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실종 어린이 급증… 유괴사건 크게 늘어 공포에 떠는 부모들매년 50여 명 끝내 못 돌아와… 사회안전망·예방시스템 구축 시급

경기도 안양 메트로 병원에 차려진 고 이혜진 양의 빈소에서 이양의 어머니가 오열하고 있다.
학교 앞에 차들이 줄줄이 서 있다. 모두 자녀의 하교를 기다리는 학부모들이다. 각 학교와 유치원에선 아동유괴 예방 인형극을 공연하는가 하면, 자녀 위치추적 서비스가 가능한 휴대폰을 사주는 부모들이 부쩍 늘고 있다. 최근 경기 안양 이혜진, 우예슬 양 유괴 살인사건의 충격이 가져온 새 풍속도다.

대한민국 어린이들이 사라지고 있다. 최근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어린이 실종사건은 2006년 7,060여건에서 2007년 8,600여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어린이 유괴사건의 경우, 2005년 13건에서 이듬해에는 18건으로 늘었다. 게다가 해마다 50여명의 어린이가 미귀가 또는 실종상태에 있다고 한다.

어린이들이 점차 실종과 유괴의 범죄 표적이 되면서 ‘어린이 실종 공화국’이라는 오명도 남의 일이 아니게 됐다.

어린이들이 사라지는 양태는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어린이 실종은 크게 미아, 유괴, 사고, 가출, 유기 등으로 나뉜다.

미아는 그야말로 ‘길을 잃은 아이’를 말한다. 집 근처나 사람이 많은 놀이공원, 백화점, 시장근처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집 근처에서 놀다가 집에 귀가하지 않는 경우, 흔히 미아라고 생각하지만, 아동이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말할 수 있는 인지 능력이 못 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실제로 미아는 매우 드문 경우다.

아이들이 사라지는 또 다른 상황 중 하나는 사고다. 실제로 없어졌던 아이들이 사고를 당해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안전과 관련된 사고가 많아서 한해 평균 3일 이상 실종상태에 있던 아이 중 10명이 사고로 발견된다.

가출도 실종의 한 종류다. 미국의 아동실종 전담기구에 신고 되는 실종의 70% 정도가 가출청소년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종전 ‘8세 미만 어린이’를 실종아동으로 정의했던 때와 비교해 2005년 12월 실종어린이 보호법률이 개정 된 이후 ‘14세 미만’으로 실종아동 기준이 바뀌고 나서 실종 중 가출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유기는 매우 드물지만, 어린이 실종의 한 부분이다. 자신의 자녀를 버린 후 주위 이목 때문에 '미아'로 신고한 경우다. 울산 우영진 어린이 사건의 경우 계모가 아이를 살해한 후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한 경우다.

부모들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유괴다. 금품 목적이나 여아의 경우 성폭력을 목적으로 한 아동 유괴는 2000년 이후 꾸준히 늘고 있다. 2004년 16건이던 아동 유괴는 2005년 13건, 2006년 18건으로 한 해 평균 15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특히 최근 유괴된 아동이 사망으로 발견되는 사건이 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낸다. 2000년 이후 발생한 주요 아동유괴 21건 중 어린이가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은 총 8건. 이중 절반인 4건이 2007년과 2008년 2월에 집중돼있다. (도표 참조)

유괴의 목적과 범인의 특징 또한 2000년 이후 변하고 있다. 형사 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00년 이전에는 유괴의 목적 중 몸값요구(13.9%)가 양육(15%)과 성적 욕구 충족(15%), 협박(14%), 앵벌이(13%), 인신매매(9%) 등의 다른 목적에 비해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2006년 아동 유괴 12건 중 범행 목적은 금품이 9건, 성폭력 2건, 앵벌이 1건으로 나타나 최근 유괴를 돈벌이 수단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생활안전연합이 조사한 결과, 2000년 이후 주요 유괴사건 16건 중 14건의 범인이 20~30대 남자로 나타났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사라지는 계절은 바로 지금, 봄이다. 경찰청의 박미혜 실종아동찾기센터장(경감)은 “사계절 중 봄철에 실종신고가 가장 많다”면서 “신학기가 시작되고 봄나들이가 많은 요즘 아이들의 실종·유괴를 방지하기 위해 부모의 세심한 관심이 더욱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8세 이하 실종아동으로 신고된 2,206명중 3월에서 6월에 신고된 어린이는 총 962명으로 절반에 이른다. 소풍 등 아이들의 야외 활동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아이가 사라졌을 경우 신고부터 하는게 급선무다. 일단 실종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은 합동심의위원회를 열어 24시간 이내에 수사여부를 결정한다. 이때 실종 사건이 범죄와 연관 있는지 가리는 절차로 가족과 시민단체, 경찰 관계자가 참석한다. 범죄와 연관이 있으면 '행방불명(유괴)'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하며, 연관성이 없으면 '단순가출'로 보고 182센터에 실종자의 신원을 등록한다. 유괴 사건의 경우 관할 경찰서의 모든 외근 인력이 동원되고 해당 지방 경찰청과 인접 지방경찰청까지 상황대비에 들어간다.

