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과 소통하는' 메리트 떨어져 기업인들 외면정계인사들 대거 진출 속 재벌 총수 모시기 경쟁

“정치인과 기업인 중에 누가 체육단체장을 맡는 것이 좋으냐고요? 솔직히 대답하면 당연히 기업인이죠!” 국내 한 스포츠 관계자의 증언이다.

대한체육회 산하 경기 단체는 55개. 이들 가맹 경기단체장의 대부분은 기업인들이 차지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국회의원 등 정치권 인사들이거나 경기인 출신들. 여전히 기업인들이 대다수이긴 하지만 그래도 정치인 출신들이 여럿 포진해 있다는 것은 분명히 예전과 달라진 양상이다.

정치인들이 체육단체의 수장으로 나서게 된 것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전까지는 정치인 출신이 거의 없었다. 진보적 정권이 들어서고 경제 상황이 바뀌면서 달라진 모습 중 하나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기업인들이 체육단체장을 서로 맡으려고 했어요. 기업인으로서는 불가능하지만 체육인으로서는 청와대도 가고, 포상도 받는 메리트가 있었거든요. 물론 86아시안게임이나 88올림픽 등 국제 스포츠 대회도 잇따라 열리는 시기인데다 당시 ‘권력이 하늘을 찌를듯한 기세의’ 정치권과 물꼬를 트는 효과도 기대했겠죠.”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기업인들을 모시려고 해도 거절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금 경기 단체장은 외부에서 추대해 모셔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기업인들이 ‘서로 하겠다’는 상황은 결코 아닙니다.” 한 체육단체 인사는 “돈은 많지만 명예를 얻으려는 분들 가운데 간혹 관심을 표명하다가도 ‘돈 내놓고 명함만 갖고 있으라는 것이냐’며 최종 단계에서 망설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특히 체육단체에 알력이나 내분이 심하거나 복잡할 경우 기업인들이 아예 등을 돌리기도 한다.

또 종전과 달라진 경제 상황도 커다란 변수로 작용한다. 70~80년대 경기 확장기에 자금운용에 어려움이 없던 기업들이 1990년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씀씀이가 예전만 못해졌다는 것.

재벌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마찬가지다. 정치권 인사들이 스포츠 단체들의 수장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도 이런 저간의 사정과 결코 무관치 않다. 기업인들이 도통 뛰어들지 않으니 정치인들이라도 나서게 됐다는 것. 체질상 ‘감투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정치인들로서는 또 하나의 명함(직함)을 얻게 된다는 부수적 효과도 있다.

정치인이든, 기업인이든 일단 체육단체의 수장에 오르게 되면 커다란 의무가 주어진다. 바로 ‘돈을 대는 일’. 각 종목 협회는 대표나 후보 선수 훈련비나 감독, 선수 수당 등은 국조 지원을 받지만 각종 대회나 세미나, 회의 개최, 참가 및 직원 인건비 등 제반 경비는 거의 대부분 스스로 조달해야만 한다.

거의 모든 체육단체들이 재력 있는 회장이나 임원들이 출연하는 기금이나 후원금에 절대 의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종목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체육단체장 출연금은 적게는 연간 수 억원에서 10억 원이 넘는 경우도 있다.

후원금을 내는 형식에서 기업인과 정치인은 큰 차이가 있다. 한 마디로 기업인은 스스로 돈을 내는 반면, 정치인은 ‘자기 돈’이 아닌 외부에서 후원금을 조달한다. 체육인들은 그래도 ‘직접 돈을 내는 이(기업인)가 외부에서 끌어 당기는 이(정치인)들 보다는 낫지 않냐’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끗발 좋은’ 정치인이 단체 수장이 됨으로써 대외적으로 위상이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는 장점은 있다.

각 체육단체의 예산이나 후원금 수요는 그 종목의 인기도나 메달 획득 여부와는 크게 관계가 없다. 비인기종목이라도 대회나 행사가 많이 열리면 그만큼 후원금도 많아야 되는 식이다. 대한체육회 김재원 경기운영팀장은 “간혹 대기업에서 특정 종목을 맡고 싶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선수나 협회에서도 그에 걸맞은 성적을 내는 등 노력과 실적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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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식 기자 parky@hk.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