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10%만 수술 필요하다는데… 척추병원 우후죽순 환자 유치경쟁 치열, 일부 병원 과잉 치료 의혹수술, 후유증·증상 악화 호소 잇달아… 의료분쟁 연평균 31% 늘어

“척추외과 의사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척추 수술이 늘어난다. 그러나 이것이 척추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웨덴의 척추외과 의사 나켐슨(Nachemson)의 말이다. 척추 수술의 남용에 대한 경고다. 문제는 이러한 경고가 ‘물 건너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데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척추 수술 건수도 매년 비약적인 증가 추세에 있다. 과연 갈수록 늘고 있는 척추 수술이 적정한 것인가. 혹시 일부 병원들이 돈벌이에 눈멀어 수술을 오·남용하는 것은 아닐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척추 수술의 의혹 속으로 들어가본다.

■ "수술하면 거뜬" 유혹에 낭패보는 사례 많아

지난해 주부 이 모(43) 씨는 운동 중 허리 통증을 느껴 서울의 한 척추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 디스크였다. 의사는 “수술로 1주일이면 나아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으니 고생하지 말고 빨리 수술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수술 후 통증은 더 심해졌다. 저림 증상과 통증으로 걷기조차 어려워졌다. 병원에 항의하자 “시간이 지나면 나으니 기다려보라”고 했다. 별 도리 없이 통증을 참으며 통원 치료를 받았지만 진전이 없었다.

그렇게 넉 달간 통증에 시달리던 이 씨는 결국 병원을 옮겨 다시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다리 저림 증상은 좋아졌지만, 오른쪽 다리의 근육 위축이 지속되고 있는 상태다. 이 씨는 최근 처음 척추 수술을 한 병원을 상대로 ‘정확한 검진 및 처치 미흡’으로 고소했다.

김 모(76) 씨는 3년 전 척추 수술로 아내를 잃었다. 고혈압, 당뇨 등 노인성질환으로 고생하던 김 씨의 아내는 “최신 의료기술의 발달로 노인의 수술도 안전하다”는 병원 측의 말만 믿고 수술을 받았다가 감염이 뇌까지 번져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가 결국 6개월 뒤에 사망했다. 김 씨는 “내 발로 걸어 들어간 사람이 병실에서 고생하다 6개월 만에 영구차로 나왔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척추수술을 둘러싼 의료사고 분쟁이 매년 늘고 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척추수술 관련 피해구제 접수 건수는 1999년(4월부터) 8건, 2000년 15건, 2001년 32건, 2002년 50건, 2003년 59건으로 연평균 31%의 증가율을 보였다.

척추 수술 후 발생한 부작용으로는 수술 효과가 미흡하거나 재발한 경우가 44건(26.8%)으로 가장 많았다. 신경이나 조직이 손상된 경우도 40건(24.4%)이나 됐다.

이뿐이 아니다. 부작용 때문에 치료 후에도 증상이 악화되어 마비 등의 장애가 남은 경우가 89건(54.2%), 심지어 사망한 경우도 8건(4.9%)이나 발생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의 관계자는 “척추 수술 환자의 경우 수술 후 악화된 결과를 놓고 항의하지만, 의료사고 특성상 의사의 명백한 과실을 입증하지 못할 경우 충분한 보상을 얻기가 어려우므로 수술 전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척추수술 왜 늘어나는가?

2002년 이후 서울 강남 일대 등에는 척추병원들이 속속 들어섰다. 자연히 병원 간 환자 유치 경쟁도 치열하다. 특히 강남에는 영동세브란스병원을 기점으로 청담동, 논현동, 서초동, 반포동에 걸쳐 불과 반경 3~4km 거리에 부챗살 모양으로 병원이 빼곡하게 포진하면서 ‘척추 전쟁’이 벌어졌다는 말까지 돈다. “척추 수술이 새롭게 의료계의 ‘블루오션’으로 뜨고 있다”는 속설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건강보험연구센터가 2002년 1월~ 2005년 9월까지 요양급여 명목상 척추수술 입원 건수 22만 5,229건을 분석한 결과, 해마다 두 자릿수의 급증세를 보였다. 2002년 4만 1,593건에서 2004년 6만 6,933건으로 불과 2년 사이 무려 61%나 크게 늘었다. 2005년에는 9월까지만 6만 건을 넘었다.

시술 요양기관 수 추이를 살펴보면, 일반병원급 의료기관의 경우 2002년 1월 33곳이었던 데 반해 2005년 9월에는 177곳으로 5배나 급증했다. 종합병원급 의료기관도 75곳에서 169곳으로 증가했다. 주로 시행하는 수술 유형은 ‘추간판제거술’(3만 9,494건, 2005년)이고, 다음으로는 ‘척추고정술’(2만 3,107건)이 뒤를 이었다.

건강보험연구센터 강임옥 박사는 “현재 나타나고 있는 척추 수술의 증가 추이가 의학 발전에 의한 것인지 다른 원인인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특정 의료기관이나 특정 유형의 수술이 척추 수술 증가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 신종 척추 수술 범람 '과잉 진료' 의혹

