 시장에서의 브랜드 이미지 구축과 상품 다양화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크리스 한은 이화여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후 미국으로 유학, 파슨스 스쿨 재학 중에 각종 패션 관련 상을 휩쓸며 일찍부터 주목을 받았다. 졸업 후엔 이탈리아에서 3년 동안 공부를 더 하고 뉴욕으로 돌아와 지난 2월 신인 디자이너로 첫 뉴욕 컬렉션을 성공리에 끝내 ‘경이로운 신인 등장’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뉴욕 패션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해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 건 ‘크리스한’이라는 브랜드를 런칭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유니스 리는 ‘DKNY’, ‘스트럭쳐’, ‘에마누엘에마누엘웅가로’등에서 탄탄한 실력을 쌓은 후 2000년 ‘유니스’ 남성복을 런칭해 실력파 디자이너로 인정받았으며, 패션 명문인 FIT에서 수학한 진 유의 ‘37=1’이라는 실크 란제리와 드레스는 각종 매거진의 지면을 장식하면서 전 세계 매장에서 팔리고 있다.

그밖에 뉴욕 컬렉션을 통해 꾸준히 활동하며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벤자민 조, 화려한 모자로 보그잡지에 등장하며 유명해진 유지니아 킴, 두 번의 뉴욕 컬렉션으로 주목을 받으며 ‘바니스뉴욕’에 진출한 박지원, ‘데무’의 디자이너 박춘무, ‘갬인게일(Gam In Gale)’브랜드를 런칭한 황혜진, 노리타에 위치한 ‘bbl’의 디자이너 이은주 등이 뉴욕 곳곳에서 한국인 디자이너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유럽 패션의 중심인 파리에서는 일찍이 한국인 최초로 파리 오트쿠틔르에 입성한 김지해 디자이너가 한국 패션의 위상을 높였다. 2003년에는 서울시가 제정한 월드디자이너로 선정됐으며 2004년에는 FnC코오롱과 전략적인 제휴를 갖고 골프웨어 ‘엘로드’의 지해 라인을 선보이기도 했다.

파리 컬렉션에 참가해온 유영미 디자이너는 한국인 처음으로 프랑스 백화점에 입점했고 마레 지구에 ‘솔리드 옴므’라는 단독 매장을 열었다. 최범석 남성복 디자이너는 지난해 자신의 브랜드 ‘제너럴아이디어’와 ‘W5H’를 ‘쁘렝땅’과 ‘르봉마르세’백화점에 입점시켰다.

박윤정 씨는 29세의 나이에 프랑스 대표 남성복 ‘스말토’의 수석디자이너를 맡아 프랑스 패션계에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화제를 일으켰으며 조은경 씨는 지난해 자신의 프랑스 브랜드 ‘엑조’를 한국의 SK네트웍스가 인수, 파리에 머물며 지속적으로 실력을 키워갈 수 있게 됐다.

채규인 씨는 ‘겐조’, ‘갈리아노’ 스튜디오 등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올 1월 자신의 남성복 브랜드인‘Mammiferes de Luxe’를 런칭했다.

전통적인 패션 중심지인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는 제일모직 밀라노 지사 총괄인 이정민 상무가 자신의 브랜드 ‘데렐쿠니’로 보그, 엘르 등 해외 유명 매거진이 주목받을 인물로 소개했으며 지난해 5월 ‘유러피안 패션 어워즈’에 국내 최초로 참가, 2위에 입상한 김원미 씨는 덴마크 베스트셀러사의 이탈리아 지사에 자리를 잡았다.

심보한 씨는 그룹 베르사체의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이탈리아 패션계에서 주목받는 차세대 디자이너로 꼽히고 있다.

앞의 세 도시에 비해 한국인들의 현지 활동이 미미했던 런던에서는 제일모직이 재작년 설립한 삼성패션디자인펀드(SFDF) 두 번째 수상자로 선정된 정혁서, 배승연 팀이 활동 중이다.

정 씨는 명문 런던 센트럴세인트마틴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벨기에 패션위크에서 대상을 받아 주목받았고, 배 씨는 영국 고급 브랜드 ‘키사’ 수석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지난해 9월 런던 컬렉션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그밖에 미국 LㆍA의 이승배ㆍ이진 디자이너는 티셔츠 브랜드 ‘클루’를, 이진은 컨템포라리 브랜드 ‘사자’디자이너로 실력을 인정받았고 에코 도마니 신인 디자이너상을 수상한 ‘하눅’의 김한욱 디자이너는 파리와 뉴욕을 오가며 활약하고 있다.

컬렉션 디자이너처럼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지만 앞서 언급한 채규인 씨는 파리 컬렉션에 참가하는 크리스찬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였고 뉴욕 컬렉션의 DKNY 수석 디자이너도 한국인 제인 정 씨가 맡고 있다.

패션의 한 부분인 프리미엄 데님 업계는 사실상 한국인이 장악하고 있다. ‘제임스 진’의 디렉터는 임승선 씨이고 ‘허드슨’은 한국계 피터 킴과 디자이너 로빈의 합작품이다.

세계 패스트 패션 업계에서도 한국인의 활약이 두드러져 20개 국에 유통망을 갖고 있는 ‘포에버21’는 장도원 씨가 만들었고 호주는 물론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SPA 브랜드 ‘밸리걸’과 ‘TAP 시드니’는 스티브 마, 짐 마 두 한국인 형제의 브랜드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