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근무 직위는 기재하지 않지만 상장사 임원직은 예외 두기도뿌리찾기 트렌드로 새롭게 주목… '인터넷 족보' 시대도 열려

족보제작 업체 엔코리아 최용석 사장이 족보에 대한 접근성이 용이한 전자족보를 설명하고 있다. 임재범 기자
구시대의 유물로만 여겨졌던 족보가 요즘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국제적으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국내외적으로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려는 경향이 늘고 있고 시대의 흐름에 맞게 전자족보, 한글을 병기한 족보 등이 일반화하면서 젊은이들도 손쉽게 족보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앨범이나 인터넷상에 ‘개인 족보’를 만드는 추세가 증가하는 것도 ‘신족보문화’를 형성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족보란 한 종족의 혈연관계를 부계(父系)를 중심으로 기록한 계보(系譜)를 말한다. 족보에는 종족의 문벌과 선조의 가장(家狀), 행적(行蹟) 등이 담경 있어 씨족의 역사책이라 할 만하다.

족보는 원래 중국의 6조(六朝)시대에 왕실의 계통을 기록하면서 시작되었다. 개인이 족보를 갖게 된 것은 한(漢)나라 때 관직 등용을 위해 과거 응시생의 내력과 조상의 업적 등을 기록한 것이 시초이다. 특히 중국 북송(北宋)의 문장가인 소순(蘇洵), 소식(蘇軾), 소철(蘇轍) 형제들이 만든 소씨족보는 그 후 모든 족보의 표본이 되었는데 한국의 초기 족보도 이를 모방하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족보는 중국에서 탈피 독창적인 체계를 갖추었다. 성과 본관은 가문을 나타내지만 이름은 가문의 대수를 나타내는 항렬과 개인을 구별하는 자로 구성되어 있는 점이 그러하다. 성명은 개인 구별은 물론 가문의 계대(系代)까지 포함하고 있는데 이것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한국만의 독창적인 작명법이다.

내용은 시조로부터 차례로 한 세대에 한 칸씩 내려쓰며, 항렬이 같으면 같은 난에 쓴다. 여기에 명(名)ㆍ자(字)ㆍ호(號)ㆍ시호(諡號)를 쓰고, 생몰 연도와 간지ㆍ월일을 쓴다. 관직이라든가 호는 물론 과거에 합격한 사실 등 개인의 경력을 기록하고 배우자의 관(貫)과 성씨 및 부와 조부의 관명과 생몰 연월일도 기록한다. 이밖에 묘지 위치, 후계자 유무, 양자를 들인 것인지 아들을 양자로 보낸 것인지, 또는 적자와 서자, 아들과 사위를 구별하기도 한다

이는 미국 및 유럽의 족보가 왕실계통이나 일부 귀족의 것을 빼 놓고는 대개 자기 집안의 가계를 간략하게 기록한 가첩(家牒)에 지나지 않는 것과 구별되고 규모의 방대함이나 내용의 정밀함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족보를 훨씬 뛰어넘는다.

우리나라의 족보는 고려 시대에 왕실이나 귀족들이 족속의 보첩을 제작한 기록이 있지만 체계적인 형태의 족보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조선 초기다.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족보는 1476년(성종7)에 제작된 ‘안동권씨 성화보(安東權氏 成化譜)’로 이후에 1565년(명종20) ‘문화유씨 가정보(文化柳氏 嘉靖譜)’가 혈족 전부를 망라하여 간행되면서 이를 표본으로 하여 명문 세족에서 앞을 다투어 족보를 간행하였다. 그 결과 17세기 이후 여러 가문으로부터 족보가 쏟아져 나오게 되었으며 대부분의 족보가 이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조선 초기의 족보는 일반적으로 사위나 외손도 그 성을 기재했으며 아들ㆍ딸(딸은 사위 이름으로 기재)의 기재 순위는 출생 순위, 즉 연령 순으로 기재했다. 특히 친손과 외손을 차별하지 않고 동등하게 기재했다. 반면에 조선 후기의 족보는 출생 순위와 관계없이 언제나 아들을 먼저 기재하는 '선남후녀'였다.

종래의 족보는 시조를 중심으로 고위관직에 오른 조상이 만든 파조(派祖), 또는 지역 입향조(入鄕祖, 흔히 中祖) 순으로 구성됐다. 족보 중에선 대동보(大同譜)가 가장 중시됐고, 파보(派譜), 가승보(家乘譜) 등이 만들어졌다.