이러한 척추 환자들의 급증은 의사들의 ‘과잉 진료’ 의혹을 사고 있다. 최근 척추질환 치료 분쟁의 증가는 4~5년 사이 급격히 늘고 있는 척추 수술 건수와 맞물린다. 수술 대상이 아닌 환자에게 수술을 강권하거나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신종 치료법들이 판치면서 의료분쟁으로 번지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의료 전문가들은 척추 수술에 대한 과잉 진료 여부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 쉽게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5분이면 디스크를 깨끗하게 완치될 수 있다”는 등의 과장·과대 광고로 환자들을 현혹하는 일부 병원들의 행태에 대해서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것에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조은병원 배장호 원장은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기존의 수술 방법을 사용하여 시술했을 경우 의료사고가 나면 병원측은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20~30%를 삭감당해 손해를 입게 되지만, 건강보험이 적용 안 되는 신종 수술의 경우 환자로부터 고액의 비용 전액을 받을 수 있어 일부 병원에선 이러한 시술법을 선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척추질환 치료의 중심을 ‘수술’에 두는 분위기도 문제다. MRI(자기공명영상법) 소견만 가지고 판정하면 40대의 40%, 50대의 50%, 70대의 100%가 허리 디스크라고 진단할 수 있다. 그러나 디스크가 돌출됐다고 해서 모두 신경을 누르는 건 아니다. 별다른 치료가 필요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척추병원들이 늘어나니까 솔직히 경영상 이익을 추구하는 병원들은 수술 위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 척추전문의의 고해성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동세브란스 재활의학과 문재호 교수는 “잘못된 생활습관에서 비롯된 허리병은 대부분 비뚤어진 자세와 생활습관의 근본적인 원인을 바로잡는 것이 최선의 치료 방법”이라며 “이러한 원인은 제쳐두고, 수술로 단번에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전문의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수술이 필요한 환자는 전체 척추환자의 5~10%에 불과하다. 대소변을 보는 힘이 약해지거나 다리를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심각한 마비 증상 등을 보이는 환자에 국한된다.

설사 수술했다 해도 기대만큼의 만족도를 얻기 어렵다는 척추질환의 특성도 척추 질환을 둘러싼 의료분쟁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우리들병원 안용 부장은 “척추 수술은 다른 외과 수술처럼 수술했다고 100% 깨끗하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수술이기 때문에 전문의로부터 수술 후 예상 경과에 대해 충분한 상담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척추질환의 과잉 치료는 수술 분야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이춘성 교수는 “소위 요통을 치료한다는 사람들(의료진이든 비의료진이든)이 거의 없는 아프리카에는 요통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없다”며 의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척추 치료’의 범람을 경계했다.

미국의 요통에 관한 저명한 책인 <맥납(Macnab)의 요통>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미국의 동부 지역과 서부 지역의 동일 숫자의 인구 당 허리 디스크 수술의 빈도를 비교했는데 서부 지역이 동부의 2배였다고 한다. 그 원인을 찾았다. 캘리포니아 사람들의 자유분방한 생활습관 때문일까. 운동을 많이 해서 그럴까. 여러 가지 요인을 검토해봤지만 한 가지 요인을 제외하고는 다 관계가 없었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서부 지역의 척추외과 의사의 숫자가 동부 지역보다 2배 많았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척추 의사가 ‘멀쩡한’ 척추 환자를 양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척추 수술 왜 만족도가 떨어지나

척추 수술은 본전, 대개는 더 나빠진다?

척추 수술을 받으면 얼마나 좋아질까 하는 것은 척추 질환의 종류와 환자의 수술 전 상태에 달려 있다. 허리 디스크 환자가 수술 전에 다리가 저리고 아픈 통증으로 시달렸다면 수술 후에 대부분 통증이 없어지므로 수술 결과에 만족할 수 있다.

반면 고령 할머니가 요통을 고치기 위하여 척추 수술을 받았다면 수술의 만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70세가 넘은 환자에게서 수술로 허리 아픈 것을 고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허리에 별다른 문제가 없어도 70세가 넘으면 소수의 노인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허리가 아프기 때문이다.

일반인의 완벽한 허리 상태를 100점, 척추 수술이 잘 된 경우 85~90점까지 얻을 수 있다고 가정할 때, 현재 허리의 상태가 40~50점인 사람은 수술로 만족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허리의 상태가 70~75점인 사람은 수술을 받아도 만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수술로 고생하면서 얻는 점수가 별로 크지 않기 때문이다.

■ 허리 디스크 왜 재발할까

허리 디스크 수술은 신경을 누르는 돌출된 디스크를 제거하는 것이다. 이때 돌출되지 않은 디스크는 가급적 많이 남겨 놓으려고 한다. 디스크란 원래 척추뼈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하는 구조물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디스크를 가능한 많이 남겨두므로 디스크가 재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신체 다른 부위의 수술도 마찬가지겠지만 척추 수술의 경우 재수술은 첫 번째 수술보다 고도의 술기와 경험이 요구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첫 번째 수술은 관련 분야의 의사라면 누구나 할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쉽지만 재수술은 그렇지 않다. 어떤 의사는 첫 번째 디스크 수술은 편도선 수술과 비슷하지만 재수술은 심장 수술과 같은 집중과 노력을 요구한다고 말한다.

● 사이비 의료 감별법

다음과 같은 경우 잘못된 치료 또는 사이비 치료가 아닐까 의심해 볼 수 있다.

(1) 치료가 어려운 병에 대해 빠르고 완벽한 치료 효과를 보장한다.

(2) 국회의원, 연예인, 운동 선수 등 유명 인사의 완치 사례나 추천을 활용한다. 대부분 의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다.

(3) 과학적 근거가 없다. 왜 나을 수 있는지 잘 설명하지 못한다.

(4)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치료법은 해로우며 자신의 치료법을 안 쓰면 큰일날 것처럼 얘기한다.

(5) 자신의 치료법은 ‘기적’이라면서 치료법의 근거 등을 물으면 비밀이라고 얘기한다.

(6) 현재는 비판받지만 미래에는 인정 받을 것이라거나, 기존 의료계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7) 비용이 턱없이 비싸다.

※참고서적: <상식을 뛰어넘는 허리병, 허리디스크이야기> 이춘성·이춘기 공저, 한국학술정보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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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정기자 hj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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