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겨운 '외조'로 성공 이룬 파워여성 스토리슈퍼우먼 환상 깨고 남편의 가사 참여 이끌어… 야근하는 아내 위해 설거지·밥하기는 기본

육아·가사 책임지는 '슈퍼대디' 크게 늘어
피오리나 전 HP회장 남편은 전업주부 자청

한국사회에서 엘리트 여성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어릴 때부터 성차별을 거의 받지 않고 자라나 학업과 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남자 못지않게 뛰어난 ‘알파걸’들은 높은 성취욕을 가지고 사회에 진출해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최근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직은 물론 대기업CEO에서 국무총리까지, 유리천장을 부수고 전통적으로 금녀의 영역으로 인식돼 왔던 자리에 오른 여성들의 모습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남녀 차별의 벽이 점점 무너지고는 있으나 선진국에 비해서는 아주 열악한 제도적 환경 속에서 여성이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들은 어떻게 안팎의 악조건들을 극복했을까.

직장과 가정에서 양립하면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들은 과연 ‘수퍼우먼’일까?

결코 아니다. 가정을 가지고 성공 신화를 이룬 여성들이 먼저 ‘수퍼우먼 신화’의 허구를 지적한다.

미국의 경우 칼리 피오리나 전 휴렛팩커드 회장을 비롯한 ‘실리콘밸리 우먼파워’의 주인공들이 나서서 직장여성들을 향해 “수퍼우먼의 환상에서 깨어나라”고 부르짖는다.

이들은 여성이 시간관리를 잘 하면 바깥 일과 가정 일 모두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는 수퍼우먼 환상이 비현실적이며, 육체와 정신을 병들게 하는 원인이라며 비난한다. 수퍼우먼에 대한 강박증은 국내 직장여성들도 심해 그런 사고가 오히려 직장생활을 수행하는데 커다란 장애 요소로 대두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여성이 일과 가정을 성공적으로 병행하기 위해서는 물론 사회제도적 환경이 필요하지만 가정 내 환경조성이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가화만사성’을 말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기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수퍼우먼의 집착에서 벗어나 가족, 특히 남편의 도움을 이끌어내야 한다. 칼리 피오리나 전 회장의 남편이 부인 내조를 자청해 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전업주부를 택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성공한 여성으로 매스컴을 통해 소개된 바 있는 이숙영 전 LG CNS 상무는 “내가 회사 일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 때문에 며칠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할 때도 많았는데, 그 때마다 가족들이 배려해 줬기 때문에 집안 일에 대한 걱정이나 죄책감 없이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국내 생명보험업계에서 최초로 여성 부사장이라는 타이틀을 단 프루덴셜 생명의 손병옥 부사장 역시 여성들이 집안 걱정으로 인해 경력관리를 소홀히 하는 등 직장에서 잃어버리는 것이 적지 않음을 지적한 바 있다.

그 집안의 핵은 남편이다. 결국 여자가 직장과 가사를 다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남편의 적극적인 내조를 이끌어 내는 것이 관건이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속속 등장하는 ‘출세한 여성’의 뒤안에는 헌신적인 남편이 있다. 남편의 성공을 위해 내조하는 아내가 있는 것처럼, 아내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내조하는 남편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 "집안일은 걱정 말고 일하세요" 열부들 사례

집안일은 여성이 담당해야 할 부분이라고 보는 인식이 곳곳에서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특히 신세대 맞벌이 부부들 가운데 가부장적인 부부의 성(性)역할에서 벗어나 아내의 사회생활을 돕는 남편이 많아지고 있다.

외국계 제약회사에서 상품기획자(MD)로 일하는 임소영(28) 씨는 남들보다 출근시간이 이른데다 밤 10시가 넘어 퇴근하는 일이 다반사다.

하지만 집안일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어 직장생활이 힘들지 않다고 말한다. 신용정보회사에서 근무하는 남편 김영태(33)씨가 식사준비에서 설거지, 청소 등 거의 모든 가사업무를 도맡아 해주기 때문이다. 맞벌이를 해도 집안일은 여자 몫이라 여겼던 관행에서 변화한 모습이다.