오늘날은 과거와 관직의 개념이 달라 조선시대에는 종1품에서 종9품, 정1품에서 정9품의 관직을 모두 족보에 올렸지만 현대 족보는 공무원 5급을 기준으로 그 이상 직급을 기재하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군인은 영관급(소령) 이상, 국회의원, 사법ㆍ행정고시 합격자 등은 족보에 관직이 기재되지만 일반직 공무원은 빠진다.

공인회계사 등 자격증 소지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고 기업의 경우 기재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지만 에외적으로 상장기업의 임원을 기재하는 경우가 있다.

현대 사회에서 핵가족화, 개인화 추세가 가속화하면서 족보도 대동보의 비중이 줄어들고 파본, 가승보를 선호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족보 전문출판사 ‘가승미디어’의 이병창 사장은 “종중에서는 종족의 단합을 위해 대동보를 중시하지만 종원들 중엔‘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파본이나 가승보만 갖추려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가승보를 선호하는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다고 한다.

재벌이나 경제적 이유가 있는 사람들 중엔 그들만의 가승보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D그룹 K 전 회장이나 H그룹 J 전 회장의 경우 장기 보존을 위해 한지로 족보를 만들기도 했다.

인터넷의 발달과 개성을 중시하면서 파격적인 족보(특히 가승보)가 늘고 있는 것도 요즘 추세다. 즉 전통적인 형태가 아닌 앨범이나 인터넷상에 족보를 만들고 방식도 자식에서 부모-조부모로 나아가는 미국식 족보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

따라서 족보 전문업체에 족보 제작을 의뢰하는 대신 스스로 족보를 만들고 내용도 혈액형, 키, 몸무게 등 신변 사항부터 시시콜콜한 사항까지 올리는 게 특징이다.

최근 족보의 또 다른 경향은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평등하게 기록한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이 직업을 갖는 경우가 보편화하면서 여성의 직업이 기재되거나 결혼을 할 경우 조선 시대에는 출가외인으로 이름만 기재했으나 요즘은 생년월일까지 적는다.

최근 풍양 조씨와 강릉 김씨 일부처럼 족보를 성경처럼 제작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즉 족보에 가죽을 입히고 좀이 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금물을 입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요즘 족보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전자족보’다. 과거 활자판 족보가 비경제적인데다 젊은 층이 접근하기 어려워 전자족보화 경향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전자족보는 가승미디어가 2001년 언양 김씨 족보(대동보)를 디지털화해 선보인 뒤 대세를 이루고 있다. 국내 족보 출판사의 산증인이기도 한 대전의 회상사를 비롯 대구의 대보사, 광주의 낭주인쇄소 등도 전자족보에 비중을 두고 있다.

그중에서 서울의 ㈜엔코리안은 가장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전자족보 전문출판사다. 엔코리안은 신개념 멀티미디어 전자족보를 제작할 수 있는 통합 전자족보 시스템을 개발, 국내 유일하게 국가인증을 받기도 했다.

낭주인쇄소 최영배 사장의 아들인 최용석 대표는 “독자적인 기술력으로 방대한 자료인 족보를 컴퓨터 상에서 관리가 용이한 데이터베이스로 제작해 한글 이름으로 개인족보 정보를 검색해 볼 수 있는 이름검색, 이름으로 촌수를 계산해주는 촌수 계산, 족보를 한눈에 보여주는 가계도 검색 등 누구든지 쉽게 자신의 족보를 찾아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족보유기코드시스템을 개발했다”면서 “베이징에 지사를 두고 있는데 기술력을 앞세워 중국 족보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국내 족보시장은 전자족보가 일반화하면서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 과거 명성을 누렸던 회상사, 대보사, 낭주인쇄소 등이 기술 개발을 소홀히 해 뒤처지는 반면 가승미디어, 엔코리안 등이 새로운 강자로 등장하고 있다. 엔코리안은 2003년부터 시제품을 출시, 최근까지 40여 개 문중에 전자족보 약 15만 개를 납품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이병창 사장은 “우리나라는 260여 성, 2,600여 개의 본관(本貫), 1만8,000여 파(派) 가 있는데 한 해 약 3% 남짓 계약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중이 족보를 제작하는데 들이는 금액은 대개 3억~5억원 정도라는 게 이 사장의 설명이다.

족보는 씨족의 역사를 넘어 하바드대 엔칭도서관에서 한국을 이해하는 최고의 자료(마이크로필름)로 평가받고 있으며 최근 전 세계 동포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로 활용되고 있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