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다한 제작비로 '밑지는 장사'… 부가판권 시장 확대 등 판 다시 짜야한정된 시장에 다작 위주의 제작관행으로 파이 작아져, 사업 다각화 시급

한국 영화가 위기라면 위기의 근원은 무엇일까. 미국 영화 때문일까, 아니면 흥행몰이할 스타가 없어서일까. 결론은 ‘한국 영화로는 투자한 돈만큼의 수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한마디로 많은 돈을 들여 영화를 만들지만 극장을 찾는 관객 수는 턱없이 부족하고 또 벌어들이는 수입은 투자액만큼 못 미친다는 것이다.

제작 편수가 줄고 투자자들도 등을 돌리는 지금의 위기 징후들은 따지고 보면 한국 영화의 경쟁력 부재에서 비롯된 셈이다. 한 투자자는 “영화도 하나의 산업인데 산업이 존재하려면 수익이 받쳐줘야 하는 것은 상식 아니냐”라며 영화계에서도 이제 시장 원리가 적극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 한국 영화 시장의 대차대조표는 지난해까지 상당한 투자를 했지만 결산을 해 보니 먹을 게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영화 제작사인 아이필름을 운영하면서 영화제작가협회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오기민 대표는 “몇 년 전부터 위기라는 지적은 있었지만 이번에는 절대 위기이다”며 “필요 이상의 위기감을 갖는 것도 문제지만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경고음에 진지하게 귀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극장과 수입배분 문제 현실화 해야

오 대표는 위기 타개를 위한 해법으로 우선 영화 제작 비용의 절감을 1순위로 거론한다. “일본과 한국 영화 중 제작비가 어느 나라가 더 많이 드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일본보다 훨씬 더 많이 듭니다.” 일반적으로 일본 영화 한 편의 제작비는 20억~30억여 원 선. 우리나라 영화 평균 제작비는 50억원으로 추정된다. 일본은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여기에다 일본의 인구 수가 우리의 3배라고 잡으면 일본은 영화 시장 규모가 우리 보다 3배 더 큰 셈이다. 입장료가 한국의 2배인 것까지 감안하면 절대 금액면에서 시장은 6배 차가 난다. 또 한·일 양국의 경제력 격차, 소득 수준까지 감안하면 차이는 더 벌어진다.

또 극장 상영 수입에 절대 의존하는 우리와 달리 일본은 부가판권 시장 수입도 만만치 않아 이것저것 감안하면 일본 영화 시장 규모가 10배 이상 큰 것으로 볼 수 있다. 오 대표는 “애당초 한국 영화 시장이 작고 그만큼 수입도 작은데 제작비는 훨씬 많이 든다는 것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라고 못박는다.

제작비 절감이 ‘절대 생존을 위한’ 수동적인 방안이라면 수익 창출 및 극대화는 공격적인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다. 오 대표는 “이제 한국 영화 시장에서 다반사가 돼버린 불법 영화 파일 다운로드의 폐해를 막고 부가판권 시장을 살려야만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불법 다운로드 시장을 양성화시키고 주문형비디오(VOD) 시장을 키워나가는 것이 그가 제시하는 실천 방안이다. 미국이나 일본은 불법 파일 시장이 철저히 통제되기 때문에 영화 제작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의 50% 가량이 이들 부가판권 시장에서 발생한다. 한국은 기형적으로 80% 이상 영화관 관람 수입에만 의존하는 실정.

영화제작가협회 장동찬 사무차장은 위기 타개책으로 새로운 대체 윈도를 제시한다. 오프라인 극장 의존도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다른 윈도가 필요한데 IPTV나 디지털 케이블TV가 새로운 파트너십으로 가능하다는 것.

이를 위해 현재 영화 한 편당 1,800원 수준인 요금도 조정돼야 하고 과금체계 시스템도 개발될 필요성이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이는 또 나아가 영화를 보며 쇼핑이나 광고를 할 수 있는 T커머스가 영화와 결합될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하게 되는 부수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영화 사업의 다각화 방안이다.

영화인들은 영화로 벌어들이는 수익을 적절히 나누는 방안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극장과의 수입 배분 비율인 부율 문제. 외화는 보통 제작사와 극장이 6 대 4 비율로 수입을 나누지만 한국 영화는 5 대 5로 공히 나눠 갖는다.

이는 과거 스크린 쿼터제란 방패막이 있을 때 한국 영화를 극장 측에서 애써 틀어주는 만큼 대신 수익을 더 양보한 결과라는 것이 영화제작사 측의 입장이다. 하지만 스크린 쿼터가 사실상 풀려 자유경쟁체제가 돼버린 지금은 한국 영화도 외화와 동등하게 5 대 5로 수입을 나누는 동등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것.

투자자들은 특히 현재 4 대 6의 비율인 제작사와 투자사의 수익분배 구조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제작사들이 가져가는 이익만큼 책임감이나 정성을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또 제작사는 수익이 나면 비율대로 꼬박꼬박 챙겨가는 데 비해 투자 실패에 대한 책임은 거의 지지 않는다. 하지만 투자사들은 실패로 인한 손실을 고스란히 짊어지는 데다 펀드 구성에서도 손실에 대해 가장 먼저 책임을 져야만 하는 실정이다.

영화 제작 편수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국내에서 한 해 1인당 영화를 관람 횟수가 3편인 것을 감안하면 한정된 시장에서 많은 영화가 나눠먹으려 들기에는 워낙 파이 규모가 작다는 것.

그렇다고 1년 영화관람 횟수를 3편에서 4편으로 늘리는 것도 마냥 쉬운 것만은 아니다. 때문에 국내 시장에서 평균 영화 제작 건수가 1년에 60건 내외가 적정수준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특히 과거 <괴물>이나 <왕의 남자>처럼 특정 대박 영화로만의 쏠림 현상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다.

대박·쪽박으로 빈익빈 부익부 심화

단적으로 지난해 두 개의 대박 영화가 히트하고 108편이 제작됐지만 한국 영화계는 오히려 황폐화됐다. 반면 2005년 1,000만 관객 동원까지는 아니지만 여러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을 때 한국 영화 시장은 안정세를 보였다. 한 해 평균 2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드는 영화 10여 편 이상이 나타나는 것이 시장 전체 면에서 투자자나 제작사 모두에게 바람직한 구도라는 것.

영화 시장의 새판짜기 구상도 제기된다. 일례로 여러 회사들이 헤쳐 모여 큰 회사로 태어나면서 경영과 재정을 분리하는 방안이다. 장동찬 사무차장이 주장하는 ‘충무로 대연합’ 시도다.

마지막으로 한국 영화 위기 탈출을 위해 정부의 역할도 강조되고 있다. 지금이 위기라면 앞으로 닥칠 상황은 더 큰 위기일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 지금까지 거론된 불합리한 사항들을 시정하고 새판짜기를 이끌어달라는 게 영화인들의 바람이다.

박경필 영상투자협의회장은 “지금 영화 시장은 영화인들만의 힘으로 스스로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본다”며 “정부가 실기하지 말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정자로서 새로운 틀을 짜는데 역할을 담당해줬으면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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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식 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