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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반 고흐의 모든 것] 서울을 적신 '불멸의 예술혼'
국내 최초·최대 규모 '반 고흐전' 서울시립미술관서 개막
보험가액만 1조 4,000억원인 메가톤급 걸작 67점 선보여
반 고흐 삶의 궤적 따라 연대기적 구성… 한 국가서 100년에 한번 열릴 만한 '미술 전시 월드컵'

전 세계인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서울에 왔다. 24일부터 2008년 3월 16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불멸의 화가-반 고흐'전을 통해서다.

반 고흐는 37세라는 짧은 삶을 살고 신화가 되어바린, 예술이 운명 그 자체였던 거의 유일한 화가다. 그의 작품 하나 하나는 인간으로서 느껴야 했던 불안, 거부, 고통, 좌절, 또는 꿈과 기쁨의 절규이자 그의 존재의 작렬이다.

“그림 그리기는 내게 일종의 구원이다.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비참했을 거야.”반 고흐가 유일한 후원자이자 영혼의 동반자였던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처럼 그는 오직 회화속에서 자신을 구하려고 했고 그 속에서 자신을 불살랐다.

보통사람으로서의 삶이 거부된 반 고흐는 지독한 가난과 고통, 외로움 속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삶과 주어진 현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한 사람과 자연과 하나님, 그리고 그림에 대한 희망과 열정을 한 순간도 놓지 않았고, 어려울 때일수록 그림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창조력이 넘치는 삶으로 바꿔 놓으려 했다.

반 고흐는 기존의 유럽 전통 회화의 흐름을 뛰어넘어 대담한 색상과 거침없는 붓놀림을 통해 자기 고유의 화풍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의 그림이 최고의 정점에 도달했을 무렵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형의 노고는 헛되지 않을 것이오. (…) 난 미래 사람들이 형을 이해할 거라 확신하오”라고 썼던 테오의 혜안은 반 고흐가 죽은 지 채 10년이 안 돼 위대한 천재의 반열에 오르면서 현실이 됐다.

반 고흐는 비극적인 인생에서 예술을 위해 삶과 영혼을 모두 바친, 너무나 인간적인 화가다. 그의 예술이 위대한 것은 그토록 처절하고도 비참한 삶의 여정 속에서 장엄한 어름다움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반 고흐의 신화는 한 인간의 좌절과 상처로 얼룩진 고통으로 만들어졌기에 울림이 크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23일 개막된 '불멸의 화가-반 고흐' 전 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서순주(왼쪽) 전시감독으로부터 반 고흐의 대표작<아이리스> 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앞줄 왼쪽 두번째부터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 오세훈 서울시장,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고영권기자 youngkoh@hk.co.kr


‘불멸의 화가-반 고흐’서울전은 그러한 반 고흐의 신화를 재현한다.

반 고흐의 시기별 대표작들을 한데 모은 이번 전시는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다. 반 고흐의 유화 대표작 45점과 드로잉과 판화 22점 등 총 67점을 선보이는 전시는 1990년 작가 사망 100주기를 기념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이후 최대 규모로 보험가액(작품 평가액)만 총 1조 4,000억원에 달하는 메가톤 급이다.

출품작은 반 고흐가 남긴 작품 879점의 절반가량을 소장하고 있는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과 오텔로에 있는 크뢸러 뮐러 미술관에서 빌려 왔다.

반 고흐 미술관 소장품 중 5대 걸작으로 손꼽히는 파리 시절의 '자화상'(1887)과 생레미 요양소에서 그린 '아이리스'(1890)는 보험가액만 각각 1,000억원에 달하는 고흐의 대표작이다. 특히 '아이리스'는 반 고흐 미술관에서 한번도 해외에 반출된 적이 없는 귀한 작품이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이 대여한 '프로방스의 시골길 야경(사프러스와 별이 있는 길, 1890)', 밀레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평가되는 '씨 뿌리는 사람'(1888), '우체부 조셉 룰랭'(1889) 등도 반 고흐의 손꼽히는 대표작이다.

이번 전시는 반 고흐의 삶의 궤적을 따라 작품 활동시기를 중심으로 연대기순으로 구성돼 있다. 첫 시기는 가난한 농민사회의 처참한 생활상을 어두운 화폭에 담은 초기 네덜란드 시기(1880~1885).

