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민 발음 못 미쳐도 깊이 있는 정보 습득이 중요자신에 맞는 목표 설정하고 영어 노출 빈도 늘려야

얼마 전까지 사회를 뜨겁게 새 정부의 ‘영어 몰입교육’검토 논란은 우리사회에서 영어가 차지하는 비중과 그것이 얼마나 예민한 관심사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예다. 그러한 영어 열기를 반영하듯 영어 사교육 시장도 15조 원에서 22조 원으로 추산되며 이미 40조원을 돌파했다는 주장도 있다.

비단 어린이, 청소년 영어교육 뿐만 아니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올해 초 중소기업 216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34.7%의 기업이 ‘영어면접 시행 중’이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나 일반인들이 체감하는 영어 위력은 더욱 크다.

‘영어면접이 취업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전체 응답자의 76.6%가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답해, 구직자들도 영어면접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취업전문 포털사이트 잡코리아가 최근20~30대 직장인 567명을 대상으로 자기계발 현황을 조사한 자료에서도 직장인이 자기계발을 하는 내용으로 영어회화(58.9%·복수응답)가 제일 많았으며 전공 자격증 준비(36.3%), 직장관련 전문서적 공부(33.6%), 취미·특기 분야 배양 (33.9%) 등이 그 뒤를 이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영어 열풍에 대해 일부에서는 ‘사교육 시장과 언론의 합작품’이란 비판을 하기도 한다. 단일어를 사용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실제 생활에서는 영어를 사용하는 빈도가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무모한 에너지를 투자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세계 20%가 사용하고 그 이상의 영향력을 갖는 ‘만국 공통어’인 영어를 무시하고는 개인이나 국가 모두 글로벌시대에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 인터넷 정보의 대다수는 영어로 이루어져 있다. 미국 애플사의 CEO 스티브잡스의 아이팟 나노 프리젠테이션 동영상을 비롯해 글로벌기업의 정보가 영어로 공개돼있다.

미 아이비리그 명문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은 2001년부터 ‘오픈코스웨어(OpenCourseWare) 프로젝트를 추진, 현재 이 대학의 1,800개 커리큘럼 자료가 인터넷에 올라와 있다.

세계 각지에서 하루 4,000만 명이 이용할 만큼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이용자의 절반은 독학자이며, 3분의 1이상은 학생이다. 일본은 교육자들이 중심이 돼 일본의 1,000개이상 교육 과정이 영어 등 외국어로 번역, 인터넷에 공개돼 있다.

정보를 선점하는 사람이 경쟁력을 갖는 시대에 영어를 빨리 읽고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경쟁에서 우위에 설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 고비용 저효율의 한국식 영어교육

한국인의 영어공부 방식에 대해 줄곧 지적된 문제점은 문법위주, 시험위주의 영어 공부로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써먹을 수 있는 실용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적다는 말이다.

잡코리아가 2월 4년제 대학졸업 예정자 69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영어 말하기 능력시험의 점수를 보유하고 있는 이가 10%였고, 본인의 어학수준에 대해 ‘외국인과 자유롭게 비즈니스 회화를 나눌 수 있는 상급수준’이라는 사람은 5.7%에 불과했다.

영어공부의 또다른 문제는 영어에 대한 목표 없이 무조건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고 보는 습성이다. 최근 보편화된 영어 연수와 유학 덕분에 20, 30대 젊은 층의 영어 능력은 예전에 비해 훨씬 향상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수준의 영어 회화를 구사할 수 있는 젊은 층이 많아진 반면 고급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전문가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국내 현실이다.

A로펌의 관계자는 “얼마 전 아무 하는 일 없이 영어로 법률 문의를 접수할 수 있는 비서를 채용하는 데, 월급 500만원을 준다고 공고해도 사람을 못 구했다”고 하소연했다. 제대로 된 고급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은 전무하다는 말이다.

이런 영어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서울대 영어교육학과 이병민 교수는 “전문가 양성 시스템으로 영어교육의 틀을 바꾸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는 단일어를 사용하는 우리사회에서 모든 한국인이 유창한 영어를 사용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중고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잘 하려고 하지 말고 대학교 이후 영어를 전공하는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영어를 가르쳐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그의 제안은 일반인이 영어를 훈련할 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즉, 다양한 분야의 영어를 조금씩 하는 것보다 일정수준 이상이 되면 자신과 관련된 전공영어, 업무 영어를 익히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장하준 캠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지난 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와 비슷한 생각을 드러낸 바 있다.

“영어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같은 시간을 영어에 투자하더라도 전문분야의 정보습득에 필요한 독해에 더 많은 노력을 투자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 사람을 만나서 날씨 이야기를 유창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선진문물과 정보를 빨리 습득해서 자기 전공 분야의 실력을 키우는 것이 영어 공부의 가장 큰 목적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영어 전문가들은 영어를 모든 사람이 원어민처럼 구사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또 영어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영어를 어느 수준까지 해야 할 지 ‘목표’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목표에 따라 영어 학습의 시기와 공부 방법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네이티브 스피커 수준으로 영어를 잘 하는 것이 목표라면 태어날 때부터 시작하는 것이 정답이다. 모국어를 배우듯 집 안에서 부모가 영어를 사용하는 영어 환경까지 갖춰지면 더욱 수월하다. 그러나 이런 환경을 갖출 수 있는 대한민국 가정은 극히 일부다. 영어 교육의 목표가 어느 정도 말하고 듣고 읽고 쓰는 수준이라면 공교육과 사교육을 병행하는 것만으로도 크게 문제 되지는 않는다.

또한 ‘영어는 어릴 때 잡아야 한다’는 생각도 편견이다.

전문가들은 발음과 엑센트 등 일부분을 제외하면 성인이 된 이후에 영어 공부를 시작해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취재중 만난 영어교육 전문가들은 “영어실력을 쌓는데 있어서는 노출빈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영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는 것은 지적 수준이 아니라 훈련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영어 노출빈도를 높이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영어를 많이 사용하는 지역에 살든지, 아니면 스스로 영어를 쓰는 방법이다. 첫 번째 방법은 유학이나 연수, 두 번째 방법은 스스로 학습을 통한 훈련이다.

온오프라인 교육을 듣든, 영어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접하든, 스터디 그룹을 통해 영어말하기를 익히든 영어를 사용하는 시간을 늘리면 영어 능력은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관건은 지속가능성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영어 공부에 있어서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적극적인 의지와 확실한 목표, 꾸준한 노력이 있다면 당신도 ‘영어 달인’이 될 수 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