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만기 출소한 지강헌 사건 공범 강씨마지막 도피처 북가좌동서 유서 작성… 자립 성공하면 봉사활동 하고 싶어

자살 직전의 지강헌.
지강헌 사건을 다룬 영화 ‘홀리데이’가 지난해 1월 개봉됐을 때 시사회에 참석하기를 스스로 학수고대하던 사람이 있다. 지강헌 사건의 당사자 강영일(40) 씨. 1988년 10월 지강헌과 함께 교도소를 탈주했던 그는 지난 6월 만기 출소했다. 그를 만나 사건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대부분 사람들이 당시 전경환(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사건을 탈주 이유로 알고 있는데 그것보다 법무장관 담화문 이유가 컸어요. 교도소에서 바로 옆 제소자들에 대한 재판 결과를 접하면서 느낀 억울함도 있었지요.”

탈주 이유에 대해 강영일 씨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는 “87년 구로구청투표함 사건 후 당시 정권이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법무장관명의로 담화문을 내고 강도, 횡령 등 ‘잡범’을 대거 잡아들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떼강도’란 말도 이때 등장했다.

강 씨는 “당시 보호감호제도가 생기면서 형량에 비해 훨씬 많은 형을 선고 받은 수감자들이 절망에 빠졌다”며 “그렇게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도 바로 옆 제소자들이 이천만원, 삼천만원 변호사비를 써 바로 출소하는 것을 보면서 탈주 결심을 굳혔다”고 말했다.

“저는 탈주 준비를 하는 기간에도 계속해서 ‘내 형량이 7년으로 줄면 여기서(탈주 공모) 빠진다’고 말했어요. 제가 수갑 열쇠 담당이었기 때문에 제 형기가 줄었으면 애초에 탈주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겠죠.”

탈주를 준비하는 데는 한달 반이 걸렸다. 탈주 초반 이들은 신문 방송에 극악범으로 묘사됐다. 2, 3일이 지난 후 이들이 여자인질에게 성추행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서서히 동정적인 논조들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는 “인질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성추행을 하지 않는 게 그 때 우리의 원칙이었다”고 말했다.

“실수로 인질을 찔렀다면 돈은 놔두고 올 것, 절대로 성추행하지 말 것, 이게 철칙이었습니다. 나중에 체포되어 재판 때 여성 피해자들이 탄원서를 쓰신 걸 보고 고맙게 생각했구나 하는 걸 알게 됐죠.”

강 씨는 탈주 후 경찰 포위망이 좁혀오던 긴박했던 순간들을 회고했다. 도망을 다니던 중 지강헌이 실수로 총을 오발하는 바람에 한때 일행들 간에 갈등이 벌어졌다고 한다.

“형(지강헌)은 탈주전 교도소에서 자살을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자살미수 사건 때문에 형은 한 달 동안 묶여 지냈던 적이 있습니다. 이 때문인지 교도소를 탈주해 도주하던 중에도 팔을 90도로 꺾어 허리춤에 붙이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도주 중 권총 오발 사고가 나자 우리들 사이에 형의 총을 다른 사람이 갖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나왔죠. 자살미수도 그렇고 실수로 모두 죽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당시 지강헌은 환각효과를 내는 감기약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지강헌이 권총을 갖고 있는 게 더 불안했다는 것.

“형은 많이 먹으면 환각증세가 나는 감기약을 갖고 다녔어요. 약 기운이 떨어질 때 쯤이면 2알, 3알 씩 계속 그 약을 먹으면서 록 음악 듣는 걸 좋아했어요. 마지막 인질극을 벌였던 16일이 마침 일요일이어서 스콜피온의 ‘홀리데이’를 틀어 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경찰은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틀어줬습니다.”

강 씨는 “그 때 도주 차량을 구해 남은 네 명 중 두 명은 자살하고, 두 명을 중간에 도주 시켜 살리려고 했다”고 밝혔다.

마지막인 서울 북가좌동 집에서 그들은 유서를 쓰기 시작했다. 강씨가 공개한 유서는 ‘1심 형량 너무 많이 받았다. 전과자들이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등 억울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강 씨는 “6월 출소하고 보니 20년 전과 비교해 너무 많이 달라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요즘 기준으로 본다면, 내가 당시 교도소에 들어가게 된 범죄에 대한 형량은 고작해야 7년 남짓이었을 것”이라며 “그렇다면 애초에 탈주 생각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씨는 앞으로 사회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장발장도 전과자 아닙니까. 범죄를 저지른 저에게 잘못이 있겠지만, 지금 같은 환경이었다면 공부 열심히 했을 거란 생각을 하죠. 수감 생활 동안 종교인들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기반이 잡히면 그분들과 함께 청소년 관련 봉사 활동을 하고 싶어요.”

그는 현재 학원을 다니며 요리를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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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강헌 일행이 쓴 유서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