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는 심판 자정 '인기 회복'농구는 아마·프로 모두 편파·승부조작 얼룩, 관중 외면 자초

상대 선수와 심판 폭행, 판정에 대한 항의와 잇달은 선수 퇴장, 심판 매수와 승부조작설까지….

올 시즌 농구 코트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심판의 판정과 관련된 잡음들은 가히 ‘농구 코트의 심판 잔혹사’라고 불릴 만하다. 많은 관중과 TV시청자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선수들의 항의와 이에 따른 퇴장 사태, 그리고 볼썽사납게 반발하는 모습 등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설상가상으로 비단 프로 무대뿐만이 아니라 학생들이 뛰는 아마추어 무대에서도 심판 판정의 신뢰성을 무너뜨리는 폭탄 폭로까지 나왔다. 최근 한 농구인이 학생 농구 코트에서 심판을 매수하는 승부 조작이 이뤄지고 있다는 양심선언을 한 것.

농구계의 원로인 염 모 씨는 얼마 전 아마추어 농구대회에서 승리를 위해 금품이 오고간다는 사실을 양심선언으로 공개했다. 염 씨에 따르면 “아마추어 농구 코트에서 4강이나 결승에 올라갈 팀은 심판부와 내통한다는 것은 다 아는 이야기이며 이는 초등학교로 갈수록 승부 조작이 더 심하다”는 것. 그는 지난해 소년체전 때 자신이 직접 경기를 잘 봐 달라며 돈을 줬던 사실까지도 공개했다.

사건의 파문은 일파만파로 번져 다른 몇몇 아마 지도자들도 이른바 심판비를 거둬 심판에게 건네준 사실을 증언했다고 일부 언론은 보도했다. 농구협회 또한 "그동안 관련 소문이 많았지만 과장된 경우가 많았다"고 부분적으로 사실을 인정하며 집행부 임원 전원이 사퇴하고 진상 조사를 벌이는 등 사태 수습에 나서고 있다.

이 사건은 그동안 소문으로만 맴돌던 ‘농구 심판이 돈을 받고 학생스포츠의 승부조작 청탁에 응한다’는 사실이 처음 확인된 것이라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의식 있는 농구인들 또한 “그간 아마추어 농구계에 심판의 금품수수가 만연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프로 농구에서도 3년 전 승부 조작 파문이 일었다. 2004년 3월 18일 대구실내체육관에서 치러진 오리온스와 LG의 6강 플레이오프 3차전 때다. 4강 진출을 향한 마지막 길목이었던 이 경기에서 오리온스는 경기 초반부터 심판들의 무더기 오심의 희생양이 되며 곤경에 빠졌다. 결국 오리온스는 “오심이 아니라 승부조작이었다”고 주장하며 급기야 팀 해체라는 극단적인 카드까지 빼드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한동안 잠잠하던 ‘판정 논란’이 올 시즌 다시 불붙고 있다. 특히 관중들이 경기장을 쉽게 찾고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지난 설 연휴 기간 벌어진 프로 농구 경기는 화끈한 명승부는커녕 심판판정에 대한 불신만 키우는 계기가 됐다. 선수와 심판들 간에 고성과 욕설, 그리고 테크니컬 파울과 퇴장 등이 난무하는 추태가 잇달아 빚어진 것.

이번에 심판 폭행 사건으로 파문을 일으킨 LG의 외국인 선수 파스코는 지난 2월에도 한 차례 심판 판정과 관련, 폭발을 예고했다. 2월 16일 잠실서 열린 삼성전에서 파스코는 4쿼터 종료 4분 18초를 남겨두고 삼성 올루미데 오예데지의 덩크슛을 블록하는 과정에서 파울이 선언되자 심판에 거칠게 항의, 거푸 테크니컬 파울을 받고 퇴장당한 것.

다음날인 17일 부산서 열린 경기에서는 KTF의 애런 맥기가 4쿼터 종료 3분을 남기고 파울 판정에 격분해 공을 바닥에 거칠게 내팽개치는 행동으로 테크니컬 파울을 받고 퇴장당했다.

삼성의 서장훈 또한 설 연휴 마지막 날인 19일 안양서 열린 KT&G와의 경기에서 경기종료 1분 22초 전 자신을 밀착 마크하는 단테 존스의 파울성 수비를 불어주지 않는 심판에 거세게 항의하다가 역시 테크니컬 파울을 받고 코트에서 쫓겨났다.

