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벌써 총선 콩밭' 굳어지는 표심, 대선후보들은 지금…

대선은 사실상 끝났다. 이제 관심은 후폭풍이다.

17대 대통령선거는 투표(19일)도 하기 전에 ‘보나 마나’한 싱거운 선거가 됐다. 대선에 앞서 공표가 가능한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 무소속 이회창 후보를 압도한 것으로 나타났고, 이러한 결과가 대선 당일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한국일보-미디어리서치의 12일 여론조사 결과 이명박 후보는 41.7%의 지지율로 정동영 후보(16.6%)를 25.1% 포인트 차이로 따돌렸고, 이회창 후보(10.9%)와는 무려 30..8% 포인트 차이나 났다.

이러한 추세는 중앙일보-SBS-TNS코리아(이명박 44.7%, 정동영 15.7%, 이회창 13.1%), 조선일보-한국갤럽(이명박 45.4%, 정동영 17.5%, 이회창 13.6%), 문화일보-디오피니언(이명박 45.6%, 이회창 17.8%, 정동영 16.1%) 등의 12일 여론조사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한마디로 17대 대선이 ‘이명박 대선’으로 굳어진 양상을 보인 것이다.

통합신당 7개 세력 이합집산 가능성… 손학규 향후 행보 관심
한나라 총선서 과반수 가능성… 이명박·박근혜 파워게임 촉각
정통보수 표방 '이회창 신당' TK·충청 기반으로 득세할 수도
범여권 이탈세력 합류하면 문국현 창조한국당도 탄력받을 듯

대선판에 때 이르게 총선 바람이 분 것도 그러한 배경에서다. 여야 의원들이 대선 지원에 나서면서 마음은 총선밭에 가 있는 행태를 보인 것이나 대선후보들까지 한 발은 대선을 향해 내딛고 다른 한 발은 내년 총선에 담가두는 행보를 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대선이 종료되는 시점부터 ‘총선 전쟁’은 막이 오르고 정당 및 계파 간 이합집산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그 양상은 대선 결과에 뒤이은 후폭풍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 예상된다.

■ 통합신당 분열 점쳐져

대통합민주신당은 대선을 한달여 앞 둘 때만 해도 비록 정동영 후보의 지지율이 이명박 후보에 비해 20% 포인트 이상 뒤지고 있었지만 ‘역전승’에 대한 기대가 부풀었다. 이 후보를 한방에 날릴 수 있다는 ‘BBK 카드’와 ‘범여권 후보단일화’라는 비장(?)의 무기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BBK 카드가 검찰수사 결과 ‘헛방’으로 끝나고 후보단일화마저 물건너가면서 ‘역전승’에 대한 실낱 같은 희망도 증발해버렸다. 그에 따른 역풍은 통합신당과 정동영 후보에게 가혹하게 밀어닥칠 전망이다.

현재 통합신당은 크게 △정동영계 △김근태계 △손학규계 △이해찬-유시민-한명숙 등 친노계 △이광재-백원우 등 노무현계 △정균환 등 민주당 탈당그룹 △오충일 대표 중심의 시민사회단체 출신 등 7개 세력으로 구성돼 있다.

통합신당이 대선 패배에 따른 쓰나미에 휩쓸릴 경우 당내 계파간 이해관계 및 노선에 따라 각각 다른 길을 선택, 정계개편을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한 흐름에 내년 4월 총선은 최대 원심력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정동영 후보의 득표가 ‘의미있는 2위’로 받아들여질 경우 당장 물러나지는 않겠지만 내년 1월 전당대회를 계기로 총선에 따른 계파간 충돌이 예상돼 분열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그럴 경우 정동영계가 당을 사수하고 손학규계와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의 결합이 점쳐지며, 친노그룹은 노무현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독자 행보를 취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수도권 개혁세력과 오충일 대표 등 시민사회단체 출신은 4월 총선을 겨냥해 문국현 후보와 손을 잠을 가능성이 있고, 민주당 탈당그룹은 민주당과의 재결합을 모색할 것으로 분석했다.

김 교수는 정 후보의 득표가 저평가될 경우 정 후보가 2선으로 물러나면서 통합신당발(發) 정계개편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은 “정동영 후보의 득표율에 관계없이 정계개편은 필연적”이라고 주장했다. 수도권 의원을 비롯한 개혁세력은 정동영 후보를 당 간판으로 해서는 총선에서 불리하다고 보고 새 중도개혁당을 모색할 것이고, 친노그룹은 정 후보와의 동행에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중도개혁당의 주축으로 문국현 세력과 손학규계 외에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같은 인물을 꼽았다.

반면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정동영 후보에 대한 득표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중요한데 이번 대선은 참여정부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강한 만큼 친노그룹은 약화되고 문국현 세력의 기반은 미비해 총선까지 정동영계가 당을 이끌 가능성이 크다”며 “손학규 전 경기지사도 탈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 한나라당 거대 여당으로 순항하나

한나라당은 대선의 최대 고비였던 BBK 걸림돌이 제거된 뒤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기정사실화하고 득표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내년 총선에서 이 후보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할 과반 이상의 의석 확보를 위해서였다.