장 프랑수아 밀레의 영향을 깊이 받았던 반 고흐가 네덜란드의 가난한 사람들을 그리던 때로 대표작이 '감자 먹는 사람들'(1885년)이다. 이번 전시에는 그것과 비슷한 석판화가 오고, 유화 '베틀과 방직공'(1884년) 등이 소개되고 있다

다음은 반 고흐가 파리로 이주해 인상파의 빛을 발견하면서 초기의 어두운 색채에서 벗어나 밝은 색채를 도입하기 시작한 파리 시기(1886~1888)다. 당시 파리의 풍경, 정물을 그린 작품과 '자화상'(1887년) 한 점이 서울에 왔다. 반 고흐는 2년 간의 파리생활 동안 엄청난 양의 자화상을 그리기도 했는데 그가 남긴 자화상 40여점 중 서울 전시작을 포함한 35점이 파리에서 제작됐다.

세번 째는 프랑스 남부의 강렬한 빛을 통해 색채의 신비를 마음껏 구사한 아를 시기(1888~1889)로 반 고흐 특유의 빛과 색채가 만개했다.

남프랑스의 넘치는 빛을 화폭 위에 두껍게 물감을 발라 표현하는 독특한 양식이 특징으로 '해바라기' 정물화 여러 점과 , '별이 빛나는 밤에'(1889년), 자신이 살던 방안을 그린 '아를의 반 고흐의 방'(1889년) 등 반 고흐의 주요 걸작들도 이때 탄생했다. 이번 전시에는 '씨뿌리는 사람', '노란집'(1888년), '우체부 룰랭' 등이 왔다.

이어 고갱과 다투고 자신의 귀를 자른 반 고흐가 생 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생 레미 시기(1889~1890)는 위대한 자연의 발견과 색체회화가 완성된 시기로 특징된다. '아이리스'(1890년), '프로방스의 시골길 야경'(1890년)은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우체부 조셉 룰랭 (1899), 슬픔 (1882)


반 고흐가 생애 마지막 70일을 보낸 오베르 쉬르 우아즈 시기(1890)에는 80여 점의 유화 작품을 남겼다. ‘의사 가셰의 초상’을 비롯한 인물화와 풍경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그 중 일부가 이번 전시에 소개되고 있다.

반 고흐전을 기획한 서순주 전시 커미셔너는 “반 고흐전은 전 세계에서 항상 대여요청이 쇄도하기 때문에 한 국가에서 100년에 한번 열릴까말까 한 미술 전시의 월드컵”이라며 “초기 작품부터 생의 마지막 79일 동안 그렸던 작품에 이르기까지를 망라한 이번 전시는 반 고흐의 삶과 예술을 총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뜻 깊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입장료는 성인 1만2,000원, 청소년 1만원, 어린이 8,000원. 만7세 미만 미취학 아동 및 만65세 이상, 3급 이상 장애인 동반 1인까지, 국가유공자 등은 무료 입장. (02)724-2900

■ 반 고흐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

◇ 동생 테오 반 고흐(1857-1891)

반 고흐의 유일한 후원자이자 예술적 동지. 파리 화랑의 딜러로 일하며 버는 얼마 안되는 돈으로 형의 생활비를 대고 그림을 계속하도록 독려했다. 반 고흐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테오에게 668통의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그의 복잡한 내면과 그림에 대한 열정, 테오의 형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담겨 있다.

반 고흐의 자살동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동생에게 더 이상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였다는 게 정설로 전해진다. 테오는 반 고흐가 권총으로 자살 한지 6개월 만에 정신착란으로 숨졌다.

두 형제는 파리 근교의 오베르에 나란히 묻혔다.

◇ 매춘부 시엔(1850-1904)

반 고흐의 초기 대표작 ‘슬픔’의 모델. 1881년 반 고흐가 헤이그에 머물 때 동거한 미혼모 매춘부로 반 고흐의 사랑이 머문 안식처였다. 그러나 반 고흐는 가족들의 반대로 시엔과 그녀의 자식들을 버릴 수밖에 없었고, 시엔은 반 고흐 사후 물에 빠져 자살했다.

◇ 폴 고갱(1848-1903)

반 고흐가 아를로 내려가 화가 공동체를 꿈꾸며 ‘노란 집’을 구해 작업할 때 유일하게 파리에서 동참한 화가. 경쟁과 조언을 반복하며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던 두 사람은 예술에 관한 견해차로 심하게 다투고, 반 고흐가 왼쪽 귀를 자르는 발작으로 이어지면서 결별했다.

고갱이 파리로 떠난 후 프랑스 최대 잡지인 파리마치는 “그들이 함께 지낸 기간은 두 달에 불과했지만 미술사를 바꿔놓았다”고 적었다. ‘해바라기’, ‘아를의 방’, ‘고갱의 의자’ 등이 고갱과의 우정 속에서 그려진 그림들이다.

