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출족'들 크게 늘어… 최근 취업포털 조사서 직장인 2.2%가 이용빠른 세상 속 느림의 미학… 교통 지옥을 자전거 천국으로 바꿔볼까

1970년대 자전거는 시골 학생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것 1순위였다. 버스나 자동차가 흔치 않던 시절, 걸어 다니는 고통에서 해방시켜줄 수 있는 주요한 교통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자동차와 대중 교통이 급속히 보급되면서 자전거는 빡빡머리나 검정색 교복처럼 아련한 추억의 대상으로 남겨지는 듯 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자전거는 그 존재 가치를 새롭게 부각시키고 있다.

21C, 자전거는 가장 미래 지향적인 교통 수단이다. 단순히 레포츠가 아니라 교통수단으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환경과 교통 문제, 성인병 문제 등에 기여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아직은 ‘용기 있는’ 소수자로 비치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자전거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위해선 또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

■ '레저'에서 '환경' 운동으로

취업포털 인크루트는 최근 직장인들이 출퇴근 시 쓰는 교통비는 하루 6,200원이며, 한달 평균 13만 4,000원을 쓰고 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러한 직장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은 자가용(44.9%), 다음으로 버스(31.3%)의 순이었다.

밤낮 없이 바쁜 현대인들은 조금이라도 빠르고 편한 자가용을 선호하고 이에 따라 교통 체증과 대기 오염, 에너지 소모는 더 늘어나는 추세다. 반면 아직은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교통비 걱정 없이 살아가는 실속파도 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자전거 학교’(마고북스 출판)란 책을 통해 멋진 자전거 세상에 대해 들려줬다. 앞서의 조사 결과 2.2%에 해당하는 소수자지만, 이들이 던지는 메시지의 울림은 크다. 과연 이들처럼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1년 반 동안, 단 한 번의 접촉사고도 없이 무사히 자출(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고 있고, 더 이상 나의 생활비에 교통비라는 항목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직장 동료들은 나를 건강의 대명사로 꼽길 주저하지 않을 뿐더러 단단해진 허벅지에 부러운 시선마저 던진다.” (김명진ㆍ27, 회사원)

“자전거를 타면 재미있다. 안장에 올라타는 순간부터 즐거워지고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또 에너지 절약에 대기환경 개선에도 일조하고 있다는 자부심까지 얻을 수 있다.”(강철현ㆍ48, 회사원)

그렇다면 과연 자동차 대신 자전거로 출퇴근한다면 실제 얼마나 이득이 있을까. 우선 기름값과 CO2 저감량을 중심으로 절약 효과를 따져보자.

서울환경운동연합과 에너지시민연대는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cafe.naver.com/bikecity.cafe)와 함께 ‘자전거로 CO2 다이어트’ 캠페인을 5월 28일부터 시작했다.

캠페인 홈페이지(co2diet.or.kr)에 들어가면 누구나 쉽게 예상되는 에너지 절약, CO2 저감의 효과를 알아볼 수 있다.

7월 5일 현재 이 캠페인에 참여한 사람들이 자전거로 달린 총 주행거리는 157,992km, 약 2만 4,699kg의 CO2가 절약됐는데 이는 나무 1,436그루를 심은 것과 같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다시 기름값을 기준으로 ‘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1,500만원이 넘는다. 이는 지금까지 700명 정도의 사람들이 한 달여 만에 거둔 성과다.

환경운동연합 채수민 간사는 “서울의 경우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40%가 수송 부문에서 발생한다”며 “직장인의 출퇴근과 주부 및 학생들의 근거리 이동에 자전거를 적극 이용한다면 환경 문제 개선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환경정책ㆍ평가연구원(KEI)이 최근 발표한 ‘환경친화적 자전거 이용 활성화 5개년 종합대책(안)’에 따르면, 자전거가 교통수단의 2%만 분담하면 연간 1조 5,000억원의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다.

■ 교통 지옥에서 '자전거 천국'이 되려면

서울시는 최근 마포구 망원동길, 강서구 등촌동길과 공진길 등 3개 구간의 차로를 축소, 자전거 전용 도로를 조성키로 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인천시도 2010년까지 자전거 도로 140km를 증설키로 했다. 청주시도 2009년까지 15억원을 들여 자전거 도로를 추가 조성할 계획이다. 지자체마다 ‘친환경 도시’ 만들기에 팔을 걷어붙인 분위기다.