문제는 유괴를 판별하는 기준이다. 범인의 협박 전화나 실종자의 통장에 돈이 빠져 나가는 등의 ‘물증’이 없으면 대부분 가출처리된다. 그러나 최근 이혜진, 우예슬 양 사건에서 보듯 성도착증 환자나 장기매매를 노린 유괴의 경우 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아 단순가출로 처리돼 최악의 경우를 맞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 2000년, 집 앞에서 딸을 잃어버린 최명규(47)용진 씨는 생업도 포기한 채 8년 째 실종 전단지를 뿌리며 딸을 찾고 있다. 그는 "당시 딸이 만 5살 밖에 되지도 않았는데 ‘가출인 최준원' 이렇게 조서를 작성을 했다. 말이 안 된다"며 울분을 토했다.

1995년 집 앞에서 딸이 사라진 참담한 기억을 품고 사는 조병세 씨 역시 당시 경찰의 무성의한 태도를 질타했다. “다음날 경찰에 바로 신고했는데 단순 가출로 접수가 됐어요. 다섯살 짜리 아이가 무슨 가출입니까.” 조씨는 딸이 사라진지 13년이 됐지만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하루하루가 피가 마릅니다. 하지만 우리 희영이를 찾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어린이 유괴사건의 경우 대부분이 생명과 직결된다. 최근 미국 플로리다 경찰에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납치돼 사망한 어린이의 경우 44%는 납치 후 1시간 만에 살해당했다. 4시간 후 70%가 살해당했으며 일주일 후 살해 확률은 99%에 달했다.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정익중 교수는 “아동 납치 후 살해의 대부분(74%)은 첫 세 시간 내에 이루어진다. 무고한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조건 빨리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어린이 유괴 사건에서 초동수사가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의 어린이 유괴 사건은 보통 사흘에서 일주일 후 초동수사가 이뤄진다.

이혜진, 우예슬 양 실종사건에서도 경찰은 사건발생 사흘이 지나서야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일주일 뒤 공개수사로 전환, 초기 목격자 확보에 실패했다. 이처럼 사건이 초기에 소홀하게 다뤄진 이유에 대해 관계자들은 경찰조직 내 실종아동전담부서가 없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 각 지방경찰청 단위로 실종아동전담반이 운영되고 있지만 인원이 고작 1~2명에 지나지 않고 그나마 겸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선 경찰서의 사건별 특별전담반도 상시 운용하기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전국실종아동인권찾기협회 박혜숙(37) 공동대표는 2003년 아들(당시 2세)을 잃어버린 후 수시로 바뀐 경찰 전담부서 때문에 고생했다. 그는 “아이를 찾을 만한 단서가 잡히면 형사과로 갔다가 수사과, 강력계로 전담부서가 바뀌었다. 최근에는 폭력계에서 담당하는 등 일관성 없이 수사가 진행됐다”고 설명한다.

2005년 12월 실종아동법시행으로 전담 수사기구를 설치할 근거는 마련됐지만 뒷받침할 예산이나 인력 지원이 사실상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경찰청 이금형 여성청소년과장은 “유괴 살해사건은 수사장비를 갖춘 전문인력이 필요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미아실종가족찾기모임의 나주봉 회장은 “지금이라도 경찰청에 수사국 규모의 전담기구를 설치해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어린이 실종 수사가 진행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어린이 실종은 그 가족은 물론 사회를 피폐하게 한다. 1994년 집 근처에서 10살이던 딸 희영 양이 사라진 서기원 씨 가족은 10년 넘게 딸을 찾는데 매달렸다.

한때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았지만 딸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모든 재산을 탕진했고 이혼과 동시에 가족은 쭐뿔이 흩어졌다. 그 사이 신학도가 된 서기원 씨는 “이제 돌려보내 주세요. 10년도 넘는 세월에 눈물마저 말랐습니다” 라며 애타는 부정(父情)을 호소했다.

어린이 실종을 예방하고, 실종후엔 효과적인 대책이 즉시 가동되는 시스템과 사회안전망 구축이 그 어느때보다 요구되는 상황이다.