정치 전문가들은 내년 총선이 다당제 구도로 치러지고 대선 프리미엄 등으로 인해 한나라당이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경희대 김민전 교수는 “내년 총선은 정통보수와 정통진보의 대결이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명박 후보의 대북정책은 실용주의ㆍ시장주의를 중시하는 탈냉전, 신(New)보수 프레임을 갖춰 한나라당의 전통적인 지지층 외에 더 많은 국민에게 어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상철 교수는 “대선에서 거대한 보수세력이 탄생한데 반해 범여권은 지리멸렬해 총선에서도 보수 바람이 거셀 것”이라며 “현재 여권 의원 중 3분의 1 정도만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앙대 장훈 교수는 “한나라당이 대선 프리미엄이 있지만 호남ㆍ충청의 지역 변수와 총선 후보 선발 문제, 이회창 신당 등장, 진보세력의 결집 등으로 과반 의석 확보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선 후 총선을 앞두고 예상되는 한나라당 이명박 세력과 박근혜 전 대표 세력 간 파워게임과 이에 따른 정계개편 가능성은 초미의 관심사다. 일각에서는 대선후보 경선 때와 같은 이-박 전쟁이 재연될 경우 당이 깨질 가능성도 있다는 견해도 있다.

나아가 박근혜 세력과 이회창 신당이 손을 잡아 보수세력이 재편되면 정치권 빅뱅과 함께 총선이 불투명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민전 교수는 “대선 후 이명박 후보가 어떤 스탠스를 취하느냐가 중요하다”며“과도하게 ‘이명박당’을 만들려고 하면 박근혜 세력과 충돌할 가능성이 높고, 분당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NI코리아의 이흥철 대표는 “이명박ㆍ박근혜 측 간의 대립이 분당까지는 가지 않겠지만 이회창 신당이 커질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 이회창 신당 가능성과 한계

이회창 후보는 지난 9일 창당 선언을 밝혀 총선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의중을 나타냈다. 대선 전 국민중심당의 합류는 ‘이회창 신당’의 성격과 윤곽을 가늠케 했다. 즉 총선에서 제2의 자민련 바람을 일으켜 ‘제3 정당’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도다.

96년 15대 총선에서 자민련은 민자당을 탈당한 인사들과 함께 충청권과 대구ㆍ경북(TK)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50석을 거머쥔 바 있다. 이회창 신당 역시 이명박 후보 집권 후 당 개혁작업에 반발한 박근혜 측 의원이나 공천 탈락 인사들을 대거 영입해 충청과 TK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통 보수 정당을 표방할 가능성이 크다.

이회창 신당에 대해 NI코리아 이흥철 대표는 “대선 전부터 10%대의 지지율을 유지한 것은 무시할 수 없는 대목으로 충청과 TK라는 지역적 기반이 있고 대선 후 이명박ㆍ박근혜 세력 간 알력으로 박근혜 측 인사들이 이회창 신당에 합류할 경우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킬 수 있다”고 봤다.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자극에 대해 반응하기 시작하는 분계점(threshold)에 해당해 외부 힘이 가해지면 ‘제3 신당’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박상철 교수는 “대선에서 보수진영의 승리는 총선에서 거대 보수세력의 탄생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크다”면서 “오히려 총선 후 보수세력 내부에서 노선 투쟁이 일어나 정계개편이 촉발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럴 경우 이회창 신당이 힘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김형준 교수는 “박근혜 전 대표가 이명박 후보와 손을 잡고 있고 총선에서 자신과 지지기반(충청ㆍTK))이 겹치는 이회창 신당을 초토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미래가 낙관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대선 후 진행될 삼성비자금 특검에서 이회창 후보가 자유롭지 못한 점도 신당의 한계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 문국현 개혁당 기수로 나설듯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가 정동영 후보와의 후보단일화를 거부하고 ‘마이웨이’ 전략을 편 것은 총선을 겨냥한 측면이 강하다. 문 후보는 대선 유세 중 “총선을 포기한 정당은 정당이 아니다. 대선에 집중하되 총선 또한 준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해 그 같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문 후보의 주장처럼 정가 일각에서는 대선 후 문 후보가 범여권 중도개혁세력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우선 통합신당 내에서 정동영계와 동행하기 어렵고 친노그룹과도 손을 잡기 부담스런 세력들이 당을 나와 문 후보 측에 합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총선을 앞 둔 시점이 그러한 원심력을 배가시킬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상철 교수는 “총선과 그 이후의 정계개편을 고려해 손학규 세력을 비롯한 수도권 개혁세력과 시민단체 출신들이 문 후보 측과 결합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통합신당과 민주당과의 연대가 가시화되면 그러한 결합은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중에 청와대 출신 일부 친노 인사와 시민단체 출신들이 문 후보 캠프에 합류한 것은 그러한 개연성을 높여 준다.

반면 문국현 후보의 득표와 지지율이 미비한 것으로 판단될 경우 한나라당과 통합신당의 틈바구니에서 실험정당(후보)으로 끝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 민주당, 민노당 위기와 기회 공존

민주당은 대선 중 후보단일화에 나서라는 여론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외압에 시달렸지만 총선을 앞두고 한껏 고무돼 있다. 대선 결과에 따라 통합신당을 지지했던 세력들이 이탈하면서 호남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민주당 살리기에 나설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내 호남 핵심 인사들이 대거 통합신당에 합류, 실질적인 호남 대표성을 띠고 있다는 전제에서 총선 전 민주당이 통합신당에 흡수 내지 합당할 것이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더욱이 대선 후 정계개편으로 통합신당이 호남당 이미지를 띨 경우 민주당은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

민주노동당은 권영길 후보의 득표가 내년 총선에서 지난 17대 총선 만큼의 의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를 놓고 견해가 분분하다.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과, 이명박 후보 당선시 통합신당에 실망한 진보개혁 성향 유권자들이 민노당 키우기에 나설 것이라는 낙관론이 교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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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