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거품' 꺼져가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 에이전트 등록제 등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 시급

“그간 해외 시장에 붐을 일으킨 한류는 우리에게 기회이자 ‘달콤한 과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류가 지금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계에 거품을 일으키게 한 촉매제로 작용했다 말해도 크게 틀리진 않을 겁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한 전문가는 작금의 국내 연예계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류가 우리 연예 산업 전반에 득을 준 것도 많지만 한편으로 거품을 일으키는 데 한몫했고 이제는 거품이 슬슬 꺼지고 있는 과정이라는 것.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연예 매니지먼트나 에이전시 산업은 직간접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속출하고 있다.

▲자격을 갖추지 못한 불법 연예기획사가 난립하고 ▲연예기획사에서 신인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한 불공정 계약문제 ▲지속되는 연예기획사들과 연예인들 간의 스카우트 전쟁 ▲고액의 전속금 부담 ▲연예인이 되려는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한 합법, 특히 불법적인 학원형 연예기획사의 폐해 등이다.

이는 국내 연예산업의 규모는 해마다 성장하고 있지만 산업의 기반이 되는 법적, 제도적 틀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업계 자율과 시장의 논리에 의해서만 이뤄지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제는 연예 산업의 성장과 규모에 걸맞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갖춰야만 한다는 지적이 방송연예계에서 힘을 얻고 있다. 대처 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한국 연예 산업은 ▲수익 모델 부재 ▲불합리한 계약 관행 ▲신뢰할 수 없는 매니저와 에이전트의 난립 상태에서 결코 헤어날 수 없다.

이런 부작용과 구조적 문제점들에 대해 미래에셋증권의 최영석 연구위원은 “자동차, 철강 등 어느 산업이건 제대로 된 틀을 갖춰 성장해 나가는 데는 여러 과정을 겪기 마련”이라며 “이런 점에서 국내 연예 매니지먼트 산업은 산업화가 이제야 본격 시작된 초창기로 볼 수 있다”고 진단한다.

즉 지금까지 규모만 커졌지만 앞으로는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틀을 갖춰 나가야 하고 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지금 일고 있는 거품이나 부작용, 잘못된 관습 등도 결국에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로 볼 수 있다고 최 연구위원은 지적한다. 한마디로 아직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적정 규모나 수익 모델, 틀조차 제대로 된 회사를 찾아 보는 것이 아직은 쉽지 않다는 것.

실제 지금 기업화된 대형 연예기획사들은 코스닥 등록 등을 통해 금융화되고 인수합병을 통해 복합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외형적 성장을 하고 있지만 명확한 비즈니스와 수익 모델이 갖춰져 있지 않다. 기업 차원에서 큰 수익이나 흑자를 올리고 있지 못하는 곳이 대부분.

우선 국내 연예 매니지먼트 산업은 관련 법제가 거의 부재한 상황이다. 연예기획사들은 사업자 등록증을 소지하고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이들을 관리 감독할 뚜렷한 근거는 부족하다.

노동법, 직업안정법, 공정거래법 등의 일부 조항에서 관련성을 찾아볼 순 있지만 관련법이라고는 전혀 말 할 수 없다.

하지만 유사한 직종인 모델 에이전시 사업의 경우는 직업안정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노동부 산하에서 관련 지자체에 사업자등록을 하고 등록허가증을 발급받아 다시 세무서에 신고를 한 뒤 직업 소개업으로 사업을 한다.

그럼에도 이보다 사업 규모나 비중이 더 큰 연예기획사는 일반 사업자로만 분류돼 있다. 급속하게 연예 매니지먼트 산업은 발달하는 데도 관련 법규나 규제 체계는 미비한 실정에 머무르고 있다.

최근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공인 에이전시의 도입이다. 이 제도의 도입을 주창하는 하윤금 박사는 “미국의 경우 현재 공인 에이전시법을 갖춰 법제화하고 있다”며 “한류의 지속과 연예 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관련 산업과 연예인들을 중개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공인된 에이전트 제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공인 에이전트 부재에 따른 부작용은 이미 여러 군데서 제기되고 있다. 연예기획사들 중 영세한 사업자들이 많고 전문성이 떨어지지만 스타를 발굴, 육성하는 전문적 노하우나 전략적 기획을 구사하는 능력은 뒤처진다는 것.

일례로 호리에 호리프로 부사장이 “한국과의 연예 비즈니스에서 연예기획사의 브로커나 대리인으로 인해 사기나 계약이 의심되는 경우를 종종 경험했다”고 말한 것은 신뢰할 만한 전문 에이전트의 부재를 말해 주는 증거이다.

또 연예 매니지먼트 업무와 에이전시 업무의 명확한 분리도 새롭게 대두되는 문제이다. 매니지먼트라면 연예인의 발굴과 관리 업무, 에이전시는 협상이나 계약의 대행을 가리킨다. 현재 국내 연예기획사들은 매니지먼트와 에이전시 업무를 통합해 구분 없이 수행하고 있는 형태이다.

이처럼 연예기획사가 매니지먼트와 에이전시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다보니 나타나는 현상은 역시 연예기획사들에 쏠리는 힘의 집중이다. 즉 연예인 육성과 계약 등 모든 업무를 관장하면서 자연스레 연예기획사들의 권한이 더 강해지고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게 되는 것이다.

연예인을 자사 소속, 전속으로 두면서 고액 출연료를 요구하고 신인을 끼워 팔거나 캐스팅 권한까지 갖게 되며 제작 시장에 진입하고 우회상장을 하는 일련의 행위들은 결국 공룡처럼 커져버린 연예기획사들 파워의 연장선상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연예기획사들의 제작사 겸업 문제도 새삼 거론되는 문제이다. 바로 연예기획사들이 코스닥 시장에 등록, 금융화한 다음 자연스레 인수합병 등을 통해 제작업에도 진출하는 코스인데 이는 에이전시와 제작의 수직적 결합으로 복합엔터테인먼트 기업의 등장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역으로 제작사들이 연예기획사와 인수합병, 설립 등을 통해 매니지먼트에 진출하는 반대 경우도 있다. 하지만 연예기획사의 제작업 수직 결합은 대부분의 제작사로부터 반발과 충돌을 불러일으킬 확률이 더 높다.

제작 시장에 진출한 이들 연예기획사들은 캐스팅과 제작 시장에까지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최근 몇몇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연급들이 모두 한군데의 연예기획사 소속으로만 채워진 사례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이때 나타나는 결정적인 문제는 콘텐츠의 질 저하. 작품성이나 창의성은 뒷전이고 자사 소속 연예인들만을 위한 작품이 되다보니 관객들로부터는 외면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런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연예기획사들이 앞으로도 인수합병 등을 통해 대형화, 기업화할 것이라는 데 이견의 여지는 별로 없다. 특히 KT, SKT, CJ, 오리온 등 플랫폼과 미디어 스테이션 역할을 할 기반을 갖추고 있는 대기업들과의 합종연횡도 앞으로 벌어질 M&A 시장의 큰 줄기가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미래애셋증권의 최영석 연구위원은 “장기적으로 국내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연예기획사는 대형화, 국제화의 요건을 충족시켜야만 할 것이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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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식 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