◇ 우체부 조셉 룰랭(1841-1903)

반 고흐가 아를에 머물던 시절 절친하게 지냈던 유일한 친구. 고갱과의 다툼 끝에 귀를 자른 반 고흐를 동네사람들이 미치광이로 몰아 감금하려 했으나, 룰랭의 가족만이 끝까지 그를 돌봐주었다. 반 고흐는 그와 그의 아내, 아들 등 모든 가족의 초상화를 그렸다.

◇ 의사 가쉐(1828-1909)

반 고흐가 마지막 희망을 안고 찾아간 오베르에서 믿고 의지하던 의사. 미술에 안목이 있는 가셰는 세잔느를 비롯한 화가들의 친구이자 후원자였으며 반 고흐를 지원하고 그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반 고흐가 자신의 딸 마르그리트에게 연정을 갖자 냉정하게 돌변, 반 고흐 자살의 한 동기가 됐다. 반 고흐의 임종을 지켜본 그는 “반 고흐는 정직한 사람이었고, 위대한 화가였다. 그를 살아갈 수 있게 한 것은 바로 그림이었다”고 말했다.

반 고흐의 마지막 작품 ‘의사 가셰의 초상’은 1990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8,250만 달러에 낙찰돼 반 고흐 작품 중 최고 경매가를 기록하고 있다.

◇ 요한나 반 고흐 본헤르(1862-1925)

테오의 아내. 반 고흐가 죽은 뒤 친척들은 모두 그의 작품을 가치가 없다며 불태워버리려 했으나, 요한나가 보존, 후세에 반 고흐의 작품세계를 알렸다. 요한나는 전시회를 열고 반 고흐의 편지를 책으로 출판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벌여 반 고흐 사후 10년이 안돼 그를 위대한 천재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 '경매 블루칩' 반 고흐의 그림값은 얼마…

왼쪽부터 '의사 가셰의 초상' 8,250만 달러- '자화상' 7,150만 달러- '해바라기' 3,900만 달러- '붓꽃' 5,390만 달러



반 고흐는 37년의 짧은 생애 중 10년의 작품 활동에서 유화작품은 880여 점을 남겼다. 그러나 당대 비평가들로부터 "고흐의 색채는 야만적"이라는 신랄한 비판을 받아 생전에 '붉은 포도밭(1888년)'이 1890년 브뤽셀 전시회에서 400프랑(약 30달러)에 팔린 게 유일했다.

반 고흐의 작품은 사후 100년 가까이 돼 세계의 경매가 기록을 갈아치우며 최고 블루칩으로 자리매김했다.

1987년 2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작품 '해바라기'(1888년)가 3,900만 달러(약 400억원)라는 최고가로 일본 손해보험사인 손보재팬에 낙찰됐고, 같은 해 11월 소더비 경매에서 '붓꽃(아이리스)(1889년)'이 5,390만 달러(약 635억원)에 팔려 최고가를 기록했다.

또 1998년에는 반 고흐가 말년에 어머니의 선물로 그린 자화상 '수염 없는 예술가의 초상'(1889년)은 7,150만 달러(약 657억 8,000만원)에 경매됐다. 1990년 '의사 가셰의 초상'(1890년)은 8,250만달러(약 972억원)에 일본 굴지의 제지업체 명예 회장 사이토 료에이에게 들어갔다.

반 고흐의 그림 값은 매년 치솟아 소더비는 2002년 자산재평가과정에서 '해바라기'의 감정가를 8,000만~1억 달러로 평가했다.

■ 반 고후 생애

- 1853년 3월30일 네덜란드 준데르트에서 장남으로 출생

- 1869~75년 구필 화랑의 헤이그ㆍ런던 지점 근무

- 1877~79년 암스테르담에서 신학 공부. 벨기에 탄광에 전도사로 재직했으나 광부 선동으로 해직,

-1880~85년 그림 입문. 네덜란드 에텐ㆍ헤이그 등에서 ‘감자 먹는 사람들’ 등 어두운 색채의 초기작 그림

-1886~88년 파리 몽마르트르에서 테오와 함께 살며 인상파 화가들과 교유. 밝은 색채의 ‘자화상’ 등 그림

-1888~89년 프랑스 남부의 아를로 옮겨 ‘노란 집’ 등 그림. 고갱과 함께 지내다 심한 언쟁 후 귀를 자름

-1889~90년 생레미의 생폴 요양원에 입원. ‘아이리스’ 등 그림

-1890년 파리 근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옮겨 ‘까마귀 나는 밀밭’ 등 그림

-1890년 7월27일 오베르 밀밭에서 권총 자살 시도

-1890년 7월30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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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7/11/27 13:59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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