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유한부인들의 군상이 바뀌고 있다. 과거 보수적 전통관과 자기절약형 시대에 ‘현모양처’와 대비되던 ‘유한부인’과는 달리 이 시대의 유한부인은 신세대와 구세대가 교차되는 길목에서 새로운 중산층 또는 상류층 주부모델의 다채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신(新) 유한부인은 40, 50대 중장년기를 맞고 있는 전업주부로서, 의사, 교수, 변호사 대기업 임원, 고위 공무원 고소득 금융인 등 남편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여유를 가진 가정의 주부층이다.

청년기와 노년기의 중간 터널을 지나고 있는 이들은 과연 우리 곁에서 어떤 생활과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까. 핵가족화와 가정중심 사회로 급변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주체세력, 이들 신 유한부인들의 궤도를 따라가본다.

KBS에서 방영중인 ‘위기의 주부들’의 한장면.
KBS에서 방영중인 '위기의 주부들'의 한장면.

■ 7대 아지트

1) 백화점 면세점과 명품관

-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 소공동 롯데 백화점 등 국내 유명 백화점을 이용한다. 그 중에서도 일반인들의 발길이 뜸한 면세점이나 명품관의 고객 라운지를 약속 장소로 애용한다. 원하는 명품 쇼핑도 즐기고, 인파의 방해 없이 호젓이 한담도 나눌 수 있다. 번잡함이 싫어 일반인 쇼핑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는 세일 기간은 오히려 피해 다닌다.

2) 강남권 유명 피트니스클럽

- ‘특별하기를’ 원하는 이들 상류층 주부들에게는 서울 강남권의 프랜차이즈식 피트니스 전문클럽이 요즘 대세다. 최근까지 압구정동 캘리포니아 피트니스 클럽 등이 인기.

남편의 출근과 자녀의 등교가 마무리된 오전 11시 무렵부터는 유한부인층의 단골 회원 고객들이 들어선다. 개인 트레이너의 관리 아래 특정기간 내 원하는 만큼의 체중을 감량시켜주는 프로그램이 특히 인기. 이런 고급 클럽의 경우 2개월 내 목표체중감량 프로그램 비용이 2백만원선 이다.

3) 골프장 클럽하우스

- 서울에 사는 경우, 평일에 수도권에 있는 컨트리 클럽을 주로 이용한다.

친구들과 모여 함께 자연의 볕과 바람도 쐬고, 건강도 돕는다. 특히 비슷한 부류끼리 만나는 바깥 세계와의 접촉과 설레임도 있다. 남편의 직업이나 직위상 부부 동반 골프 모임 때문에 내조 차원에서 골프를 시작하는 주부층도 있고, 친구들의 권유에 따라 골프를 배우기 시작해 매주 평일 2~3회 라운딩하는 골수가 되는 경우도 있다.

4) 취미동호회 모임장소

- 지식 또는 예술추구형 중장년 주부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방식이다. 미술, 사진, 공연관람 등 서로 비슷한 예술적 취향을 가진 친구들끼리 그룹을 형성해 직접 창작 활동을 시작한다.

이름있는 전문가를 초빙해 별도로 그룹 지도를 받기도 한다. 주기적으로 회원들의 작품을 모아 정기발표회를 갖는다. 유명 전시장 등을 대관, 정식 초청장 등에 이르기까지 행사의 형식적인 부분까지 최대한 번듯한 모양새를 갖춘다. 초청받는 이들 또한 대부분 남편의 직업, 직장과 관련된 교수, 법조인, 고위 공직자 등 저명인사들로 이뤄진다.

5) 봉사활동지

- 사회 참여 또는 사회 기여를 생각하는 헌신형 주부들이 모인다. ‘가진 자’로서의 사회적 의무와 역할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다. 병원이나 보육원, 노인복지시설 등에서 정기적으로 의료 및 복지관련 봉사활동 등을 펼친다.

한 켠엔 정치관련 자원봉사자들도 있다. 순수한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정당 또는 특정 의원 지원활동에 참여하기도 하고, 궁극적으로는 정계와 연관된 남편의 직업 상 측면 지원 차원에서 직간접적으로 봉사자로 뛰는 경우 또한 많다. 이들의 경우 자신들의 정당 봉사활동에 대한 외부 시선이나 노출 자체를 꺼린다.

6) 유명정신과 병원

- 가족에 대한 의존도와 헌신도가 높은 상류층 주부일수록 특히 자녀들의 독립 후 우울증을 겪는 이들이 많다. 심각한 우울증 단계가 아니라도 개인 정서관리 차원에서 단골 정신과를 활용하는 것이 최근 선진국 상류사회의 추세. 특히 사회적 체면이나 자존심 때문에 쉽사리 속마음을 털어놓거나 의논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요긴한 대피처다.

주로 언론이나 입소문을 통해 알려진 스타급 정신과전문의들을 찾는다.