특히 서장훈은 퇴장을 선언 받자 목에 찬 보호대를 거칠게 풀어서 내팽개친 것은 물론, 코트를 떠나는 순간까지 관중석에도 들릴 정도로 심판을 향해 고성과 폭언을 그치지 않았다. 설 연휴 모처럼 남녀노소 가족들끼리 농구 코트를 찾았던 팬들이 보기에도 민망한 장면이었지만 이는 그간 심판 판정에 대한 불신의 골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준 하나의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올 시즌을 결산하는 축제의 무대가 되어야 할 프로 농구 플레이오프에서는 외국인 선수들의 거친 매너와 돌출행동이 최근 이어졌다. 심판을 폭행한 파스코만이 아니고 단테 존스는 공을 걷어찼고 애런 맥기는 심판에게 폭언을 퍼부었다. 직전까지도 테크니컬 파울과 퇴장, 거친 욕설과 고성이 오가던 코트는 파스코의 심판 폭행 사태를 예고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심판 판정을 둘러싼 잡음은 비단 프로 농구에서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 시즌 프로 배구 V리그에서 또한 몇 차례 갈등이 불거졌다. 여자부 경기에서 흥국생명의 김연경은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당하고 경기장을 나서면서 심판에게 욕설을 내뱉는 볼썽사나운 장면을 연출했다.

또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다투는 남자부 현대캐피탈과 대한항공의 경기에서는 김호철 감독이 심판 판정에 불복, 선수들을 벤치로 불러 들이는 등 반발하며 경기가 30분 가량 지연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여자부 챔피언 결정전에서 흥국생명도 심판 판정에 수긍할 수 없다며 역시 30분 가까이 경기가 지연되는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비슷한 판정 시비이고 판정 불복이라 하더라도 농구와 배구는 천지 차이다. 배구와는 달리 농구에서의 퇴장은 해당 경기 출전이 불가능해 팀의 승패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배구의 경우 퇴장명령이 나오면 해당 세트 경기만 출전할 수 없어 상대적으로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편이다.

때문에 프로 농구에서는 용병이나 주축 선수 한 명의 퇴장이 경기의 승패를 결정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지난 플레이오프에서 공교롭게도 승부처에서 주력 선수들을 (퇴장으로) 잃어버린 세 팀은 이후 이렇다 할 반격의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씁쓸한 패배를 감수해야만 했다.

배구에서 심판 판정에 대한 이의 제기가 심하게 행해졌다고는 하지만 농구와 달리 경기 결과나 승패에 대한 불만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프로 배구는 또한 지난 수년간 심판 판정의 시시비비를 줄이고자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프로 배구 심판들에게 '음주 테스트'를 도입한 것이 단적인 예. 한국배구연맹(KOVO)은 2005년 시즌부터 심판들을 대상으로 한 '알코올 테스트'를 실시하고 있다. 스포츠 심판들을 대상으로 운전자 음주 측정과 같은 알코올 테스트를 실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김건태 심판부장은 "경기 시작 45분 전에 주·부심을 대상으로 혈중 알코올 농도를 측정해 0%가 나오지 않으면 당일 경기를 맡아 진행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며 "음주 등의 이유로 체력과 정신이 온전하지 않을 때 있을 수 있는 오심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배구연맹은 일단 주ㆍ부심에게 테스트를 먼저 시작했는데 지금은 선심으로까지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배구연맹은 또 매번 경기가 끝나면 심판들이 모여 비디오를 다시 보며 판정에 관해 토론한다. TV 경기 테이프를 통해 발생했던 오심을 확인하고 다음 경기부터는 오심을 줄이려는 노력을 벌이고 있는 것.

그 결과 프로 배구 원년에는 경기당 오심이 1.1개였는데 지난 시즌은 0.6개로 줄었고 이번 겨울 시즌에는 0.325개로 더 줄었다. 연맹 차원에서 오심을 줄이고 그로 인한 마찰을 최소화하자는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프로 농구에서와 달리 프로 배구에서는 심판에 대한 불신이나 불만이 상대적으로 깊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다. 프로 농구도 벤치마킹해야 하지 않을까.


주간한국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