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감축의무 부여로 주목받는 탄소 배출권 시장, 2010년 1,500억 달러 규모 전망

“온실가스를 줄여 지구온난화도 막고 돈도 벌자.”

지난 5월 초 유엔 산하 ‘정부간 기후변화위원회’(IPCC)는 태국 방콕에서 열린 회의를 폐막하면서 ‘기후변화 완화’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채택했다. 이 보고서는 지구온난화가 불러올 대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온실가스 감축을 더욱 서둘러 향후 8년 후인 2015년부터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시작해야 한다며 인류 생존을 위한 ‘데드라인’을 지구촌에 제시했다.

지구온난화의 어두운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우면서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국제사회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그 중심에는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을 실효성 있게 강제하는 교토의정서가 있다.

교토의정서는 1992년 브라질 리우서 열린 유엔 환경개발회의 때 만들어진 기후변화협약(UNFCCC)에 의거, 회원국들에게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과한 국제 협약이다.

1997년 일본 교토서 열린 제3차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됐으며, 2005년 공식 발효된 이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지구촌 헌장으로 자리잡았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EU), 일본 등 지구온난화에 역사적으로 책임이 많은 선진 38개국은 1차 의무감축 기간인 2008년부터 2012년 사이에 1990년 대비 평균 5.2%의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 반면 개발도상국들은 의무 감축 대상에서 제외됐으며 우리나라도 일단 개도국으로 분류됐다.

교토의정서는 선진국들에게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강제 부여함과 동시에 신축적인 이행을 유도하기 위해 배출권 거래제(Emissions Trading)라는 독특한 제도를 도입했다.

배출권 거래제는 간단히 말해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사고 팔 수 있도록 한 제도.

즉 어떤 국가가 자국에 부여된 할당량 미만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하게 되면 그 여유분을 다른 국가에 돈을 받고 팔 수 있고, 반대로 할당량을 넘겨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밖에 없는 국가는 초과분에 해당하는 배출권을 다른 국가로부터 사들이도록 한 것이다.

온실가스 가운데 배출량이 가장 많은 것은 이산화탄소(CO2)이기 때문에 통상 배출권은 ‘탄소배출권’으로 불린다. 아울러 배출 할당량은 국가별로 주어지지만 실제로 배출에 제약을 받는 것은 산업활동을 하는 일선 기업들이어서 탄소배출권 거래는 주로 기업들 사이에서 이뤄지게 된다.

이 제도는 탄소배출권에 경제적 가치를 부여해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기업들의 자발적인 동참을 이끌어내는 장점을 지녔다. 말하자면 도덕적 의무를 경제적 권리로 치환해 상품처럼 거래되도록 함으로써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당면 과제의 효과적 달성을 꾀한 묘안인 셈이다.

세계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은 2005년 교토의정서 공식 발효 이후 매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2008년부터 감축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선진국 중심으로 신장세가 뚜렷하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2004년 이전 수억 달러에 불과했던 배출권 시장 규모는 2005년 110억 달러를 기록한 뒤 지난해에는 300억 달러로 성장했다. 이런 추세로 가면 2010년에는 1,500억 달러 규모까지 시장이 급팽창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가장 큰 시장이 형성돼 있는 곳은 유럽이다. EU 국가들은 교토의정서 체제에 대비해 미리 역내 기업들에게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과하고 있기 때문에 탄소배출권 거래가 활발하다.

2005년 1월 세계 최초로 배출권 시장(ETSㆍEmissions Trading Scheme)을 연 EU는 현재 세계 전체 거래량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실제 배출권 매매가 일어나는 거래소도 유럽 지역에 6개소가 집중돼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유럽기후거래소(ECXㆍEurope Climate Exchange)가 대부분 거래 물량을 소화하는 가운데 독일, 프랑스, 스페인,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등지에서도 각각 거래소가 운영되고 있다.

유럽 지역 밖에서는 미국과 캐나다, 호주 등 3개국의 거래소가 2차 시장으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올해 중국과 일본에서도 거래소가 추가 개장할 예정이다. 특히 중국의 경우는 기존의 민간 주도 거래소와 달리 유엔의 공인을 얻은 최초의 공식 국제거래소가 될 것으로 알려져 그 역할이 주목된다.

탄소배출권 시장은 배출권 확보 방식에 따라 할당 시장(Allowance Market)과 프로젝트 시장(Project Market) 등 크게 2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먼저 할당 시장은 국가나 기업에게 개별적으로 할당된 배출 허용량을 기준으로 초과분이나 여유분이 있을 때 이를 배출권으로 사고 파는 방식의 시장을 말한다.

이와 달리 프로젝트 시장은 국가나 기업이 온실가스 감축 사업을 벌여 확보한 감축분(Credit)을 거래하는 시장이다. 가령 A국의 B기업이 C국의 D기업에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시설 투자를 한 뒤, 여기에서 발생한 감축량만큼 배출권을 확보해 다른 기업에게 판매하는 사례를 들 수 있다.

교토의정서는 이런 경우를 청정개발체제(CDMㆍClean Development Mechanism) 사업으로 규정해 독려하고 있다. 당초 CDM 사업은 선진국에서 개도국으로의 투자 방식만을 의미했으나 2005년부터 관련 규정이 바뀌어 개도국도 CDM 사업을 통해 얻은 배출권(CERsㆍCertified Emission Reductions)을 거래할 수 있게 됐다. 단 배출권의 최종 이전(판매) 지역은 교토의정서상의 선진국으로 제한을 뒀다.

현재 CERs은 중국에서 전 세계 발생량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은 전체 탄소배출권 시장에서도 가장 큰 손으로 자리잡고 있다.