그러나 자전거 관련 전문가들은 ‘자전거 천국’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고 고개를 흔든다. 왜? 자전거사랑전국연합회 최경규 사무총장은 “자동차 대신 대안 교통수단인 자전거가 시민의 발이 되려면 자동차가 다니기 불편한 여건이 되야 하는데, 지금 현실은 정반대”라고 꼬집었다.

도로교통법상 ‘차’로 분류되는 자전거는 통상 차로의 오른쪽 가장자리를 이용해야 하는데 자가용 운전자들은 자전거를 보호 대상이 아니라 ‘걸림돌’로 여겨 위협하기 일쑤다. 도심에서 자전거 타기는 여전히 위험하고 주눅 드는 환경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자전기타기운동연합 이준우 사업국장은 “자동차 운전자들이 교통 약자인 자전거 타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의식적 배려만 가진다면, 굳이 자전거 전용 도로를 조성하는데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 국장은 이러한 관점에서 자전거 도로의 확충보다 자전거에 대한 인식 전환을 더 급한 문제로 들었다. 무엇보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부터 올바른 자전거 타기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가장 시급한 사항은 ‘안전 불감증’의 개선이다.

최근 자전거 타기 붐이 확산되면서 자전거 사고의 비율도 이와 비례해 증가하는 추세다. 경찰청 사고분석 기록에 따르면, 전체 교통사고 중 자전거 사고가 차지하는 비율은 2001년 2.39%에서 2005년 3.72%로 늘었다. 2005년 사고 사망자 수는 303명, 부상자 수는 8,077명에 달했다.

이 사업국장은 “자전거 외에 별다른 교통수단이 없던 시절과 달리 지금의 자전거 타기는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는 ‘느림’의 실천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보다 ‘빨리’ ‘멀리’ 가기 위해 기록 경쟁 하듯이 자전거를 타는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소설가 김훈은 ‘자전거여행’이란 책의 프롤로그를 통해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가는 일은 복되다”고 했다.

빠르고, 편리함이 추앙 받는 시대, 거꾸로 ‘느림의 미학’을 실천해보면서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세상의 길을 만끽해봄이 어떨는지.

● 추천 자전거 하이킹 코스
아름다운 자연 감상하며 페달을 밟아보자

도심의 복잡한 교통 환경을 뚫고 자전거로 출퇴근하기에는 사실 만만찮은 내공이 필요하다. 초보자라면 자전거를 생활화하는 첫 걸음으로 자연경관을 만끽할 수 있는 하이킹 코스를 달려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자전거사랑전국연합회 서울본부가 전국의 아름다운 곳을 추천했다.

◆ 서울ㆍ경기

○ 한강 코스

한강변을 따라 100리에 이르는 자전거 길은 1986년에 만들어졌다. 행주대교에서 암사동에 이르는 36km의 한강고수부지에 시민공원과 체육시설이 만들어지고 자전거 전용도로도 조성되었다. 주말이나 시간이 날 때 강바람을 맞으며 시원하게 달릴 수 있는 유일한 길로 사랑을 받고 있다.

○ 광나루 지구 축구장, 농구장, 어린이 놀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시민들을 위한 편안한 휴식처가 되고 있다. 만남의 광장에는 다양한 꽃과 함께 비둘기집이 있고 상류부터 외길로 자전거길이 나있어 조용한 사이클링을 즐길 수 있다.

○ 풍납 지구 한강 위로 용성레저타운과 골드마리나가 위치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도 있다.

잠실 지구 잠실종합운동장의 웅장한 모습이 보이고 한강에는 유람선 선착장이 있다. 수영장, 헬기장, 자연학습장 등이 있다.

○ 잠원 지구

400여종의 각종 나무와 야생풀꽃, 약용식물 등이 있어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 외에도 나무 내음, 풀내음을 만끽하며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여의도 지구 여의도 선착장과 공연장 등이 있어 볼 거리도 많다. 잠실지구가 조용한 자전거 타기 장소라면 이곳은 젊음의 활기와 쾌활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 춘천 춘천 사이클 경기장을 출발해 의암댐~춘천댐~사이클 경기장을 돌아오는 45㎞ 정도의 도로가 환상의 자전거 하이킹 코스로 중급 이상의 자전거 마니아들에게 인기 높다.