■ 경찰청 실종자 통계 믿을 수 있나?

2003년 3,206건이던 실종아동은 2004년 4,064건, 2005년 2,695건이었으나 2005년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2006년7,064건, 2007년 8,602건으로 대폭 늘어났다. 실종아동의 증가는 앞서 설명했듯, 실종아동의 정의가 8세 미만에서 14세 미만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경찰청 관계자들은 실종아동의 99%가 신고 후 보호자에게 인계된다고 말한다. 경찰청 통계자료를 보면 실제로 작년을 제외하고 경찰청의 실종아동 미발견 사례는 10건 미만이다. 특히 2005년에는 실종어린이 2,695명 전원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 통계를 접한 실종자 가족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2000년 첫째 아들 진호를 잃어버린 최명규(40) 씨는 “경찰 통계자료는 믿을 수 없다. 실종자 가족협회에서 체감하는 미발견 실종어린이는 이보다 훨씬 많다”며 “특히 장기 실종 어린이의 경우 유괴의 가능성이 높은데도 경찰 통계에서는 유괴 건수가 현저히 낮다. 협박과 금품 갈취 등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 한 단순 가출이나 미아로 처리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최근의 경찰청 발표 수치가 엇갈리고 있어 이런 심증을 굳히고 있다.

3월 초 미발견 실종아동에 대한 수사팀이 편성되고 대대적인 전면 보강수사가 시작되면서 경찰은 1993년부터 올해 1월까지의 미발견 실종아동이 82명(8세 이하 42명, 9~13세 40명)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혜진양의 사채가 발견된 후 3월 14일 경찰은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발생한 어린이 실종신고 4만9,209건 중 108건은 미제로 남아있다고 발표했다. 93년부터 97년까지 5년간 미발견 아동이 전혀 없다 하더라도 최소 26명의 수치가 다른 것이다.

■ 어린이 실종 대책 미비는 '예산' 때문?

아동 유괴를 예방하는 방법으로 경찰청의 아동실종 전담수사과를 설치하는 방안이 거론되지만, 정부에서는 ‘예산문제가 발목을 잡았다’고 항변한다. 과연 그럴까? 문제는 아동실종에 관한 정부예산지원이 보건복지부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16대 국회에서 통합민주당 김희선 의원은 경찰청 아동실종 전담수사과를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한 ‘실종아동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을 받아 든 국회 반응은 ‘절대 불가’였다. 김희선 의원실의 탁양삼 보좌관은 “당시 행자위 소속 법안으로 발의했으나 행자위에서 ‘우리 소관 아니다’라고 대답해 보건복지부 소속 법안 개정안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다시 ‘복지부 산하 법으로 (행자위 관할인) 경찰청 전담부서 설치는 불가능’이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 법안은 16대 국회에서 폐기 됐다가 17대 국회에서 한나라당 고경화 의원과 김희선 의원의 공동발의로 2005년 12월 통과됐다. 16대 개정안의 ‘경찰청 전담 부서설치’는 17대 국회에서 ‘보건복지부 산하 실종아동센터 설치’로 바뀌었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실종아동센터를 민간기구인 한국어린이재단에 위탁해 관리하고 있다.

한국어린이재단은 2006년 8억 원, 2007년 8억 원의 예산을 집행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낸 적은 없다. 복지부의 지원금이 나온 첫 해인 2006년 어린이 재단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실종부모 대표들과 6박 7일로 미국과 캐나다의 아동실종센터 견학을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실제 한국형 엠보시스템(아동실종경보 시스템)을 만든 것은 경찰청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복지부 예산으로 책정된 금액을 행자위 관할인 경찰청 전담부서 배치에 쓰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경찰청 전담부서를 만들려면 행자위 관련법을 고쳐야 할 것”이라며 “실제 이 예산이 집행되고 많은 실종어린이 가족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2008년 한국어린이재단에 책정된 예산은 8억 6,000만원이며 이 예산은 사업 홍보와 실종아동가족에게 쓰인다. 실종아동가족지원에는 구체적으로 예방 상담치료에 350만원, 의료비 지원에 100만원, 실종어린이 부모의 활동비나 전단지 제작에 도움을 주고 있다.

반면 경찰청 실종어린이 신고센터의 경우 관련 예산을 ‘아무도 모른다’. 경찰청 산하 실종어린이 신고센터에 문의한 결과 “예산 집행 담당이 공석이라 알 수 없다”란 대답만 돌아왔다.경기도 안양 메트로 병원에 차려진 고 이혜진 양의 빈소에서 이양의 어머니가 오열하고 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