세계은행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탄소배출권 판매량 순위는 중국 61%, 인도 12%, 브라질 4% 순으로 나타났다. 공교롭게도 고도성장을 구가하는 브릭스(BRICsㆍ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4개 거대 신흥경제 국가) 3개국이 배출권 시장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 반면 배출권을 구입하는 곳은 주로 EU 국가들로 특히 영국이 50% 가량을 사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선진국과 개도국 간에 구매-판매자로 입장이 확연하게 갈리자 선진국 일각에서는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개도국 주머니만 채워준다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배출권 거래를 위한 CDM 사업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2004년 브라질에서 첫 CDM 사업이 시작된 이후 지난 4월까지 전 세계적으로 632건의 CDM 프로젝트가 유엔에 공식 등록된 뒤 추진되고 있으며 그 숫자는 지금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일례로 일본 굴지의 기업인 신일본제철과 미쓰비시상사는 공동으로 중국에서 연간 약 1,000만 톤의 탄소배출권 획득이 가능한 CDM 사업을 벌여 각각 배출권 일부를 구입하거나 판매하는 방식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CDM 사업 참여도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 5월 현재 19개의 사업자가 정부로부터 CDM 사업 승인을 얻었고, 그중 14개 사업자는 유엔 등록 절차까지 마친 상태다. 나머지 5개 사업도 유엔 등록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다.

유엔에 등록된 국내 CDM 사업은 숫자로는 미미하지만 온실가스 예상 감축량으로 보면 세계 전체 CDM 사업 감축량의 9.2%를 차지할 만큼 건별 규모가 큰 편이다.

탄소배출권 시장의 가격 동향도 CDM 사업에 대한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특히 EU가 각국별 온실가스 배출 할당량을 좀 더 빠듯하게 줄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면서 유럽 거래소의 배출권 가격이 최근 오름세를 타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2008년 선물(先物) 기준으로 배출권 가격은 톤당 20유로(약 2만 5,000원)를 웃돌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울러 정부 간 기후변화위원회(IPCC)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예상 배출량의 20% 이상을 줄이려면 배출권 가격이 적어도 톤당 100달러는 돼야 한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도 있어 향후 가격 동향과 관련해 주목된다.

최근 선진국들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50년까지 1990년의 절반 수준으로 감축하는 것을 고려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배출권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를 공산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

돈 냄새는 귀신처럼 맡는 세계 유수의 금융기관들도 배출권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다. 모건 스탠리는 지난해 5월 향후 5년 동안 탄소배출권 구입에 30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혔고, 이에 질세라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등도 탄소펀드 조성이나 탄소펀드 지분 매입 등의 방식으로 배출권 시장에 뛰어들었다.

현재 세계적으로 탄소펀드는 약 40개 가까이 운영되고 있으며 그 규모는 최소 25억 달러 이상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탄소펀드는 직접 CDM 사업이나 JI(Joint Implementationㆍ공동이행제도) 사업(상자기사 참조)을 개발하거나 또는 배출권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산업자원부 주도로 최초의 탄소펀드가 상반기 안에 등장할 예정이다. 규모는 2,000억원 안팎이며 온실가스 감축사업 관련기업 주식이나 탄소배출권, 다른 탄소펀드 등에 투자될 것으로 알려졌다.

산자부는 이를 통해 국내 기업과 금융기관이 향후 탄소배출권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라는 인류 공동의 위기는 역설적으로 탄소배출권 시장이라는 새로운 기회도 함께 주었다. 그 시장을 잡는 싸움은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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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토의정서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

▲교토 메커니즘= 교토의정서는 온실가스를 효과적이고 경제적으로 줄이기 위해 배출권 거래제, 공동이행제도, 청정개발체제와 같은 유연성 체제를 도입했는데, 이 제도들을 통칭 교토 메커니즘(Kyoto Mechanism)이라고 부른다.

▲유연성 체제= 선진국들이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자국 내에서만 모두 이행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 배출권의 거래나 공동사업을 통한 감축분의 이전 등을 통해 의무 이행에 유연성을 부여하는 체제를 말한다. 교토 메커니즘의 배출권 거래제, 공동이행제도, 청정개발체제 등이 이에 속한다.

▲공동이행제도(Joint Implementation)= 교토의정서에서 규정한 선진국들 사이에서 온실가스 감축사업을 공동 수행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투자해서 이뤄낸 온실가스 감축량의 일부를 투자국의 감축 실적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현재 EU는 동유럽 국가들과의 공동이행을 활발하게 추진 중이다.

▲청정개발체제(Clean Development Mechanism)=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서 온실가스 감축사업을 수행해 달성한 실적의 일부를 선진국의 감축량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CDM을 통하면 선진국은 온실가스 감축량을 얻고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으로부터 기술과 재정지원을 얻게 된다. CDM은 공동이행제도와는 달리 교토의정서의 1차 의무감축 기간(2008~2012) 이전에 이뤄진 조기 감축 활동의 실적도 소급해 인정한다.

▲배출권 거래제(Emissions Trading)= 온실가스 감축 의무 보유국이 의무 감축량을 초과 달성하면 그 초과분을 다른 국가와 거래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반대로 의무를 달성하지 못한 국가는 부족분을 다른 국가로부터 구입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각국은 배출량을 최대한 줄여 배출권 판매 수익을 거둘 수 있고 배출량 감축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국가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배출권을 구입해 감축 비용을 줄일 수 있어, 세계 전체로는 감축 비용을 최소화하며 목적을 달성하는 경제적 이점을 지녔다.

<자료: 에너지관리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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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