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손학규·친노계 등 통합신당 계파들 '당권 장악' 묘수 찾기이회창 충남 예산·문국현 서울 등 '총선 올인'위해 지역구 저울질

17대 대선이 한나라당의 완승으로 막을 내리면서 정당에 부는 후폭풍이 거세다.

직격탄을 맞은 대통합민주신당(이하 신당)은 물론, 기대에 훨씬 못 미친 민주노동당, 민주당, 창조한국당 등은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다. 각 당의 대선 후보로 나섰던 인사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대선 참패에 따른 책임론에 직면, 쇄신운동의 대상으로 내몰리는가 하면 노선 투쟁의 도마 위에 올라 입지가 축소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권 3수에 나섰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목표 달성에 실패했지만 재기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신당 창당 및 4월 총선에 올인하는 행보를 취하고 있다.

4월 총선은 각 당의 진로와 함께 대선레이스의 예선과 본선에서 뛰었던 주자들의 거취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줄 전망이다.

우선 통합민주신당은 당 쇄신안을 놓고 계파간 이해가 맞물리며 격돌,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상태다. 2월 전대를 앞둔 파워게임의 양상에 따라 당이 깨지거나 의원들의 탈당 도미노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안영근 의원이 탈당을 선언해 그 전초를 보이고 있다.

신당은 정동영(DY)계를 비롯해 경선주자였던 손학규 전 경기지사 그룹, 이해찬 전 총리를 정점으로 한 친노그룹, 김근태 의원 그룹, 민주당 탈당 그룹, 시민사회 그룹 등 5~6개의 정파가 연합해 있다. 이들은 대선패배에 따른 당 쇄신과 지도부 재편에 한 목소리를 내면서도 2월 전대를 통한 당권 장악과 4월 총선에는 셈법이 다르다.

현재 당내 파워그룹의 두 축은 비노(非盧)그룹을 대표하는 정동영계와 친노그룹이다. 신흥세력으로 부상한 손학규계는 수도권 개혁성향의 의원을 중심으로 독자그룹을 결성하고 있다. 가장 세력이 강한 정동영계가 경선을 통한 대표 선출을 주장하는데 반해 친노그룹과 손학규계가 추대론을 주장하는 것은 그러한 배경에서다.

정동영계는 정 전 후보가 대선패배 책임을 지고 백의종군하기로 한 후 김한길 의원을 중심으로 당권 장악과 4월 총선을 주도하겠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정 전 후보는 2월 전대에서 자파세력이 당권을 잡는데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후 총선에 직접 출마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회창, 문국현, 이인제

일부 정동영계 의원들은 정 전 후보가 대선참패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정치적 씻김굿을 하려면 4월 총선에서 상징성이 있는 서울 종로나 강남 지역, 또는 최소한 생환을 고려해 호남성향이 강한 서울 다른 지역에 출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출신지인 전북 지역 출마나 비례대표는 비겁한 후퇴라는 논리다.

반면에 정 전 후보가 정치적 거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총선에 출마하지 말아야 한다고 권유하는 참모도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도 “정동영 전 후보가 대선패배에 책임이 있는 만큼 섣불리 정치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자숙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향후 정치적 재기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대선 경선에서 정 전 후보에 패한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합의로 대표를 추대하면 수용하겠지만 불리한 경선엔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손 전 지사 측은 4월 총선과 관련, 합의추대로 대표가 되면 비례대표로 물러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지역구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 출마 지역은 기존에 터를 잡았던 경기 광명시 대신 경기도지사 시절 업적으로 내세운 LCD 단지가 있는 파주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손 전 지사측은 창조한국당 문국현 세력과 연대를 통해, 또는 일부 친노그룹 및 당내 개혁성향 의원들과 신당창당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친노그룹은 다양한 분화가 예상된다. 이들은 일단 세력을 모아 당권에 도전하고 여의치 않을 경우 ‘독자신당’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해찬 전 총리 측근 인사들을 중심으로 지난달부터 재단법인 ‘광장’ 설립에 나선 것은 그러한 추정에 힘을 싣는다.

최근 친노그룹을 대표하는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이 현 지역구인 경기 고양시 덕양구 갑을 떠나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핵심으로 꼽히는 한나라당 주호영 의원 지역구(대구 수성구 을)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친노그룹이 대거 탈당, ‘노무현 신당’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그럴 경우 친노 대선 주자 출신들의 출마지역도 달라질 수 있다.

즉 이 전 총리는 충청권 대표 주자로 이 지역에 나서고 한명숙 전 총리(경기 고양 일산갑)는 서울 강남이나 서초에, 유시민 전 장관과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은 각각 대구와 경남을 대표해 출마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일단 지역구 출마를 전제할 때 이해찬 전 총리는 서울 관악을에 나설 예정이고, 한명숙 전 총리는 이명박 당선인의 핵심 실세인 백성운 대통령직 인수위 행정실장과 버거운 싸움이 예상된다. 김두관 전 장관(경남 남해ㆍ하동) 역시 관록의 5선인 한나라당 박희태 의원과 맞붙는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전 후보는 대선에서 목표인 10% 득표에 크게 못 미치는 5.8%를 득표, 4월 총선결과가 당과 자신의 진퇴를 결정하게 됐다. 4월 총선에서 문 전 후보는 비례대표설이 유력하나 일부 참모들은 직접 출마해야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며 전통적인 정치1번지인 서울 종로나 문 후보가 대표를 지낸 유한킴벌리 본사가 있는 강남을 거론한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대선에서 3% 득표율이라는 최악의 성적으로 총선에 비상등이 켜졌다. 경남 창원을 지역구에 노동계 유권자가 많다고 하나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한나라당) 바람이 워낙 거셌기 때문에 4월 총선이 순탄치 않다.

대선에서 1%에도 못 미치는 득표율에 그친 민주당 이인제 전 후보는 당 존립과 거취마저 위태롭게 됐다. 게다가 이 전 후보의 지역구인 충남 논산ㆍ계룡ㆍ금산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오른팔로 알려진 안희정 참여정부평가포럼 집행위원장이 출마할 예정이어서 접전이 예상된다. 안 위원장은 국방대학교를 지역에 유치, 좋은 여론을 형성해 이 후보를 압박하고 있다.

대선 막판에 출마한 이회창 전 후보의 4월 총선 성적표는 이번 총선 관전 포인트 중의 하나다. 대선 출마 한달여만에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15%의 득표를 한데다 충청권과 영남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한나라당 공천 갈등이 파행으로 치달아 박근혜 전 대표가 탈당할 경우엔 이회창 신당은 정치권 빅뱅의 중심에도 설 수 있다.

이회창 전 후보의 경우 4월 총선 출마를 놓고 참모들 간에 견해가 갈리나 비례대표보다 출마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홍주 특보는 “총선에 출마하는 것이 (이회창)신당이 전국적인 바람을 일으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 전 후보가 출마할 경우 연고지인 충남 예산이 유력하다. 이 전 후보는 대선 때 이곳에서 무려 60%가 넘는 득표율을 보였는데 한나라당 홍문표 의원에게 빨간 불이 켜진 셈이다.

대선 과정서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했던 국민중심당 심대평 전 후보는 대전 서구 을에 출마할지 여부가 관심사다. 일부에선 이회창 전 후보의 지역 출마를 추동하기 위해서라도 심 전 후보가 출마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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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