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항·원산항 모두 수심 얕아 대형 무역선 입출항에 취약천문학적 비용들어 남포항 현대화보다 해주산업항 경제적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핵심 의제인 대규모 경협(한국판 마샬플랜)과 관련, 북한 해주항과 NLL(서해 북방한계선)이 새삼 주목 받고 있다. 이번 경협 논의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뤄질 분야 중의 하나로 ‘항만 개발’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식량ㆍ 에너지 등 생필품과 기초 동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수출입과 외국 지원에 절대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를 위해 갖추어야 할 필수 인프라가 항만시설인데도 불구하고 북한은 그것이 대단히 취약한 수준이다. 이번 정상회담 경협분야에서 항만문제가 크게 부상할 것으로 관측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북한 경제를 동서로 구분할 때 서쪽은 평양에서 가까운 남포항이, 동쪽은 경원선이 지나는 원산항이 대외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남포항은 북한과 거래하는 외국 무역선이나 한국이 지원하는 쌀ㆍ비료를 실은 배 등이 드나드는 거의 유일한 관문이다. 그럼에도 남포항, 원산항 모두 시설 및 입지조건이 형편없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수심이 얕아 대형 선박이 입출항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약점이다.

이에 따라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대규모 경협에 관한 합의가 이뤄질 경우 남포항과 원산항이 집중적으로 개발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남포항은 기업들의 대북 투자가 시작되면 물동량이 급증할 곳이기 때문에 남북경협 의제에 남포항 현대화 사업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최소 3,000억 원이 들 것으로 보이는 남포항 현대화 사업은 ‘한반도 경제공동체 형성’을 위한 정부 7대 신동력 사업의 하나로 북측이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남측에 희망해왔다”고 밝혔다.

이런 기본 구도 하에서 ‘해주항’이라는 제3의 변수가 등장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대다수 북한 전문가들은 남포항 개발의 구조적 한계를 이유로 들어 “차라리 해주항을 개발하는 것이 낫다”고 지적하고 있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남포항을 현대화하기보다는 해주를 산업항으로 개발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우선 남포항은 평양이 침수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본래적 의미의 항만기능과는 애당초 거리가 있다는 것. 실제로 남포항은 홍수로 대동강, 보통강 범람 위험이 있을 경우 갑문을 닫게 돼 선박이 입항하지 못한 채 먼 해상에 머물 수 밖에 없다. 시간을 다투는 물류운송 선박에게는 치명적이다.

남포항은 또한 바다(서해)에서 14km나 떨어진 곳에 위치해 수심이 얕아 큰 배가 드나들 수 없어 국제 무역항으로 부적합하다. 게다가 황해도와 평안도를 연결하는 육상운송로 활용하기 위해 갑문을 설치한 탓에 항구로서의 기능이 더욱 약화됐다.

이에 비하면 해주항은 훨씬 좋은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정치군사적인 문제가 걸려 거론대상에서 밀려 있었는데, 최근 미묘한 변화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해주는 군사지역에 위치한 데다 NLL(서해 북방한계선)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런데 최근 NLL이 남북정상회담의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해주항 개발이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해주항과 NLL은 무슨 함수관계인가.

NLL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NLL의 유효성 여부와 서해 5도(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의 귀속 관계이다. 한국은 NLL이 남북간의 실질적인 해상경계선으로 반드시 준수되어야 하며 서해 5도가 남측 영역에 속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북한은 NLL이 1953년 유엔군사령부가 일방적으로 설정한 것으로 무효이며 그들의 해상분계선(99년 9월 2일 주장)에 따르면 서해 5도는 북측 영역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남ㆍ북한의 NLL에 대한 상이한 시각차는 결국 1999년과 2002년 두 차례의 무력충돌을 가져왔고 언제라도 재발의 위험성을 남겨두고 있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베이징의 소식통은 “북한이 서해에서 두 차례나 무력충돌을 일으킨 직접적 원인은 NLL 때문이지만 그 배경에는 해주항 개발 문제가 걸려있다”고 분석했다.

대외 무역기지로서의 남포항이 일찍이 한계점에 처해 해주항이 최적의 대체항으로 떠오른 가운데 북한군부 역시 해주항을 선군경제의 전초기지로 활용하려는 등 해주항 개발과제가 절실해지면서 북한으로서는 NLL 조정이 필요해졌다는 설명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특히 군부)은 북한경제의 활로로 해주항을 확보하는데 전력을 다할 것이기 때문에 서해에서의 무력충돌도 불사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3월과 5월 장성급회담에서 강도 높게 NLL 문제를 거론한 데 이어 올해 들어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이 줄곧 NLL을 부정하는 주장을 펴고 있어 무력충돌의 긴장을 높여왔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8월 10일 국회 통외통위에서 “NLL은 기본적으로 영토 개념이라기보다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안보 개념”이라고 발언, NLL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북측 입장에 대한 화답의 성격도 띠고 있다.

2차 남북정상회담 수행단에 송민순 외교부 장관이 빠지고 김장수 국방부 장관이 포함된 것이나 정상회담 추진위원장인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이 9월 13일 국회 통외통위 전체회의에서 “NLL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한 것 등은 NLL 문제를 정상회담 의제로 채택하는 것은 물론 능동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베이징의 북한 소식통은 김만복 국정원장이 8월 초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방북해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이끌어낼 당시 NLL 문제가 양측간에 거론됐다는 얘기를 전했다.

북측이 NLL에 대한 입장을 김 국정원장에게 분명하게 전달, 정상회담의 의제로 삼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정원 해당 부서 관계자는 “김 원장이 북측과 NLL 문제를 논의했다는 소문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그럼에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NLL 문제가 심도 있게 논의될 것이라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베이징의 소식통은 “북한에게 NLL은 단순한 해상경계선이 아니라 경제적 사활이 걸린 중요 문제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이 해주항의 중요성을 감안, 현대화 사업에 남측의 대규모 지원을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정상회담에서 NLL 문제가 합리적인 타협점을 찾을 경우 서해 5도는 남측 영토로 하면서 동위 125~26도 사이의 해상을 ‘평화수역’, 또는 ‘공동어로수역’으로 설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그럴 경우 서해교전이 발생한 지점과 꽃게잡이 분쟁이 일어나는 주요 지점을 모두 포함하게 돼 NLL 문제와 한반도 평화가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다. (그래픽 참조)

이런 맥락에서 NLL문제는 정치군사적 차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해주항 개발, 나아가 남북간 대규모 경협 여부를 가르는 최대의 변수가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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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