인천 인천대공원~소래~시화지구 왕복 30㎞ 도로는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출발 뒤 30분 정도면 소래 다리에 도착하는데 산을 끼고 도는 평평한 도로를 따라가는 길이 좋다.

◆ 경주

경주에서 가장 이름 높은 자전거 하이킹 코스는 보문호 주변 도로다. 현대호텔~콩코드~조선호텔을 도는 3.2㎞ 코스는 호수를 끼고 있어 주변 경관이 빼어날 뿐더러 전용 도로여서 마음껏 자전거를 즐길 수 있다.

제주 제주 공항에서부터 해안을 따라 총연장 178㎞ 길이의 자전거 전용 도로가 나있다. 한라산을 가로지르는 5·16도로나 1100도로는 경사가 심한 편이어서 체력에 자신 있는 이들이 많이 도전하는 코스다.

◆ 부산·경남 을숙도를 출발해 명지~공항로~구포~대동~김해 서남다리~가락다리~명지 청량사로 되돌아오는 40㎞ 코스는 낙동강을 끼고 달릴 수 있어 상쾌하다. 길도 평탄한 편이어서 초보자에게 좋다. 조금 긴 코스를 원한다면 남해읍~이동마을~지족마을~당항~창승교 코스를 택하면 35㎞를 달리게 된다.

● 국내 MTB 자전거 1세대 '가수 김세환"
"자전거는 인생 최고의 주치의예요"

“제가 영원한 젊은 오빠로 사는 비결은 자전거를 꾸준히 오래 즐기면서 탄다는 것입니다. 인생이 두 배는 재미있어지고, 젊게 보이는 얼굴은 보너스로 받게 되죠.”

1970년대 포크스타 가수 김세환(59)은 산악자전거(MTB)의 ‘전도사’로 불린다. 86년 미국 여행길에 산악자전거를 구입한 뒤 “문익점이 목화씨 숨겨오듯 자전거를 분해해 국내에 들여왔다”고 한다. 그로부터 20년, 자전거는 노래와 더불어 그의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국내 ‘산악자전거 1세대’인 그는 20년 산악자전거 체험을 녹여낸 ‘김세환의 행복한 자전거’(헤르메스 미디어)라는 책을 최근 펴냈다. 자전거 타기를 어렵거나 귀찮아 했던 주변 사람들이 막상 페달을 밟고 달리기 시작하면서 즐거운 쾌감과 건강을 덤으로 얻는 모습을 많이 보면서 책을 집필할 결심을 했다고 한다. 좋은 책을 읽고 남에게 권하는 것처럼, 자전거역시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요즘 ‘S라인’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심신의 건강입니다. 삶을 더 풍요롭게 하고 싶다면 당장 TV 리모컨을 놓고 밖으로 나가보세요. 자전거는 인생의 최고 주치의가 돼줄 겁니다.”

그는 책에서 자전거를 통해 인생을 배운다고도 했다. “똑바로 서는 것, 균형을 잡는 것은 비단 자전거를 타는 데만 필요한 기술은 아닙니다. 멈춰 서보는 것 없이는 달려갈 수도 없는 것이 인생이란 생각이 듭니다.”

‘몸이 힘들지언정 길을 탓하지 마라’ ‘인생도 자전거도 나만의 길을 만들어라’ ‘오르막에 방심 말고 내리막에 자만 마라’ 등의 그가 제시하는 ‘자전거 행복 헌장 십계명’은 그러한 길에서 얻은 깨달음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요즘의 자전거 문화에 대해서도 의미 있는 일침을 가했다.

“고가의 자전거에 집착하지 마세요. 자전거의 가치는 자전거의 모양과 가격으로 결정되는 게 아닙니다. 자전거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은 바로 안장 위에 있는 자전거 타는 사람입니다. 보행자를 배려하고 안전을 중시하는 에티켓을 지키는 올바른 정신과 행동이 진정한 가치를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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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