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영화시장, 할리우드화 고착으로 치명적 타격

<스파이더맨3>로 시작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돌풍에 세계 영화 시장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모두 107개 국가에서 개봉한 <스파이더맨3>는 개봉 당일 107개 해외 박스오피스에서 전부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며 ‘할리우드의 괴력’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할리우드 영화가 발붙이지 못했던 유일한 국가인 인도마저 <스파이더맨3>의 침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는 미국 일간지의 보도는 세계 영화 시장에 공통된 ‘위기 의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스파이더맨3> 현상이 단순한 흥행 돌풍 수준을 넘어 전 세계 영화 시장이 할리우드에 잠식된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이미 전 세계 영화 시장의 90%를 할리우드가 장악한 지는 오래. 이쯤 되면 나날이 커져만 가는 ‘할리우드’의 영향력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영화 시장이 함께 풀어야 할 숙제인 셈이다.

이 중 각국 영화시장에서 ‘할리우드화’가 고착될수록 국내 영화산업이 얼마나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멕시코의 사례는 한국 영화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반면교사이다. 멕시코 영화의 전철을 되짚어본다.

멕시코 영화는 한국보다 40여 년 정도 앞선 1960~70년대 일찍이 황금기를 맞이하며 세계 무대에서 그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이후 30년 동안 길고 긴 침체기를 겪은 멕시코 영화는 1990~200년대 초반 다시 한번 르네상스 부활을 꿈꾸며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1992년 < 달콤 쌉싸름한 초컬릿(como agua para chocolate) >을 시작으로 2000년 < 아모레스 페로스(amores perros) >, 2001년 < 이투마마(y tu mama tambien) > 등이 모두 이 시기에 쏟아져 나온 수작들이다. 그 결과 멕시코는 역량 있는 젊은 감독을 배출하며 세계 시장에 ‘멕시코 영화’를 알리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자국 내에 젊은 감독들이 활동할 만한 산업여건을 조성하는 데 실패한다.

멕시코 영화산업 몰락의 결정적 계기는 1994년 미국·캐나다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이후 98년 스크린쿼터를 100% 폐지하고 완전히 ‘할리우드화’된 영화산업 시스템에서 멕시코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와 정면승부를 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다름 없었다. 멕시코 영화는 고사되어갔다.

1990년대 매년 약 50편을 생산하던 멕시코 영화산업은 스크린쿼터 폐지 이후 약 10편 가량의 영화만 겨우 제작해 명맥만 유지하는 실정으로 추락했다. 소수의 영화조차도 현재는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1년 넘게 간판을 걸지 못하는 작품이 수두룩하다.

좋은 감독과 작품성으로 ‘멕시코 영화’의 가능성은 인정받고 있으되 자국 영화산업은 완전히 죽어버린 멕시코의 선례는 한국 영화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멕시코 과달라하라 CEIS(영화산업연구소 및 영화인양성학교)의 후안 카를로스 바스케스 막도나도 교수는 “영화산업 시스템의 급속한 할리우드화가 멕시코 영화산업 시장의 위축을 가져 온 결정적 이유”라며 “수익성이 보장되는 장르의 영화들만 재생산되면서 영화의 다양성이 줄어들고, 이에 염증을 느낀 관객이 극장을 외면하면서 영화 투자가 점점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바스케스 막도나도 교수는 특히 “한번 죽어버린 국내 영화 산업을 살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할리우드 시스템을 적절히 도입해 한국 영화 산업의 발전을 이끌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같은 시스템이 고착화되면 할리우드 영화에 잠식 당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것 또한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할리우드의 거대한 자본 앞에서 한국 영화산업을 지키는 것이 한국 영화 발전을 위한 첫걸음이다”며 “한국 영화계에서 먼저 지금의 위기를 인식하고 대응을 잘 해나간다면 이 같은 위기는 향후 한국 영화의 더 큰 발전을 위한 ‘성장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1,000만 관객시대 잔치의 그림자
규모·자본의 싸움이 부른 위기

2004년 2월 19일.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가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1,000만 관객 시대의 문을 연 날이다. 개봉한 지 단 58일 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그야말로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문 연 시기였다. 하지만 그해 5월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지금의 한국 영화 현실을 예측이라도 하듯 ‘한국 영화 산업의 위험 요소’를 지적했다.

뉴스위크는 ‘동쪽의 할리우드(Hollywood East)’라는 커버스토리에서 <태극기 휘날리며>,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등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의 성공을 집중 보도했다.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 시스템을 적절히 도입한 것이 한국 영화의 발전을 가져왔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그러나 기사는 바로 이 점이 ‘한국 영화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할리우드 시스템을 도입한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등이 연이어 성공을 거두면서, 영화 몇 편이 아니라 한국의 영화 산업 전체가 할리우드화하고 있다는 데 가장 큰 문제가 있다고 제기했다. 이로 말미암아 한국 영화 산업이 수익성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둔 나머지 실패작의 경우 너무 일찍 그리고 너무 자주 싹을 자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

이 같은 영화의 다양성 상실은 결국 영화 시장의 침체를 불러오는 악순환의 시작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사는 또 영화 산업이 ‘규모의 싸움’ 혹은 ‘자본의 싸움’으로 변질되면서, 자본을 끌어들이기 쉽도록 영화사들 간 인수합병에 골몰한 것도 할리우드화가 낳은 부작용이라고 덧붙였다.

뉴스위크가 예견한 할리우드화의 부작용은 3년이 지난 지금 한국 영화 산업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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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흔 객원기자 lunallena99@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