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프·넥타이·가방·한복 등 패션 세계화 박차… 보석으로 재탄생하기도

문신 조각 보석, 오른쪽 아래는 문신의 작품 '무제(1991)'
베르사체, 이브-생 로랑, 루이뷔통, 프라다, 샤넬. 이른바 ‘명품’브랜드다. 이들 제품이 명품인 것은 단순히 비싼 물건이 아니라, 한 예술가(디자이너)의 철학이 담긴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명품을 낳은 디자이너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것은 단연 미술이다. 가령 색채원근법의 개발로 서양 회화사의 흐름을 바꾼 인물로 평가되는 조르즈 쇠라의 점묘화는 디자이너 미소니의 니트 패션을 정상으로 올려놓은 색조합의 비밀을 풀어준다.

가장 여성적이고 화려와 사치의 상징인 베르사체의 옷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을 통해 여성의 관능미라는 코드를 얻었고, 절제된 디자인과 기능성을 강조한 프라다에는 비미술적 요소를 배격한 도널드 저드의 미니멀 아트의 미학이 담겨 있다.

이브-생 로랑의 디자인에서는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과 함께 색상의 대비와 동화에서 앤디워홀의 팝아트적 요소도 묻어난다.

최근에는 키톤(남성정장), 보테가 베네타(백), 벨루티(수제구두), 반 클리프&아펠(보석) 등 명품에 오랜 전통과 장인정신, 희소성으로 무장한 명품 중의 명품인 ‘울트라 명품’이 하이패션계의 각광을 받고 있다.

산업의 꽃이라는 패션에 있어 한국은 경제력에 훨씬 뒤쳐진 수준이다. 일부 젊은 디자이너들이 해외에서 주목을 받고 있지만 세계 패션의 흐름에서는 여전히 주변국이다.

무엇보다 패션의 독창성과 세계성의 결여, 소재의 한계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내에서 천경자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설윤형, 고갱의 그림을 천 위에 옮겨놓은 박윤수 등 일부 디자이너의 노력이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한 것도 그러한 배경에서다.

최근 한국 예술을 세계에 알린 조각의 거장 문신(1923~1995)의 예술이 패션과 접목, 패션계에 새로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문신 예술의 독창성과 세계성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패션 소재와 결합, 명품 브랜드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는 평가에서다.

현대 미술사에서 로댕(1840~1917)이 현대 조각의 문을 열고 브랑쿠지(1876~1957)가 초기 추상조각을 개척하였다면 문신은 추상조각을 독자적 양식으로 완성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문신 조각 예술을 대표(상징)하는 ‘시메트리(좌우 균제)’에 특유의 독창성과 세계성이 함축돼 있다는 의미다.

그러한 문신 예술은 세계적 권위의 국제섬유전인 ‘2007 파리 TEXWORLD’(2월 20~23일)에서 최고상을 받은 ㈜닥센(대표 이삼용)의 한지 섬유와 만나 ‘문신 패션’을 낳았다.

파리 섬유전에서 프랑스의 세계적 스포츠웨어 업체인 라코스테와 영국 최대 의류업체인 막스&스펜서(M&S)는 ㈜닥센 섬유 구입을 논의했고 특히 막스&스펜서는 문신 문양을 입힌 의상에 관심을 보이며 자사로 직접 가져가 연구하는 열정을 보였다.

문신 패션은 지난 4월 숙명여대에서 열린 ‘한국미의 원형 문신-아름다운 탄생전’을 통해 첫 걸음을 땠다. 문신의 조각, 채화를 디자인한 ㈜닥센의 스카프, 넥타이 100여 점과 (사)한복마케팅연구소(소장 박현주)의 한복 30여 점은 독창적인 디자인과 섬유의 특성으로 인해 패션계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다.

문신 패션 제품은 지난 3월 파리 텍스월드 최고상 수상식에서 각국 패션업체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은데 이어 4월 주한 외교사절 100여 명이 마산시립문신미술관을 방문해 문신 패션에 감탄사를 연발, 세계화에 청신호로 해석됐다.

지난 7월 초에 열린 ‘문신 조각 보석전’(7월 4~15일)은 문신 패션을 명품 브랜드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다.

주문 보석 전문점인 ‘인 스토리(대표 정혜자ㆍ김혜경)’가 주관한 전시회엔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루비, 사파이어 등으로 문신 조각을 형상화한 브로치, 펜던트, 목걸이 등 90여 점이 선보여 국내외 초청 인사들을 감탄케 했다.

이탈리아 비첸자, 스위스 바젤 등 세계적인 국제보석전을 겨냥해 만든 문신 조각 보석은 최하 1,000만원 이상 추정가 7억7,000만원에 이르는 가격도 화제가 됐지만 무엇보다 세계 보석 강대국과 당당히 겨룰 수 있는 독창성이 돋보였다는 게 참석한 보석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평가였다.

인 스토리 정혜자 공동대표는 “문신 조각 보석은 세계에서 유일하고 예술성이 뛰어나 명품 브랜드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자신했다. 장인정신의 예술성과 희소성이 울트라 명품인 반 클리프&아펠에 비견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신 패션은 오는 7월 마산의 ‘문신종합예술축제’(7월 24〜9월 30일)에서 문신 문양을 입힌 슈트(남성 정장), 여성복, 청바지, 니트, 스카프, 넥타이, 한복 등 2,000여 점과 문신 조각 보석 등을 선보인다.

이어 미국 라스베이거스 토팔 패션전, 프랑스 파리, 중국 상하이 국제섬유전 등에 출품, 본격적으로 문신 패션의 세계화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일찍이 문신 예술이 독창적인 미(美)로 세계성을 확보했듯 문신 패션이 세계에서 인정받는다면 명품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것도 멀지않을 전망이다.

한복전문가 박현주 씨가 문신 문양을 응용해 만든 개량 한복

● 문신 예술 패션화에 앞장 선 ㈜닥센 이삼용 대표
"독창적인 문양, 세계시장 경쟁력 충분"

문신 예술이 패션과 접목하는데는 닥(한지) 섬유 생산업체인 ㈜닥센(대표 이삼용)의 역할이 컸다. 지난 2월 세계적 권위의 국제섬유전인 파리 텍스월드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닥섬유에 문신 문양을 디자인한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파리의 국제 섬유업체들은 ㈜닥센의 독특한 닥섬유 뿐만 아니라 문신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던 것. 이삼용 대표는 “파리에서 만난 국제 섬유업체들이 문신 선생에 대해 나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면서 “30여 년을 실크사업을 하면서 많은 나라의 섬유 제품을 눈여겨봤는데 문신 선생의 조각과 회화를 응용한 디자인은 충분히 세계에서 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신만의 독창적인 조각과 문양이 최고의 경쟁력이라는 것.

문신 예술 역시 세계에서 인정받는 섬유와 손잡고 패션화에 나서 힘을 얻고 있다. ㈜닥센은 7월 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올해의 최고 섬유(원단)상을 또다시 수상, 문신 패션의 세계화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

이 대표는 “오는 7월 24일 마산 ‘문신종합예술축제’에서 문신 패션을 대규모로 선보인 뒤 해외시장 개척에 나설 것”이라면서 “내년에 문신 선생이 세계적 작가로 활동한 파리에 ‘문신 아트 숍’을 내 문신 패션을 명품 반열에 올려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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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의 작품을 디자인한 넥타이
문신의 작품을 디자인한 가방
문신의 작품을 디자인한 여성정장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