7) 고가 주문형 해외여행

- 1년에 최소 한두번씩은 멀든, 가깝든 친구들과 어울려 외국 여행을 다녀온다. 상위급 여행사에 의뢰, 비용에 상관없이 자신들이 원하는 유형의 최상의 프로그램을 선택하거나 적절히 맞는 프로그램이 없을 경우 자신들이 직접 코스와 일정을 정한 뒤, 이에 맞춘 별도의 주문형 상품을 이용한다.

기존 여행 상품을 이용하는 경우에도 가격이 높더라도 인원이 덜 몰리며, 코스와 숙박 시설이 좋은 최고가형 상품을 이용한다. 단체 패키지 여행 중에도 동행하게 된 다른 낯선 여행자들과 웬만해선 이야기를 트지 않는다. 자신들의 신상을 노출함 없이 함께 간 자신들의 일행끼리만 조용히 몰려다닌다.

■ 7대 화제

1) 자녀 교육

- 중고생 자녀를 둔 경우, 아이들을 특목고 또는 명문대에 보내는 것이 이들의 가장 큰 관 심사다. 족집게 과외 강사나 과목별 특화 학원 등에 대한 정보를 나눈다. 최근 들어 특목고를 거쳐 외국 명문대에 진학하는 사례가 늘면서 자녀 유학에 대한 관심과 시도도 눈에 띄게 높아졌다. 고액 족집게 과외의 경우, 친한 주부들끼리 자녀들을 4-5명선으로 모아 별도의 과외를 받기도 한다.

2) 자녀의 취업과 결혼

- 5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자녀에 대한 화제가 입시문제에서 취업, 결혼 문제로 옮겨간다. 자녀 당사자 못지않게 어머니인 이들 역시 취업 문제로 고민한다. 고소득 전문직종 취업이 목표다.

주로 주위의 지인들을 통해 정보를 수집, 스스로 뚜렷한 개성이나 목표를 지니지 못한 자녀인 경우 적극적으로 앞장 서 취업목표를 설정해주기도 한다. 아는 지인들을 동원해 자녀가 취업하고자 하는 분야의 실제 전문가를 만나 구체적인 정보나 조언을 듣는 등 도움을 받기도 한다. 결혼을 시킬 때는 상류층 집안의 내력을 잘 알고 있는 전문 중매인이나 유명 결혼컨설팅업체를 주로 이용한다.

3) 미용과 건강

- 자신에 대한 관심과 투자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무엇보다 나이에 따른 체형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노화를 방지하고 젊어 보일 수 있는 정보를 서로 교환한다. 고급 브랜드의 유행 패션에서부터 화장품, 다이어트법, 성형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건강을 위해 무공해 식품, 친환경 제품 등을 애용한다. 정기적인 운동이나 유명 트레이너 정보도 주고 받는다.

4) 재테크

- 연령대별로 다소 차이를 보인다. 40대의 경우 인터넷, 언론 또는 지인들을 통해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적극 수집하고 활용한다. 인텔리형 주부들의 경우, 일종의 스터디 형태로 같은 관심사를 가진 친구들끼리 재테크 연구 모임을 만들어 체계적이고 이론적인 분석 및 공부를 진행한다.

기본 탐색이 끝나면 부동산의 경우 직접 함께 현장 답사를 다녀오기도 한다. 최근에는 부동산뿐 아니라 펀드 상품에 이어 해외 투자로 관심범위가 확대되는 추세다. 중국이나 인도 등지에 대한 투자에 관심을 보이거나 상담을 청하는 VIP 주부들이 늘고 있다. 50대 이후의 주부들의 경우 구전 정보나 부동산 투자 쪽에 여전히 가장 안전성과 신뢰를 두는 경향.

5) 우울증과 갱년기

- 사실상 이들의 연대감, 동질감을 가장 확실히 굳혀주는 화제다.

단, 아주 절친한 친구 관계가 될 경우 지속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아무에게나 털어놓을 수 없는 내밀한 개인사나 가정사나 노출되기 때문이다. 신체적으로 나타나는 갱년기 증상뿐 아니라 남편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는 정신적인 고민과 위로를 서로 주고 받는다.

6) 배우자의 외도

- 가장 흔하고도 흥미로운 수다의 소재 중 하나. 주변의 지인들에게서 하나둘씩 이혼 이야기가 들리는 시기도 이 무렵. 드라마 속의 불륜 이야기를 비롯해 배우자의 외도와 배신에 대한 이야기는 가장 손쉽게 주의를 집중시킬 수 있는 공통분모 화제다. 그러나 자신의 가정에 그 같은 일이 생기리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이혼 또한 절대 불가.

7) 노후 설계

- 자식들의 완전한 독립 후 부부만의 생활이 시작되면서 이후의 삶에 대한 고민이 함께 시작된다.

전통적인 기성세대와는 달리 신 유한부인들은 자식들에게 경제적으로든, 주거환경으로든 의존하지 않고 부부끼리 따로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는 추세다. 이를 위한 경제적 비용과 소일거리, 삶의 형태와 질을 생각한다.

서로 원하는 노후의 생활 방향이 비슷할 경우, 친구들과 함께 구체적으로 함께 정보를 알아보거나 실제로 조금씩 기반 준비를 진행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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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기자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