남편 김 씨는 “야근하는 일이 거의 없는 직장에 다니는 내가 야근이 잦은 아내를 도와 집안일을 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한다. 임 씨는 출산 후에도 직장생활을 계속할 계획이다. 남편이 지금처럼 집안일은 물론 육아를 적극 돕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가사는 물론이고 육아까지 책임지는 남편이자 아빠인 ‘수퍼대디(Super Daddy)’들도 늘어나고 있다. 수퍼대디는 직장일과 가사를 병행하는 엄마 ‘수퍼맘’을 대체하는 미국의 신조어이다.

강상구(37) 민노당 교육국장은 지난해 갓 태어난 아들 미루를 돌보기 위해 1년간 육아휴직을 냈다. 프리랜서 다큐멘터리 PD로 일하는 부인 주현숙(36)씨가 하던 일을 중단하고 싶지 않아 했기 때문이다.

일하는 부인을 위해 1년간 전업주부 역할을 한 강 씨는 “전업주부생활을 하는 동안 심한 우울증에 걸리기도 했다”면서도 “아이 키우는 일을 여자 혼자 하는 건 당연시 여기고 남자가 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로 여기는 편견은 잘못된 것”이라고 비난한다.

“전업주부로 아이를 돌보는 일에 비하면 군대생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렇게 힘든 일을 여자에게만 맡긴다는 것은 얼마나 부당한가요? 그건 인권 침해에요. 더구나 요즘 여성들은 자아실현욕구가 높은데, 남편이 그걸 도와야지요. 그런 여성들을 계속 집에 가두고 애만 보라고 하면 주부우울증이 생기는 겁니다. 육아의 고통은 부부가 나눠 가져야 합니다.”

서울대병원 영상의학과 이활(38) 교수도 일하는 아내를 도와 두 아이의 육아업무에 적극 임해온 대표적인 수퍼대디다. 이 교수의 부인 고현주(32) 씨는 같은 병원 산부인과에서 올해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부인 고 씨는 “인턴과 레지던트를 합쳐 다년간 전공의 과정을 밟는 동안 남편이 육아를 비롯해 가정 일로 신경 쓰지 않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해줬다”고 말한다. 의대 전공의 과정의 경우, 집에 들어갈 틈도 없이 대부분의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야 한다.

남편인 이 교수는 아내를 대신해 매일 1시간 이상 아이들과 놀아주는 등 열부 역할을 다했다.

“세상에는 능력 있는 여성들이 참 많아요. 결혼과 육아 때문에 그 능력을 썩히도록 놔두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봅니다. 남편은 할 수 있는 데까지 아내가 가정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도록 도와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영주(42) 부장판사는 여성법조인으로는 매우 드물게 4명의 자녀를 뒀다. 그가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해온 것은 동갑내기 변호사인 남편 임정수 씨다.

임 씨는 첫아이 출산 때부터 시골에 있던 어머니에게 자녀양육을 부탁했다. 그리고 아내를 대신해 아이들 숙제를 돌봐주고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주는 일을 하고 있다. 부인이 집안걱정 때문에 사회활동을 소극적으로 하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정신적으로 독려해온 것도 그의 공이다.

프리랜서 마케터 및 컨벤션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오혜환 씨도 일과 가정생활을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직장여성으로서 힘들어 할 때마다 남편이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고 고백한다.

그가 삼성전자 마케팅 팀에 입사해 지난 2001년 퇴사할 때까지 전직 교수였던 남편은 가정적인 문제로 회사에 부담을 주지 말라며 보건휴가도 절대 쉬지 못하게 하는 등 정신적인 지원을 해줬다.

“보수적인 조직에서 일하며 남녀차별도 많이 겪었고, 중간중간 퇴사하고 싶은 때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남편이 포기하지 말하고 격려해줬어요. 두 아이의 육아를 위해 20년간 친정엄마를 모시고 산 것도 남편 입장에서 최고의 외조였다고 보고요.”

중국에서 의류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박영옥 사장의 남편은 아내가 사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전업주부를 택했다. 해외출장이 잦은 아내를 위해 박 사장의 남편은 자진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고 집안 살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박 사장은 가사업무에 대한 부담 없이 왕성하게 사업을 할 수 있었고, 사업적인 성공도 거뒀다고 말한다.

이처럼 일과 가정을 성공적으로 병행하고 있는 커리어우먼들은 이구동성으로 남편의 도움이 없었다면 사회생활은 불가능했다고 말한다. 수퍼우먼이라서 가정을 지키며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여성의 사례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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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