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경필 영상투자협의회 회장2006년 개봉 한국영화 80%가 적자, 투자사 수익성 악화로 투자 위축

“제가 하는 어떤 얘기이든 다 한국 영화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잘 해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하는 것입니다.”

투자, 제작, 배급, 상영, 부가판권 등으로 이뤄지는 영화계의 5대 축 가운데 첫 바퀴격인 투자 파트를 대표하는 영상투자자협의회 박경필 회장은 “한국 영화가 단기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긍정적 시각을 갖고 나가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영상투자자협의회는 영화진흥위원회와 중소기업진흥공단 등의 자금 지원을 받아 조합 형태를 결성한 24개 창업투자회사(창투사)의 협의체로 CJ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등 투자배급사들과 함께 한국 영화 투자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

“솔직히 지난해 스크린 쿼터가 축소될 때만 해도 별 거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스파이더맨3>의 스크린 장악 현상을 보고서 스크린 쿼터제란 보호막 철거가 투자자에게도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고 실감했지요.”

지난 한 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80% 이상이 손익분기점을 못 넘겼고, 올 1분기 실적도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그 자신 역시 창투사인 아이벤처투자주식회사를 이끌고 있는 박 회장은 “투자배급사든 창투사든 한국 영화 투자자들은 더 이상의 손실을 방기해서는 안 될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위기감을 전했다.

“지난해 한국 영화 시장에서 1,000억원의 손실을 봤다면 올 상반기에만도 어림잡아 500억원은 되지 않나 싶습니다. 웬만한 창투사마다 지난해와 올해 초까지 20~30% 가량 투자 손실을 보았기 때문에 향후 투자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한국 영화 시장의 자금줄은 올 초 극심한 가뭄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투자자들이 쉽사리 돈을 대지 않는 것. 박 회장은 “주요 투자 배급사들마저 수익성이 극도로 악화돼 지금처럼 한국 영화 투자가 위축된 적은 없었다”고 지적한다. 올해 개봉된 작품들도 이미 지난해 제작을 완료해 대기중이었던 것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투자가 감소하면서 한국 영화 제작 편수가 줄어드는 것도 필연적인 현상이다. “올해 개봉하는 한국 영화는 지난해 108편에 훨씬 못 미치는 60편 정도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제작사들은 70~80편도 예상하고 있는데 글쎄요.”

박 회장은 지난해 한국 영화 제작이 100편을 넘은 것은 시장 규모에 비해 과도하게 많은 비정상적 현상이라고 일축한다. 우리 나라 인구와 관람 가격 등을 감안할 때 한 해 60여 편만 제대로 만들면 영화 시장에 무리한 충격이 가해지지 않고 굴러갈 수 있다는 계산이다.

“노벨상 수상할 수 있는 정도의 시나리오라면 투자를 해보겠습니다.” 박 회장이 일하고 있는 아이벤처 역시 올해 투자한 한국 영화는 한 편도 없는 형편이다. “투자를 안 하려는 것이 아니고 다만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것일 뿐”이라는 그는 “지난해처럼 여러 작품이 중구난방식으로 돈을 쏟아붓기보다는 적당한 작품이 나타날 때 대신 크게 베팅할 것”이라고 털어놨다.

스크린 쿼터를 비롯, 한국 영화가 안고 있는 문제들은 수두룩하다. 하지만 박 회장은 “무엇보다 한국 영화 위기의 실체는 ‘뒤떨어지는 기획력’이다”고 못박는다. 스토리를 구성하고 작품을 기획하는 능력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기에는 턱없이 미진하다는 평가에서다. 조폭 영화가 뜬다고 우르르 조폭 영화 시나리오가 몰려들고 일본 콘텐츠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구태가 지금처럼 다반사로 일어나서는 결코 발전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다.

“어느 정도 다시 투자가 활성화될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처럼 마구잡이식 투자는 다시 일어나기 힘든 현상입니다.” 박 회장은 “우리나라 영화 시장은 매년 훌륭한 배우와 감독이 출현하는 등 저변이 넓어 아시아 시장에서도 기반이 매우 투텁다”고 분석하면서 “위기를 돌파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을 뿐 미래를 밝게 본다”고 희망을 피력했다.

“그렇지 않고서 지금 우리 영화 얘기할 필요가 있나요? 인터뷰할 것 없이 저도 짐 싸서 영화판을 떠나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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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식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