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00여 개국서 저소득층 대출창구로 위상 확립하나은행 300억원 출연 등 사회적 관심도 높아져신나는 조합·사회연대은행 등 활발한 활동

지난해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과 설립자인 무하마드 유누스 박사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이후 국내에서도 ‘마이크로 크레딧’(Micro Credit)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마이크로 크레딧은 담보나 보증을 요구하지 않는 소액 신용대출을 의미하는데, 유누스 박사가 1976년 단돈 수십 달러를 빈곤한 이웃 주민들에게 조건 없이 빌려준 것이 사실상의 효시다.

이후 마이크로 크레딧은 방글라데시뿐 아니라 세계 100여개 국가로 널리 퍼져 제도권 금융에서 소외된 저소득층, 신용 불량자, 빈곤층을 위한 대안금융으로서 위상을 확립했다.

최근 하나은행은 300억원 규모의 출연금을 바탕으로 한국형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을 펼친다는 계획을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발표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하나희망재단을 설립해 재원을 대고, 박원순 변호사가 이끄는 희망제작소가 실질적인 운영을 맡는 공조체제로 운영된다.

양측은 마이크로 크레딧의 운영 방침과 관련, 주로 서민층의 ‘소기업 창업’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대출 한도는 최소 5,000만원부터 최대 5억원에 달한다. 금액으로 보면 소액 대출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셈이다. 하나은행과 박원순 변호사도 기존의 마이크로 크레딧과는 성격과 목표가 다르다고 밝혔다.

내년 2월 설립될 예정인 휴면예금관리재단의 향배도 초미의 관심사다. 재정경제부는 2003년 이후 발생한 30만원 이하 휴면예금에 대한 돌려주기 사업을 6개월 동안 벌인 뒤 남는 돈을 재단에 출연할 방침이다.

재경부는 그 규모를 1,800억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향후에도 매년 500억원 가량이 추가로 재단에 유입될 것이라는 계산이다. 재경부는 저소득층 서민들을 위한 소액 신용대출 등에 이 돈을 쓴다는 계획이어서 국내 마이크로 크레딧 제도가 한 단계 도약할 실탄이 마련되는 셈이다.

구체적 실천방안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내놓은 공약도 주목받고 있다. 이 전 시장은 최근 ‘금융소외계층 재기를 위한 신용회복 대책’을 발표하면서 서울과 광역시, 도청 소재지에 마이크로 크레딧을 운영하는 소액서민대출은행을 설립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최근 들어 국내의 마이크로 크레딧 도입 움직임은 민(民), 관(官), 정(政) 할 것 없이 백가쟁명 양상을 띠고 있다. 대출 규모로 국내 최대 마이크로 크레딧 기관인 사회연대은행의 임은의 팀장은 “갑작스레 마치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마이크로 크레딧 운동은 2000년 씨티은행으로부터 5만 달러를 지원받은 ‘신나는 조합’이 첫 테이프를 끊었지만 이후 7년 동안 사회적 무관심 속에 ‘그들만의 리그’로 어렵사리 성장해 왔기 때문이다.

현재 그나마 실적을 보여주고 있는 기관은 신나는 조합과 사회연대은행, 아름다운 재단 정도가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재원의 대부분을 기업과 은행 등의 후원으로 충당하고 있어 대출 기반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그 동안 만들어온 운영 모델은 한국 마이크로 크레딧의 걸어온 길이자 동시에 나아갈 방향이라는 평가가 많다.

신나는 조합은 자활을 다짐한 3명 이상의 저소득층 공동체에 대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2007년 5월 현재 제조업을 비롯한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90개의 공동체에 대한 지원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이를 통한 고용 인원은 모두 346명이다.

공동체는 도시 지역에도 운영되고 있지만 주로 농촌 지역에 많다. 공동체가 생산하는 상품은 모두 77가지에 달하며 신나는 조합의 후원회원들을 비롯해 조합 홈페이지, 바자회 등을 통해 전국에 판매되고 있다.

신나는 조합은 자활 공동체의 사업 성공과 경제적 자립을 유도하기 위해 철저한 사전 및 사후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다.

대출 결정의 가장 주된 기준은 자활 의지와 사업 내용의 건전성이다. 하지만 현장실사와 전문가 면접을 통과하지 못하면 대출을 받을 수 없다. 또한 최종 선정된 뒤에는 반드시 사전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주로 마케팅, 경영 컨설팅, 공동체 훈련 등에 대해 총 10시간 동안 교육을 받는다.

창업 후에는 신나는 조합의 전문가들이 정기적으로 현장을 방문해 재무회계, 홍보, 판로개척 등을 꾸준히 지원해준다. 이런 체계적 시스템 덕분에 신나는 조합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공동체의 92%가 대출금을 상환하는 성과를 낳고 있다.

사회연대은행 역시 신나는 조합과 마찬가지로 사전 및 사후관리 시스템을 정교하게 운영하고 있다. 다른 점은 개인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 저소득층 외에 성매매 여성이나 이주 외국인 등 특수 소외계층도 지원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그 동안 사회연대은행이 대출한 자금은 약 85억원 정도다. 모두 450여개 업체(1,200여명)의 창업을 지원했으며 이미 30여개 업체는 상환을 마치고 졸업했다. 대출을 받은 업체가 유지되는 비율은 약 90% 가량 되는데, 향후 상환율도 비슷할 것으로 추산된다는 설명이다.

한국 마이크로 크레딧 운동을 개척해온 이들 단체는 지금까지의 성과보다도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들을 지금 고민하고 있다.

사회연대은행의 경우 대출 재원을 확충하기 위한 방법으로 다양한 금융기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기부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우리 여건에서 한정된 재원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서다. 최근에는 부설 연구소로 ‘한국 마이크로 크레딧 테크놀로지센터’를 설립해 마이크로 크레딧 확산을 위한 다양한 모델을 연구하고 있다.

신나는 조합은 지난해부터 인천ㆍ강화도 지역, 전북 지역, 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공동체의 전문적 경영역량 강화를 통한 사회적 기업으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점이 관심을 모은다.

이와 관련, 소정열 조합장은 “외부 조력도 필요하지만 결국 지역 공동체 내에 지도자를 키워 그들 스스로 마케팅을 하고 수익구조도 갖추도록 하는 게 마이크로 크레딧 활동의 궁극적 지향점으로 바람직한 게 아닌가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변화 추구 과정에서도 두 단체는 한 가지 대목에서 일치된 전망을 내놓고 있다. 마이크로 크레딧의 국내 정착을 위해서는 제도 운영에 노하우를 갖춘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울러 한 번 대출을 받아 일정 궤도에 오른 사람들의 경우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제도권 금융기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어쨌든 한국 마이크로 크레딧은 이제 돛을 올리고 막 출항한 셈이다. 제도 정착을 위해서는 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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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가족과 함께 내한한 노벨 평화상 수상자 유누스(가운데) 박사.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난 유누스 박사는 1973년 방글라데시 빈민을 대상으로 무담보 소액대출 제도인 '마이키로 크레딧(micro credit)'이라는 혁명저긴 방법을 제시했고, 1976년에는 이 제도를 확대시킨 그라민은행을 설립, 현재까지 약 600만 명에 달하는 가난한 이들이 혜택을 봤다. 류효진 기자.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